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상황, 불편한 느낌

협상은 가치가 다른 대상의 인수, 전달, 교환등을 하는 데 있어서 필요한 심리도구이므로 상호간의 적절한 대화, 공감이 필수다. 기업의 경우 워크숍이나 MT처럼 단합회 형태의 모임을 통해 더 나은 협상을 만들어가기도 한다. 늘 좋을 수는 없을지라도, 가장 좋은 결과를 만들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이러한 노력과 수고에도 불구하고 협상이 실패로 돌아가는 경우가 있다. 공격적 자세와 거만함과 같은 태도 때문이다. 사람은 때때로 공격적이 된다. 일상의 스트레스, 과다 업무, 불편한 관계의 끝맺음을 빌미로 공격적인 성향을 드러낸다.  원활한 인간관계와 상호간의 교류에 있어서 예의와 겸손이 중요하다는 것은 알지만, 이론과 규칙이 모두 먹혀들어가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상대가 누구든 개의치 않는다. 속 시원하게 이야기하고 이전보다 나은 관계가 형성되는 경우도 있지만,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협상에 있어서 공격적 태도는, 기회를 얻는 경우보다 기회를 잃어버리는 수가 더 많은 위험한 선택이다.

비교적 최근에 있었던 일이다. 황당한 경험을 했다. 아내를 통해 들은 이야기였는데, 수년간 단골로 다니던 미용실에서 오지 말라는 일방적 통보를 받은 것이었다. 살면서 만난, 가장 황당한 일들 중 하나였다.

“아들 머리 자르려고 전화했는데 원장님이 받는거야. 예약하려고 전화했다고 하니까 ‘전화 오신 김에 말씀드리는건데요.’하면서 “앞으로 다른 미용실을 이용해달라고 이야기하더라고.”

아내의 머리는 그 미용실의 실장이 주로 담당했다. 친절하고 좋은 사람이다 보니 수년간 이용했다. 언젠가 아내가 고마운 마음을 담아 샌드위치를 미용실에 전달한 적도 있었다고 이야기해주었다. 그런데 뭐가 문제지? 이해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아내는 최근에 그 미용실의 원장을 통해서 관리를 받았다. 몇 천원 더 비싸지만 개의치 않았다. 실장의 미용솜씨도 나쁘지 않았지만, 그래도 예닐곱 명의 직원을 거느린 미용실의 원장이라고 하니 기대하는 마음도 없지 않아 있었으리라. 그렇게 머리를 하고 온 날 내게 어떻느냐고 물었다.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사람 닮았는데..."
"반지의 제왕? 엘프?"
"아니, 간달프."

나는 애처가 스타일이다. 조막만한 얼굴에 눈이 크고 웃는 얼굴이 예쁜 아내는 어떤 머리스타일을 해도 잘 어울렸다. 하지만 내가 봐도 간달프라고 이야기할 정도로 머리스타일이 형편없었다. 도대체 누가 이렇게 머리를 만들었는가 물어봤다.

"원장이 직접 해줬어."
"원래 실장이 해줬잖아."
"손을 좀 다쳐서 한동안 출근을 못한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원장이 해줬는데, 맘에 안들어. 그리고 되게 성의 없게 행동하는 것 같아. 머리 감길 때도 부드럽게 하지 않고 대충 하고, 자르는 것도 대충 하는 것 같아. 원장이라서 뭔가 대단한 게 있을 줄 알았는데 그렇지도 않아."

당시에 오갔던 대화들은 그런 식이었지만, 심각하게 생각하진 않았다. 나의 어머니는 경북 안동이라는 작은 시골마을에서 30년 넘게 미용실을 운영하고 계신다. 어릴 때부터 미용사로 근무하는 어머니를 보고 자란 누나와 나는, 미용일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사람 상대하는 일은 대개 힘들고 어렵지만, 미용은 고객의 취향, 성격, 머리를 매만지는 순간의 분위기까지 생각하면서 관리해야 하는 일이기에 그 어떤 일들보다 훨씬 더 많은 스트레스를 받는다. 아내와 나는 그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

얼마 뒤 나도 원장에게서 이발을 했다. 나 역시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늘 부드러운 미소와 겸손한 태도로 사람을 대하는 실장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가 있었다. 겸손하지도, 상대를 배려하지도 않는 태도가 거슬렸다.

