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엔 특별기획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 시리즈. 전준우 작가의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

스타트업엔에서는 특별 기획으로, 사회 각계각층의 사람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연재하고자 한다. 배우론, 교육의 힘, 탁월한 책쓰기, 초격차 독서법, 하루 10분 부모연습 (가제 : 부모가 되고 나니 비로소 보이는 것들)을 집필한 '전준우' 작가의 네 번째,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인 '갑자기, 눈물이 흘렀다'이다.

갑자기, 눈물이 흘렀다.

몇 주 전에 있었던 일이다. 잠에서 깬 아들이 배고프다고 앙앙거리던 때가 있었다. 가정적인 남편 운운하며 분유를 타서 먹이고 있는데, 갑자기 이유 없이 눈물이 터졌다.

그렇게 꽤 오랫동안 아들을 안고 울었던 것 같다. 아내는 낄낄거리며 웃었지만, 그 마음을 모르는 바 아니었을 테다.

물론 갑자기 터진 눈물은 아니었다. 나도 아버지, 엄마한테 이런 아들이었을 텐데 왜 그렇게 속만 썩였을까, 왜 철없이 대들고 함부로 살았을까, 하는 늦은 후회가 마음을 두드렸다. 25살에 아프리카로 다녀온 이후, 내가 아닌 남들을 위한 인생을 살기로 결심한 뒤부터 내 인생은 늘 가치 있는 일에 마음을 쏟는 것이 우선이었다. 가치 있는 일의 형태는 모두 달랐다.

때로는 봉사였고, 때로는 신앙이었으며, 때로는 청소년들을 위한 활동이었다. 가족은 두 번째였고, 회사와 일은 늘 세 번째였다. 후회 없는 12년을 보냈지만, 부모님 앞에서는 결코 자랑스럽지만은 않은 아들이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아들을 출산하면서, 그런 생각에 변화가 찾아왔다. 어느 연예인이 “아들의 대변에 밥을 비벼 먹고 싶었다.”라는 표현을 한 적 있었다. 아무리 자식이라고 해도 저건 좀 아니다, 싶었는데 지금은 아들을 눈에 넣더라도 그 고통을 감내할 수 있을 마음이 아들을 향해 생긴다. 부모는 결코 아들의 부족함을 문제 삼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론이 아닌 마음으로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 내게 주어졌다.

아버지와 나

언젠가 가까운 지인이 몸이 좋지 않아서 입원해 있는 병원에 면회를 간 적이 있었다. 함께 식사를 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데, 어떤 분이 인사를 하러 왔다. 지인과 친하게 지내는 동생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그는 김밥과 수육 등 몇몇 음식을 살뜰히 챙겨들고 왔다.

“아버지가 면회를 오셨어요. 친하게 지내는 형님이 여기 계신다고 말씀드렸는데, 음식을 좀 갖다 드리라고 해서 가지고 왔습니다.”

다소 눅눅해진 김밥과 수육을 갖다 주고 난 뒤, “아버지가 기다리고 계셔서 먼저 일어날게요. 맛있게 드세요.” 하고는 자리로 돌아갔다. 그가 돌아간 곳에는 중년의 한 남자가 앉아 있었다.

그을린 얼굴, 누렇게 색이 바랜 봄 잠바를 입고 계신 그분의 모습은 화려하지도, 대단한 분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대기업 부장 정도의 직함이 있거나 큰 사업체를 운영하는 분은 아닌 것 같고 농사를 짓거나 작은 일을 하시는 분이겠거니 생각할 따름이었다.

깊게 패인 주름, 어색한 표정, 그러나 아들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눈에는 아들에 대한 사랑과 연민이 가득했다. 가족의 달인 5월, 갑작스럽게 더워지는 날씨에 혹 음식이 상하 지나 않을까 연신 부채로 김밥과 수육을 향해 부채질하시는 그분의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젊은 친구가 어디가 안 좋아서 이런 곳에 입원했느냐 물어봤다.

“아버지를 칼로 찔렀어.”

지인이 입원한 병원은 일반인이 출입할 수 있는 병원은 아니었다. 병원에서 알게 된 그 동생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사회에서 아마추어 복싱 선수였다. 숱한 경기를 진행하면서 뇌에 충격이 있었고, 그로 인한 조현병이 찾아온 것 같다고 이야기해 주었다.

패배로 인한 절망감, 두려움, 그로 인한 엄청난 스트레스와 알 수 없는 환청으로 자신도 모르게 흉기를 손에 들었고, 아버지를 향해 흉기를 휘둘렀다.

내가 다시 뒤를 돌아봤을 때, 아버지는 아들이 먹을 김밥과 수육을 향해 여전히 부채질을 하고 계셨다. 나는 고개를 푹 숙인 채 그가 가져온 김밥과 수육을 입에 쑤셔 넣었다. 눈물이 방울방울 맺히다가 눅눅해진 김밥을 집어먹는 나의 손등에 툭, 하고 떨어졌다.

