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는 게 죄다

협상은 종류가 많다. 대상에 따라, 상황에 따라, 직책과 직업에 따라 나뉠 수도 있다. 이 장에서는 사람의 성격에 따라 크게 3가지 형태로 협상을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소프트형 협상, 하드형 협상, YNB(Yes and But)형 협상이다. 그리고 각 협상별 특징은 다음과 같다.

▲소프트형 협상 : 상대의 성장과 성공을 기원하는 협상.
▲하드형 협상 : 상대를 경쟁상대로 여기고 승리를 쟁취하고자 하는 형태의 협상
▲YNB형 협상 : 상대방을 인정하고 존중하면서 나의 의견을 이야기하며 진행해나가는 협상

수년 전 자동차세일즈맨으로 근무한 적이 있다. 당시 내 별명은 판매왕이었다. 깔끔한 양복에 넥타이, 시원시원한 걸음걸이와 경쾌한 인사, 매일 아침 일찍 출근해서 빗자루를 들고 사무실을 청소하고 깨끗하게 걸레를 빨아서 전시용 자동차를 청소하는 모양새가 꼭 전국판매왕의 자세라는 것이다. 20년이 넘는 경력을 가진 선배들은 나를 무척 예뻐했고 작은 것 하나라도 챙겨주려고 했다. 퇴사한 지 5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당시 선배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퇴사 직전까지도 만년 꼴찌를 면치 못했다. 선배들과 지점장님이 붙여주신 판매왕이라는 별명이 무색할 정도였다. 세일즈 경험의 부족, 시간관리와 마인드 컨트롤의 실패, 좁은 인맥도 한 몫 했으나 돌이켜 생각해보면 협상능력의 부재가 가장 큰 문제였던 것 같다.

하루는 차량 구매를 희망하는 고객을 만났다. K사와 H사를 두고 고민하고 있던 중 나를 찾아온 것이었다. 그 분이 나에게 물었다.

“영업사원 입장에서 봤을 때, 전 선생님은 H사 자동차와 K사 자동차 중에서 어떤 걸 고르시겠습니까?”

“당연히 H사 자동차를 구매할 겁니다.”

“그래요? 어떤 이유 때문입니까?”

“H사 자동차의 디자인이 훨씬 좋지 않습니까? K사가 비할 바 아닙니다. 저라면 당연히 H사 자동차를 고르겠습니다.”

나는 K사에 근무하고 있었다.

학창시절부터 수많은 봉사활동을 비롯한 관계중심의 비즈니스를 통해 만들어진 나의 성격은 기본적으로 소프트형에 가깝다. 나의 이득보다 상대방의 이득을 우선시하는 협상 방식은, 좋은 사람으로는 비춰질 지 모르지만 어느 분야에 종사하는가에 따라 크게 성장하거나 크게 실패하거나 둘 중 하나로 나뉠 수도 있다.

수강생이 50명에 불과하던 교실을 1년만에 120명으로 늘린 교육기관에서의 경험처럼 남들을 도우면서 성장하는 사업분야에서 꾸준히 종사했다면 이야기는 달라졌을지도 모르겠지만, 짧은 시간 내에 클로징해서 고객을 내 편으로 만드는 자동차 세일즈나 보험 세일즈는 선천적으로 맞지 않았다. 내 성격으로 보아 짐작컨대 하이퍼포머(High Performer, 높은 성과를 내는 부류의 세일즈맨)로서의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상당한 노력, 그 이상의 변화가 필요할 것이다.

세일즈를 하면서 고객을 대하는 나의 성격, 그런 성향 때문에 수십군데의 대리점을 방문하고 난 뒤 최종적으로 나에게 와서 구매의사를 내비친 고객들도 여럿 있었다. 하지만 나는 “더 좋은 세일즈맨, 더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분이 계시면 그 곳에서 계약하셔도 괜찮습니다.”하고 이야기함으로써 ‘다 잡은 물고기’를 놓쳐버린 적 또한 부지기수였다.

