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모 없음에 관하여. feat 모과

모과꽃이 예쁘다.

밀리터리룩을 연상시키는 터프한 줄기에 수줍게 자리한 모과의 연분홍꽃은 자세히 눈여겨 보아야 보이는 숨은그림 찾기같다.

연분홍빛 예쁜 모과꽃. 잎과 터프한 줄기 사이에 숨은듯 피었다
연분홍빛 예쁜 모과꽃. 잎과 터프한 줄기 사이에 숨은듯 피었다(사진=방재희기자)

같은 장미과지만 매화,벚꽃,살구,복숭아 등의 꽃들이 화려한 꽃을 먼저 내고 잎이 무성해지는 것과 달리 모과꽃은 초록잎이 먼저 나고 그 속에 숨은듯 피어서일까? 모과꽃이 한창이어도 멀리서는 꽃이 잘 보이지 않는다.

모과는 세번 놀라게 하는 나무라고 한다.

장미과의 수종에 속할만큼 예쁜 꽃에 비해 열매가 못생겨서, 못생긴 열매의 향이 너무 좋아서, 향 좋은 열매가 너무 맛이 없어서. 어물전 망신은 꼴뚜기가 시키고, 과일 망신은 모과가 시킨다고 했던가?

청주에는 모과나무로는 유일하게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노거수가 있다.

제522호 청주 연제리 모과나무(사진=청주시청 공식블로그)
천연기념물 제522호 청주 연제리 모과나무(사진=청주시청 공식블로그)

꽃이 화려하거나 꽃과 열매가 큰 나무는 오래 살기 힘들다. 모든 식물이 가장 에너지를 많이 소비하는 때가 꽃피울 때와 열매가 열릴 때이기 때문이다.

모과나무는 장미과의 예쁜 꽃 피우랴, 주렁주렁 큼직한 열매 맺으랴 에너지를 많이 쓰다보니 평균수령이 3백년 안팎이다. 이것을 감안하면 수령 오백년이 넘는 청주 연제리의 모과나무는 매우 희귀한 경우이며, 규모로는 전국 제일이다. 연제리 모과나무는 굵은 줄기에 울툭불툭한 요철과 표면의 점박이 잘 드러나 있어서 나무 형태가 아름답고 생육상태가 좋다. 이 나무가 있는 연제리 부근은 모과울로 불릴만큼 모과나무가 많았다고 한다.

단종이 폐위되자 학식이 깊었던 류윤은 벼슬을 버리고 모과울에 은둔했다. 세조가 그를 아껴 함께 일하기를 청하자 류윤은 "나는 모과나무처럼 쓸모가 없는 사람이니 찾지 말라"며 거절했다. 세조는 이를 아쉬워하며 '모과나무 마을에 사는 선비'라는 의미로 '무동처사(楙洞處士)'라는 별명을 붙여줬다나.

모과나무 줄기의 얼룩덜룩한 무늬는 스타일리시 패션아이템인 카모플라쥬 패턴을 연상시킨다. 위장과 은폐를 뜻하는 군대 용어인 카모플라쥬. 류윤은 모과의 카모플라쥬 무늬처럼 권력을 찬탈한 세조에게서 자신을 은폐시키고 평생 숨어 살았으니 모과를 닮은 사람이었다.

위장과 은폐를 뜻하는 카모플라쥬 패턴을 연상시키는 모과줄기
위장과 은폐를 뜻하는 카모플라쥬 패턴을 연상시키는 모과줄기(사진=방재희기자)

모과를 편지글에 등장시켜 정적의 마음을 사로 잡은 사람이 있다. 바로 정조 임금이다.

소식이 갑자기 끊겼는데 경은 그동안 자고 있었는가? 술에 취해 있었는가? 아니면 어디로 갔었기에 나를 까맣게 잊어버렸는가? 혹시 소식을 전하고 싶지 않아 그러했던 것인가? 나는 소식이 없어 아쉬웠다. 이렇게 사람을 보내 모과를 보내니 아름다운 옥을 받을 수 있겠는가?(1797년 6월 27일)

정조가 정적 심환지에게 보낸 비밀편지 3백통에는 정적조차 쥐락펴락하는 소통의 달인, 정치연출가의 면모를 보여준다.

