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상력의 극대화

어떤 상황에서든지 협상력(bargaining power)은 문제해결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이익의 극대화는 협상력에 의해 좌지우지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협상력이 중요한 이유는 눈에 보이지 않는 심리학 분야인데다 측정가능한 지수가 아니기 때문이다. 오직 결과물만으로 측정할 수 있을 뿐이다. 협상력으로 '각자의 몫에 미치는 영향'을 측정하는 것은 '각자의 요구사항과 태도에 대한 신뢰가 얼마나 구축되어 있는가?'하는 것을 보는 것과 같다.

앞서 표범에게서 무참히 죽임을 당한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나누어보도록 하자. 추장은 새끼표범이 자라면 아이들을 해치고, 마을을 위험에 빠트리게 하는 존재인 것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정글 속에서 사는 동안 닥쳐오는 위험을 미리 예비할 수 있는 지혜와 힘이 있는 추장은, 다른 어른들에 비해 사냥경험이 많고, 어떻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에 대한 감각이 있었다. 아이들은 추장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어야 했다. 아이들은 죽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이다.

문제는 주변 사람들이다. 아이들이 새끼표범을 죽이지 말아달라고 이야기할 때, 왜 주변의 어른들은 아이들이 새끼표범을 갖고 놀도록 그냥 내버려두었을까? 부모, 친척, 그리고 가깝게 지내는 친구들. 그들과 관계 있는 어느 누구도 그들이 표범에게 죽임을 당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은 것이다. 협상에 있어서 그들은 완전히 실패했다.

반면에 아이들을 보호할 권리가 있고, 그만한 힘과 지혜가 있었던 추장은 아이들에게 닥쳐올 위험과 문제가 무엇인지도 정확히 알고 있었다. 추장은 아이들과 완벽한 신뢰가 형성되어 있었다. 아이들도 추장에게 마음을 열고 대했다. 하지만 어떤 면에서 봤을 때 아이들은 추장보다 낫다는 마음을 갖고 있었다. "이 새끼표범은 추장님이 생각하는 것처럼 무섭거나 험악한 야생동물이 아니야! 우리가 우유만 주면 충분히 온순하게 자라날 수 있어!" 하고 생각했다. 그들이 옳다는 생각, 추장보다 낫다는 생각 하나가 그들의 생명을 죽음으로 몰고 갔다. 결코 옳은 선택이 아니었지만, 어쨌거나 아이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무언의 협상, Tacit Negotiations을 성공적으로 갈무리한 셈이다.

모든 아이들이, 혹은 모든 어른들이나 주변의 친구들이 새끼표범을 데리고 노는 아이들을 향해 걱정 어린 마음을 갖고 있었을 것이다. 그들 중에는 야생동물로 인해 가족을 잃은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고, 야생동물에게 막대한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있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은 이미 '추장에게 인정받은 아이들'이라는 사실로 인해 왈가왈부할 필요성을 잊어버렸을 것이다. 그들의 위대한 인도자이며 지혜로 충만한 추장의 선택 앞에 반기를 들만한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저 새끼표범이 항차 우리를 해칠 위험한 야생동물이라는 것을 모른단 말입니까? 당장 아이들에게서 저 새끼표범을 떼어놓읍시다! 아이들은 분명히 목숨을 잃을 것입니다!"

어느 누구 하나 그렇게 소리치며 상황을 뒤바꾸어놓을 만한 노력을 하지 못했다. 이렇다 할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는 대화의 장이나 교감이 없던 상태에서 오직 아이들의 옳음과 추장의 선택만으로 결정되어버리는 협상이라면, 다른 누군가의 정확한 지시 없이도 암묵적으로 이루어지는 포컬 포인트(Focal Point, 협상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는 시점)는 아이들의 옳음과 어른들의 1차원적인 사고에 의한 것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겠다.

◇문명의 충돌

진정한 '문명의 충돌'은 청각 장애인들이 말로 나누는 대화와 같다. 누구도 상대방이 무슨 말을 하는지 파악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사피엔스 243p』, 유발하라리,김영사

어린 아이들이 보는 세계는 지극히 1차원적인 세계다. 언제까지나 나에게 좋은 친구가 되어주는 표범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세상도 물론이거니와, 표범이라는 동물이 그렇게 호락호락한 동물은 아닌데도 불구하고, 아이들의 눈에 표범은 그저 덩치 큰 고양이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표범에 의해 죽임을 당한 아이들은 아이들의 옳음에 의해 죽임을 당했지만, 비슷한 사고의 세계를 가진 어른들의 무관심에 의해서도 보호받지 못했다.

