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엔 특별기획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 시리즈 열일곱 번째, 김강윤 소방관의 산악구조에 관한 이야기

스타트업엔에서는 특별 기획으로, 사회 각계각층의 사람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연재하고자 한다. 그 열일곱 번째 이야기는 불철주야 국민의 안전을 위해 헌신하는 부산 소방본부 산하 특수구조단 수상구조대 소속 김강윤 소방관의 산악구조에 대한 이야기인 ''산속의 추격전'이다.

◇산속의 추격전

얼마 전까지 몸담고 근무했던 기장소방서 구조대는 넓은 관할구역을 가지고 있다. 기장소방서가 있는 정관신도시 주변을 삼각산과 망월산 그리고 백운산과 달음산이 넓게 감싸고 있고, 동쪽으로 10여 km만 가면 임랑 해변과 일광 바닷가가 나타난다. 특히 정관(鼎冠)이라는 지명에서도 알 수 있듯이 솥뚜껑을 뒤집어 놓은 듯한 분지 지형으로 동서남북으로 앞서 말한 4개의 산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다. 500고지 남짓한 야트막한 산이지만 암반지대가 많고 울산의 대운산과 경남 양산의 천성산 같은 큰 산으로 이어지는 형세라 산길이 험하기로도 유명하다.

지난 해 봄, 겨울의 찬 기운이 물러간 4월 초순의 어느 날에 출동 벨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주말 오후라 행정업무나 훈련이 없는지라 사무실에 앉아 편히 책이나 읽으려 했더니 꼭 그럴 때면 걸려오는 출동이 내심 야속하기도 했다. 산악출동이라는 상황실 수보 요원(119 신고를 받고 출동을 지령하는 직원)의 방송 소리를 듣고 절로 '끙...'하는 소리가 입에서 나왔다.

달음산(사진=김강윤 소방관)
달음산(사진=김강윤 소방관)

앞서 말했듯이 산으로 둘러싸인 동네이다 보니 봄, 가을이면 등산객이 연신 찾아온다. 그에 따른 사건 사고가 이맘때면 심심찮게 일어난다. 구조대원이라도 산을 오르는 일은 버겁기도 하거니와 그 넓은 산을 뒤져 다친 사람을 찾아 데리고 내려온다는 것이 보통 체력 소모가 심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요구조자가 다친 데가 없다면 그나마 낫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헬기를 요청하든지 하여 이송을 해야 하는 등 일거리가 많은 출동이었다.

이동하는 구조공작차(구조 전용 소방차) 안에서 신고자(요구조자) 와 통화를 하며 위치를 파악했다. GPS다 뭐다 산악구조장비가 구조대에 마련되어 있었지만 최근에는 산악지형을 상세하게 안내해주는 휴대전화 앱이 많이 개발되었다 좌표 정보만 입력하면 반경 50m이내의 정확도로 사람의 위치를 찾아 주는데  상황실에서 좌표값을 전달받고 요구조자의 위치를 식별한 다음 가장 가까운 경로로 찾아가면 되었다.

흔히 등산로로 올라갈 거라 생각하지만 구조대원들은 요구조자의 상태를 알 수 없기 때문에 최단 거리를 주로 선택한다. 그러다보니 급격한 경사가 있는 골짜기나 지형이 험한 계곡을 관통하여 빠른 걸음으로 산을 오른다.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은 요구조자와 연락이 끊어지면 안된다는 것이다. 요구자의 휴대전화 베터리량을 파악하여 수시로 상태를 확인하고 간혹 좌표값이 틀리기라도 하면 다시 물어봐서 좌표를 식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좌표는 휴대전화 위치추적으로 이루어진다.

구조대원은 산을 오르기 전 요구조자에게 다른 곳으로 이동하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한다. 단순히 산길만 잃어 버린 경우라면 신고를 해놓고도 자신이 찾아서 내려갈 수 있다며 계속 이동을 하시는 분들이 있다. 이렇게 되면 좌표값을 입력하여도 무용지물이 된다. 수시로 요구조자의 위치가 변하기 때문에 오히려 구조대원과 멀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길어봤자 20~30분이면 우리가 도착하기 때문에 반드시 현재 위치에서 벗어나지 말라고 부탁을 하며 올라간다.

