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엔 특별기획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 시리즈 스물두 번째, 김강윤 소방관의 군시절 이야기

스타트업엔에서는 특별 기획으로, 사회 각계각층의 사람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연재하고자 한다. 그 스물두 번째 이야기는 불철주야 국민의 안전을 위해 헌신하는 부산 소방본부 산하 특수구조단 수상구조대 소속 김강윤 소방관의 군대 이야기인 '처음 날아 본 하늘'이다.

◇기본공수교육 입교

2,000년 겨울, 나는 경기도 광주 어딘가에 위치해 있는 특수전 교육단에 있었다. 불과 한 달 전, 6개월의 해군 특수전 기본교육(BUD/S : Basic Underwater Demolition / SEAL)을 마치고 당당하게 정식 UDT 요원이 되었다는 기쁨도 잠시. 3주간의 기본 공수(공중침투를 위한 낙하산 강하훈련) 교육을 위해 육군 특수전 사령부 교육단으로 오게 된 것이다.

해군이 무슨 낙하산인가 하겠지만, SEAL(SEa, Air and Land)라는 부대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육, 해, 공 전천후 작전을 하는 부대 특성상 공수교육은 기본이었다. 다만 교육을 흔히 공수부대로 알려진 특전사 교육단에 와서 위탁한다는 것이 생소하긴 했다.

이미 6개월 동안 정신과 육체는 충분히 단련되었다. 3주간의 특전사 공수교육을 받으며 체력단련이나 얼차려는 힘든 것이 없었다. 오해 마시라. 그렇게 느꼈다는 것이지 훈련이 약하다는 것이 아니다. 특전사 공수교육도 충분히 빡세다. 다만 높은 곳에서 뛰어내린다는 것이 부담이었다.

임무를 위해 해야 하는 교육이었지만, 공수기본교육은 당시 나에게 주어진 중요한 도전이었다. 낙하산의 원리, 강하 요령, 공중 동작, 착지 등 기본적인 교육을 받으며 동작을 지겹도록 반복했다. 힘들다기보다 수개월동안 이어지는 훈련에 정신적으로 지쳐갔다. 자유롭지 못한 군 특성상 마음이 힘든 것이었다.

날씨도 문제였다. 진해와 제주도, 포항 등 남쪽나라(?)에서 줄 곳 훈련받아왔던 나와 동기들은 경기도 광주의 12월 날씨에 쉽게 적응하지 못했다. 매일 아침 영하 10도를 넘나드는 추위가 엄습했고, 거기에 눈과 비가 내려 훈련 내내 군복과 군화가 젖어 있었다. 치명적인 복병이었다.

◇추위

이런 추위 때문에 생긴 사건이 있었다. 착지 교육을 받을 때였는데 1M 정도 높이의 계단에 올라가 실제 착지 동작을 하며 땅바닥으로 떨어지는 훈련을 하고 있었다. 착지를 하고 나서는 10M 앞에 있는 깃발을 뛰어서 돌아와야 했다. 나와 한 동기는 깃발까지 뛰어갔다 오는 게 귀찮았다.

그러다 내 동기가 결국 사달을 냈다. 뛰어갔다 오며 깃발을 조금씩 앞으로 당겨 놓은 것이었다. 어느덧 깃발까지의 거리가 짧아지자 교관은 당연히 눈치를 챘다. 화가 난 교관은 나와 동기를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맞을 짓 했다. 인정한다.

문제는 그날 저녁이었다. 우리는 해군에서 온 위탁교육생이었다. 인솔담당으로 함께 온 UDT 신00 상사가 이 소식을 듣고 소위 '꼭지'가 돌아버린 것이었다. 타 부대에 와서 군기 빠진 행동으로 사고를 쳤으니 화가 단단히 난 것이다. 저녁식사 후 우리는 신 상사 의 지시로 연병장에 집합했다. 빠따를 각오하고 있었다.

이미 그분은 자신의 차에 5파운드짜리 곡괭이 자루를 진해에서부터 싣고 왔다. 무서운 얼굴로 우리를 바라보던 신상사는 긴 말없이 지시했다. 입고 있는 옷을 팬티만 남겨놓고 모조리 벗으라는 것이었다. 우린 머뭇거림 없이 지시에 따랐다. 그런데 옷을 벗고 1분도 지나지 않아 살이 찢어질듯 추위를 느꼈다.

