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재희 기자의 ‘스토리가 있는 꽃 이야기’ 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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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재희 기자의 ‘스토리가 있는 꽃 이야기’ ⑭
  • 방재희 기자
  • 승인 2021.06.11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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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 수 없지만 참아야 하는 것들에 대하여 - 인동

참을인자 세개면 살인도 면한다는 속담이 있다. 분노,괴로움, 슬픔, 억울함 등 참을 수 없어 보이는 일을 참아야하는 것은 모두에게 숙제다. 고통의 시간은 인생의 겨울에 비유되곤 하는데, 우리더러 인생의 겨울을 잘 견뎌보라고 응원을 보내는 선구자 나무가 있다.
 
겨울의 뭇서리, 칼바람을 꼿꼿이 이겨낸다고 '겨우살이'라고도 부르는 '인동(忍冬)'이 지난 겨울도 잘 이겨내고 덩굴마다 훈장처럼 금색 은색 꽃을 달았다.

볕좋은 담장을 타고 올라간 인동덩굴에 금색은색 꽃이 한창이다.
볕좋은 담장을 타고 올라간 인동덩굴에 금색은색 꽃이 한창이다. (사진=방재희 기자)

"나는 혹독했던 정치 겨울동안 강인한 덩굴풀 인동초를 잊지 않았습니다. 모든 것을 바쳐 한 포기 인동초가 될 것을 약속합니다."

故 김대중대통령이 독재권력의 압박과 죽음의 위협 속에서도 민주화에 대한 열망을 잃지않은 자신을 인동초에 비유했기에 인동을 풀이라고 오해하지만, 인동은 덩굴성 관목, 즉 덩굴형태의 나무다.
 
반상록성 활엽인 인동은 냉온대에서는 겨울에 잎을 떨구고 휴지기를 갖지만, 김대중의 고향 전라남도에서는 잎이 붙은채 겨울을 난다. 푸른 잎을 달고 겨울에 맞서는 인동의 모습이 혹독한 정치적 겨울을 지나던 김대중에게 각별한 의미가 되었던 모양이다.
 
사실 인동이 김대중에게만 영감을 준 것은 아니다.  인동은 소나무나 대나무처럼 길상화로 여겨져서 역사에 오래전부터 등장해왔다.
 
백제무령왕릉에서 출토된 왕비 금제관식에 등장한 인동당초무늬(인동덩굴무늬)는 중앙의 연꽃받침과 그 위에 놓인 작은 병에서 피어난 연꽃송이를 중심으로 주위에 덩굴장식이 더해진 형태이다.

인동덩굴무늬는 고구려 강서대묘 천장 굄돌, 천마총 천마도 둘레, 신라 및 고려 인동당초무늬 암막새같은 우리 역사 유물 뿐만 아니라 유럽의 팔메트문양처럼 서양에서도 다양한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 겨울을 이겨내고 끊임없이 뻗어나가는 인동덩굴처럼 시련을 잘 통과하여 좋은 것을 오래 누리고 싶은 염원은 장소와 시대를 가리지 않는 법.

백제 무령왕릉 출토 왕비 금제관식 국보 제155호. (사진=국립중앙박물관)
백제 무령왕릉 출토 왕비 금제관식 국보 제155호. (사진=국립중앙박물관)
안압지에서 출토된 인동당초무늬 암막새. (사진=국립경주박물관)
안압지에서 출토된 인동당초무늬 암막새. (사진=국립경주박물관)

인동은 덩굴 뿐만 아니라 꽃에도 모두의 바램이 형상화한 나무다. 인동꽃은 두마리 학이 나란히 머리를 맞댄 것처럼 보여서 노사등(鷺鷥藤)이라고 부른다. 학은 선비의 상징이자 십장생 중에 속하는 장수의 대표주자인데, 특히 한번 부부의 연을 맺으면 평생 함께한다는 학의 사랑 때문에 결혼으로 대표되는 행복을 의미한다.

