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엔 신년 특별기획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 시리즈 세 번째 김강윤 소방관의 구조대 사람들 이야기

신년을 맞이하여 스타트업엔에서는 특별기획으로, 사회 각계 각층의 사람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연재하고자 한다. 그 세 번째 이야기는 불철주야 국민의 안전을 위해 헌신하는 부산 기장소방서 구조대 소속 김강윤 소방관의 구조대 사람들 이야기인 '나의 동료들'이다.

   
중세 이탈리아의 사상가 마키아 벨리는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전쟁을 할 때 높고 험준한 성에 의지 하지말라. 오로지 완전한 군사력과 내부의 결속력에만 의지해야 한다”

갑자기 고사에 나오는 말을 왜 하는가 싶지만 나와 같이 조직생활을 하는 직장인들은 새겨들을만한 문구가 아닌가 싶다. 더구나 하루하루가 치열한 사고 현장을 맞닥뜨리는 소방관들에게는 말이다. 특히 이 문구 중에서도 내부의 결속력이라는 말에 주목하고 싶고 오늘은 그와 관련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화재 진압을 마치고 돌아오는 동료들 (사진=김강윤 소방관 제공)

매일 매 순간 어떤 사고가 일어날지 모르는 소방서의 출동업무는 앞선 글에서도 소개했듯이 그야말로 다이나믹하고 예측하기가 어렵다. 그에 따른 현장 활동을 하는 데 있어 우리는 팀을 이루어 행동한다. 함께 화재진압을 하거나 구조작업을 하는 그곳에는 언제나 소중한 동료들이 함께 있다.

우리 동료들은 항상 든든하게 서로를 의지하며 어쩌면 목숨을 잃을 지도 모르는 그곳으로 서슴없이 함께 들어간다. 그러한 용기는 불현듯 솟아오른 영웅심의 발로가 아니다. 동료에 대한 절대적 믿음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며 그것이 바로 결속력이다.

내가 근무하는 119구조대의 1개 팀은 7명 정도로 구성된다.(각 시도마다 차이는 있다) 20년 이상 경력의 베테랑 팀장님을 중심으로 임용된 지 1년도 안된 막내 구조 대원까지 나이대도 다양하고 살아온 인생도 다른 개성 강한 남자들이 한데 모여 있다.

채용기준으로 보자면 특수부대에서의 군 경력을 인정받고 임용된 후 근무하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체력과 담력이 좋고 구조와 관련된 다양한 전문교육을 이수하였으며 위험하고 거친 구조 현장에서의 경험들이 이들을 탄탄하게 단련한다.

구조 대원이라는 스스로의 자부심 또한 상당하다. 그러나 이런 구조 대원들도 혼자서 모든 구조업무를 감당하지 못한다. 아무리 뛰어난 구조대원이라 하더라도 위험에 직면한 사고 현장에서는 아이언맨과 같은 슈퍼히어로가 아닌 이상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혼자서 작업을 수행하기란 여간해서는 불가능하다.

구조현장에서 휴식 중인 구조대원 (사진=김강윤 소방관 제공)
구조 현장에서 휴식 중인 구조 대원 (사진=김강윤 소방관 제공)

그래서 팀원들의 존재는 이들에게 무엇보다 소중하다. 뜨거운 화재현장 속, 연기와 화염으로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그곳에서도 오로지 동료의 호흡 소리와 공기호흡기 뒤에서 반짝이는 점멸등만을 의식하며 서로를 놓치지 않기 위해 신경을 곤두세운다.

수중구조를 해야 하는 물속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아무 말도 할 수 없고 탁한 수질 때문에 시야가 확보되지 않는 환경에서도 구조 대원들은 본능적으로 팀원의 위치와 움직임을 알아차린다. 구조작업을 위한 행위와는 별도로 항상 동료의 안전 또한 매 순간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때론 교통사고 현장에서도, 건물이 붕괴된 곳에서도, 비교적 간단하다고 생각되는 여타 구조현장에서도 내 옆에 있는 동료들은 그 존재만으로도 고맙고 힘이 된다.

로프구조중인 동료를 바라보는 구조대원들 (사진=김강윤 소방관 제공)
로프 구조 중인 동료를 바라보는 구조 대원들 (사진=김강윤 소방관 제공)

경험이 많은 선배 구조 대원이 그렇지 않은 후배 구조 대원과 짝을 이뤄 현장 활동을 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신규 채용된 신참 구조 대원의 경우 위험한 구조작업은 가급적 지시하지는 않는다. 다만 임용 전 소방학교에서 기본적인 구조기술을 배웠다 하더라도 실무에서는 차이점이 분명히 존재하기에 신참 구조 대원은 현장에서 선배들의 활동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며 학습한다.

이들에게 사고 현장은 인명을 구하는 위험한 현장인 동시에 앞으로 구조 대원으로서의 발휘해야 할 역량을 기르는 학습 현장이기도 하다. 다만 이 학습 현장이 매우 긴박하고 처절할 뿐이다.

팀원들은 또한 같이 먹고, 자고, 함께 생활한다. 주간 근무나 야간 근무 때론 24시간을 함께 부대끼며 출동에 대비한다. 어쩌면 이들은 가족들보다도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낼 것이다.

당연히 팀원들의 유대감은 남다르다. 직책이 있지만 남자들의 세계가 으레 그렇듯 형님, 동생 하며 지낸다. 긴박한 현장 활동만 아니면 이들은 여느 직장인과 다를 게 없다. 기혼자인 선배들은 가족들의 생계를 걱정하는 한 가정의 가장일 것이며 총각인 후배 대원들은 여자친구와의 다음날 데이트를 기대하는 젊은 청춘이기도 하다. 함께 모여 야식을 시켜 먹으며 실없는 농담도 하고 좋아하는 프로 스포츠를 함께 즐기며 응원도 한다.

