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엔 특별기획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 시리즈. 전준우 작가의 공부에 관한 이야기

스타트업엔에서는 특별 기획으로, 사회 각계각층의 사람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연재하고자 한다. 배우론, 교육의 힘, 탁월한 책쓰기, 초격차 독서법, 하루 10분 부모연습 (가제 : 부모가 되고 나니 비로소 보이는 것들)을 집필한 '전준우' 작가의 세 번째, 공부에 대한 이야기인 '전교 1등이던 그 친구는 왜 자퇴를 선택했을까'이다.

전교 1등이던 그는 왜 자퇴를 선택했을까?

고등학교 3학년 때 일이다. 중학교 동창이면서 지금은 의사가 되어 있는 친구가 같은 독서실 바로 뒷자리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다. 공부 좀 한다는 친구들만 모여 있는 고등학교 이과에서 1등을 도맡아 하면서도 수학은 그다지 성적이 나오지 않는 친구였다.

고등학교 3학년 여름방학이 시작되면서 '오늘부터 수학만 3개월 집중해서 공부하리라' 다짐하고 하루에 12시간씩 수학에 집중했음에도, 방학이 끝난 뒤 수학 점수는 80점 만점에 '고작 68점'이 나와서 굉장히 실망해하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이후 1년을 재수한 끝에 무사히 의대에 입학해서 본인의 꿈을 어느 정도 이루긴 했지만 당시 그 친구의 얼굴을 정면으로 쳐다보기가 미안할 정도로 늘 걱정과 상심한 얼굴로 지냈다.

그 친구의 옆자리에는 또 다른 친구가 앉아 있었다. 문과에서 1등을 차지하던 이 친구는 굉장한 수재였는데, 고등학교 3학년 가을 무렵 갑자기 학교를 자퇴했다.

이후에 검정고시로 대학을 갔다고 들었는데 그 뒤 소식은 잘 모른다. 지금은 다양한 방법으로 검정고시를 통해 대학을 가는 경우가 많지만, 내가 고등학생이던 당시만 해도 안동에서 검정고시로 대학을 간다는 것은 찾아보기 힘든 경우였고, 좋지 않은 시선으로 쳐다보던 때였다. 게다가 문과에서 1등을 하던 녀석이 뜬금없이 검정고시를 보겠다고 학교를 자퇴한다고 하니 적잖이 놀란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하여간 '책을 좀 많이 읽고 싶다.' 한마디를 남기고 이 친구는 자퇴했지만, 한동안 독서실에서 함께 공부하며 우리에게 다양한 방법으로 공부를 가르쳐주곤 했다.

지금도 그렇겠지만 내가 수능을 준비할 때 고3 수험생들은 문제집을 쌓아놓고 풀었다. 방송강좌를 듣는 친구도 있었고, <수학의 정석>이나 수능을 준비하기 위한 문제집을 갖다 놓고 푸는 경우도 있었다.

그 이면에는 그저 어떻게든 대학을 가야 한다는 압박감, 긴장감이 있었다. 무거운 공기, 적막감이 맴도는 독서실의 책상, 끊임없이 무엇인가 쓰고 지우는 소리만 들리는 독서실의 고요한 분위기. 우리 모두 피를 말리는 전쟁을 치르는 중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당시 이 친구에 대한 일화는 놀라웠다. 당시 수능에서 언어영역 만점이 120점이었는데 이 친구는 고3 모의고사에서 116점으로 전국 1등을 했다. 수학과 과학에서 만점을 받은 적도 여러 번 있었다.

'머리가 좋은 친구네.'하고 생각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 친구는 '진짜 공부'를 했던 것 같다. 고3 수험생이 모의고사에서 언어영역 점수를 10점 올리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인데 '여차여차 하면 지금보다 성적이 올라갈 것이다.'라는 그 친구의 조언을 듣고 다음 모의고사에서 언어영역 점수만 10점이 오른 친구도 있었다.

오래전 일이라서 가물가물한 기억이긴 한데, 언어영역에서 10점을 올리는 방법이란 대충 이렇다.

1. 핵심문장을 찾아라. 
2. 그럼 다 읽을 필요 없다.
3. 문제를 먼저 읽어라. 
4. 시간이 남으면 짧은 문제부터 다시 훑어라.

다시 한번 말하지만, 가물가물하다.
[가물가물하다] [동사] 작고 약한 불빛 따위가 사라질 듯 말 듯 자꾸 움직이다.

진짜 공부는, 이렇게 하는 것이다.

햇살이 따뜻하던 2002년의 가을 어느 날, 독서실에 그 친구가 나오지 않았다. 혼자 공부하고 있다가, 문득 그 친구는 어떻게 공부하는가 싶어 책상을 한 번 둘러봤다. 그리고, 조금은 충격을 받았다.

