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피다

야간 근무 마치고 잠시 들를 때가 있어 집에 있는 아내에게 점심 먹고 늦게 들어간다고 하니 삐죽거린다. 미안한 마음이 들어 집에가면 날씨도 좋으니 산책이나 가자고, 그러는 길에 꽃집에 들러 꽃 한 송이 사주겠다고 했다. 그러자 금세 신나서 다시 웃는다. 오후의 봄 햇살 가득한 시간에 둘이 나와 동네 산책길 조금 걷고 아내가 자주 가는 꽃 가게에 들어갔다.

장미니 튤립이니 보면 알 것 같긴 한데 생전 내 손으로 만져본 일 없는 꽃이라 꽃집 사장이 권하는 알 수없는 몇 송이의 꽃 을 지켜보던 아내에게 건넸다. 비닐에 곱게 싸인 이름도 긴 그 꽃을 아내는 요리 돌려 보고, 조리 돌려 보며 싱글싱글 신이 났다. 길가에 핀 벚꽃에 빗대어 사진 한 장 금방 만들더니 SNS에 올리며 그럴 싸한 남편 자랑도 해준다.

피고 나면 져버리는 꽃이다. 살면서 몇 번이나 손에 들려줬을까 기억도 안 나는데, 심술 색시 속내 달래주려고 사준 꽃 몇 송이가 오늘 남편 노릇 제대로 하게 해준다. 꽃을 받아 들고 저리도 좋아하는 아내를 보니 앞으로 이러저러한 곡절이 있으면 꽃 사서 달래 볼 복안만 떠오른다.

꽃(사진=김강윤 소방관)
꽃(사진=김강윤 소방관)

집에 와 아내는 투명한 유리잔에 물 받아 꽃을 꽂았다. 하루 뒤에 보았는데 그새 만개했다. 튼실한 녹색 줄기가 뿌리도 없이 머금어 들인 유리잔 안의 수분이 하얗고 분홍인 꽃잎을 활짝 열어젖혔다. 봄이 되어 피는 것인지, 물먹어 피는 것인지 식물의 조화는 알길 없었지만 집안에 또 다른 생명이 살아나는 걸 보니 그냥 흐뭇하다.

아내가 없는 거실에 앉아 가만히 꽃을 보다 언젠가 지고 말 것 아닌가 하는 섭섭함이 미리 들어 휴대전화 집어 들고 사진 한 장 남겨 놓는다. '이 꽃이 모년 모월 모시에 내가 아내에게 준 귀한 꽃'이라 말하며 나중에라도 심하게 생색내고 싶은 마음도 있고, 우리 집에 와 잠시라도 살다 간 살아있는 무엇이라는 생각도 들어 고마워 서기도 하다.

찍어 낸 사진 한번 보고, 꽂혀 있는 꽃 한번 보니 불현듯 생각한다. 천년만년 살고 싶은 인간의 욕구는 암만 봐도 잿빛인데 며칠을 잠깐 살다가도 피어나는 꽃의 색깔은 저리도 아름답구나. 살아있는 목숨이야 다 귀하겠지만 구차함 없이 파릇하게 살다 지는 꽃이 더 귀해 보이는 게 나뿐인가 한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는 노랫말...

하지만, 지금은 꽃이 아름답다.

꽃이 피어서 좋은지, 봄이 와서 좋은지 어쨌든 좋은 날이다.

글/사진=김강윤 소방관
글/사진=김강윤 소방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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