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엔 특별기획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 시리즈 여덟 번째, 김강윤 소방관의 구조에 관한 이야기

스타트업엔에서는 특별 기획으로, 사회 각계각층의 사람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연재하고자 한다. 그 여덟 번째 이야기는 불철주야 국민의 안전을 위해 헌신하는 부산 기장 소방서 구조대 소속 김강윤 소방관의 구조 활동 중 엇갈린 부부의 운명에 대한 이야기인 '부부의 연(緣)'이다.

구조 활동 중인 필자 (사진=김강윤 소방관)

나는 결혼한 지 11년이 되었다. 소방관으로 임용되고 다음 해에 사귀던 여자친구와 결혼하여서 한 여자의 남편이 되었다. 평생 혼자 살 것만 같았던 인생이라 생각했었는데 지금의 아내가 나를 구제해 준 것이다. 결혼식 당일은 어떻게 지나갔는지 기억도 잘 안 나지만 검은 머리 파뿌리 어쩌고 하는 주례사는 어렴풋이 떠오른다.

평생을 함께하자던 부부의 약속은 때론 지켜지지 않을 수도 있다. 이혼은 흔한 일이 되어 버렸는데 결혼한 지 1년도 채 안 되어 이혼하는 때도 많다. 황혼 이혼이라는 말도 있다. 인생의 막바지에 서로의 연(緣)을 정리해버리는 경우이다. 각자의 선택이 그러할지니 어찌 말리겠는가? 칼로 물 베기라는 부부의 인연은 4주간의 조정 기간을 거치면 깔끔하게 마무리되는 게 현실이다.

몇 주 전 한가로운 오후에 다급한 구조출동 벨 소리를 듣고 팀원 모두 뛰쳐나갔다. 무전으로 들려오는 출동 내용은 파도가 치는 바다에 해녀가 가까스로 떠 있는 상황이라 신속한 구조가 필요하다는 신고였다. 나와 팀 후배는 달리는 수난 구조 차 안에서 신속하게 슈트와 장비를 착용했다. 현장은 관내에 있는 고리원자력발전소 인근 해상이었다.

실제 출동 상황 뉴스방송 화면(사진=김강윤 소방관)

가장 가까운 육상 지점에 차량을 대기시키고 바다로 뛰어들었다. 멀리 보이는 자그마한 부표에 검은색 해녀복을 입은 사람이 매달려 있었다. 빠르게 수영하여 접근했다. 가까이 가보니 다행히 먼저 도착한 해경 직원 한 명이 안전을 확보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고령으로 보이는 해녀는 탈진한 모습이 역력했고 물질을 하기 위해 착용하고 있던 무거운 납 벨트가 그녀의 몸을 감싸고 있어 해녀의 가냘픈 몸이 물 아래로 자꾸 가라앉으려고 했다. 납 벨트부터 신속히 제거하고 요 구조자를 육상으로 이동시켰다.

육상에서 대기하던 구급대에 인계하려고 들것으로 옮겨 싣고 있는데 가까이 다가오는 어느 할아버지를 보았다. 허리가 심하게 굽어 걷기도 힘들어 보이는 그 할아버지는 걱정스러운 눈으로 해녀 할머니를 바라보았다. 불안한 모습으로 할머니를 싣고 가는 들것의 뒤를 따랐다. 할머니는 탈진과 저체온증으로 의식은 희미했지만, 생체징후는 안정적이었다.

우리는 뒤따라 온 할아버지를 안심시켰다. 미뤄 짐작하건대 생계를 위해 물질을 하는 할머니를 할아버지는 뭍에서 바라보고 있다가 차가운 바다에서 갑작스러운 쇼크로 할머니가 위험에 처하자 직접 신고를 한 듯했다. 출동을 마치고 돌아오는 중에도 그 할아버지의 안타까운 눈빛이 자꾸 떠올랐다. 출동 기록을 확인해보니 할머니의 연세는 여든 살이었다. 고령의 몸으로 차가운 바다에서 힘든 물질에 몸에 이상이 생긴 것이다.

그로부터 약 2주 후였다. 이번에는 교통사고였다. 우리 소방서 관내는 부산 울산 고속도로를 인접하는데 그곳은 교통사고가 빈번하다. 무전으로 들려오는 현장 상황은 자못 심각했다. 트럭이 앞서가는 트레일러를 추돌하여 사람이 차 바깥으로 튕겨 나왔다고 했다.

