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색이 시작되는 순간

얼마 전부터 다시 일을 시작한 아내가 내게 이야기했다.

"오빠. 다시 일하면서 몸이 안 아파. 전에는 가만히 있어도 온 몸이 쑤시고 아팠거든. 역시 사람은 일을 하고 살아야 하나 봐."

아내는 활동적인 성향을 가진 사람이다. 결혼 후 꾸준히 일을 하던 사람이 출산 이후 일을 못하니 엄청 힘들어했다. 임신 9개월까지 과외를 다니던 아내는 출산 이후 계속 집에만 있었다. 종종 산책을 나가긴 했지만 거기까지였다. 갓 태어난 아기 때문에 더 이상의 활동은 제한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아내는 일을 하고 싶어 했다. 사람들을 만나고 싶어 했고, 활동적인 일을 하고 싶어 했다. 적절한 타협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만족스러운 제안을 해야 했다.

보험은 결코 가까이 하고 싶지 않은 일이었다. 인생이 끝없는 나락으로 떨어졌을 때에야 선택할 수 있는 직업이보험이라고 생각했다. 심지어 최종 면접을 보고 온 날은 두려움으로 잠을 이룰 수 없어서 아내를 끌어안고 숨죽여 울기까지 했다. 그러나 막상 접해본 보험은 생각 외로 잘 맞았고, 재미있었다.

철저한 개인사업이라는 점에서 다른 어떤 일들보다 편안하게 근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다만 안정적인 궤도까지 올라오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 시간을 큰 어려움 없이 넘기기 위해서는 안정적인 소득도 필요했다. 결국 공동육아를 하기로 합의를 보고 아내도 일을 하기로 결정했다.

아내는 집에서 가까운 학원에 면접을 보러 갔고, 당일에 합격 통보를 받았다.

"원장님이 좋은 분이라서 그런지 모든 선생님들이 7년에서 10년 일하신 분들이야. 나도 오래오래 일하고 싶어."

아내가 일을 하기로 결정되면서 이전보다 더 철저하게 시간 관리를 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확신을 가진다는 것은

육아를 함께 하기로 결정한 뒤 내 일상도 바뀌었다. 아내가 없는 낮시간은 오롯이 육아와의 전쟁이다. 내가 하는 일은 주로 저녁에 약속이 잡히는 일인데 아내는 오후 3시에 나가서 저녁 9시에 귀가한다. 내가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시간은 오전시간과 늦은 밤, 그리고 주말밖에 없었다. 스스로 관리를 하지 않으면 쉽게 나태해질 수 있었다.

매일 아침 출근해서 하는 일이 동기부여와 자기 확신이었다. 감사 일기를 쓰고, 경영학과 세무학 등등 도움이 될 만한 책을 읽은 뒤 이루어야 할 목표를 100번 쓴다. 그리고 오늘 해야 할 일 리스트를 10개에서 20개 정도 만들고 그 중에서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을 3개에서 5개 정도 추린 뒤 그 일을 집중적으로 하는 데 오전시간을 보낸다.

그렇게 아침 9시부터 오후 1시까지 집중적으로 일하고 집에 오면 2시. 그리고 나면 오후시간은 다소 여유로운, 그리고 정신없는 독박육아의 시작이다.

오전에 아무리 일을 완벽하게 해두었을지라도 완벽할 수 없고, 제대로 처리되지 않은 일들이 부지기수다. 그래서 아예 새벽에 출근하거나 혹은 늦은 밤 출근하는 경우도 있다. 아침 5시 반에 나가서 오후 1시에 퇴근하거나 밤 11시에 출근해서 새벽 2시에 퇴근하는 경우다. 일찍 귀가하면 집에서 육아를 하면서 글을 쓰고 고객관리를 한다. 아들을 품에 안고 블로그를 하고, 젖병을 물려놓고 고객들에게 전화를 돌리고, 아들을 재워놓고 칼럼을 쓰고 책을 집필한다.