시간이 조금 흐르면 2차원적인 세계에 대해서 보게 된다. 표범이 위험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보는 것이다. 언젠가 주변 사람들에게서, 부모님에게서, 친구들에게서 들은 이야기들로 인해 표범을 조금 다르게 생각해보는 경우다. 혹은 먼 발치에서 누군가 위협당하는 것을 본 것일 수도 있다. 어쩌면 위험할 수도 있는 동물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3차원적인 사고의 세계는 그 다음이다. 표범의 실체에 대해 완벽하게 이해하는 경우다. 생명을 해칠 수 있는, 매우 위험한 야생동물인 것을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어린 아이들은 동물원에 있는 동물들을 보고 무서워하지 않는다. 언젠가 아내와 놀이공원에 갔다가 동물원에서 벵골호랑이를 보게 되었다. 어릴 때 서커스장에서 본 호랑이는 거대한 고양이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았는데, 나이가 들어서 직접 마주친 호랑이는 그렇지 않았다. 몸길이가 족히 3미터는 되어 보이는 거대한 호랑이 앞에서 인간이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 발견했다. 눈빛에서 날카로운 기운이 맴돌았다. 한 편으론 동물의 왕이라는 이름이 괜히 붙은 게 아니라는 생각도 했었다.

그렇게 감탄하고 있던 내 옆에 서 있던 어린아이는 호랑이를 보고 "저 호랑이 귀엽다. 만져보고 싶다."를 연발하고 있었다. 동화책속에서 보는 호랑이를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마치 새끼표범이 온순하다고 생각했던 정글 속 아이들처럼, 그 아이에게는 호랑이가 귀여운 애완동물이나 콘프레이크의 표지모델 정도로 인식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지극히 어린아이다운 사고방식이다.

정글 속에서 생활하는 어린 아이들의 옳음과 사고방식은 추장의 사고방식과 전혀 다른 방향성을 갖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죽임을 당했다. 앞서 제시한 방법들을 제하고라도, 아이들은 어떤 선택을 했어야 가장 올바른 선택을 한 것이었다고 이야기할 수 있었겠는가?

가장 좋은 방법은 협상 자체를 거절하는 것이다. '절대 고기를 먹이면 안되고 우유만 먹여야 한다.'라고 이야기가 추장의 입에서 나오지 않도록 추장의 이야기를 따라가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그것이 안된다면, 어떤 일이 있더라도 새끼표범을 가까이 두지 말았어야 했다. 왜 아이들 중 하나의 아버지는 '새끼표범이 우리의 사랑하는 아이들을 위험으로 몰고 갈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것인가?

◇확약을 바탕으로 한 신뢰

비교적 최근에 출간된 마이클 샌델 교수의 저서 『공정하다는 착각』에는 이런 내용이 나온다.

스스로의 목적에 대해 "나는 역사의 옳은 편에 서 있다"며 옹호하려는 사람은 자신이 역사의 긴 맥락을 보고 있다고 답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런 답변은 추가적인 가정을 필요로 한다. 충분한 시간이 있다면, 설령 속도가 아주 느릴지언정 역사는 정의를 향해 움직인다는 것이다. 이 가정은 역사의 옳은 편을 운운하는 가운데 섭리론을 부여한다. 이는 역사가 신의 손에 따라서 또는 세속적인 도덕 진보와 발전을 향해서 움직여간다는 믿음에 기반한다. 『공정하다는 착각 94p』, 마이클 샌델, 와이즈베리 

역사의 옳은 편, 그러니까 도덕적인 면에서 봤을 때 정도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이론과 현상들은 반드시 정의를 중심으로 움직인다는 것이다. 그는 버락 오바마 전 미국대통령의 예시를 들며 마틴 루터킹의 글을 인용하고 있다.

"도덕 세계의 궤적은 길다. 그러나 반드시 정의를 향해 휘어진다." 『공정하다는 착각 94p』, 마이클 샌델, 와이즈베리 

추장은 표범이 마을에 큰 위험을 안겨주는 존재가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마틴 루터 킹의 표현에 의하자면, 도덕세계의 궤적, 그러니까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시기가 언제인지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기준점을 찾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반드시 누구나 수긍할 수 있을 만한 정의를 향해 도덕적 기준은 형성된다는 것이다. 추장이 가진 도덕 세계의 궤적에 의하면 표범은 반드시 마을을 위험에 처하게 한다. 다만 아이들은 인생의 경험이 짧고 눈에 보이는 온순한 표범의 모습만이 진짜처럼 보이기 때문에 앞을 볼만한 능력이 없었으므로, 정의를 향해 휘어지건 말건 상관 없이 자신들의 보기에 좋은 대로 가는 성향이 있었다. 누구의 말을 따라야 하는지는 이미 나와 있었다.

확약 이론에 따르면, 추장에게는 두 가지 선택권이 있다.

1. 추장이 먼저 확약을 해야 한다는 것
2. 그 확약이 믿을만해야 한다는 것 두가지다.

믿을만해야 하는 확약이라는 점에서, 1번의 예시는 다음처럼 제시할 수 있다.

1. 새끼표범이 자라서 성인표범이 되었을 때, 그 표범에 의해  친구와 가족들이 모두 죽임을 당했다.
2. 새끼표범이 자라면, 새끼표범일 때의 순하고 앙증맞은 모습은 사라지고, 매서운 표범만 남게 되어 있다.
3. 어린아이들이 사탕과 과자를 좋아하지만 어른들은 사탕과 과자를 먹지 않는다. 표범도 마찬가지다. 지금은 우유를 줘도 잘 먹지만, 성인표범이 되고 나면 우유보다는 육식의 맛을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는 충분히 믿을 만 한 확약이다.

글/사진=전준우 작가
글/사진=전준우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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