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협상은 인간적인 접근, 그리고 인간에 대한 적절한 분석이 필요한 심리적 법칙이다. 기업, 사람, 심지어 동물과 식물에도 인간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세상의 모든 사물과 물질세계는 따뜻하고 겸손한 기운을 느낄 때 성숙해지고 성장하기 때문이다.

주위를 둘러보면 기분파인 사람들이 있다. 기분이 좋을 때 무엇이든지 하는 사람들이다. 살다 보면 너무 소심한 성격보다는 적절한 기분파, 적절한 의리파가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비리와 부정보다는 긍정적인 성격, 의리가 좋은 것은 부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같이 업무를 진행하거나 중요한 선택을 해야 할 때다. 기분파와 업무를 하다 보면 해결하기 어려운 다양한 문제들을 만날 가능성이 많다.

어떤 형태로든지 협상을 하다 보면 감정적으로 대응하게 될 때가 있다. 감정을 다스리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알지만, 생각처럼 잘 되지 않는다. 그럴 때는 나와 상대의 감정을 제 3자의 위치에서 정리해보거나 제 3자에게 선택권을 줌으로써 객관적으로 상황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

수년 전 부모님과 텔레비전을 사러 간 적이 있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어느 정도 크기의 텔레비전이 적당한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따지고 보면 별 문제도 아닌 일이었음에도 의견이 좁혀지지 않았다. 급기야 아버지는 "그럼 티비고 뭐고 사지 말고 집에 가던지!"하고 역정을 내셨다. 일상생활에서 상대를 설득하고 의견을 조율할 만한 경험이 적으면 충분히 발생할 수 있는 문제였기에 그리 개의치는 않았지만, 감정적 대응이 별로 좋은 선택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적잖은 아쉬움이 남았다.

한동안 옥신각신하던 두 분은 나에게 의견을 물어보셨다.

"큰 걸 사세요."
"왜?"
"텔레비전은 자주 봅니다. 작으면 큰 걸 살걸, 하고 후회합니다. 큰 텔레비전을 사면 처음에는 "너무 크다."싶어도 금방 적응이 됩니다."
"그래도 작은 텔레비전을 사면 집안 분위기랑 더 어울리지 않을까?"
"그런 장점도 있습니다만, 시력을 생각하셔야죠. 1년 쓰다 바꿀 거라면 몰라도 10년은 쓸 겁니다. 작은 텔레비전을 사시면 분명 후회하실 겁니다. 큰 걸로 하세요."

그 때 구매한 텔레비전은 13년째 아무 탈 없이 고향집에서 부모님의 좋은 친구가 되어주고 있다.

언젠가 친하게 지내는 여성분이 헤어진 남자친구에 대해 이야기를 한 적 있다.

이야기인즉슨, 자신이 2년 정도 세계여행을 다녀오고 싶은데 남자친구는 절대 안된다며, 헤어지자고 이야기하더라는 것이었다. 1년에 100여권의 책을 읽는 다독가, 시원시원한 성격, 뛰어난 미인인 여성분이었지만 강하게 반발하는 남자친구에게 실망한 나머지 결국 이별을 선택했다고 이야기했다.

"너무 좋은 기회였는데, 여행 갈거면 헤어지고 가라고 이야기하는 거에요. 이해할 수가 없었죠. 결국 헤어졌죠, 뭐. 제가 뭘 잘못했는지 모르겠어요. 오빠가 제 남자친구 입장이라면,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하실 건가요?"

그 여성분은 넌지시 내 의견을 물어보았다. 잠잠히 듣고만 있던 나는 "절대 안되죠."라고 대답했고, 여성분은 깜짝 놀랐다.

"그래요? 왜요?"
"아마 남자친구랑 같이 여행을 한다거나, 결혼하고 함께 세계일주를 하겠다는 계획을 제시했더라면 이야기는 달라졌을 겁니다. 남자분도 '이 사람은 다른 여자들이랑 생각이 다르구나, 뭔가 진취적인 면이 있구나.'하고 생각했겠죠. 같이 세계여행을 간다던지, 아니면 '돈을 좀 더 모아서 가는 쪽으로 해보자.' 하는 식으로 더 나은 제안을 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나 혼자 세계일주 다녀올게.'하고 이야기한다면 상황은 완전히 달라집니다. 남자친구 입장에서는 피를 말리는 하루하루가 될 거에요. 남자친구 입장에서는 여자친구 혼자 세계일주를 보내기엔 세상은 너무 위험한 곳이니까요. 본인은 이해가 안될 수 있어요. '왜 내 마음도 몰라주지? 내가 그렇게 잘못했나?' 하고요."