당시에는 그런 느낌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잘 몰랐지만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 친구는 나와 다른 생각을 하면서 사는 존재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무엇보다 오래전 기억임에도 그 장면을 비교적 뚜렷하게 기억할 수 있는 것은, 그 친구의 명철한 두뇌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가에 대한 일종의 궁금증을 해소해 주는 장면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친구의 책상은 내가 봐온 수험생의 책상 풍경과는 좀 달랐다. 책상의 왼쪽 상단에는 500페이지에 육박하는 월간 경제지와 경제신문이 있었고, 두꺼운 한자 문제집과 제목이 기억나지 않는 수학 책이 한 권 있었다.

머리맡에는 작은 녹차 티백 한 통과 신문이 신문사별로 몇 부가 쌓여있었는데, 신문 사설을 스크랩한 스크랩북도 함께 놓여 있었다. 그리고 중학교와 고등학교 국어책이 있었고,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오래된 문학 서적이 한 권 있었다.

하루에 40자의 한자를 외우고, 그 다음날에는 전날 외운 40자에 40자를 더한 80자, 그 다음날에는 120자, 그 다음날에는 160자의 한자를 외운다던 그 친구의 말에 '수능에 나오지도 않는 한문을 공부하느라 귀중한 몇 시간을 써버린다'라고 생각은 하면서도 알 수 없는 존경스러운 마음이 함께 들었는데, 돌이켜보면 탁월한 두뇌의 비결이었던 셈이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앞에서 언급한 의사가 된 친구가 수학의 정석 문제를 풀었는데 한 문제가 풀리지 않아서 끙끙거리다가 답지를 보면서 풀이 방식을 공부하고 있었다. 그때 옆자리에서 공부하던 (앞에서 언급한 자퇴하고 독서실에서 공부한다던) 그 친구가 다가와서 이렇게 이야기했다.

"답지를 없애!"

순간, 뭔가 머릿속을 때리는 게 있었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 아니다 없애라, 답지가 없으면 확인을 어떻게 하느냐 옥신각신했던 기억은 나는데 정확히 무슨 말을 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17년 전에 그 친구가 툭 던진 그 한마디 말이 오랜 시간 동안 내 기억 속에 남아있을 수 있었던 이유는, 그 한마디 말이 이 친구가 그토록 탁월할 수 있었던 점에 대한 분명한 해답이 될 수 있었다는 점 때문이었다.

앞에서 언급했지만, 수학은 국어와 달라서 문맥을 유추해서 의미를 해석하고 답을 구하는 식의 공부가 아니다. 1+1=2처럼 분명하고 명확한 답이 나와야 한다. 다른 의미로, 아무리 완벽한 과정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계산식을 써 내려간다고 할지라도 결과적으로 하나의 숫자라도 틀리면 모든 과정이 쓸모 없어지는 학문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과정이 올라갈수록 중요해지는 학문인 반면에 복잡한 계산 과정 자체가 골머리를 앓게 할 뿐만 아니라, 계산 오류로 하나라도 틀린 과정이 개입되면 모든 계산을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하는 과목이기에 가장 힘든 과목이라고 느끼지 않았나 싶다.

다른 의미에서, 아무리 완벽한 과정을 통해 계산식을 썼다 할지라도, 결과적으로 하나의 숫자라도 틀리면 모든 과정이 쓸모 없어지는 학문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래서 수학은 포기하기 쉽다. 수학은 성적을 잘 받을 목적으로 접근하면 포기할 수밖에 없는 학문이다. 재미를 붙이지 않는 이상 힘들고 어려운 과정이 많고, 다양한 방식의 사고를 요구하는 학문이기 때문이다. 전 세계적으로 그토록 많은 수포자들이 존재하는 이유는, 모두 이 골치 아픈 사고의 과정을 뛰어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수학 문제집에서 답지를 없애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수학에서 답지를 없애면 굉장히 다양한 구도로 문제를 생각해볼 수 있다. 심지어 그 과정이 재미있다 못해 신비롭기까지 하다. 나는 종종 내 수준에 맞는 수학 문제집(그래봤자 초등 고학년에서 중학교 수준의 문제집이다. 학창시절 내 수학 성적은 전교에서 거의 꼴찌였다.)을 한 권 펴놓고 풀리지 않는 어려운 문제를 지속적으로 풀이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손으로 도형과 계산식을 써가며 수학을 공부하는 그 자체가 굉장히 재미있게 여겨질 뿐만 아니라 흥미롭기까지 하다. 이는 수학적 사고력과 해석 능력이 바탕이 되어야 탐구가 가능한 물리학과 같은 분야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세계적인 물리학자이자 아인슈타인 이후의 천재 과학자로 명성을 떨친 리처드 파인만도 길을 가다가 멈춰 서서 답이 풀리지 않는 문제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다가 경찰을 만나게 된 경험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던가.