기장 토박이 출신 일당백 구조대원인 후배 대철이와 내가 산을 오르기로 했다. 팀장님과 기관원(소방차를 운전하는 직별)반장님과 후배 1명은 우리가 요구조자를 구해서 내려오는 쪽을 미리 정해놓고 이동하여 대기하기로 했다. 요구조자가 단순히 길을 잃은 상황으로 판단되어 굳이 많은 인원이 이동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었다.

망월산(사진=김강윤 소방관)
망월산(사진=김강윤 소방관)

대철이는 산길을 자기 앞마당 보듯이 훤히 꽤뚫고 있었다. 기장에서 나고 자라 10년을 넘게 특전사에서 직업군인으로 복무했던 엘리트 군인출인데다가 구조대원으로서 첫 발령지인 이곳 기장에서 이미 많은 산악출동 경험이 있었다. 10여 분쯤 올라가니 좌표 값과의 거리가 200여미터 밖에 남지 않은 위치에 도달했다. 금방 찾을 수 있다는 생각에 힘든 줄도 모르고 속도를 더 내었다. 하지만 우려하던 상황이 벌어지고 말았다. 상황실에서 전해 받은 좌표값의 위치에 요구조자가 없는 것이었다. 70대의 고령의 할아버지가 혼자서 산에 올랐다가 길을 잃어 신고를 한 상황이었는데 우리는 그리 먼 거리가 아니기에 산을 오르면서 별도의 연락을 하지 않고 빠르게 올라간 것이 화근이었다. 20여분 만에 도착했는데도 요구조자는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할아버지에게 전화를 하였다.

"119입니다. 지금 위치가 어디세요?"

"아니...내가 119아저씨들 부른게 미안해서 혼자 내려가보려고 길따라 가는 중이야.."

그럴줄 알았다. 할아버지는 신고를 한 것이 내심 죄스러웠는지 굳이 본인의 힘으로 길을 찾아 나선 것이었다. 대철이는 침착하고 친절하게 다시 설명했다.

"어르신... 움직이시면 저희가 더 찾기 힘들어요. 그냥 지금부터라도 그대로 계시면 저희가 찾아 갈게요"

"응..일단 내가 갈 수 있는데 까지 가볼게.."

막무가네였다. 나는 우리가 할아버지를 빨리 찾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 판단하고 이동하기로 결정했다. 힘든 것이 휴대전화 위치추적을 통하여 좌표값을 다시 찾는다 한들 그 시간에 할아버지는 계속 이동을 할 것이기 때문에 의미가 없었다. 우리는 할아버지에게 주변의 지형지물이 어떤 것이 있는지, 길이 어디로 나 있는지 최소한의 정보만 물어보고 할아버지를 찾을 수밖에 없었다.

생각지도 못한 추격전이 시작된 것이다.

큰 봉분으로 된 산소를 오른쪽에 두고 죽은 소나무가 쓰러져 있는 길을 따라 내려가신다는 말씀만 듣고 우리는 발길을 재촉했다. 할아버지가 산을 다시 오를 일 없으니 우리 역시 하산로를 따라 이동했다. 문제는 갈림길을 만났을 때였다. 왼쪽으로 갔을까? 오른쪽으로 갔을까? 결정이 늦어질수록 할아버지는 우리와 멀어져 갔다.

산에서 길을 잃은 할아버지(사진=김강윤 소방관)
산에서 길을 잃은 할아버지(사진=김강윤 소방관)

이럴 땐 구조대원의 본능에 따라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관내 산길을 훤히 알고 있는 대철이도 선배인 나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었다.

"왼쪽이다!"

길이 편해 보이는 왼쪽 길을 택하고 뛰듯이 내려가며 고함치며 할아버지를 불렀다. 휴대전화 배터리가 얼마 남지 않은 할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어 우리의 목소리가 들리냐고 물었다. 소용없었다. 오후 늦게 시작된 출동이었는데 어느덧 저녁이 다 되어 해가 지고 있었다.

