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밥풀때기 vs 칼집


코로나19로 사회적 거리 두기 때문에 갈 수 있는 곳이 제한적이다. 빠르고, 넓게. 세계를 하루 거리에 두던 바쁜 걸음들이 동네를, 집안을 벗어나지 못하고 좁은 시야에 머물러 있다. 동전의 양면이 그렇듯 모든 일은 나쁜 것만도, 좋은 것만도 아니다.

나는 '틀리다'라는 말보다 '다르다'라고 사용하려 노력한다.  코로나 때문에 좁은 곳에 갇힌 우리들은, 코로나 덕에 가장 가까운 곳에 그동안 무심코 지나치던 보물들을 만나게 된다.

하루 한 번씩 탄천과 운중천이 이어지는 천변을 돌고 들어오는 게 그나마 숨통 트이는 일상의 산책 코스가 되었다. 두 달 가까이 같은 코스를 돌다 보니 깨닫지 못했던 계절의 흐름이 눈앞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벚나무 밑으로 조팝나무가 흐드러지게 피더니 박태기나무에 자주색 밥풀들이 달렸다. 배고픈 시기, 가을에 거둔 쌀은 떨어져가고 보리를 수확하기에는 아직 이른 이 맘 때 먹지도 못하는 꽃들의 풍성한 '저들만의 잔치'가 야속했는지 우리 조상들은 꽃마다 음식 작명으로 먹방을 찍었다.

운중천변에 흐드러지게 핀 조팝나무
운중천변에 흐드러지게 핀 조팝나무

하얀 꽃무리에 박힌 노란 꽃 중심이 좁쌀 박힌 쌀밥으로 보인다고 조팝나무, 나무마다 하얀 꽃무리를 인 모양이 그득한 쌀밥을 연상한다고 이팝나무도 이제 밥그릇을 채워가고 있다. (이밥=쌀밥)

지난 초여름의 이팝나무
지난 초여름의 이팝나무

나뭇가지에 밥풀들이 조르륵 달렸다고 밥풀때기라는 뜻의 박태기나무라는 이름을 갖게 된 이 나무를 북한에서는 구슬꽃나무라고 부른다.

밥풀떼기 다닥다닥 박태기 나무
밥풀때기 다닥다닥 박태기 나무

남쪽은 원초적이고, 북쪽은 낭만적이라고 할까?

초봄, 볕 잘드는 곳에 무리 짓는 이 풀꽃을 우린 개불알풀이라는 다소 민망한 이름으로, 북한은 봄까치 풀이라는 꽤나 낭만적인 이름으로 부르니 말이다.

남쪽은 개불알풀, 북쪽은 봄까치
남쪽은 개불알풀, 북쪽은 봄까치

우리가 밥풀때기라고 부르는 박태기의 학명은 케르키스 차이넨스(Cercis chinensis Bunge)이다. 속명 케르키스는 그리스어로 열매의 `꼬투리가 칼집 같다’는 뜻이고, 종명 차이넨시스는 원산지가 중국이라는 뜻이다. 러시아의 식물학자 분지(Bunge, 1803~1890)가 붙인 이름이다.

우리는 꽃망울 보고 밥풀때기, 서양은 꼬투리 보고 칼집
우리는 꽃망울 보고 밥풀때기, 서양은 꼬투리 보고 칼집

조금은 다른 얘기지만 서양의 박태기나무 별명은 유다 나무(Judas tree)다. 성경에는 "유다는 그 은돈을 성전에 내던지고 물러가서, 스스로 목을 매달아 죽었다."(마태복음서 27:5) 고만 쓰여있지만 서양에서는 유다가 서양 박태기나무에 목을 매달았다고 전한다. 원래 흰 꽃이었지만 유다의 피로 붉은 꽃이 되었다는 전승과 함께.

이스라엘 우표에 등장한 서양 박태기나무(유다나무)
이스라엘 우표에 등장한 서양 박태기나무(유다나무)

이에는 이, 칼에는 칼로 갚던 율법주의에 물들었던 유대 땅에서 예수는 사랑으로 모든 걸 바꿨다. 유다의 배신도, 칼 들고 그를 죽이려 온 사람들도, 베드로의 부인도, 결국은 사랑으로 덮어버린 예수. 지난가을의 칼자루가 예쁜 자줏빛 밥풀때기에 덮여 보이지 않듯 모든 다름도 틀림도 덮이길.

우리는 저마다 보고 싶은 것만 본다. 우리 조상들은 먹거리에 대한 소망을 담았지만, 서양 사람들은 열매 모양에서 칼을 봤다. 내 친구가 "전투적인 놈들 같으니라고"라는 우스개를 던졌다.

활짝핀 박태기 꽃에서 사람들은 무슨 이름을 붙였으려나?
활짝핀 박태기 꽃에서 사람들은 무슨 이름을 붙였으려나?

지킬게 많은 사람은 무기가 보이고, 배부르고 등따순 게 최고인 민초들에게는 먹을게 최고다.
집콕 시대, 우리나라는 먹거리 위주의 쇼핑, 미국은 총 쇼핑. 역시나 불안도 무기로 지키는 서양인들. 우리는 맛난 음식 배불리 먹으면 모든 게 용서가 된다. 코로나의 불안도 그득한 위 덕분에 설 곳을 잊는다. 얼른 코로나19 사태가 정상화되어 '찐' 먹방 찍으러 갈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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