화재진압을 위해 외벽을 파괴중인 구조대원들 (사진=김강윤 소방관 제공)
화재진압을 위해 외벽을 파괴중인 구조 대원들 (사진=김강윤 소방관 제공)

아! 혹시 출동만 없으면 논다고만 생각하는가? 아니다. 절대 그렇지 않다. 출동이 없는 하루 일상은 각종 행정업무에 여지없이 바쁘다. 밀려드는 보고 문서를 작성하고 계획된 일과표대로 훈련도 해야 하며 관내에 있는 취약대상물에 대한 점검이나 훈련도 늘 상 있는 업무이다. 전문교육 이수를 위해 교육기관으로 교육도 받으러 가야 하고 행사 지원이나 대민지원 같은 업무도 종종 있다. 담당하는 업무에 차이만 있을 뿐 여느 직장 못지않게 바쁜 하루를 보낸다.

함께 일한다는 것만으로 무조건 동료애가 돈독해진다는 것은 아니다. 때론 반목하여 갈등도 생기며 서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여 다투기도 한다. 조직이라면 어디에나 있을 법한 일이며 여기도 마찬가지이다. 다만 이들이 가지는 동료애가 조금 특별하다는 것이다. 적어도 내가 나의 동료의 목숨을 책임진다는 것, 그리고 내 동료가 나의 목숨을 지켜 준다는 신뢰가 바탕에 있다는 것이다.

사소한 갈등이 자칫 현장에서 돌이킬 수 없는 사고로 이어질 수 있기에 나는 내 팀원을 믿고 이 일을 한다는 불변의 신뢰가 있지 않다면 결코 이 일을 할 수 없을 거라 생각한다. 또한 위험은 경험이 많은 선배 대원이나 갓 들어온 어린 후배 대원에게 다르게 찾아오지 않는다. 구조 대원은 누구나 위험에 노출될 수 있기에 나는 괜찮을 거라는 방심은 사고로 이어지고 그렇게 된다면 누군가를 살리고 구조해야 할 구조 대원이 크게 다치거나 자칫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최악의 상황이 올 수도 있다.

대형화재현장 (사진=김강윤 소방관 제공)
대형 화재현장 (사진=김강윤 소방관 제공)

지금까지 이야기한 것을 토대로 마키아벨리 말에 비교해보자면 아무리 좋은 구조장비와 훌륭한 지원을 해준다 해도 결국 구성된 팀원들이 무능하고 팀의 결속력이 단단하지 못하다면 이는 사상누각에 불과한 것이다. 조금 과하다고 생각되기는 하지만 죽고 사는 것만 봐서는 전쟁터나 다름없는 사고 현장이기에 팀의 결속력은 나의 동료를 위험에 빠트릴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 절대적 요소라 할 수 있겠다.

때론 그렇게 함께 한 동료를 떠나보내기도 한다. 아니면 크게 다쳐 이전의 건강한 모습을 잃기도 한다. 부정할 수 없는 소방관의 숙명이다. 그리 오래 지나지도 않은 지난해 가을 우리는 바다 멀리 독도 인근에서 여러 명의 동료를 잃었다.

알려지지 않을 뿐 매년 우리는 동료를 잃는다. 그렇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지만 앞으로도 또 잃을 지도 모르겠다. 가까운 동료를 떠나보낼 때의 그 비통함이야 말로 표현할 수 없다. 나와 가까운 사이가 아니더라도 불현듯 들려오는 소방관의 순직 소식은 슬픔 이상의 심적 고통을 안겨준다. 그 이유가 바로 죽은 이와 내가 하나로 결속되어 있다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산불진압 중인 구조 대원(사진=김강윤 소방관 제공)

소방관이 되고 나서 적어도 해야 할 일을 일부러 피하거나 주어진 임무를 스스로 거부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현장에 대한 두려움이 왜 없겠냐마는 그 두려움을 상쇄시키고 나에게 그곳으로 들어갈 수 있는 용기를 주는 것이 바로 나의 팀과 나의 동료들이다. 대단한 무언가를 나에게 주지 않아도 된다. 옆에서 숨 쉬고 있어 주는 것만으로 나는 힘을 낼 수 있고 나의 시야에서 사라지지만 않아도 나는 괜찮을 거라는 안도감이 생긴다.

나 역시 하나의 인간이며 피와 살이 남들과 다르지 않으니 위험이 다가온다면 한없이 무기력해지겠지만 그 위험에 빠지지 않게 나를 잡아주는 동료들이 있기에 그저 감사할 뿐이다. 어쩌면 타인의 생명을 구하는 일을 하기 위해 나는 나의 생명을 나의 동료에게 일부분 의지한 채 일을 하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우리의 결속력이 된다.

일을 마치고 퇴근할 때면 하루를 무사히 보냈음에 감사하고 그리고 그 하루를 동료들과 함께 했음에 감사한다. 나와 나의 동료들은 적어도 현장에서만큼은 다 같이 하나의 심장으로 뛰고 있음을 확신한다. 그리고 부디 이 고단한 일을 끝내는 그 순간까지 계속 함께 숨쉬기를 바랄 뿐이다. 서로의 고귀함을 너무 잘 알기에...

글/사진 김강윤 소방관
글/사진 김강윤 소방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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