똑같은 세일즈라도 자동차 영업은 하드형과 YNB형의 적절한 융합을 통해 진행해야 하는 일이며 소프트형 협상은 전혀 필요없는 일이라는 사실을 알고 난 뒤에야 일주일에 4대를 동시에 계약하는 쾌거를 이루기도 했지만, 그런 협상의 기술을 전혀 몰랐던 신참내기 시절에는 피를 말리는 기분으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만약 지금 위와 같은 상황이 발생한다면 나는 어떻게 고객을 상대해야 할까? 모르긴 해도 아마 이런 식으로 고객을 응대하지 않을까 싶다.

“선생님이라면 H사 자동차와 K사 자동차 중에서 어떤 걸 고르시겠습니까?”

“H사만큼 훌륭한 회사도 없을 겁니다. 하지만 저라면 당연히 K사의 자동차를 구매하겠습니다.”

“그래요? 어떤 이유 때문입니까?”

“H사는 국내에서 가장 큰 규모의 자동차 회사입니다. 디자인도 훌륭하고, 고객층도 두텁지요. 서비스도 좋고요. K사도 H사 못지 않게 훌륭한 대기업이지만 H사 만큼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래서 다양한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고객들의 만족도가 올라갈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고요. 다른 자동차 회사나 세일즈맨들이 결코 제공할 수 없는 수준의 서비스라는 것을 알아두셨으면 합니다. 모든 고객에게 지원해드리는 것은 아니고, 특별한 몇 분에게만 제공됩니다.”

“서비스라면 어떤 게 있는지요?”

“이야기가 좀 길어질 수 있는 부분인데요. 우선 계약서에 서명하시고, 차 한잔 마시면서 차근차근히 설명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서명은 여기에 하시면 됩니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

상대방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 싸워서 백번 이길 수 있다. 협상만큼 이 속담이 들어맞는 일도 별로 없을 것이다. 상대방이 가진 장점과 단점을 빨리 캐치할 수 있다면, 그래서 상대방의 단점을 보완하면서 나의 장점을 부각시킬 수 있다면 어떤 세일즈든 성공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나를 모르고 상대방을 모르면 상대방의 장점과 나의 단점이 맞물리는 불상사가 생긴다. 세일즈 업계에서뿐만 아니라 어느 업종에서든 상대를 알고 나를 아는 것은 중요한 포인트다. 그래서 어느 협상 자리에서든지 정보는 상대의 장점과 단점을 파악해낼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요소다. 정보에 민감한 사람은 어느 협상의 자리에서든지 상대방을 내 편으로 끌어올 수 있다.

물론 정보만이 좋은 협상을 위한 도구가 되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좋은 도끼가 있어도 도끼질하는 사람이 어린 아이라면 나무패기가 곤란해진다. 좋은 정보를 활용할 수 있는 마인드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물론 그 마인드라는 게 겸손, 친절, 배려와 같은 것일 수도 있지만 협상에서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친구, 혹은 동료로서 좋은 사람이 있다. 자동차 세일즈맨으로 근무했을 때 내가 그런 직원이었을 것이다. 무슨 말이든지 다 들어주고 포용해주는 사람, 그래서 무슨 일을 하던지 이해해주고 도와주려는 사람. 아마 인간적으로는 무척 훌륭한 사람일지 몰라도, 협상에서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 성격이라고 할 수 있겠다. 결국 전국판매왕이라는 별명을 가진 만년꼴찌 세일즈맨에 불과하지 않은가.

훌륭한 인격, 겸손한 자세, 나의 이익보다 상대방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진솔된 마음은 살면서 필요한 것들이다. 반면에 협상은 전쟁이다. 전쟁터에서 훌륭한 인격, 겸손한 자세, 진솔된 마음은 아무 필요가 없다. 일단 전쟁에서 상대방을 내 편으로 만들거나 굴복시키고 난 뒤에야 비로소 훌륭한 인격과 겸손한 자세가 빛을 발하는 것이지, 손에 장미꽃 한 송이만 달랑 들고 전쟁터에 나가는 사람은 없다.

◇시간은 꽃과 같다

어떤 협상은 시간과 밀접한 연관을 맺는다. 월간 실적으로 수익을 올리는 세일즈맨이나 소규모 기업가는 시간에 의해 큰 타격을 받는다. 아무리 훌륭한 제품과 기술력을 갖고 있다고 해도 이달에 수익이 나지 않으면 다음달이 힘들어진다. 시간에 쫓기는 상황에서 진행하는 협상은 진행하는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큰 스트레스가 아닐 수 없다. 그래서 나의 이익을 최대화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협상 그 자체는 나의 이익을 최대화하는 게 목적이기 때문이다.