아버지의 어깨

김훈 작가의 산문집 『라면을 끓이며』에는 젊은 시절 아버지의 기억에 대한 김훈 작가의 이야기가 나온다. 늘 술에 취해서 세상을 향해 일갈하는 아버지를 향한 원망과 실망, 그러나 우연히 발견한 아버지의 일기장에서 나라를 잃은 젊은 시절의 아버지가 얼마나 고통 속에서 몸부림치셨는가에 대해 생각하며 아버지에 대한 강한 연민을 느끼고 있었다.

그의 글은 “나는 가엾은 내 아들과 같은 젊은 아버지를 안아주고 싶었다.”라는 말로 끝을 맺는다. 나 역시 젊은 시절 나의 아버지를 안아주고 싶은 마음을 느끼곤 했다. 아버지는 축구선수 생활을 하며 젊은 시절을 보내셨다. 누나도 아버지의 영향으로 중학생까지 운동을 했는데, 학교 대표 육상 선수로 전국 체전에 나갈 정도로 실력이 뛰어났다. 아버지의 능력을 고스란히 이어받은 경우였다.

아버지는 공직에서 은퇴하기 전까지만 해도 잠영만으로 100미터를 넘게 이동하실 수 있을 정도로 운동신경이 뛰어나신 분이었다. 평생 약이라고는 한 번도 드시지 않을 정도로 건강하셨는데, 내가 결혼하던 해 심장에 이상이 오면서 건강이 많이 악화되셨다. 퇴직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아버지는 드시던 약을 우리에게 보여주셨다.

“이 약을 안 먹으면 나는 죽는다.” 물론 농담이었다. 하지만 아버지의 마음이 담긴 말씀이라 생각하니 그마저도 농담처럼 들리지 않았다.

퇴직하시고 나서 많이 야윈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많이 아팠다. 환갑에 접어든 사람들이 퇴직이 가까워오면 수많은 생각에 빠진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다. 장성한 아이들, 함께 늙어가는 배우자, 하나 둘 사라져가는 친구들과 가족들. 잘못된 생각에 빠질 수 있는 여지가 충분히 있었다.

아버지는 평생을 시청 공무원으로 근무하셨다. 은퇴하시던 해, 어머니를 모시고 가까운 산에 등산을 가셨다. 그리고 어머니에게 이렇게 이야기하셨다.

“등산을 해봐야겠다. 내가 아직 더 살아있을 수 있는지 어떤지 보고 싶다.”

아버지와 한 시대를 사셨던 친척 형님들, 그리고 당신의 아버지셨던 나의 친할아버지는 모두 초로에 접어들 무렵 생을 마감하셨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가까이에서 그분들의 죽음을 목격하신 아버지에게는 환갑을 넘긴다는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니라 어쩌면 불가능한 것일 수도 있다는 두려움 속에서 중년의 세월을 보내셨는지도 모르겠다.

젊은 시절 강철 같았던 아버지는 세월의 흐름 앞에 서서히 노쇠되어 가셨고, 어느덧 초로의 중년이 되어 계신다. 그 모습을 볼 때마다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아쉬움과 죄송스러움이 마음을 채우지만, 한 살이라도 젊을 때 많은 경험과 더불어 스스로를 돌아보는 기회를 많이 만들어야겠다는 다짐이 생겼다.

물론 그런 다짐이 이렇다 할 과정 없이 생기는 건 아니다. 하루는 어느 지인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분이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시며 “저희 아버지는 참 훌륭한 분이셨습니다.” 하고 이야기하셨다.

그의 아버지는 젊은 시절에 연탄배달부로, 나이가 어느 정도 들어서는 미장이로 평생을 살아오신 분이었다. 경제적으로 풍족하게 해주신 분은 아니었지만, 가족을 끔찍이 사랑하는 분이셨다고 이야기했다. 아들이 태어나던 날, 손에 들고 있던 모든 옷가지와 짐을 내팽개치고 핏덩어리 아들을 품에 안을 때 ‘나도 아버지에게 이런 아들이었겠구나!’ 하고 느꼈다던 그분에게서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느꼈다.

나는 바로 아버지에게 “아버지, 아버지의 인생을 존경합니다.” 하고 문자를 보냈다. 잠시 후 아버지에게서 답장이 왔다.

“고맙다, 아들 짜식아.”

학창시절 내게 아버지는 두려운 분이었다. 대화가 통하지 않는 아버지, 늘 싼 것만 고집하시던 아버지, 단 한 번도 마음을 표현하지 않으시던 아버지. 내 머릿속의 아버지는 항상 그런 분이었다. 그러나 내가 아버지가 되고 나니, 거친 세상 속에서 육체와 자존심은 풍화風化되었을지언정, 단 한 번도 가족에게 세상을 두려워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으셨던 아버지의 어깨가 무척이나 그리워졌다.

나는 한 번도 장학금을 타 본 적이 없다. 학창시절은 말할 것도 없었고, 대학에 다닐 때도 공부보다 엉뚱한 것에 관심이 많았다. 사업도 실패했고, 어려운 시절을 보냈다. 그럼에도 아버지에게 나는 ‘사랑하는 아들’이었다. 그런 아버지와 가끔 문자와 전화로 마음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게 참 행복하고 감사했다. 아버지에게 마음을 솔직하게 이야기했을 때 그대로 느껴지는 아버지의 마음이 무척 따뜻하고 소망스러웠다.