"무엇이 이 사람으로 하여금 거만한 태도를 갖도록 하는가?"

다소 불편하긴 했지만 그러려니 했다. 어릴 때부터 봐온 어머니의 모습이 있었기에,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그 느낌이 틀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발견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생각의 씨앗

아내의 이야기를 듣고 그 날 저녁 미용실로 전화를 했다. 그리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 이야기해달라고 했다.

"저는 객관적인 사람이라는 이야기를 자주 듣습니다. 내 아내라고 해서 아내편을 들고, 남이라고 해서 상대방 편을 들지 않는 식으로 행동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하는 게 맞다고 생각하고요. 순전히 사실만 말씀해주시면 됩니다."

염려가 안도로 바뀌었을까. 한차례 숨을 들이마쉰 원장이 이야기를 했다.

원장의 말인즉슨, 아내가 미용실에서 머리를 하고 난 뒤 짜증 섞인 반응을 보이더라는 것이었다. 자신들이 잘못한 것도 없는데 인상을 쓰고, 머리를 세게 닦는다고 불쾌한 표정을 짓는다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일에 대한 스트레스, 어려움, 사람을 대하면서 겪는 수고들을 이야기하고는 이내 다른 미용실을 이용해달라고 이야기했다.

"저희도 이런 적이 처음입니다. 당황스럽기도 하고 불쾌하기도 하고요. 미용실을 다른 곳으로 옮기는 건 별로 문제가 안됩니다. 집 근방에만 해도 미용실이 열댓군데나 있고, 종종 이용하던 미용실도 있거든요. 그런데 아쉬운 건, 그렇게 불편한 상황이었는데 한 번도 이야기를 안하다가 왜 원장님한테 머리 시술을 받고 난 뒤에 그런 이야기가 나오는 거죠? 우리는 실장님 외 직원분들한테 머리 시술을 받은 적이 한 번도 없는데요. 그리고 저도 실장님에게서 머리 시술을 받을 때는 분위기가 좋았는데, 원장님에게서 머리시술을 받을 때는 굉장히 불친절하고 대충 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긴 이야기 하실 필요 없구요. 그냥 다른 곳 이용해주시면 되겠습니다."

나는 머리 끝까지 화가 나서 "장사를 하실 거면 똑바로 하세요!"하고 소리치고 전화를 뚝 끊어버렸다.

고객인 우리가 옳고, 을의 입장인 그들이 틀렸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고객은 돈을 내고 서비스를 받는 사람이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내가 생각하는 고객의 관점은 그 정도다. 고객이라는 특권 속에 갑질할 수 있는 자격 또한 갖추고 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러다 첫째아들 돌잔치를 위해 방문한 의상대여실에서 실장이 아내의 머리스타일과 눈썹을 두고 조언을 해줄 때 '이건 아니다' 하는 생각이 들었던 거였다.

"머리가 많이 상하셨네요. 눈썹도 이렇게 하시면 안되는데..어느 미용실에서 하신 거에요? 리페어(repair, 서비스 불만족 시 재시술해주는 것)는 받으셨나요?"

"두 번 받은 적 있거든요. 그리고 나서 그런 전화를 받은 거에요. 시술이 마음에 안 들어서 다시 해달라는 게 그렇게 잘못된 건가요?"

"아니죠. 당연히 해드려야 되는 건데요. 도대체 어느 미용실이에요?"

목에 핏대를 세우고 이야기를 나누는 웨딩샵 실장과 아내의 대화를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결국 '실력을 문제 삼는 고객에 대한 불편함을 신경질적인 고객이라는 이름으로 승화시킨 것'이라고 결론내린 채 대화는 일단락되었다.

사람의 모든 행동은 마음에서 시작된다. 수 없이 올라오는 마음 속 생각 중에서 어떤 생각 하나가 자리잡고 나면, 그 생각이 뿌리를 내리면서 점점 커지기 시작한다. 아무런 실체가 없는 생각, 아무런 형태가 없는 생각의 규모가 커지면 행동으로 드러난다. 수많은 문제, 사고, 범죄가 일어나는 이유다.