답지가 없는, 열정적인 삶의 형태

그렇다고는 해도 나 역시 학창시절 수포자였다. 수학은 꿀밤 맞는 시간에 불과했다. 그래서 수학에 흥미를 잃어버렸었다. 나처럼 수학에 흥미를 잃은 경우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단순히 어려워서, 힘든 과목이어서, 그냥 싫어서, 나와 맞지 않아서. 그러나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단언컨대 수학은 매우 아름답고 재미있는 학문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수학은 참 매력 있는 학문 분야라는 마음이 든다.

좋은 대학에 입학하기 위해 억지로 해야 하는 골치 아픈 공부로 접근한다면 수학은 확실히 힘들고 고통스러운 과정이 맞다. 다만 생각하는 즐거움을 위한 공부라면 수학만큼 짜릿한 즐거움을 맛보게 해주는 학문은 없지 않나 싶다. 

수학에 흥미를 가지고 즐거움을 가진다면 그만큼 깊이 있는 사고를 할 수 있는 두뇌가 만들어진다. 성인이 되고 난 이후에도 다양한 방면에서 생각할 수 있는 기회의 장이 열리면서 개인적인 능력 함양 이외에도 사회적인 성공을 위한 발판 역시 될 수 있다.

10대 때 나처럼 수학을 생각하던 사람도 분명 있지 않을까? 그러나 스스로 인생의 방향을 정해야 하는 시기에 늦게나마 수학에 흥미를 가진다면 깊은 사고력을 가진 두뇌로 개발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학창시절 수학이 힘들고 지겨운 공부라고 느꼈는데, 0과 1사이에 무한에 가까운 수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난 뒤에 수학의 신비로움에 흥미를 느껴서 수학교사가 되었다는 어느 분의 일화를 들은 적이 있다. 그분의 이야기를 통해 수학이 그토록 힘들고 두려운 학문임에도 불구하고 진리에 가까운, 정말이지 너무 아름다운 학문이라는 점도 함께 공감할 수 있었다.

수학에만 답지를 없애야 되는 게 아니다. 인생에도 답지를 없애야 할 때가 있지 않을까.  답지는 없애버리고, 정해진 답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모험하며 진리를 찾아가는 수학의 묘미. 삶에도 이런 수학의 묘미가 숨어있지 않을까? 김범수 카카오톡 의장은 2007년 NHN(현재 네이버의 전신)을 떠나면서 이렇게 이야기했다.

“배는 항구에 정박해 있을 때 가장 안전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배의 존재 이유는 아닙니다.”

그렇다고 '이제 나이도 어느 정도 들었고, 당시에 배웠던 수학보다 훨씬 더 고차원적인 문제들을 접해봤으니 이 정도는...'하는 생각으로 덥석 어려운 수준의 수학 문제를 풀면 좌절감을 겪을지도 모르겠다. 수학 그 자체는 기초가 중요한 학문이기 때문에 내 수준에 맞는 수학 책부터 공부하는 게 좋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수년 전, 수학에 막 재미를 붙여서 일독 한 번 해보겠다고 티모시 가워스의 'mathematics'를 사서 읽기 시작했다가 초반부에 나오는 극한의 문제가 이해가 안 돼서 포기하고 말았던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1,000페이지에 달하는 '짜릿한 재미를 가져다주는 수학 책'은 먼지만 뽀얗게 앉은 채 망부석처럼 책꽂이에 꽂혀있으면서 언제 읽힐지도 모른 채 빈자리만 채우고 있다. 안타까울 따름이다.

정보화 시대를 넘어 스마트 시대가 되었고, 스마트 시대를 넘어 초 연결 시대를 살고 있다. 그만큼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그에 반해 다양한 방향으로 묵상하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찾기는 어렵다. 빠른 정보를 습득할 수 있다는 장점과는 달리 협소한 시각과 편협된 사고방식으로 사고하는 습관이 만들어지는 시대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다양한 사고력을 배양할 수 있는 길은 많지만, 수학만큼 깊은 사고력을 요구하는 길은 흔치 않다. '더 늦은 나이에 공부'라는 푸념이 나오기 전에 사고력을 높여주는 수학의 재미에 빠져들어본다면 엄청나게 많은 기회들을 만나게 될지 모를 일이다. 그리고 그만큼 깊이 있게 인생의 해답을 찾는 데에도 재미를 느껴본다면, 수학의 재미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탁월한 삶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 믿는다.

글/사진 전준우 작가
글/사진 전준우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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