거기다가 원산폭격이라고 하는 얼차려가 시작되었다. 머리를 연병장 흙바닥에 그대로 박았다. 우리는 심었다라고 표현했다. 비까지 내렸다. 그렇게 한참을 머리를 땅에 심은 채 비를 맞았다. 온 몸이 덜덜 떨리고, 추위에 살가죽이 따갑기까지 했다. 잠시 후 이 모습을 지켜보던 특전 교육단 행보관 원사님이 신 상사를 말렸다. 보는 눈도 많으니 그쯤 하라는 것이었다. 신 상사는 못 이긴 채 우리를 일으켜 세우고 옷을 입으라고 지시했다. 육군 행보관님의 하늘과 같은 은혜(?)에 우리는 감복했다. 어쨌든 그렇게 강하훈련의 날들이 하루하루 지나갔다.

기구강하(사진=국방일보)
기구강하(사진=국방일보)

◇기구강하

첫 강하를 하는 날. 설레는 마음으로 낙하산을 수령했다. 담당 교관님의 말이 이어졌다. “첫 강하는 기구 강하다. 기구를 타고 하늘로 올라가 뛰어내린다. 헬기와 항공기 강하는 내일부터다. 알겠나?”

아니?? 이건 무슨 소리인가? 기구강하라니? 기구강하가 무엇인지 모른 게 아니었다. 우린 최소한 헬리콥터는 탈 줄 알았다. 헬리콥터나 항공기에서 뛰어내리고 싶었다. 기름을 아끼려고 그런가 하고 의아해했다. 나는 비행기에서 몸을 던지는 상상을 수없이 했는데 실망이 밀려왔다. 어쩌겠는가? 군인은 명령이 생명인 것을. 그렇게 장비를 챙겨 기구로 갔다.

그렇게 우리는 커다란 기구를 타고 하늘로 올라갔다. 교관 한 명과 동기 네 명이 기구에 탔다. 하늘로 올라갈수록 기구는 바람에 흔들렸다.

“잘 들어라. 기구에서 최대한 멀리 뛰어라. 안 그러면  낙하산이 기구 줄에 꼬여 사고가 날 수가 있다.”

교관은 주의해야 할 것들을 이야기했다. 난 속으로 까짓것 그냥 뛰어 내리면 되지라고 생각했다. 기구든 뭐든 낙하산만 잘 펴지면 되는 거 아니겠는가? 드디어!!! 내 인생 첫 번째 강하의 시간이 다가왔다. 나는 2번 강하자 였다. 먼저 내 앞에 동기가 준비를 했다. 안타까운 사고로 지금은 저 세상에 먼저 가버린 내 동기 대현이가 첫 번째 강하를 준비했다. 교관의 신호로 대현이는 힘껏 발을 차고 나갔다.

“일마아아아아안~~~~~~”

대현이의 일만 구호가 파란 하늘에 메아리쳤다. 뛰어내리는 대현이가 구른 발에 기구가 크게 휘청거렸다. 아찔했다. 나는 잠시 아래로 바라 보았다. 왠지 땅이 가깝게 보였다.

?“낙하산이 펴지기도 전에 땅에 떨어지는 거 아냐?”

별생각이 다 들었다. 이제 와 무슨 소용인가? 난 지급받은 낙하산이 빠르게 잘 펴지기만을 빌며 기구 앞으로 나갔다. 그러자 교관은 지체 없이 내 어깨를 강하게 두드렸다.

“뛰어!”

순간, 무의식이 육체를 지배했다. 수십, 수백 번 했던 공중 동작이 나도 모르게 이어졌다. 힘차게 기구 바구니를 박차고 나간 내 몸은 본능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입에서는 '일 만~~~!"이라는 구호가 나왔고, 동시에 보조 낙하산을 확인하며 산개 검사를 했다.

그런데 산개 검사를 위해 머리 위로 낙하산을 봤을 때 낙하산이 아직 펴지지 않은 것이었다. 찰나의 순간 난 온몸이 전율하는 아찔함을 느꼈다. 기구 강하는 항공기 강하보다 낙하산 전개(낙하산이 펴지는 것)가 늦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수백 킬로의 속도로 날아가는 비행기에서 점프하면 관성의 법칙에 의해 빠르게 낙하산이 전개된다. 거의 점프와 동시에 낙하산이 펴지는 것이다.

하지만 기구는 그렇지 않다. 수직으로 떨이지기 때문에 전개가 늦다. 불과 몇 초 정도의 차이지만 하늘에서 낙하산 없이 떨어지는 짧은 순간은 그야말로 천 길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기분을 느낀다. 그렇게 억겁(?)의 시간을 견디면, 버섯 모양의 낙하산이 펄럭거리며 펴진다. 내 몸은 울컥거리는 반동과 함께 낙하산 줄 팽팽하게 잡아주는 힘에 의지된다. 불과 7~8초의 시간이다.

