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준우 작가의 글쓰기 방법에 관한 시리즈 두 번째

◇글 쓰는 사람들

작가, 기자, 스피치라이터.

뜻은 달라도 내포하고 있는 의미는 모두 같다. 글을 잘 쓰는 사람이다.

작가, 혹은 기자나 스피치라이터처럼 끊임없이 무언가를 기록해야 하는 직업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글을 잘 쓰는 사람들에 대해 묘한 존경심과 탁월함을 느낀다. 글을 잘 쓴다는 것 자체가 얼핏 보기에도 제법 있어뵈는 모양새를 떠올리게 하는 말이기도 하지만, 사실은 자신의 생각을 조리 있게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었다는 말과 일맥상통하기 때문이다. 생각이 깊고 주밀한 사람이라는 인상을 준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더해진다.

오해는 금물이다. 글을 잘 쓰는 사람은 있어도, 글을 잘 쓰는 기술 같은 건 없다. 글이야 자꾸 쓰다 보면 요령이 생겨서 조리 있게 다듬어지는 능력이 생기는 거고, 말도 하다 보면 앵무새처럼 조리 있게 말하는 능력이 생기는 법이다. 글을 잘 쓰는 기술 같은 게 있을 리 만무하지 않은가? 그러나 글을 잘 쓰는 기술은 그렇다 치더라도, 글을 잘 쓰기 위한 ‘방법’은 존재한다고 확신한다. 이러이러한 노력을 기울이면 된다는 식의 방법론은 글쓰기 기술을 연마하고 싶은 사람에게 유용한 힘이 된다.

◇독서는 훈련이다

글을 잘 쓰기 위한 첫 번째는 다독과 필사다.

다음은 수년 전 어느 책에서 본 글이다. 저자는 오래된 고전을 손으로 몇 년 동안 손으로 필사를 하다 보니 두뇌가 혁명적으로 바뀌는 경험을 했고, 이후에 집필한 저서들이 모두 대형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베스트셀러 작가로 명성을 떨치게 되었기 때문에 무엇보다 인문고전을 가까이 두고 공부하면 좋다는 내용이었다. 책에 담긴 내용 그 자체는 대단하지 않았지만 문장의 구성이나 자료의 활용을 통해 조리 있게 정리한 글이라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저자는 그 책에서 필사의 중요성에 대해 강하게 언급하고 있었다.

글쓰기에 있어서 어떤 것이 정답이라고 이야기하기가 어려운 것은, 기준이 모호하기 때문이다. 언젠가 내가 SNS에 구구절절 남긴 글을 보고 어느 지인이 "글을 참 잘 쓰시네요."하고 칭찬해 준 적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내가 글을 참 잘 쓴다고 생각했다. 책도 여러 권 출간하고 나니 확실히 글 쓰는 데 적잖은 재능이 있는가 보다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꾸준히 글을 쓰면 쓸수록, 그런 자만심이 산산조각 나는 순간들이 한 번씩 찾아오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스토리텔링 형식의 이야기를 글로 풀어쓴다면 어느 정도 조리 있게 쓰는 건 가능했다. 일례로 지금 쓰고 있는 칼럼이나 강의를 위한 자료, 혹은 책의 한 꼭지를 두고 글을 쓸 때는 어렵지 않게 써내려갈 수 있었다. 그런데 '객관적인 현상에 대해 비판적으로 사고하면서 그에 따른 적절한 의견과 해결방안을 도출해낸 뒤 누군가를 설득해야 하는 형식의 글'은 어떻게 써야 하는지 전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이건 또 무슨 말이야? 객관적인 뭐?"

혹시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말콤 글래드웰의 <아웃라이어>, 요한 하위징아의 <중세의 가을>, 마이클 샌델의 <정의의 한계>와 같은 책을 펴놓고 읽어보길 바란다. 무슨 말인지 단박에 이해가 될 것이다. 국내 서적은 없냐고? 장하준의 <나쁜 사마리아인들>과 같은 책도 있다.

글을 쓰면 쓸수록 필력이 더 좋아져야 되는데, 위와 같은 난제 때문에 어떻게 글을 써야 하는지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순간이 글을 쓰면서 간혹 찾아오기 시작했다.

