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어린이집에서 아들의 유형검사 결과를 받은 적이 있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특정 성향에만 치중되어 있는 것과 달리 아들은 모든 유형에서 평균 이상을 받았는데, 상당히 예외적인 경우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내는 매우 흡족해했고, 나 역시 육아방식과 교육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시간이 되었다. 인생이라는 것이 결코 어린시절의 경험만으로 훗날의 방향을 결정할 수는 없으나, 안정된 가정에서 비롯된 가정교육이라는 것이 아이의 인생에 적잖은 영향을 미치는 것 또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나는 단 한 번도 10대로 돌아가고 싶은 적이 없었다. 왕따, 학교폭력은 나와 상관없는 일이었고 얽힐 만한 일도 없었다.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낮은 자존감을 이길 수 있는 힘, 하루에도 수백 번씩 마음을 괴롭히는 부정적인 생각을 처리할 만한 마음의 힘이 없다는 것이었다.

나는 성인이 되어 제법 선생 노릇을 하게 되면서부터 마음의 힘을 키우고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습관화하는 훈련을 지속적으로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었는데, 덕분에 나와 같은 암울한 10대 시절을 보내고 있을 친구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이야기들을 책으로 쓰고 싶었다. 책을 출간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가 되었고, 이제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다. 어느 순간, 어린 시절 봐온 부모님의 인생과 그때 부모님의 나이가 되어버린 나의 인생이 오버랩되기 시작했다.

부모님은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분들이고, 또 존중하는 분들이다. 그분들의 인생이 없었다면 나와 누나의 인생도 없었을 것이고, 그분들의 노고와 수고 덕분에 지금의 내가 있음에 감사하다. 부모가 되어보기 전에는 부모님의 사랑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나이가 들면서 새삼스레 느끼고 있다. 반면에 어른이 되고 나니, 부모님의 삶이 애처로워 보일 때도 있었다. 낮은 자존감과 피해의식으로 흘려버린 10대. 그건 분명히 나의 문제였지만, 부모님의 연약한 부분이기도 했다.

엄마와 아버지는 자존감이 낮은 분들이었다. 반면에 자존심과 고집은 상당히 강한 분들이었다. 부모님의 입에서, 마음에서, 긍정의 단어가 나온 기억이 내겐 별로 없다. 매사에 부정적인 분들이었고, 작은 일에도 한숨을 내쉬며 걱정을 하셨다. 어릴 때에는 그게 당연하게 느껴졌다. 부정적인 게 당연한 것인 줄로만 알았고, 그렇게 행동해야 정상적인 것이라고 생각했다.

인간은 누구나 가장 가까운 사람의 영향을 받으며 살지 않는가? 당연히 나의 유년시절은 되돌아가고 싶지 않은 어두운 기억의 연속이었고, 성인이 되기까지 어디 하나 특출 나게 뛰어난 면이 없었다. 하지만 어른이 되고 나서 결코 부정적인 태도가 당연한 게 아니었음을 알고 난 뒤, 그토록 잊고 싶은 시간이었던 10대가 어쩌면 가장 찬란하게 빛날 수도 있었을 나의 10대일 수도 있었겠다는 사실을 깨닫고 난 뒤, 그제야 비로소 헛되이 흘려버린 나의 10대가 너무나 안타깝고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부모가 되기 전부터 <칼 비테의 교육법>을 깊게 정독하며 묵상한 이유다.

칼 비테는 독일의 목사였으나, 요한 프리드리히 칼 비테의 아버지로 더 유명하다. 요한 프리드리히 칼 비테는 역사상 가장 어린 나이에 박사 학위를 취득(12세,1814년 4월 13일)한 인물로, 그의 박사학위 취득 기록은 기네스북에 등재된 뒤 지금까지도 깨지지 않고 있다. 이렇다 할 교구재 하나 제대로 갖추어져있지 않던 당시의 시대상황에 비추어봤을 때, 가히 탁월한 교육관으로 아이를 가르쳤던 듯 하다. 

나 역시 아들을 키우면서 칼 비테의 교육저서를 토대로 아이를 가르쳤는데, 가장 도움이 많이 되었던 것은 크게 3가지로 나눌 수 있다. 매일 5권 정도의 책을 읽어주는 것, 작은 일에도 원인을 설명해주는 것, 정확한 발음으로 사물을 인지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칼 비테는 그의 저서에서 '최대한 이해하도록 아주 단순하게 말했다. 하지만 항상 표현을 엄선해서 크고 또렷하고 느리게 말했다'고 이야기한다. 우리 부부는 언어를 세심하게 관찰하면서 순수한 독일어나 책에 나오는 독일어로 칼과 대화했다. 칼이 최대한 이해하도록 아주 단순하게 말했다. 하지만 항상 표현을 엄선해서 크고 또렷하고 느리게 말했다. <칼비테 교육법> 96p, 칼 비테, 차이정원