대화를 나누며

부모의 마음은 교육으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자식이 아무리 잘못된 일을 저질러도 마음에서 자식을 끊어낼 수 있는 부모는 많지 않다. 그런 부모님에게 활짝 마음을 열고 마음의 대화를 나누어보는 것은 인생에 있어서 무척 중요한 기회의 창이다.

? 아버지는 이럴 때 어떠셨습니까?
? 엄마는 이런 어려움을 어떻게 이겨내셨어요?
? 아버지도 짝사랑이 있었나요?
? 엄마도 나처럼 취업을 준비할 때 힘들었나요?

이런 소소한 대화를 나누는 것, 부모님은 아주 좋아하시고 행복해하셨다. 나도 그랬다. 28살의 어느 날, 나는 처음으로 아버지에게 마음의 이야기를 해보았다. 힘들었던 이야기, 고통스러웠던 이야기, 학창시절에 차마 하지 못했던 그런 이야기들. 오래전 일이라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잘 기억은 나지 않는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대단찮은 이야기들이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그런 이야기를 듣고 계시던 아버지의 표정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기쁨을 어떻게 감춰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그 표정. ‘내 아들이 이런 이야기를 하는구나.’ 하며 행복해하시는 그 표정이 마음에 무척 크게 남았다.

물론 그런 과정이 만들어지기까지 쉬운 여정을 거친 것은 아니었다. 아버지는 전형적인 경상도 분이었다. 평생 자식 앞에서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은 분이었다.

? 아버지에게도 마음이 있을까?
? 아버지도 사랑이라는 게 있을까?

늘 그런 생각만 하고 살았다. 그러던 내가 아프리카에서 해외봉사활동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왔을 때, 아버지는 내게 불같이 화를 내시며 “봉사를 갔다 온 놈이 볼살이 다 빠져와서는 무슨 봉사냐!” 하며 불같이 화를 내셨다. 아버지의 그 한마디에, 아버지에게는 자식이 결코 알 수 없는 마음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마음 깊이 알 수 있었다.

부모님이 모든 일에 기준점이 되거나 정석定石이 될 수는 없다. 모든 가르침이 옳은 것도 아니다. 자식이 잘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나오는 이야기들과 행동이 과한 경우도 있다. 학창시절, 알고 지내던 친구 한 명은 무척 어긋난 삶을 살았다. 당시엔 무척 철없는 녀석으로만 느껴졌는데, 그는 아버지에 대한 두려움과 원망을 마음 깊이 담고 있었다.

“저녁밥을 먹는데 갑자기 뺨을 때리시더라고. 숟가락이 날아가고, 입안에 밥풀이 다 날아가고……. 그날 팬티 바람으로 가출했다.”

모든 아버지의 방법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손찌검으로 자녀를 교육한 알로이스 히틀러Alois J. Hitler Sr.에 의해 아돌프 히틀러Adolf Hitler가 태어났고, 혹은 지독하게 엄격한 부모님 아래에서 자란 아이들이 탈선의 길을 걸어간 경우를 종종 만나기도 한다. 다시 말하지만, 모든 부모님이 결코 자녀교육의 정석이 될 수는 없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기본적으로 부모님은 내 편이라는 사실이다. 부모님의 방법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지만, 부모님의 사랑이 쉽게 변질되는 부류의 것이 아니라는 것 역시 사실이다. 부모님과 마음을 열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그 사랑을 깊이 느낄 수 있다. 그러고 보면 부모님과 마음의 대화를 나누지 못하면서 사회생활을 성공적으로 하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본다.

공부 못해서 미안합니다

타인에 대한 배려심이나 이타심이 부족한 사람들 대부분 이 부모님과 마음을 나누거나 대화하지 않는다. 부모님으로부터 오는 사랑이 어그러져 있기 때문에, 따뜻한 사랑으로부터 오는 마음의 힘이 약해져있는 경우다. 부모님은 항상 나를 향해 손을 내밀고 계신 분이다. 먼저 부모님에게 마음을 열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굉장히 큰마음의 힘을 얻을 수 있다.

몇 년 전, 20대 중반의 성인 남성이 자살을 택했다. 그의 유서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적혀 있었다. 다음 생에는 공부를 잘하겠습니다. 미안합니다.

부모님에게는 자식이 건강히 살아서 함께 해주는 것만으로도 큰 위안이고 기쁨이 된다. 자녀를 위한 부모님의 마음은 결코 변하지 않는 진리와 같다. 무엇보다 마음을 열고 이야기하는 것을 가장 듣고 싶어 하신다.

부모님과 마음을 활짝 열고 대화를 나누다 보면 그 사랑이 마음을 강하게 채우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무슨 이야기든 마음을 열고 이야기를 해보자. 섭섭했던 일, 좋았던 일, 감사했던 일. 분명히 기뻐하시고 행복해하실 것이다.

글/사진 전준우 작가
글/사진 전준우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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