아내와 내가 선택한 길이었으므로 후회도 아쉬움도 없지만, 너무 많다 싶은 일들 때문에 마음이 지칠 때가 종종 있었다. 제일 어려운 게 이야기할 사람이 없다는 것이었다. 마음은 통할지언정 말이 통하지 않는 아들을 품에 안고 머릿속으로는 지속적인 창조와 퇴고를 해야 하는 과정이 버겁다고 느껴질 때도 있었다.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마음을 나누어야 글의 소재거리도 찾을 수 있고 교훈도 얻을 수 있는데, 그게 허용되지 않으니 마음이 고립되는 건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찾아오는 것이다. 아들을 품에 안고 머릿속에 있는 생각을 글로 풀어내는 작업은 자기 확신을 가지지 않으면 어려운 일이다.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들

그런 어려운 상황들 가운데 있으면서도 나는 글을 쓰고 칼럼을 쓰는 일이 좋다. 나와는 퍽 잘 맞는, 그리고 내가 마음 깊이 사랑하는 일이다. 내가 생각하는 행복의 기준에 부합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부자들이랑 친해지세요. 부자들은 항상 외롭습니다."

전준우책쓰기아카데미 사무실을 얻으려고 동분서주하던 어느 날, 함께 사무실을 쓰자고 제안한 대표님은 내게 이렇게 이야기하셨다. 겸손하고 친절한데다 검소하기까지 한 대표님의 성향 때문인지 몰라도 세련된 건물과는 거리가 먼 허름한 사무실이었지만, 젊은 시절 벌어둔 돈으로만 15년째 살아가고 있다는 대표님의 내공과 인맥은 일반인의 상식을 뛰어넘었다. 젊은 내가 글을 쓰는 것을 무척 높게 평가해주신 분이었다. 이 분을 통해서 훌륭한 기업가분들을 많이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대표님이 하신 말씀이 무슨 의미인지 어렴풋하게 느낄 수 있는 경험들을 한 번씩 마주할 수 있었다.

나이가 들면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을 만나기 마련이다. 빈곤한 사람, 부유한 사람, 독특한 사람, 겸손한 사람이 어울려 사는 이 세상에서 나와 맞는, 혹은 내가 마음을 열고 경청할 만한 내공을 가진 사람들을 찾는 것은 일종의 게임과도 같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조심스레 주위를 둘러보라. 빈 수레와 같은 사람들도 있는 반면 상당한 깊이를 가진 사람들도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활동하는 모임에서 알게 된 여성분이 있다. 소유하고 있는 아파트만 300채가 넘고 수십억에 육박하는 초고층 아파트를 무려 4채나 갖고 있는 그 분은 소위 말하는 부동산 여왕이었다. 그 분은 내가 건네 드리는 명함을 두 손으로 받고는 90도로 허리를 굽히며 "뵙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너무 반갑습니다." 하고 인사를 건넸다.

"하루하루 감사한 마음으로 사는 게 제 목표입니다. 어제도 점심을 컵라면 먹었어요. 너무 맛있고 좋더라고요. 오늘 뷔페음식도 준비를 했지만 제가 평소에 잘 못 먹는 음식들이에요. 돈이 아무리 많아도 내가 행복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요."

하루 숙박비만 수백만 원에 달하는 초고층 호텔에서 그 분이 내게 해주신 이야기다. 인간은 누구나 행복을 추구하면서 사는 존재라는 사실이 입증되는 순간이었다.
 
