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엔 신년 특별기획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 시리즈 네 번째 김강윤 소방관의 영화에 관한 이야기

신년을 맞이하여 스타트업엔에서는 특별기획으로, 사회 각계 각층의 사람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연재하고자 한다. 그 네 번째 이야기는 불철주야 국민의 안전을 위해 헌신하는 부산 기장소방서 구조대 소속 김강윤 소방관의 영화에 관한 이야기인 '할리우드 키드'이다.

영화 ‘기생충’열풍이 장난이 아니다. 영화를 잘 모르는 사람이라도 아카데미라는 영화제는 한 번쯤은 들어 봤을 텐데 세계 영화시장을 주름 잡고 있는 그곳에서 그것도 할리우드의 유명 배우, 감독, 스텝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영화제의 최고 상이라 할 수 작품상부터 감독상, 각본상, 국제 장편영화상까지 4개 부문에 수상을 하며 그야말로 영화의 본고장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를 경악 시켰다.

부산 영화의 전당(사진제공=김강윤 소방관)

한국 영화가 설마 오스카 트로피를 거머쥘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상상만 으로만 해왔었는데 봉준호라는 천재 감독이 그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 버렸다. 놀랍고도 자랑스럽다. 그리고 한 사람의 팬으로서 너무 기쁘다.

밝히기 부끄럽지만 나도 영화를 만든 적이 있다. 지방의 작은 소방서 구조대에서 근무하는 일개 구조 대원이 무슨 영화 제작을 했겠나 싶겠지만... 정말 부끄럽지만 사실이다. 오해하지는 마시라. 나는 119 구조 대원이라는 직업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으며 겸업을 금지하는 공무원의 복무규정에 충실한다.

철저히 취미의 관점에서 영화를 만들어 보았다는 것을 밝힌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 일련의 과정은 실제 영화 제작 절차와 다를 바 없었으니 분명 내 손으로 영화를 만들었다 할 수 있겠다.

3년 전 나는 부산소방본부 특수구조단 소속의 낙동강 수상구조대에 근무하고 있었다. 부산은 영화의 도시답게 영화계에 종사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어느 날 영화 제작에 필요한 인터뷰를 하러 사무실로 찾아온 제작자분들과의 만남이 있었다.

얘기 도중 어릴 적 비디오테이프를 빌려 보며 영화감독의 꿈을 키운 적이 있었다는 우스갯소리를 전했는데(속으로는 무척 진지했다) 내 말을 들은 제작자께서 부산에 있는 영화의 전당에 일반인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영화제작교실에 한번 가보라는 말을 해주셨다. 알아보니 가까운 시일에 2개월의 교육과정으로 영화제작교실이 개설된다는 공고를 보았고 주저 없이 신청하였다.

얼마 후 교육이 시작되었다. 지도감독님과 인사하고 함께 교육을 받으러 오신 분들과도 간단한 인사를 나누었다. 영화를 전공하는 대학생부터 아마추어 시나리오 작가, 고등학교 국어 선생님, 회사원 등등 10여 명이 모여서 앞으로 두 달 동안 함께 영화를 만드는 수업을 듣게 되었다. 시나리오부터 촬영, 편집, 음향, 조명 등 영화를 만들기 위한 기초를 조금씩 배워 나갔고 그러면서 영화라는 것이 만들어지는 과정이 신기해서 참으로 부지런히 강의를 들었던 것 같다.

주말과 일요일마다 진행되는 강의에 모두들 열심히 참여했다. 자연스럽게 함께 하는 분들과의 유대감도 조금씩 쌓여갔다. 영화를 좋아한다는 하나의 공통점이 당연히 서로를 가깝게도 했지만 다양한 분야에서 일하고 공부하는 사람들이 모이다 보니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도 흥미로웠다.

시나리오 회의 (사진제공=김강윤 소방관)
시나리오 회의 (사진제공=김강윤 소방관)

그러던 중에 시나리오 수업을 받을 때였다. 지도감독님께서 참여자 모두 각자 쓴 시나리오를 제출하여 그중 2개의 시나리오를 선정한 후 실제로 단편영화로 제작을 한다고 하셨다. 시나리오를 쓰기 위한 기본적인 강의만 듣고 각자 10분 내외의 단편영화를 만들기 위해 자기만의 이야기를 만들어 제출해야 했다.
 
