◇돌아올 수 없는 시간을 그리며                          

‘아무도 밟지 않은 하얀 눈 위를 부부가 나란히 걸었습니다.

뒤를 돌아보니 눈 위에 4개의 발자국이 남았습니다.

30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 하얀 눈 위를 부부가 나란히 걸었습니다.

뒤를 돌아보니 눈 위에 8개의 발자국이 남았습니다.‘

하얀 눈이 펑펑 내린 어느 날 저녁. 중년의 부부는 들뜬 마음으로 자녀들과 함께 밖으로 나갔다. 중년의 부부는 손을 잡고 함께 걷고 그 뒤에 자녀들이 걸었다. 중년의 부부는 한참을 걷다가 뒤를 돌아보며 자녀들이 따라오는 모습을 바라본다. 마냥 어린아이로 보았던 아이들이 어느덧 청년들이 되어 부부의 뒤를 따르고 있다. 부부는 손을 잡고 기쁠 때나 슬플 때나 함께 했던 지난날의 삶을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30년 전, 우린 사랑으로 만났다. 3층짜리 옥탑방 꼭대기에 신혼집을 마련했다. 보증금 100만 원에 월 10만 원, 방 한 칸짜리를 얻었다. 75도의 기울어진 가파른 철 계단을 하루에도 몇 번씩 오르내리며 신혼을 보냈다. 보일러가 깔려있지 않은 방바닥은 냉골이었다. 연탄불이 왜 그렇게 잘 꺼지는지, 나갔다 오면 매캐한 연기를 마시며 번개탄을 피웠다. 방바닥이 따뜻하게 데 펴질 때까지 이불을 푹 쓰고 얼은 손을 꼭 잡고 얼은 몸을 녹이며 서로를 의지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옥탑방 꼭대기에서 지하 1층으로 내려갔다. 매캐한 번개탄을 피우지 않아도 되고 냉골 방바닥을 걱정하지 않은 곳으로 이사를 한 거다. 보일러가 있어 외출해도 걱정이 없었다.

이사하고 2년 후 기다리고 기다리던 사랑의 열매를 맺게 되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첫 아이를 낳았다.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다. 아이는 건강하게 잘 자라주었다. 첫 아이를 낳고 2년 후 작은 아이도 낳았다. 귀하고 귀한 딸이었다. 아들만 있는 집안에 첫 딸이 태어났다. 집안에 첫 딸을 낳았다고 다들 날 리가 났다. 그렇게 손녀딸을 기다리던 아이들의 할아버지는 안타깝게도 손녀가 태어나기 20일 전에 돌아가셔서 그리던 첫 손녀의 모습을 보지 못하셨다. 가족 모두 안타까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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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아이가 4살이 되었을 때 행복했던 가정에 위기가 닥쳤다. 큰아이 친구 엄마가 아이를 데리고 나갔는데 잠깐 사이에 두 아이가 없어졌다.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경찰서에 미아 신고를 했다. 부부는 정신없이 아이를 찾아 헤맸지만 찾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 어디선가 구세주가 나타났다.

이대 입구 역무원이 아이의 손을 잡고 집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역무원은 아이가 지하철을 타려고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가서 친구는 혼자 지하철을 타고 떠났지. 친구는 경찰의 도움으로 이틀 후에 보육원에서 찾았다. 큰아이는 안타고 그 자리에 서서 울고 있어 발견되었다고 했다. 어찌나 놀랬던지 부부는 아이를 부둥켜안고 눈물 콧물 흘리며 엄청나게 울었다. 큰아이는 그 전에 다 울었는지 사탕 하나 들고 우는 부부만 쳐다보았다.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겠다고 부부는 다짐에 다짐했다.

아이들이 더 자라기 전에 가족의 보금자리가 필요했다. 드디어 아이들과 함께 편하게 살 수 있는 아파트를 분양받게 되었다. 그것이 최초로 마련한 내 집의 보금자리였다. 자녀들은 잘 자라서 초등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 비가 오면 비 맞을세라 우산을 들고 학교 앞에 서서 기다렸고 눈이 오면 미끄러질까 봐 집 앞에 눈을 쓸고 학교까지 데려다주었다.

시간이 흘러 작은아이가 중학교에 들어갈 때가 되었다. 부부는 선교에 대한 사명을 갖게 되었다. 자녀들을 일반 학교를 보내지 않고 기독교 대안학교에 보냈다. 그것도 서울에서 부산으로 말이다. 부부는 아이들을 보내 놓고 아이들의 사랑을 알게 되었다. 함께 했던 시간을 그리며 눈물을 흘리는 날이 많았다. 결국은 부부도 짐을 다 싸서 아이들이 있는 부산으로 내려갔다.

10년이라는 시간을 부산에서 보냈다. 아이들은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하게 되었다. 부부는 나이가 들어가니 향수가 그리웠다. 아이들이 그리운 고향에서 정착하길 바라는 마음도 컸다. 그래서 빡빡하게 들어선 아이들의 고향 서울로 다시 이사했다. 중년 부부는 서울로 이사 와서 처음으로 맞이하는 함박눈을 걸으며 손을 맞잡고 아이들과 건강하게 살자고 다짐을 했다.

부부의 상징인 원앙

회상하다 보니 추위를 느끼게 되었다. 현실 세계로 돌아오게 된 것이다. 현실로 돌아와 보니 젊었던 부부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중년 부부가 있다. 이제 자녀들도 결혼할 나이가 되었고, 손주도 볼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중년 부부는 뒤따라오는 자녀들을 바라보며 시간이 흘러감을 안타까워한다.

서로의 희끗희끗한 머리카락을 바라보며 돌아올 수 없는 시간을 뒤로한 채 두 손을 꼭 잡고 눈 위를 걸어간다.

글/사진=박성옥 소장
글/사진=박성옥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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