차라리 할아버지가 하산하셔서 주변 큰길이라도 나가셨다면 다행이겠지만 할아버지 역시 계속 길을 헤매고 있었다. 아니 오히려 길이 없는 이상한 계곡 아래로 기어가듯 내려가신다고 하셨다.

"아니..길이 좀 험하긴 해도 내가 혼자 갈 수 있을 거 같...아.."

다시 통화하여 할아버지의 상태를 확인했는데 끝까지 혼자 이동을 고집하셨다. 하지만 목소리는 아까와 다르게 지쳐 보였다. 아무래도 산속에서 해가 저물고 없는 길을 만들어 이동하시다 보니 체력이 많이 소진된 듯 보였다.

"아이 거! 쫌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계시라니까요!!!"

착한 성격의 대철이가 폭발했다. 본인이 힘든 것보다 구조시간이 길어지며 할아버지의 건강이 걱정되는 상황이 닥치자 대철이도 애가 탄 모양이다. 나는 얼른 대철이의 휴대전화를 뺏어 할아버지에게 주변 지형을 설명해 달라고 했다. 하지만 무의미했다. 할아버지는 해가 지고 깜깜해서 아무것도 안 보인다며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을 했다.

상황은 점점 더 꼬여갔다. 요구조자를 금방 찾아 안전하게 내려오리라 생각하고 큰길에서 대기 중이던 팀장님과 팀원들의 무전이 급박하게 울렸다. 우리까지 무슨 사달이 난건 지 당연히 걱정되기 때문이다. 난 현재 상황을 있는 그대로 보고했다. 베테랑 팀장님도 이 험한 산새를 다 알고 계시진 못했다. 팀장님은 결국 결정을 내리셨다.

본부 산하 특수구조단의 인명 구조견을 지원요청 한 것이다. 당연한 절차다. 구조견은 인간보다 수 만 배 뛰어나 후각으로 사람을 찾는다. 특히 부산 소방 특수구조단의 인명 구조견은 전국에서도 알아주는 탐색능력을 자랑했다. 그뿐이 아니었다. 인근 센터(소방 파출소)의 인력들이 추가로 투입되었고 담당 경찰서 직원들도 소집되었다. 일이 커진 것이다.

당연히 한 사람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가용할 수 있는 인력과 장비를 모두 투입하는 것이 지휘관이 판단이었다. 하지만 대철이와 나는 초기에 신속하게 요구조자를 발견하여 쉽게 구조를 마무리 짓지 못했다는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괜히 우리 둘의 무능력으로 많은 사람이 고생하는 듯 생각되었다.

하지만 포기할 수 없었다. 위험을 무릅쓰고 뛰듯이 산길을 헤쳐나갔다. 숨이 턱 밑까지 차고 온몸이 땀 범벅이 되었다. 거기다가 밤이 되니 주변이 안 보여 이동에 상당한 위험이 동반되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할아버지의 휴대전화의 배터리는 10%도 남지 않았다고 했다. 불안이 엄습했다. 혹여 할아버지가 실족과 같은 2차 사고가 일어난다면 그야말로 큰일이었다.

할아버지가 지나쳤다는 길을 우리도 뒤따랐다. 시차가 있었지만, 분명히 우리는 할아버지의 뒤를 따라가고 있었다. 하지만 어디서부터 어긋났을까? 도저히 할아버지의 위치가 감이 안 잡혔다. 대철이와 나는 길을 멈추고 고민했다. 아니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다는 것이 맞을 것이다. 시계를 보니 저녁 8시가 지나가고 있었다. 4시간을 넘게 산을 뛰고 있었다. 둘도 지쳐갔다.

"행님...반대로 다시 가볼까예?"

"반대로?"

모험이었다. 왔던 길을 다시 거슬러 가다 우리가 어딘가에서 길을 잘못 들었으니 역추적하며 할아버지를 찾아보자는 것이었다. 오래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대철이는 이미 나보다 더 많이 산을 뒤져 본 경험이 있었다.