모두들 진지하게 써나간 시나리오를 제출했다. 다들 글 솜씨들이 상당했다. 나는 처음에는 스릴러 장르를 썼다가 최종적으로는 드라마적인 요소가 강한 이야기를 제출했다. 적은 분량의 시나리오를 써나가는데 며칠을 고민했는지 모른다. 보통 고된 작업이 아니었다.

제출된 시나리오는 참여자 모두가 돌아가며 읽어보았고 전체 투표로 최종 작품을 선정하였는데 이거 웬일이란 말인가? 내 시나리오가 선정이 되었다. 기대도 안 했고 혼자 생각으로 만 끄적거리며 쓴 글이 읽어보신 분들에게는 영화로 만들만하다고 판단된 거 같다. 놀랍고도 신기했다. 졸지에 감독으로 추대(?) 되었다.

나는 지도감독님의 지시대로 참여자들로 구성된 제작팀을 꾸리고 바로 영화제작에 들어갔다. 다 같이 시나리오 수정 회의부터 시작했다. 시나리오는 외상 후 스트레스(PTSD)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소방관의 이야기였는데 죽기 직전의 심리를 묘사하는 아주 진지한 이야기였다.

무거운 주제였지만 전달하려는 메시지가 분명하였기에 어떻게 해서든 영상으로 표현해보고 싶었다. 우리팀에는 시나리오 작가를 꿈꾸는 대학원생부터 영화과 전공 학생도 있었는데 모두들 적극적으로 시나리오 수정 작업에 참여해주어 촬영이 가능한 각본이 금방 완성되었다. 내가 만든 이야기에 모두의 아이디어가 결집된 최종 시나리오가 완성된 것이다.

촬영 준비 (사진제공=김강윤 소방관)

이제 촬영 장소를 찾으러 다녔다. 10분짜리 단편영화에 다채로운 화면을 담기란 힘들다. 그래서 장소는 한정적이었고 부산 영화의 전당 옆 건물 옥상을 촬영 장소를 선정하였다. 배우는 지도감독님이 섭외하여 주셨다.

눈빛이 선하고 목소리가 차분해서 내가 생각한 인물로 아주 적합했다. 촬영은 하루 만에 진행되어야 했다. 촬영에 필요한 카메라, 녹음 장비, 조명 등을 챙겨서 즉시 촬영을 시작했다. 나는 시나리오를 보며 배우와 함께 대사, 표정, 움직임 등을 확인하고 촬영감독과 상의해서 화면에 비치는 밝기와 전체적 구도를 점검했다.

음향 담당자는 배우의 목소리를 담기 위해 붐대(녹음을 위한 털북숭이 마이크)의 위치를 조절했다. 나의‘레디 액션’소리에 촬영이 시작되고 10명이 채 안 되는 우리 팀은 장면 하나하나를 담기 위해 재촬영을 거듭해가며 열정적으로 영화를 만들어 갔다. 비록 화면에 비치는 배우는 1명이고 전화로 등장하는 배우까지 합쳐봐야 3명뿐인 그야말로 초 단편영화였지만 촬영 현장의 열기만큼은 장편영화 못 지 않았다.

촬영현장 사진 (사진제공=김강윤 소방관)

거기에 취미로 드론을 조작할 줄 하는 소방서 후배까지 불러서 나름 항공촬영(?)까지 해가며 영상에 공을 들였다. 짜장면으로 끼니를 때우고 건물 옥상의 칼바람을 맞아가며 신 하나하나를 소중하게 찍어 나갔다. 그렇게 촬영은 마지막 장면에 접어들었다. 슬픈 감정을 표현하는 배우의 눈물 연기를 스텝들은 숨죽이며 지켜보았고 촬영 현장의 긴장감은 최고조로 치달았다. 구도를 바꿔가며 찍은 몇 번의 마지막 신은 나의‘컷’소리에 끝이 났고 스텝들 모두 웃으며 환호했다.