위 편지에는 마치 연인에게 투정부리듯 친밀한 표현이 등장하는데, 말미에 <시경>을 인용하여 과일로도 취급받지 못할만큼 소소한 모과를 보내니 옥처럼 멋진 답례로 답장을 보내라는 겸양의 글로 마무리하고 있다. 정조의 편지를 받고 쩔쩔매는 심환지의 모습이 그려지는 듯 하다.

류윤과 정조가 쓸모없다,사소하다 한 모과가 정말 쓸모없는 나무일까? 모과는 시고 떫고 딱딱해서 세상 맛없는 과일이다. 우리선조들은 먹을 수 있는 것은 '참', 먹을 수 없는 것에는 '개'를 붙일만큼 먹을 것에 집착했으니 모과는 쓸모없는 열매임에 틀림없다.

과일망신 시킨다는 모과
과일망신 시킨다는 모과(사진=방재희기자)

그런데, 중국 명나라시대 약초학 연구서 <본초강목>에는 모과의 놀라운 반전이 기록되어 있다. 중국 광덕에 사는 고안중이라는 사람이 다리가 붓고 통증이 있는 각기병을 앓았는데, 배를 타고 가다가 어떤 자루 위에 다리를 올려놓자 통증이 점점 사라졌다. 모과가 든 자루였다. 그가 집으로 돌아와 모과로 다리병을 고쳤다는 이야기가 그것이다.

<청이록>에는 모과가 다리를 쇠처럼 튼튼하게 해주는 배라는 의미로 '철각리(鐵脚梨)'라고 부르고 있으며, 허준의 <동의보감>에도 "모과는 힘줄과 뼈를 튼튼히 해 다리와 무릎에 힘이 없는 것을 고친다"고 했다.

모과열매를 우려먹는 차는 기관지를 튼튼하게 해주며, 위장병에도 효과가 있다. 한의학에서는 명자나무 열매도 모과[木瓜,나무에 열리는 참외모양열매]라고 부른다. 생김새도 비슷하고 쓰임새도 비슷해서다. 명자나무는 같은 장미과의 나무로 모과보다 꽃이 먼저 핀다.

키작은 나무에 미니모과처럼 생긴 명자열매가 달렸다(사진=네이버블로그)
아가씨 마음에 훈풍을 일으킬만큼 예쁘다고 '각시꽃'이라 불린 명자나무꽃(사진=방재희기자)

명자나무는 꽃이 예뻐서 집안에 심으면 아녀자들이 바람난다고 금기시했다는데,과연 아가씨들 마음을 들썩이게 할만큼 예쁘다. 그런데 열매는 딱 모과처럼 울퉁불퉁 못생겼다. 모과열매는 키큰나무에 달려 노란 열매가 눈에 띄지만, 명자열매는 키작은 나무에 달려 덤불을 헤쳐보아야 찾을 수 있다.

키작은 나무에 미니모과처럼 생긴 명자열매가 달렸다(사진=네이버블로그)
키작은 나무에 미니모과처럼 생긴 명자열매가 달렸다(사진=네이버블로그)

모과가 열매의 쓰임은 나을지 몰라도 목재로는 쓰임이 덜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불식시켜주는 멋진 예가 있다. 전남 구례 화엄사 뒤편의 대나무 오솔길을 걸어오르면 아담한 경내의 구층암이 나타난다. 이 구층암의 요사채 툇마루에는 매끈하지 않은 도랑주가 서로 마주한 것을 볼 수 있다. '도랑주'란 나무를 가공하지않고 자연 그대로 만든 기둥을 말한다.    

화엄사 구층암 요사채의 모과나무 도랑주
화엄사 구층암 요사채의 모과나무 도랑주(사진=방재희기자)

구층암의 도랑주는 모과나무의 곁가지를 제거하고 껍질만 벗겨 살아있던 모습을 그대로 살렸는데, 생긴 모양그대로 창방과 마루턱을 만들고, 가지가 뻗어나간 자리에 서까래와 지붕을 얹었다. 골과 결이 파인모습 그대로 노출시켜서 맞춤한 자리에 가져다놓은 자연주의 건축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가공하지않은 자연목 그대로 기둥을 세우고 지붕과 마무를 앉혔다
가공하지않은 자연목 그대로 기둥을 세우고 지붕과 마무를 앉혔다(사진=방재희기자)

도랑주처럼 자연을 그대로 옮겨오는 우리 전통 건축방법에는 자연석을 주춧돌 삼아 기둥을 얹는 덤벙주초도 있다. 강원도 삼척 죽서루는 덤벙주초의 백미다. 관동팔경 중에서도 최고로 꼽힐만큼 강을 휘돌아흐르는 바위절벽위에 올린 누각의 절경이  멋져서 김홍도,정선,강세황 등 당대 화가들이 죽서루의 모습을 남겼다.