학 두마리가 머리를 맞댄 듯 보이는 인동꽃
학 두마리가 머리를 맞댄 듯 보이는 인동꽃 (사진=방재희 기자)
쌍학과 덩굴 문양이 함께 새겨진 조선시대 나전칠 옷함. (사진=국립중앙박물관)
쌍학과 덩굴 문양이 함께 새겨진 조선시대 나전칠 옷함. (사진=국립중앙박물관)

벨기에의 화가 루벤스가 그린 '인동덩굴을 배경으로 한 루벤스 부부의 자화상'에는  인동덩굴처럼 결혼의 행복이 오래 지속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겼으니, 이렇듯 인동이 주는 영감은 동서양이 다르지 않다.

인동덩굴 그늘에서 루벤스와 이사벨라 브란트 1609 (사진=독일 뮌헨 알테 피카코텍 미술관)
인동덩굴 그늘에서 루벤스와 이사벨라 브란트 1609 (사진=독일 뮌헨 알테 피카코텍 미술관)

인동은 전국적으로 자생하는데, 초여름을 맞는 요즘, 볕좋은 산기슭이나 돌담을 타고 올라간 덩굴마다 '금은화(金銀花)’라고도 불리는 인동꽃이 한창이다. 인동꽃은 향기가 무척 진해서 그 근처만 가도 바로  알아차릴 만큼 존재감 뿜뿜이다.
 
게다가 혀끝을 즐겁게하는 달콤한 꿀이라니...흰색꽃의 긴대롱 끝 부분을 빨아보면 달콤한 꿀이 그득하다.  영어이름  honeysuckle에서는 벌에게 최고의 밀원식물인 인동꽃꿀을 간식으로 삼아야 했던 배고픈 아이들의 모습이 연상된다.
 
인동꽃은 금색 은색 꽃이 한꺼번에 피는 것이 아니라 처음에는 하얀색으로 피었다가 꽃가루받이가 완료되면 노란색으로 변하는 것인데 이것은 곤충들에게 수정이 되었다고 알리는 신호라고 한다.
 
겨울을 잘 나기위해서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는, 효율적인 사용법을 고민해 왔을 인동. 금은화에는 이미 수정되어 단물이 빠진 꽃을 찾아오느라 헛걸음하게 될 벌나비를 안타깝게 여긴 고마운 배려가 담겼다.
 
인동꽃에는 전염병에 걸려서 연이어 세상을 떠난 금화 은화 자매가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약초로 태어나겠다는 옛이야기가 전해지는만큼 그 효능이 다양하다. 금은화는 말려서 차로 마시거나 술로 담가마시기도 하며, 약재로 복용한다.

금은화를 약재로 쓰려면 꽃봉오리나 막피기 시작한 꽃을 따서 말려야 한다. (사진=방재희 기자)
금은화를 약재로 쓰려면 꽃봉오리나 막피기 시작한 꽃을 따서 말려야 한다. (사진=방재희 기자)

인동은 해열,해독,발한작용이 있어 예로부터 감기•몸살로 열이 심하고 전신이 아플 때 줄기를 달여서 먹었으며, 전염성간염,종기 등에 치료제로 쓰였다. 또한 소장의 경련을 풀어주고 고초간균, 포도상구균의 생장을 억제시키는 것으로 전해졌다. 입부터 소화기관 끝까지 염증이 생길 수 있는 현대의 난치병인 크론병에도 효과가 있다고 한다.
 
모제약회사는 인동덩굴꽃봉오리추출물이 위점막을 보호해 위 건강에 도움을 준다고 기능성을 인정받았다.
 
청나라 『연수방단(燕守方丹)』은 "금은화는 피부를 촉촉하고, 젊어지게 한다"고 적혀 있어 화장품의 원료로도 쓰인다.
 