시간에 쫓기는 상황에서 협상을 해야 할 때 필요한 것은 두 가지다. 협상의 목적을 잊지 않는 것, 그리고 감정과 사실을 구분하는 것이다. 앞에서도 이야기했듯이 협상은 나의 이익을 최대화하는 게 목적이다. 상대방을 배려하는 자세, 겸손한 태도, 정직함을 기본으로 깔고 시작하는 것이지만, 대부분 협상에서는 나의 이익이 우선이다.

시간에 쫓기는 상황에서 협상의 목적을 잊지 않는 것, 그리고 감정과 사실의 구분을 구분해야 하는 것이 동일선상에 서는 것은 그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 정해진 시간 안에 결정적인 결과물을 도출해내지 못하면 큰 피해를 입을 수도 있는 협상에서는 마인드컨트롤을 하기가 어려우므로 본연의 의미가 흐트러지기 쉽기 때문이다. 독자로 하여금 생각할 여지를 남겨두기 위하여 피터 드러커가 남긴 유명한 어록을 인용해본다.

"노조가 없는 기업은 존재할 수 있지만, 기업이 없는 노조는 존재할 수 없다."

오마하의 현인 워렌 버핏Warren Edward Buffett 의 투자법칙은 유명하므로 언급하기가 꺼려지는 게 사실이나, 협상에 있어서 꼭 필요한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 다양한 명언과 투자에 관한 철칙이 있지만 흔히 알려진 두 가지는 다음과 같다.

1. 절대로 돈을 잃지 않을 것.
2. 절대로 1번 원칙을 잊지 않을 것.

협상에서 얻어지는 이익은 금전적 이익이다. 사람을 얻는 기술, 마음을 얻는 방법으로서의 협상도 협상이지만, 실질적인 협상을 이야기할 때 금전적 이익 외엔 아무것도 의미가 없다. 협상은 오직 금전적 이익을 위해 존재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금전적 이익 안에 다양한 것들이 포함되어 있을 뿐이다.

워렌 버핏은 수년 전 자기 재산의 85%를 자선재단에 기부하겠다고 이야기한 바 있다. 무려 370억 달러, 우리 돈으로 35조원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돈이다. 잠시 생각해보자. 앞에서 언급한 투자 원칙에 어긋나는 행동이라고 생각되지 않은가? 워렌 버핏을 두고 투자의 귀재라고 이야기하지만, 어떤 면에서 봐선 협상의 귀재라고 해도 좋을 듯 하다.

상호간의 정당한 협의가 이루어졌을 때 올바른 협상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나는 첫 돌을 앞두고 있는 아들이 앙앙거리고 울면 젖병을 물리거나 재운다. 아들은 앙앙거리고 울면서 나에게 무언의 협상을 제시했고, 나는 이를 받아들였다. 아들 입장에서는 성공적으로 협상을 이룬 셈이다. 아들은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으나, 나는 어떤 피해도 입지 않았고 손해도 입지 않았다.

워렛버핏이 35조원이 넘는 돈을 기부한다고 했을 때, 어떤 측면에서는 막대한 경제적 손실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다른 측면에서는 그가 막대한 재산을 기부하는 것이 완전히 다른 의미를 가져다준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어떤 협상에든지 가장 필요한 것을 하나 꼽으라고 한다면 가능성에 대한 믿음이 아닐까 싶다. 금전적 이익과 금전적 보상이 협상의 주요 목적이긴 하나, 본연의 의미는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가진 사람들끼리 가장 좋은 합의점을 찾기 위한 과정이라는 점을 생각해봤을 때 양쪽 모두에게 득이 될 만한 결과를 만들어내는 건 당연한 일이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쳐서 경쟁구도가 되거나 실패로 끝나버리는 협상보다는 쌍방 모두에게 만족스러운 결과를 찾는 건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다.

글/사진=전준우 작가
글/사진=전준우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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