2차적인 사고, 3차적인 사고를 거치지 못해서 헤어진 커플들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지 상상해보라. 교육기관에서 교사로 근무하던 당시, 나를 무척 잘 따르던 예쁜 여학생이 있었다. 같은 학원에서 함께 근무하던 아내가 나를 졸졸 따라다니던 그 여학생에게 한 마디 던졌다.
"전준우 선생님이 첫사랑에 실패하지만 않았어도 너 만한 딸이 있을텐데..."

◇감정의 절제와 표현

협상에 있어서 극단적인 발언과 행동만큼 위험한 선택도 없다. 조금만 생각하면 더 좋은 방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감정을 절제하지 못하고 극단적인 행동과 발언을 함으로써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맞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부부관계, 연인관계, 친구관계에서도 극단적인 발언과 행동으로 위험에 처한 경우가 많다.

성공적인 인간관계를 만들어가는 데 필요한 것들은 많이 있지만, 무엇보다 상호간의 긍정적인 대화와 원활한 소통만큼 중요한 일도 없다. 이 때 서툰 감정관리, 혹은 대화의 맥락에서 벗어나는, 결과적으로 본질을 왜곡시키는 사람들을 통해 많은 문제가 만들어지곤 한다. 자기분석이 필요한 이유다. 자기분석이 적절하게 이루어지지 않으면, 모처럼 찾아온 귀중한 기회가 물거품으로 돌아가기 쉽다. 인터넷에는 자기분석에 관련한 무수히 많은 자료가 있다. 적절한 자료와 표를 찾아서 작성해보라. 적잖은 도움이 될 것이다.

수년 전 자기분석을 바탕으로 토론하는 워크샵에 참석한 적이 있다. 함께 참여한 분들은 자기분석 워크샵에 대해 상당히 호응적인 반응을 보였는데, 상대방이 나를 바라보는 객관적인 분석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효과적인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런 자기분석 워크샵이 줄곧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다거나 좋은 이야기만 듣는 자리는 아니다. 다소 강한 비판, 혹은 익명성을 빌미로 철저한 사실만을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좋지 않은 감정을 남길 우려도 있다. 조금씩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으로 임한다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으리라 믿는다.

극단적인 발언, 혹은 극단적인 행동이 나오는 이유에 대해 다양하게 생각해볼 수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아무래도 서로간의 간극을 좁히려는 노력이 부족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심리적인 안정감이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 상대방에 대해 강한 반발과 불쾌감, 혹은 일종의 두려움을 느낀다. 누구나 신뢰할 만한 어느 유명 작가이자 저널리스트는 그의 저서에서 상대에 대한 심리적 안정이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 발생할 수 있는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우리는 형사사법제도와 채용 절차, 아이돌보미 선발을 인간적인 과정으로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인간적 요건은 우리가 엄청난 양의 오류를 용인해야 함을 의미한다. 바로 이것이 낯선 이에게 말 걸기의 역설이다.

- 『타인의 해석』207p, 말콤 글래드웰, 김영사

심리적 불쾌감이 만들어진 원인이 무엇인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상대에 대한 반발이나 두려움이 심리적 안정감을 저해하는 요소가 되는 것은 확실하다. 여기에서 우리는 감정의 표현과 절제가 시의적절하게 이루어짐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안면이 있거나 친한 관계에서는 협상의 성공여부에 상관 없이 관계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상대에 대한 신뢰가 뒷받침되기 때문에 감정의 절제와 표현이 어떠하든지간에 협상에 별다른 문제가 없다. 반면에 관계가 모호할 때, 그리 가깝지 않거나 적대적인 사이에서 발생하는 협상이 온전히 완성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상대에 대한 신뢰가 뒷받침되지 않기 때문에 이성보다 감정의 지배를 받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새로운 직장에서의 면접이나 거래처와의 미팅처럼 예외는 있지만, 보복운전이나 묻지마 폭행처럼 상대에 대한 신뢰가 형성되지 않은 경우에 협상은 이성보다 감정이 앞서는 경우가 많다. '속도가 아주 느릴지언정 역사는 정의를 향해 움직인다'고 이야기한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학교 정치철학 교수의 말처럼, 정의는 역사뿐만 아니라 대다수의 사람들이 수긍할 수 없는 감정적 선택에 어김없이 날카로운 판결을 내린다.

글/사진=전준우 작가
글/사진=전준우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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