'본초강목' 에 "인동꽃은 귀신의 기운이 몸에 덮쳐 오한과 고열이 나고 정신이 어지러워지고 급기야는 죽음에까지 이르게 된다는 무서운 오시병을 고치는 명약"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러한 이유로 귀신을 다스리는 ‘통령초(通靈草)’, 즉 영이 통한다는 신령한 이름마저 지녔다.
 
마음에 병이 생기면 몸도 아프다. 미국의 한 스트레스 연구실에서 진통제가 실연의 고통에도 효과가 있다는 발표를 했다. 그렇게 보면 겨울을 난 인동의 좋은 기운이 오시병처럼 심약한 상태에서 생기는 몸의 이상을 치료한다는게 그럴듯하다. 
 
나는 아이셋을 모두 자연분만으로 낳았다. 진통은 참을 수 없이 괴롭지만 그순간이 지나가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멀쩡해진다. 그러다가 조금씩 강도가 높아지고, 잦아진다.
 
첫아이를 낳을 때다. 열시간에 걸친 산고에 지친 나머지 진통과 진통 중간에 졸았더니 분만대기실을 지나던 간호사가 "오늘 애 안낳을거에요?"하며 호통을 쳤다. 야속했다. 의약분업으로 인한 의사파업으로 업무가 가중된 것은 이해하지만 이게 야단맞을 일인가 말이다.
 
세번째 아이라고 진통이 덜해지거나 익숙해져서 쑴풍쑴풍은 아니었다. 오히려 알기 때문에 더 두려웠다. 참을 수 없는 고통이었지만 드라마에서 보는 것처럼 소리 지를 수 없었다. 소리를 내면 더이상 고통을 견뎌낼 수 없을 것같아 무서웠다.
 
신음소리도 못내고 식은땀을 흘리며 누워있는 내 손을 꼭 잡아준 손이 있었다. 간호사였다. 그녀는 나직한 소리로 잘 버티고 있다며 땀을 닦아줬다. 혼자만 던져져 있다고 생각한 고통의 순간을 덮어버린 울림이 컸던 응원이 었다.
 
인동꽃은 나팔을 닮았다.(북아메리카가 원산인 붉은인동은 트럼펫인동이라고 불린다.) 쌍나팔을 부는 것 같은 인동꽃 모양은 겨울을 잘 버텨낸 자신을 자축하며, 겨울을 지나가고 있는 누군가를 향해 소리없는 응원을 보내는 모습으로, 마치 비발디의 '두대의 트럼펫을 위한 협주곡'의 경쾌한 시작처럼 기운을 북돋워 준다.

트럼펫의 힘찬 연주를 연상시키는 인동꽃 (사진=방재희 기자)
트럼펫의 힘찬 연주를 연상시키는 인동꽃 (사진=방재희 기자)

성경은 우리에게 익숙한 고통외에 낯선 고통은 없으며 감당할 수 없는 능력을 넘어서는 고통도 없고, 고통을 만날 때면 고통을 벗어날 길도 마련해주겠다고 약속하고 있다.
 
신은 직접 일하지 않고 인간을 통해 일한다. 혼자 겨울의 된바람을 맞는 길은 외롭지만, 내가 낸 발자국 뒤로 따라걷는 누군가로 인해 길은 다져지고 넓어진다. 고통은 그 상황이 끝이 아니라, 고통을 상대하는 마음이 달라지는 순간 끝난다. 내가 오늘 겪는 고통이 누군가에게는 '나혼자가 아니구나'하는 공감과 힘을 주는, 고통의 출구가 될 수도 있다.
 
지금 훈장처럼 꽃을 피웠지만 이 찬란한 계절이 지나고 나면 인동에게 또다시 혹독한 겨울은 찾아올 것이다. 그러나 지난 겨울을 이겨냈듯, 잘 다져진 길을 지나 또 견뎌내리라. 그리고 나서 인동은 한마디만큼 성장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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