힘든 촬영이 끝났지만 아직 편집 작업이 남아있었다. 실제 영화편집에 사용되는 전문 장비와 프로그램으로 영상들을 자르고 붙였는데 감독으로서 어느 한 장면 버릴 것이 없었다.

엔딩 크레디트의 함께한 스텝들 (사진제공=김강윤 소방관)

하지만 스텝들의 조언을 듣고 눈물을 삼키며 잘라낼 수밖에 없었다. 음향 담당이 준비한 배경음악도 삽입했고 그래픽 작업으로 제목과 엔딩 크레디트도 멋지게 만들어 올렸다. 수십 번을 다시 보고 수정해서 최종 상영본이 완성되고 스텝들과 그 완성본을 보면서 믿기지 않는 듯 서로를 바라보며 감탄했다.

지도감독님을 비롯해서 참여했던 모든 분들과 함께 만든 영화를 감상했다. 시사회를 연 것이다. 먼저 다른 팀에서 만든 작품부터 보았다. 스릴러 장르인데 여자 감독님이 아주 세심하게 표현하여 만들었다. 결말의 반전도 인상적이었다.

잘 만들어진 다른 팀의 작품을 먼저 보니 상당히 긴장되었다. 다음으로 우리 영화가 상영됐고 시작부터 끝까지 눈을 떼지 못하며 영화를 지켜보았다. 내가 말하고 싶은 내용을 배우는 완벽하게 표현했다. 대사를 절제하고 배우의 표정연기와 영상에 많이 기대었는데 그것이 돋보였다.

상영이 끝났고 지도 감독님뿐만 아니라 다른 팀까지 우리의 영화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하루 종일 추운 옥상에서 촬영을 하고 늦은 밤까지 편집하던 기억에 뭉클한 감정이 올라왔다.

촬영현장 사진 (사진제공=김강윤 소방관)
촬영현장 사진 (사진제공=김강윤 소방관)

무엇보다 내 시나리오를 높게 평가해주고 감독님이라 불러주며 함께 고생해준 스텝들에게 한없이 고마웠다. 혼자서 연기하며 다양한 감정을 오롯이 표현해준 배우에게도 영상을 전달했다. 고마워했고 함께 기뻐했다.

소방관이 겪는 어려움을 영화라는 매개체로 표현할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내겐 영광이었다. 거기에 어릴 적 꿈이었던 영화 일을 직접 해 보았다는 그 환희는 말로 표현하지 못할 만큼 기뻤다. 짧디짧은 단편영화 하나를 만드는 데도 이렇듯 힘든 과정을 거친다는 것을 배우게 되었고 영화를 만드는 분들에게 존경심마저 생기게 되었다.

상상은 현실이 된다. 하늘을 날고, 바닷속을 헤엄칠 수도 있다. 부자가 될 수도 있고 거지가 될 수도 있으며 또 다른 운명으로도 살 수 있다. 영화라면 모두 가능한 일이다. 우리가 보는 스크린 속의 모습들은 상상력의 산물이기는 하지만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의 만들어낸 노력의 결과이기도 하다. 배우의 모습뿐만 아니라 영화를 만드는 이들의 그 노력도 칭찬받아 마땅하다.

어쩌면 우리는 이미 영화를 만들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각자의 인생이라는 시나리오에 매일매일 살아가며 한컷한컷 멋진 장면들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생의 끝자락에 내가 찍은 내 인생의 영화를 보며 웃음 짓고 마지막 엔딩 크레디트에는 내 인생을 함께한 이들의 이름이 올라갈 수도 있겠다.

나는 또 기회가 된다면 혼자라도 내 휴대폰 카메라로 또 다른 영화를 찍고 싶다. 머릿속에 담긴 이야기를 꺼내고 싶다. 어쩌면 훗날 소방관 영화감독이라는 멋들어진 타이틀을 얻을 지도 모를 일 아니겠는가. 내 할리우드 키드의 꿈은 아직 진행 중이다.

글/사진=김강윤 소방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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