우리는 왔던 길을 다시 오르기 시작했다. 가지고 온 랜턴 빛이 약해지기 시작하고 체력은 거의 바닥이었지만 포기할 수 없었다.

그때였다. 내 휴대전화가 울렸다.

"행님. 저 핸들러 태호인데요. 요구조자 70대 해운대구 좌동 사는 000님 맞지요?"

핸들러(인명구조견 수색팀원) 서태호 반장이었다. 앞뒤 물을 것도 없었다.

"태호가(냐)??? 할아버지 찾았나???"

"예 형님. 형님이 수색하는 곳 반대쪽으로 치고 올라가려는데 해운대 CC 아래로 혼자 잘 걸어 내려 오셨심다. 건강하시고예... 병원 모시다 드린다니 마 됐다고 혼자 버스 타고 집에 가신다네예... 우짜까예?"

다리에 힘이 풀리고 온몸을 적신 흥건한 땀이 순식간에 식었다. 대철이는 내 표정을 보고 짐작을 했는지 알듯 모를듯한 미소를 지었다. 퍼뜩 상황을 파악해보니 할아버지는 우리와 반대 방향으로 이동하신 것이다. 짐작건대 중간에 계곡을 가로질러 5부 능선쯤으로 반대쪽 큰 불빛을 보고 이동하신 듯하다. 할아버지가 가신 길 반대 방향에 있는 해운대CC는 골프장인데 야간 라운딩을 위해 환하게 불을 밝히고 있었으니 말이다.

즉시 팀장님에게 보고하고 상황을 종료했다. 대철이와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산에서 내려오기 시작했다. 우리가 있는 곳에서 최단 거리 하산길은 공교롭게도 대철이가 사는 아파트 뒷산이었다. 추적했던 길을 대철이와 복기하며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서로 의견을 나누었다. 한참을 이야기 나누면서도 중간중간 대철이와 내가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은 "그래도 무사해서 다행이다"였다.

산에서 길을 잃은 할아버지(사진=김강윤 소방관)

그렇다. 할아버지만 무사하면 된 것이다. 구조대원은 늘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며 현장에 투입된다. 우리는 구조시간이 길어지면서 할아버지의 건강과 2차 사고를 우려했었다. 하지만 최악의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고 그러면 그것만으로 우리의 구조는 성공했다 할 수 있다. 물론 이른 시간 안에 대철이와 내가 할아버지를 발견하고 직접 모시고 내려왔으면 더 좋았겠지만, 무엇보다 요구조자의 안전에 이상이 없다면 그것으로 충분한 상황인 것이다.

내려오는 길에 대철이는 언제 챙겨왔는지 가지고 온 신용카드로 편의점에서 이온 음료를 두 개 사서 나에게 하나를 건넸다. 우리는 편의점 앞 파라솔 의자에 앉아 그제야 극심한 피로와 허기를 느끼며 이온 음료를 들이켰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소방관 구조복을 입고 온몸을 땀에 적신 우리 둘을 흘깃거렸다.

나의 판단이 좋았다면 더 잘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에 괜히 대철이에게 미안했다. 대철이는 그 사람 좋은 웃음을 보이며 '행님. 다음에는 이래저래 해 보입시다‘ 라고 피드백을 하며 나보다 선배다운 모습을 보였다. 오늘 출동을 벌써 교훈 삼고 있었다. 후배지만 내가 오히려 믿고 의지할 만한 소중한 동료였다. 그렇게 주말의 산속 추격전은 막을 내렸다.

하루 이틀 지났을까? 출동 벨이 어김없이 또 울린다.

"산악출동! 산악출동!"

이런... 나는 대철이에게 외쳤다.

"대철아! 요구조자한테 전화해서 절!대!로! 움직이지 말라고 해라!!!" 진심 어린 나의 절규였다.

글/사진 김강윤 소방관
글/사진 김강윤 소방관

 

저작권자 © 스타트업엔(Startup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