기업가는 고독하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만들고, 모든 사람들이 자유롭게 통행할 수 있는 대로로 만든다는 점에서, 기업가는 훌륭하지만 지독히 고독한 존재다. 그러나 창조자라는 위치에서 봤을 때 위대하며 이상적인 존재다. 모든 기업가는 기업가 정신을 바탕으로 움직인다. 근로자의 마인드로 사업을 운영하는 기업가는 존재하지 않는다. 통솔력, 리더십, 강한 추진력을 요구하는 기업가는 근로자와는 다른 존재다. 글을 쓰는 사람들도 건물을 짓는다는 마음으로 목차를 짜고, 사전을 뒤적여가며 단어의 의미를 음미한다. 기업가와 작가, 기업가의 경영과 작가의 글쓰기는 일부 상통하는 부분이 있는 조화로운 일이다. 그런 면에서 글쓰기는 고독한, 그러나 위대하고 이상적인 일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

◇누군가의 뿔처럼

아침 일찍 출근해서 저녁 늦게 퇴근하던 일상은 서로의 활동시간이 달라지면서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육아가 당연한 일이 되었고, 노을 지는 하늘을 바라보면서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마시던 시간은 활기차게 울어대는 아들의 기저귀를 갈고 분유를 먹이는 시간으로 대체되었다. 아내가 없는 집에서 혼자 육아를 하는 건 확실히 어려운 일이다.

반면에 아들과 끊임없이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의 마음을 확인할 수 있는 시간도 생겼다. 나와 아내가 가진 마음의 모습을 따라 아들의 인생이 만들어진다고 생각하면 허투루 시간과 인생을 낭비할 수는 없다. 게다가 아들은 자라고 나는 늙어간다. 이전보다 바쁘고 정신없지만, 나의 내면과 인생을 되돌아볼 수 있는 기회도 만들어지는 셈이다.

누구나 혼자만의 시간, 사색의 시간이 필요하다. 삶과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할 수 있는 사색의 시간을 갖는다는 것은 앞으로 살아갈 인생의 방향과 목적을 설정하는 데 있어서 큰 도움이 되는, 무척 훌륭한 일이기 때문이다. 아들을 재우고 난 뒤 펜을 들고 글을 쓰노라면, 기저귀를 갈고 분유를 타서 먹이고 가슴을 토닥토닥하며 재우는 동안 머릿속으로 정리한 이야깃거리들이 하나 둘 자리를 잡고 종이 위에 정돈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조금은 다른 의미에서) 바쁘게만 살던 평소에는 느껴보지 못한 즐거움이다.

당연한 사실이지만, 혼자라고 느껴지는 게 비단 나처럼 독박육아를 하는 경우만을 의미하진 않는다. 이별의 아픔, 사별의 슬픔, 혹은 지독한 외로움과 고독, 삶에서 찾아오는 수많은 난관과 실패의 두려움 속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있을 줄 안다. 살아 숨 쉬는 것보다 차라리 죽는 게 더 낫겠다고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사람들이 있을지 누가 알겠는가.

[한국자살방지운동본부] 채널을 운영하다 보면,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죽음을 생각한다는 사람들의 메시지를 받는다. 그들은 부모님의 이혼, 왕따, 친구관계, 성적과 같은 문제들로 슬픔에 젖어있었고, 사업 실패로 인해 빚더미에 올라앉아서 하루하루 피가 마르는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래서 나는 글을 쓴다. 사람은 고통만으로 성장할 수도 없지만, 고통 없이 성숙해지거나 성장하는 사람도 없는 법이다. 슬픔을 이기는 힘과 방법에 대해서, 어려움을 지혜롭게 헤쳐 나가는 마음의 이야기들을 그들에게 증거해주고 싶은 것이다.

외로울 때, 슬플 때, 지독한 어려움에 빠져 있을 때 사람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묵묵히 들어줄 수 있는 사람들을 찾기 마련이다. 그들에게 우리가 해줄 수 있는 일은 한 가지다. 귀 기울여 들어주고 한계를 넘을 수 있는 지혜를 넣어주는 일이다. 글쓰기라는 아름다운 사색을 통해서 말이다. 오늘부터 조용히 펜을 들고 글을 써보자. 내면의 깊음 속에서 아름답고 귀한 글이 만들어지리라 믿는다.

글/사진=전준우 작가
글/사진=전준우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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