어린 아기에게는 모든 것들이 당연하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거실바닥에 유리병을 집어던져서 깨트리는 것도 문제가 되지 않고, 지폐와 책을 갈기갈기 찢는 것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한낱 놀이에 불과하다. 규칙과 기준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이가 실수할 때 다그치기보다는 자세하게 설명을 해주었다. 공기청정기 송풍구에 사자인형을 쑤셔넣는 것을 보고 "이건 공기청정기라고 하는데, 공기청정기는 아들이 깨끗한 공기를 코로 마실 수 있도록 도와주는 기계야. 아들이 아프게 하면 이제 깨끗하지 않은 공기를 마셔야 할 수도 있어."라고 이야기하거나, 책을 찢을 때 "이 책은 어느 똑똑한 사람이 아빠가 새로운 것을 배울 수 있도록 기회를 주기 위해서 만든 거란다. 아들이 찢으면 아빠는 새로운 것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잃어버리게 될 거야."하고 이야기해주는 식이었다. 지독한 악필인데다 말도 빠른 편이지만, 아들과 대화할 때는 한 단어도 놓치지 않기 위해 단어 하나하나를 곱씹어서 이야기해주었다. 

당연한 사실이겠지만, 가장 도움이 된 것은 독서다. 또래 아이들이 옹알이를 할 때 아들은 말을 시작했는데, 그 때만 하더라도 빠른 줄도 모르고 으레 '이 때쯤 되면 말을 하는가보다' 하고 생각했다. 주변 어른들에게서 상당히 빨리 말을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서야 두돌배기 아기를 위한 독서가 생각보다 값진 기회였구나 하고 생각할 따름이었다. 사실 두돌배기 어린아기의 책이라고 해봐야 얇고 가벼운 내용의 책이지만, 실은 태어난 그날부터 성경을 비롯하여 <노인과 바다>, <삼국지> 등등 틈날 때마다 다양한 책을 읽어주었던 것이 빨리 말을 시작하는 데 훌륭한 도움이 되어주었다고 확신한다. 요즘은 헤로도토스의 <역사>, 호메로스의 <일리아스> 등을 직접 녹음하여 잠들 때 조용하게 틀어주곤 한다. 다만 아내가 영어교사인데다 나 역시 생활영어 및 가벼운 통역 정도는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본인이 상당한 흥미를 가지기 전까지 언어는 가르치지 않을 예정이다. 언어야말로 신이 인류에게 내린 가장 값진 선물이라는 것을 모르는 바 아니나, 언어, 특히 영어에 대한 극심한 스트레스와 공포로 인해 어려워하는 학생들을 너무 많이 봐왔기 때문이다. 

심사숙고해서 단어를 선택하고 말하는 것에 익숙하다면 그렇게 말해야 한다는 자극을 얼마나 많이 받겠는가! 실제로 아이는 별 도움 없이 스스로 문법을 구상하고 자기 능력에 따라 동사나 명사의 다양한 변화를 가려내기를 좋아했다. 읽기에 익숙해진 아이는 아버지의 말을 통해서든 인쇄된 책을 통해서든 유익한 문법에 접하게 된다. 이미 읽기에 익숙해진 경우에 말이다. <칼비테 교육법> 98p, 칼 비테, 차이정원

나는 연소자보다 연장자를 대하는 데 익숙한 편이다. 상당히 보수적인 집안에서 자랐기 때문이다. 어른 앞에서 가부를 이야기하는 것은 상당히 잘못된 것이라는 관념을 가진 집안에서 유년시절을 보냈기에, 나이가 들어서도 옳고 그름을 따지기보다 상대방의 말을 경청하는 편이다. 쉽게 사람을 얻는다는 이점도 있지만, 손해를 보는 경우도 많다. 그랬기 때문에 아이가 찬성과 반대를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나는 아이의 찬성과 반대 의견을 유심히 귀기울여 듣는 부모가 되고 싶었다.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의 지식과 지혜를 분별해서 옳은 것은 받아들이고 아닌 것은 아니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아이로 성장한다면 부모로서 더할 나위 없이 기쁘지 않겠는가 싶었다.

칼은 찬성과 반대 의견을 마음껏 말해도 되었다. 물론 겸손한 태도로. 뿐만 아니라 우리는 칼이 그래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리는 의도적으로 실수를 하거나 뭔가를 간과해버리곤 했다. 칼이 우리의 실수를 알아채지 못하면 우리는 즐거운 마음으로 칼에게 지적해주었다. <칼비테 교육법> 214p, 칼 비테, 차이정원

사교육은 어디까지나 지식 전문가인 타인과의 교류에 불과하다. 깊은 지혜와 올바른 심성을 가진 멘토와의 교류가 아닌 바에야 사교육은 사교육으로 끝난다. 자식을 향한 부모의 가장 큰 바램은 건강하고 지혜로운 인간으로 성장하는 것이 아닐까. 그런 면에서 생각해봤을 때, 칼 비테의 교육법을 통해 부모가 얼마나 겸비한 마음으로 생활해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해볼 만하다. 지식과 정보로 사람을 가르치는 건 한계가 있다. 칼 비테는 지혜로 아이를 가르쳤고, 아이는 지혜가 풍부한 사람으로 성장했다. 모든 부모에게 풍부한 지혜가 필요한 이유다. 

글/사진=전준우 작가
글/사진=전준우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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