겸재 정선 '죽서루' 관동명승첩,1738(출처=간송미술관)
겸재 정선 '죽서루' 관동명승첩,1738(출처=간송미술관)

죽서루는 훌륭한 위치와 장대한 누각도 멋지지만 누각을 받히고 있는 기둥을 보는 순간 놀라움을 더한다. 죽서루 누각을 받친 기둥들은 저마다 길이가 다르다. 자연석을 기둥 주초로 덤벙덤벙 놓은 돌위에 기둥을 올리느라 숏다리로 혹은 롱다리로 서있는 저마다 다른 키의 기둥들이 기이할 정도다. 

덤벙주초에 맞춰 저마다 키가 다른 죽서루 기둥들
덤벙주초에 맞춰 저마다 키가 다른 죽서루 기둥들(사진=방재희기자)

울퉁불퉁한 초석 모양에 맞춰 나무기둥 아랫면을 다듬는 건축법을 '그랭이질'이라고 한다. 그랭이질로 돌과 나무모양을 맞춰 퍼즐처럼 세우는 것이다.

우리 석공들은 돌을 떡주무르듯 할만큼 솜씨가 좋았다는데 돌도 나무도 매끈하게 다음으면 돌모양에 기둥밑면을 맞추는 섬세한 작업, 그랭이질 따위를 안해도 되련만 왜 이런 귀찮은 일을 마다하지 않았을까?

섬세한 그랭이질로 초석에 딱 맞춰 세운 죽서루 기둥
섬세한 그랭이질로 초석에 딱 맞춰 세운 죽서루 기둥(사진=방재희기자)

우리 조상들은 자연을 인위적으로 변형시키는 것을 꺼렸다. '차경(借景)', 경치를 빌린다는 한마디가 우리 정서를 대별한다. 내 집에 정원을 인공적으로 꾸미기보다는 아름다운 곳에 심플한 정자를 짓거나, 집에는 큰 창을 내어 먼댓산과 흐르는 강을 액자처럼 즐겼다. 창문을 열면 액자처럼 경치를 빌려 즐기고 창문을 닫으면 자연을 다시 제자리로 돌려놓는, 소유하기보다는 빌리는 차경(借景)이 우리가 자연을 즐기는 방법이었다.

경회루의 낙양각. 창을 액자처럼 꾸미고 변화무쌍한 자연을 즐겼다
경회루의 낙양각. 창을 액자처럼 꾸미고 변화무쌍한 자연을 즐겼다(사진=방재희기자)

쓸모가 있다 없다를 가르는 기준이 무엇일까? 깎고 다듬고 나의 쓸모에 자연을 변형시키기 보다 자연그대로에 나의 쓸모를 맞추는 방식, 나의 쓸모가 다 끝나면 다시 자연으로 돌려보내어 자연에서 쓸모를 다하라는 마음. 이런 눈으로 세상을 보면 쓸모없는 돌도, 쓸모없는 나무도 없다. 하물며 사람이랴?

얼마전 92세로 돌아가신 시모는 나이들어 기력이 떨어져 밭일도 못하고, 밥만 축내는 쓸모없는 목숨이 거둬지지도 않는다며 입버릇처럼 한탄하시곤 했다. 생산하지 못하는 사람은 쓸모없는 사람인가? 현대자본주의사회에서는 '돈벌이' 유무로,돈의 많고 적음으로 사람의 가치를 저울질하고 있다.

시모 당신은 모과꽃처럼 수줍은 꽃다운 시절에 순종하나로 시집살이를 견뎠고, 울퉁불퉁한 모과열매처럼 이리 저리 치이면서도 자식 뒷바라지와 가정의 살림살이를 위해 허리도 제대로 펴지못하며 쓰임을 다했다. 고목이 되었지만 구층암 모과 도랑주처럼 그저 그곳에 계신 것만으로도 아름다운 존재이셨음을, 당신의 쓸모는 넘치고도 넘치셨음을 기억하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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