정신분석이론학에는 망상적 투사(Delusional Projection)이라는 게 있다. 바람직하지 못한 생각이나 충동 따위를 다른 사람의 탓으로 넘기는 정신분석이론 용어다. 추운 겨울에 커플들이 지나가면 솔로들이 '날씨도 추운데 집에나 있지 무슨 데이트를 하고 난리야?’하고 추운 날씨를 남의 탓으로 넘기는 식의 행동을 이야기한다. 일상생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상황인데, 좀 더 나아가면 조울증, 정신분열증, 피해망상, 의처증 등으로 옮겨지기도 한다. 어디까지나 극단적인 예지만, 정신분석이론의 관점이 아니더라도 생각 속에서 다양한 망상들을 만들어내는 경우가 많다. 그런 생각들 때문에 얻어지는 피해는 오롯이 나의 것이다.

나는 미용실 원장과 통화하면서 이야기했다.

"아내가 불편한 표정을 짓고 신경질적이었다면 이야기를 하시면 됩니다. "고객님, 저희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돈을 받는 사업자입니다. 오늘 기분이 안 좋으신 것 같은데, 좀 신경질적이신 것 같아서 저희도 마음이 불편합니다."하고요. 그럼 이야기가 될 것 아닙니까? '아 그렇게 보였나요? 제가 좀 피곤해서 저도 모르게 실례를 했네요.'라던지 '좀 안 좋은 일이 있어서 복잡하네요.'하면서 더 돈독한 단골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게 아니면 일찌감치 진상고객 하나 잘라내는 겁니다. 직원들 입장에서는 그게 훨씬 더 이득입니다. 제 아내는 실장님이 잘 챙겨주신다고 간식도 챙겨보냈다고 하고 다른 사람들한테 소개도 하는 모양인데, 이런 식의 응대는 곤란하죠."

◇진실한 사모님

언젠가 식당에 지인들과 밥을 먹으러 갔다. 점심시간이라 손님들이 꽤 많은 곳이었는데, 같이 간 일행은 가격도 저렴하고 맛도 괜찮아서 자주 이용한다고 귀뜸을 해주었다. 한창 밥을 먹다가 반찬이 부족해서 서빙하는 사모님을 불렀는데, 반응이 없었다. 두어 번 더 부르니 그제서야 빽 소리를 지르듯이 "네!"하고 반응이 돌아왔다.

"여기 반찬 좀 더 주세요."
"네, 갖다 드릴게요. 잠시만요!"

분주하게 움직이는 모습이 수고스러웠지만, 바쁜 주방에 우리가 들어갈 수도 없어서 반찬도 없이 흰밥만 떠먹고 있었다. 한참 뒤에야 사모님이 반찬을 들고 왔다. 다소 불쾌했던 나는 사모님에게 한마디 툭 던졌다.

"반찬 좀 더 달라고 불렀는데, 왜 그렇게 반응이 없으세요?"
"바빠 죽겠는데 자꾸 부르니까 대답하기 짜증스러워서 대답 안했어요."

그리고는 입을 가리고 막 웃는 게 아닌가! 우리도 따라 웃었다.

밥을 다 먹고 나가면서 우리는 "진실한 사모님, 밥 잘 먹고 갑니다."하고 인사했고, 서빙하던 사모님은 사람 좋아보이는 얼굴로 고개를 조아리며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세요!"하고 인사했다.

◇적당히 생각하면 배울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존경하는 은사님에게서 들은 말이다. 인생은 끊임없는 협상의 연속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돈독한 관계를 만들어가는 것이 협상의 기본이기 때문이다. 생각이 주밀하지 못한 사람의 배움은 깊이가 얕다. 당연히 성공적인 협상을 하기도 어렵다. 원장은 원장의 일에 집중했다. 아마 스스로 생각하기에 매우 친절하게 고객을 응대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결과는 어떤가? 협상에 있어서는 완전히 실패했다. 우리는 두 번 다시 그 가게에 가지 않는다.

처음엔 다소 불친절하다고 생각한 식당의 여주인은 “바빠 죽겠는데 자꾸 부르니까 짜증나서 대답 안했다.”고 이야기했다. 최근 들어서 접하게 된 가장 솔직한 협상이었다고 생각한다. 얼마간 팁을 두고 오지 못한 게 지금껏 후회스럽다.

글/사진=전준우 작가
글/사진=전준우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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