처참한 교통사고 현장(사진=김강윤 소방관)

출동하는 동안 팀원들의 눈빛은 싸늘했다. 도착하여 보니 현장은 신고내용보다 처참했다. 여성으로 보이는 요구조자는 도로 한복판에 쓰러져 신음하고 있었다. 신고내용대로 차량에서 튕겨 나간 듯 보였다. 도로 주변이 피로 물들어 있었고 다가가서 보니 오른쪽 정강이가 개방성 골절이었다. 출혈이 상당했다. 먼저 도착한 구급대원들에게 요구조자 처치를 부탁하고 트럭으로 가보니 운전석에 한 남성이 찌그러진 차 안에 힘없이 끼어있었다.

의식은 있었지만, 얼굴은 창백했다. 출혈과 외상은 보이지 않았다. 팀장님과 팀원들 모두 달라붙어 장비를 이용하여 압착된 차량의 앞부분을 벌렸다. 끼인 몸이 빠졌고 조심스럽게 들것으로 옮기는 작업을 진행했다.

사고로 처함하게 부서진 트럭(사진=김강윤 소방관)

그때였다. 요구조자의 눈이 스르르 감겼다. 들어 올리려 잡은 요 구조자의 어깨와 삼두근 쪽에 힘이 빠지는 것을 느꼈다. 뭔가 불안한 느낌이 스쳤다. 빠르게 들것으로 옮겨 싣고 구급대에 인계했다. 현장을 떠나 복귀하는 동안 팀원들은 말이 없었다. 불안했다. 다음 날 뉴스에 그 남자는 사망하였다는 소식이 나왔다. 불안한 느낌은 들어맞았다. 함께 뉴스를 본 팀원들 모두 잠시 말을 잊었다.

한 부부의 인연은 계속되었고 한 부부의 인연은 끊어졌다. 두 부부 모두 언 듯 보기에도 인생의 황혼기를 훨씬 지난듯한 노부부였다. 인연의 시작은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함께 살기를 약속하면서 평생 해로하자고 다짐했을 것이다. 또 많은 사람의 축복도 받았을 것이다.

한 부부는 더 살아갈 것이고 한 부부는 그렇지 못할 것이다. 아내가 살아나는 현장을 본 남편, 남편은 죽고 자신은 살아난 아내…. 사고의 비극은 극명하게 엇갈리고 면도 칼처럼 날카롭다. 비켜 가면 다행이지만 닿는 순간 치명적이다. 찰나의 순간 삶과 죽음이 뒤엉켰다.

수많은 사고 현장을 본다. 그곳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연들이 있다. 분명한 것은 살고 죽는 그곳에 있는 사람들 모두 누군가의 가족이라는 것이다. 평생을 함께하자고 약속한 각자의 아름다운 인연이다.

그 현장에서 우리는 인연이 계속 이어지길 바라며 구조 작업을 한다. 슬프게도 다 뜻대로 되지는 않는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며 스스로 위로하지만, 인연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마음을 모르지는 않기에 마음은 무겁다.

신혼 초 야간근무를 마치고 아침에 퇴근하면 아내는 아침 뉴스에 나오는 각종 사고 소식에 혹시나 119 구조 대원 누군가가 다쳤다는 소식이 나오지 않을까 조마조마했다고 한다. 지금은 그러지 않는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그때는 그런 아내가 괜한 걱정 한다고 생각했다.

이 일을 하다 보니 부부가 함께 천수를 누리고 사는 것이 행복이라는 것을 느낀다. 반려자와 아침을 함께 맞이하며 평범한 일상을 누리는 것이 사랑이라는 것도 알게 된다. 적어도 함께하는 시간이 다 되어 감을 알고 마지막을 준비하며 생을 끝마치는 것이 큰 축복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불현듯 달려드는 사고를 피하기는 어렵다. 그렇더라도 한마디 떠난다는 말조차 못 나누고 헤어지는 것은 너무나 슬픈 현실이다. 크든 작든 구조 대원이 겪어 보는 사고에는 수많은 이별이 동반된다. 그 사고를 지켜보는 처지에서는 그저 불의의 사고로 생이별을 겪는 사람들이 없기만을 기도할 뿐이다.

그날 도로 위 떨어져 있던, 부부가 일을 마치고 함께 마시려고 했던 것으로 보이는 커피믹스 봉지가 아직도 눈에 아른거린다.

글/사진 김강윤 소방관
글/사진 김강윤 소방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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