해상강하
해상강하

◇하늘을 날다

낙하산이 잘 산개되었는지 확인한 나는 안도했다. 그리고 주변을 바라봤다. 하늘을 날며 내려다보는 저 아래의 풍경은 눈부시도록 아름다웠다. 여기저기 솟아오른 침엽수들이 하얀 눈으로 덮여있었다.

십자가 모양의 큰 길로 된 DZ(Drop-Zone)가 반듯하게 보였다. 개미처럼 오가는 땅 아래의 사람들이 신기했다. 교관들과 동기들이 고개를 뒤로 젖히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오른쪽 발아래 먼저 뛴 대현이의 낙하산이 보였다.

“대현아! 기분 죽인다!”

난 하늘에서 대현이와 대화를 나누고 싶어 소리 질렀지만 대현이는 말이 없었다. 아마 대현이도 하늘을 떠다니는 자유를 만끽하고 있을 것이다. 지난 6개월 동안 나에게 자유라는 것은 없었다. 제대로 된 준비도 없이, 잘 알지도 못한 채 지원해 들어왔던 UDT라는 곳에서 나는 인간병기로(人間兵機)로 만들어졌다.

20대 초반, 지금 와서 보면 천진한 시골 소년이 죽기보다 힘든 훈련을 받으며 그것이 세상의 다인 것처럼 보고 배운 것이다. 세상의 아름다움 따위는 사치라고 생각했던 시간들이었다. 그런 내가 하늘을 날고 있는 그때 그 순간, 수개월 동안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자유를 느낀 것이다. 세상 풍경의 아름다움을 보게 된 것이다. 울컥한 마음이 들었다.

잠시 후. 뒤이어 뛰어내리는 동기의 비명(?) 소리에 놀라 정신을 차렸다. 어느덧 땅이 가까워졌다. 가장 위험한 순간이다. 배운 대로 앞꿈치와 무릎을 모으고 착지를 준비했다. 땅바닥이 순간 솟아오르는 듯 다가왔다. 생각보다 낙하하는 속도는 빨랐다. 무릎을 살짝 굽혀 충격을 흡수하고 오른쪽을 빠르게 몸을 눕혀 낙법을 했다. '털컥' 하는 충격이 온몸에 전해졌다.

쓰러진 난 얼른 발과 다리를 만졌다. 혹시 부러지지는 않았는지 만져보고 통증을 느끼려 애썼다. 괜찮았다. 안도의 한숨을 쉬며 일어서 낙하산을 정리했다. 여기저기서 떨어지는 동기들이 보였다. 그런데 저기서 대현이가 쩔룩거리며 걸어온다. 그럴 줄 알았다. 착지 동작에서 삐끗한 것이다. 난 킥킥대며 대현이를 놀렸다.

“너 훈련 안 받으려고 일부러 발 재꼈지?” 대현이는 눈을 흘겼다. 자존심이 상했는지 연신 씩씩댄다.

◇위대한 처음

그렇게 내 인생 첫 번째 강하를 무사히 마쳤다. 그 후 교육기간 중 우리는 몇 차례의 강하를 더 했다. 헬리콥터와 항공기로도 했다. 기구보다 더 짜릿하고, 훨씬 재미있었다. 하지만 하늘을 나는 가슴 벅찬 감동은 기구에서의 첫 번째 점프가 최고였다. 비록 기본 훈련이긴 하지만 나는 드디어 땅과 바다, 하늘의 모든 훈련을 완수했다. 그 후로도 매년 4번 이상 강하를 했다. UDT는 주로 바다로 뛰어내리기 때문에 육상에서처럼 다리가 다칠 일은 없지만, 거친 바다에 자칫 익수할 가능성이 있어 위험하기가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았다.

뭐가 됐든 처음은 그런 법이다. 힘들고, 겁나고, 설레고, 신기하다. 배우는 과정은 지난(?至難)하고, 다가올 미래에 몸과 마음이 움츠려진다. 하지만 난 그런 초심(初心)이 좋다. 그래서 이것저것 처음 시도해보는 것을 좋아하나 보다. 세상만사 시작이 있어야 끝이 있는 법이니 무엇이든 처음은 다 위대하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벌써 20년이 지난 그때의 기구 강하. 난생처음 하늘을 날며 보았던 발아래의 아름다운 땅. 처음의 그날이 그리운 것은 초심을 잃지 않겠노라는 마음속 다짐이 아직 남아있기 때문이리라. 그래서 지금도 가끔 처음의 기구강하를 생각한다.

글/사진=김강윤 소방관
글/사진=김강윤 소방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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