사실 이유는 단순하다. 전공분야가 아니기 때문이다. 경험의 부족이다. 하지만 글은 기본적으로 필자의 지적 수준과도 어느 정도 직결되는 부분이다. 나중에는 "아니, 이 정도 수준밖에 못 쓸 거면서 왜 글을 써야 되지? 그냥 안 쓰면 안 되나?" 하는 식의 근원적 질문에까지 다다르게 되었다. 나 자신에 대한 실망감, 좌절감, 알 수 없는 패배감으로까지 이어졌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다독과 속독을 해야 할 수밖에 없는 위치에 서있는 나를 발견했다.

<초성장 독서법>에서도 이야기했듯이, 다독과 속독은 '독서법에 있어서 가장 수준 높은 독서기술'과는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고, 그저 조금 더 나은 독서를 하기 위한 좋은 방법들 중 하나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독과 속독, 필사는 중요하다. 독서의 수준이 높아지다 보니 “나도 책 한번 써볼까?” 하고 생각하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 글을 쓰게 되었고, 출간이 되고 나니 더 잘 쓰는 사람이 되고 싶고, 그러자니 잘 쓴 사람들의 글을 읽어야 하고, 그러다 보니 내가 가진 능력의 한계와 부족함을 발견하게 된 것이었다. 자연스럽게 더 많은 정보를 빠른 시간 내에 얻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다독과 속독을 체득하게 되었고, 좋은 구절은 틈틈이 필사하면서 문장의 구사력과 단어의 확장을 염두에 둔 훈련을 하게 되는 것이다. 다독과 속독, 그리고 필사가 글쓰기에 가장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이유인 셈이다.

◇기억의 산실

두 번째는 수기의 습관화다.

나는 책이나 신문을 읽으면서 중요한 문장, 혹은 마음에 크게 와닿는 문장과 그 부분을 모아서 스크랩해둔다. 따로 바인더철을 하거나 문서화하는 건 아니고 형광펜으로 밑줄 긋기 정도만 하고 휴대폰으로 사진만 찍어두는 정도다. 그 이상의 정리는 하지 않는다. 체계적으로 꼼꼼하게 정리를 못한다는 게 내가 가진 수많은 단점들 중 하나다.

그러나 글을 쓸 때는, 반드시 만년필이나 연필로 먼저 글을 써야 한다는 나만의 기준이 있다. 특히 기둥과 같은 주제를 정할 때, 핵심 꼭지를 중심으로 세부적인 글을 정리할 때, 나는 반드시 만년필을 들고 수기로 작성한다.

키보드를 갖다 놓고 글을 쓰기 시작하는 것과 연필이나 만년필로 글을 쓰기 시작하는 것의 차이는 생각 외로 크다. 펜으로 글을 쓰게 되면 생각을 하나하나 정리하면서 쓰는 습관이 생긴다. 한 문장을 써놓고 유심히 생각하다 보면 생각의 가지를 수십, 혹은 수백개씩 뻗어나갈 수 있다. 하지만 모니터 화면을 바라보며 글을 쓰다 보면 그렇게 주밀한 글을 만들어내기가 어렵다. 이유가 궁금하다면 인터넷에서 '종이책과 전자책의 차이'와 같은 제목의 글을 몇 건 찾아서 훑어보라. 쉽게 이해가 될 것이다.

수기로 글 쓰는 습관을 들이면, 이전에 생각지 못했던 다양한 문장의 깊이를 만들어낼 수 있는 힘이 생긴다. 글은 빠르고 조리 있게 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건 오랜 시간 동안 글쓰기를 훈련한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한 전업작가나 기자, 스피치라이터들의 몫이다. 숙달된 글쓰기 기술을 갖춘 사람이 되려면 단어와 문장의 배열이 얼마나 창의적인지, 그리고 얼마나 담백한지 고민하는 데 시간을 투자하는 게 훨씬 더 중요하다. 숙성된 장이 훨씬 담백하고 맛있는 것처럼, 오랜 시간 공들여 쓴 글일수록 마음에 울림을 주는 깊이도 달라지는 법이다.

