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옳음의 형성과정

나의 아침은 새벽 4시 반을 전후로 시작된다. 더 일찍 일어날 때도 있고, 늦게 일어날 때도 있다.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마음에서 속삭이는 소리가 있다. "10분만 더 자자."하는 음성이다.

하루는 10분만 더 자자는 속삭임을 뒤로 하고 일어나서 노트에 필기했다. 10분만 더 자자는 음성은 어디에서 온 것인지 생각해봤다. 그리고 피곤할 것이라는 생각에서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10분만 더 자자는 생각은 명백히 거짓된 생각이며, 나는 생각에 속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사실 10분 더 자거나 덜 자는 건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렇지 않던가? 10분 더 일찍 잔다고 해서 피로가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10분 안 잔다고 해서 더 피곤한 것도 아니다. 늦잠을 자는 이유는 피곤해서가 아니다. 피곤할 거라는 믿음, 피곤할 거라는 생각, 그 생각에 속은 것일 뿐이다.

옳음은 성공적인 협상의 악이다. 옳음을 통해 모든 협상은 물거품된다. 나의 옳음은 나를 망치게 하는 가장 큰 요인 중 하나다. 사람, 문화, 사회적 직위 무엇이든 관계를 유지하는 데 있어 첫 번째 필요요소는 효율적 의사소통이다. 신체적 장애를 갖고 있는 아이의 용기와 장애를 극복해가는 스토리를 다룬 영화 [원더]는 옳음과 친절함 중 옳은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이야기해준다. 협상은 관계의 개선이다. 먼저 관계를 우호적으로 만드는 데 집중해야 한다.

낯선 이에게 말을 거는 올바른 방법은 조심스럽고 겸손하게 하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이런 교훈을 가슴 깊이 새겼다면, 지금까지 내가 묘사한 위기와 논쟁 가운데 얼마나 많은 것을 막을 수 있었을까? 『타인의 해석』, 311p, 말콤 글래드웰, 김영사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저널리스트인 말콤 글래드웰은 그의 저서 [타인의 해석]에서 낯선 이에게 겸손하라고 이야기한다. 이런 기본적인 사실을 잊은 사람에게서 효율적인 협상 기술이라는 것이 나올 수 없다. 개인적 합리성을 주장하는 강제성이 아니라면, 대다수의 상냥하고 겸손한 자세에서 성공적인 협상이 만들어진다.

◇생각의 진행속도

옳다는 생각은 때때로 위험한 상황에 처하게 한다. 그리고 이 생각의 속도는 육체의 속도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다. 세계적인 슈퍼리치들의 탄생으로 20년 넘도록 세계 부자순위 1위에 머물러있다가 최근 4위로 밀려난 마이크로소프트의 창업자 빌 게이츠는 그의 저서 『생각의 속도』에서 "비즈니스의 경쟁우위와 새로운 시장수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관리자들의 정보능력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한 바 있다. 16년 전부터 미래 정보화 사회를 정확하게 예견한 빌 게이츠의 예언대로 IT의 발전은 엄청난 속도로 변화하고 있다. 생각의 속도는 곧 IT성장의 속도와 맞먹는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아마존의 설립자 제프 베조스는 세계 최고 순위에 오르는 데 불과 58년 33일(2021. 02. 16일 기준)밖에 걸리지 않았다. 아마존을 설립한 1994년부터 2021년까지를 계산해본다면 1800억 달러 규모의 자산을 모으는 데 고작 28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생각의 속도로 인해 28년만에 순자산 190조에 달하는 갑부가 된 것이다.

서구적 사고방식, 사업가 기질, 선진국에서 얻을 수 있는 문명의 혜택 등 다양한 요소들로 인해 혜택을 본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성공이 오로지 주변환경에 의해서만 얻어진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들의 모든 성장은 훌륭한 주변환경과 주위 사람들의 도움을 힘입어 만들어진 긍정적 사고의 결과다. 목표를 향한 진취성, 탁월한 감각, 포기를 모르는 집념 등이 없었다면 이루어질 수 없는 일들이다.