세 번째는 묵상이다.

앞에서도 잠시 언급했듯이, 책은 필자의 지적 수준과 어느 정도 직결되는 부분이면서 내적인 깊이와도 적잖은 연관이 있다. 끊임없이 머리를 써야 하고, 수백 권의 책과 스크랩 자료를 참고하면서 적절한 예시를 찾는 수고를 감내해야 하며, 꾸준한 독서와 글쓰기를 통해 완성된 결과물을 만들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평소 행실에 문제가 많고 생활태도 역시 바르지 못한 사람이 듣기 좋은 말만 골라서 엮은 뒤 한 권의 책으로 출간할 수도 있다. 자서전을 대신 집필해 주는 프리랜서 작가에게 수백 수천만원의 비용을 지불하고 대신 책을 쓰게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일반적인 관점에서 생각해봤을 때, 글을 쓴다는 것은 대부분의 일반인들이 가지지 못한 마음의 세계를 갖고 있는 사람에게만 허용될 수 있는 세계라는 점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묵상(Meditation)의 사전적 의미는 말없이 마음속으로 기도를 드리는 것을 말한다. 지극히 종교적인 측면이다. 가부좌를 틀고 앉아서 명상에 잠기는 것이나 조용히 기도하는 행위를 두고 Meditation이라고 이야기한다.

물론 또 다른 의미도 있다. “be lost in thought”다. 묵묵히 앉아서 마음속으로 생각하거나 생각의 가지를 뻗어나가기 위한 다양한 활동을 포함하는 숙어다. 산책도 포함되고, 요즘 말로 혼술을 하며 묵상하는 사람들도 있다. 어떤 형태를 띠고 있든 묵상의 본질적 의미는 퇴색되지 않는다.

나는 틈만 나면 묵상의 시간을 갖는다. 혼자 서재에 가만히 앉아서 생각을 펼쳐나간다. 우선 한 가지 주제를 정해놓고 생각의 가지를 무수히 뻗쳐나가곤 했다. 주제는 그때그때 달랐다. 책을 읽으며 느낀 점도 주제가 될 수 있고, 좋은 강연도 주제가 되었다. 성경을 읽고, 책을 쓰고, 때때로 영화를 보기도 한다. 그 모든 경험들이 마음을 단순하게 비울 수 있도록 도와주었는데, 그때서야 비로소 글쓰기의 탁월함이 드러나게 된다.

◇글의 위력, 그리고

말을 잘하는 사람을 만나기는 쉬워도, 글을 잘 쓰는 사람을 만나기란 어렵다. 훈련의 결과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말을 조리 있게 하는 방법은 익힐 수 있지만 글을 쓰는 건 의도적으로 훈련하지 않는 이상 배우기가 쉽지 않다. 책이든, 칼럼이든, 일기장이든 꾸준히 쓰면서 칼을 다듬듯 생각을 글로 다듬는 훈련이 필요한 이유다.

자신의 생각과 철학, 머릿속 의견을 글로 풀어낼 수 있다는 건 굉장한 장점이다. 글을 잘 쓴다는 건 말을 잘하는 것보다 훨씬 큰 신뢰와 파급력을 줄 수 있다. 생각을 정리하는 훈련을 하는 사람은 모든 분야에서 앞서나갈 수 있다. 물론 글쓰기만이 전부는 아니다. 역사를 돌아보면 글을 몰라도 세상을 바꾼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변변찮은 학벌과 가난으로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미친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그들은 글이 아닌 사고의 깊이로 세상을 바꾸었을 뿐이다. 그들이 가진 사고의 깊이를 글로 옮기면 역사에 남을 고전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세상의 모든 성공적인 결과물은 도전정신, 헝그리 정신, 그리고 묵상의 혼합으로 만들어진다고 믿는다. 나에게 꼭 맞는 묵상의 장소와 시간을 만들어두길. 그리고 내면을 다지는 작업을 쉬지 말라. 탁월한 글을 만드는 중요한 포인트가 된다.

글/사진 전준우
글/사진 전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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