반면 다른 방면에서의 속도가 그들의 마음을 지배했다면 어땠을까?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우리는 긍정적이지 않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 그들이 가진 생각의 속도가 역사를 어떻게 뒤바꾸어놓았으며, 또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앗아갔는지 알 수 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상대방보다 내가 낫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입 밖으로 꺼내지 않을 뿐, 상대방보다 낫다는 생각은 행동과 말에서 드러나기 마련이다. 상대방을 꺾고 이겨야겠다는 의지의 대다수는 옳음에 가깝다. 차라리 배우고 들을 수 있다면 더  빠르고 효과적인 협상이 가능할 텐데 말이다. 배우겠다는 말, 의견을 수렴하고 진지하게 고민하겠다는 생각 자체가 나의 옳음을 내려놓는 것이기 때문이다.

◇생각에서 벗어나

비교적 최근에 있었던 일이다. 수백억원의 가치를 가진 사업체에서 CMO(Chief Marketing Officer, 최고마케팅책임자) 직책을 갖게 되었다. 경험해본 적 없는 일이었지만, 훌륭한 직책을 위임해준 분들의 호의에 보답하기 위해 꾸준히 공부해나가면서 기업의 가치를 올리는 데 집중하기로 했다. 그런데 아뿔싸! 일을 시작한 지 보름도 되지 않아서 문제가 생겼다. 금전적인 명예와는 전혀 동떨어진, 오직 사회적 가치만을 추구하는 청소년 협회 본부에서 연락이 왔다. 지역을 담당하는 사무국장으로 근무하라는 지시였다. (참고로 사뿐히 거절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미리 알려두겠다.)

무척 난감했다. 일을 시작하기도 전에 불쑥 퇴사를 이야기한다는 게 말처럼 쉽지 않았다. 당황스럽기는 그들 역시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함께 사업을 진행하던 분들은 평범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자신의 인생과 분야에서 탁월한 실적, 경력을 쌓아가고 있는 분들이었다. 책임감 없이 일을 시작한다는 것도 그렇지만, 제법 중요한 보직을 맡은 상황에서 갑자기 퇴사를 이야기한다는 것은 몹시 어려운 일이었다. 어쨌거나 그 난감한 상황을 가장 빨리, 그리고 효과적으로 처리하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그것은 바로 솔직하게, 가감 없이, 그리고 겸손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담대한 태도다.

용기를 내서 솔직하게 말씀드리고 양해를 구했다. 다행히 모든 구성원들이 마음을 열고 이해해주어서 일은 잘 처리되었다. 덕분에 퇴사하고 난 이후에도 힘이 닿는대로 그들을 계속 돕겠다는 마음이 내게 있었다. 언젠가는 그들에게 뿌린 마음의 씨앗이 단단한 열매가 되어 돌아올 것을 믿기 때문이다. 속으로 혼자 끙끙 앓고 있었더라면 지금쯤 더 큰 문제가 생겼을지도 모를 일이다.

◇씨앗을 가꾸는 세계

협상에서 낮선 상대를 대할 때, 혹은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협상에서 상황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작은 일에서부터 비슷한 부분을 찾고, 그 분야를 토대로 대화의 물꼬를 트는 게 중요하다. 마음이 열리는 가장 쉽고 빠른 길들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 이전에 필요한 것은 태도다. 겸손하고 친절한 자세가 필요하다.

아무리 작은 씨앗이라도 잘 가꾸면 열매가 맺히고, 나무가 되며, 나중에는 숲을 이룬다. 반대로 씨앗을 잘 가꾸지 못하면 잎만 무성한 나무가 되거나 열매가 없이 볼품 없는 덤불이 되기 쉽다. 마음의 씨앗 역시 마찬가지다. 씨앗을 잘 가꾸면 아름다운 숲이 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덤불이 우거진 가시밭이 되기 쉽다. 겸손하지 않은 태도, 상황을 빠르게 악화시키는 태도는 모두 덤불이 우거진 가시밭과 같은 마음에서 비롯된 일들이다. 크고 작은 협상에 있어서 잘 가꾸어진 마음은 얼마나 중요한가?

글/사진=전준우 작가
글/사진=전준우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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