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 국가 바이오 기술․제조 이니셔티브 공개
행정명령으로 국내 바이오 제조 기반 강화 등에 20억 달러 투자
반도체, 전기차에 이어 바이오산업으로 확산하는 ‘아메리카 퍼스트 2.0’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9월 12일 보스턴에 있는 케네디 대통령 기념 도서관에서 열린 ‘문샷 연설’(Moonshot address) 60주년 행사에 참석했다. 동 행사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자신의 대표 보건정책인 캔서 문샷(Cancer Moonshot)의 진척 상황을 설명하고, 미래 바이오산업 육성을 위한 청사진을 내놨다. 얼마 전 반도체, 전기차, 배터리 등에 이어 이번에는 바이오산업으로 미국 우선주의가 확장하고 있다.

◇25년 내로 암 사망률을 절반으로

2016년 오바마 정부는 미국 정부의 주도로 불가능해 보였던 달착륙에 성공했듯, 암 정복이라는 인류의 난제를 풀기 위해 약 10억 달러 예산의 ‘캔서 문샷’ 정책을 시행했다. 2015년 뇌종양으로 장남을 잃었던 당시 바이든 부통령이 캔서 문샷의 사령탑을 맡아 부처별 정책을 총괄 지휘했다.

대통령 자격으로 백악관에 복귀한 바이든 대통령은 2022년 초 ‘캔서 문샷 이니셔티브’를 재점화하며, 25년 안에 현재의 암 관련 사망률을 50% 이상 낮추겠다는 목표는 세웠다. 이번 9월 13일 연설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캔서 문샷이야말로 내가 대통령에 출마한 이유 중 하나”라며, “모든 국민의 의료 기본권 확대를 위해 대통령으로서 가진 모든 권한을 행사하겠다”라고 밝혔다.

케네디 기념관에서 연설하는 바이든 대통령
케네디 기념관에서 연설하는 바이든 대통령 (자료 : 백악관 중계 캡처)

그리고 캔서 문샷을 주관하는 정부 합동 태스크포스인 ‘캔서 캐비넷’(Cancer Cabinet)은 9월 12일 백악관 팩트시트를 통해 지난 7개월여 동안 정책 추진 성과를 다음과 같이 보고했다. 

▲인플레이션 감축법(Inflation Reduction Act)을 통해 암 환자의 조제약 가격 부담 완화 ▲국립암연구소(NCI)의 다중암 진단연구 개시(혈액검사로 다양한 암을 조기 진단하는 연구) ▲차세대 암 연구 활성화를 위한 장학금 프로그램 신설 ▲백악관 과학기술정책국(OSTP)의 연방 연구개발 지원 지침 마련 ▲국립기술표준원(NIST)의 새로운 항암 기술개발을 위한 협력 네트워크 확대 ▲국립보건원(NIH)이 주도하는 항암 연구정보 공유 프로그램 등

◇보건첨단연구계획청(ARPA-H) 수장 임명

같은 날 바이든 대통령은 ARPA-H 운영을 맡을 총괄 디렉터에 리네 베르그진(Renee Wegrzyn) 박사를 선임했다. ARPA-H는 바이오 의료 기술 개발에 정부 지원을 집중하기 위해 지난 3월 국립보건원(NIH) 안에 신설된 독립 정부 기관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대선 공약으로 ARPA-H 설립을 강력히 주장했으며, 이를 받아 의회는 ’22년 예산법을 통해 10억 달러 규모의 운영 예산을 승인했다.

ARPA-H는 1958년에 설립된 국방첨단연구계획청(DARPA)을 모델로 삼는다. 소련의 우주 탐사선 스푸트니크호 발사 후 미국 국방부 산하에 설립된 DARPA는 인터넷, 드론, 스텔스 기술 등 국방 분야에서 기술 혁신을 선도해 왔다는 평가를 받는다. 바이든 정부는 ARPA-H를 통해 알츠하이머, 당뇨, 암 등 난치성 질환의 예방․진단․치료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민간과 학계의 연구개발 활동을 지원할 계획이다.

◇바이오 기술·제조 혁신을 위한 행정명령

바이든 대통령은 안정적이고 지속 가능한 바이오 경제 토대를 위해 ‘국가 바이오 기술·제조 이니셔티브’를 제안했다. 9월 12일 서명한 행정명령에서 대통령은 “미국이 개발한 모든 기술이 미국 안에서 생산될 수 있도록 하겠다”라며, 바이오 기술뿐만 아니라 제조 분야에서도 세계를 선도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대통령은 향후 10년 내 약 30조 달러 시장으로 성장할 바이오산업 육성을 위한 체계적인 국가 전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번 이니셔티브는 국내 기술 혁신을 촉진함으로써 보건, 농업, 에너지 등을 포함한 바이오 경제 생태계의 성장을 견인한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한 정책 과제로서 ▲ 바이오 기술·제조를 위한 연방 투자 확대, ▲기술 혁신을 위한 안정적인 데이터 환경 조성, ▲국내 바이오 제조 역량 강화, ▲바이오 에너지 및 제품에 대한 시장 기회 확대, ▲인재 육성 투자, ▲규제 간소화 및 위기관리 강화, ▲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보호 조치 마련, ▲국제 연구·개발 협력 증진 등을 제시했다. 이를 위해 백악관 안보 보좌관이 경제 보좌관 및 과학기술정책 국장과 협의를 거쳐 유관 정부 부처의 정책 활동을 조율하게 된다.

한편, 9월 14일 백악관 안보 보좌관 주재로 열린 바이오 기술·제조 육성 장관 회의에서 이번 행정명령 완수를 위해 관계 부처는 총 20억 달러 규모 예산 계획을 공개했다. 백악관 팩트시트에 따르면, 국방부는 국내 바이오 제조업 인프라 구축을 위한 민관 협력 사업에 향후 5년간 10억 달러를 출연하게 된다. 또한, 국방부는 추가로 2억 달러를 투입해 바이오 데이터 및 사이버 안보 강화를 추진한다. 그 밖에 보건부는 4000만 달러 예산으로 원료의약품, 항생제 등 핵심 바이오 공급망 구축에 나서고, 농무부는 친환경 바이오 비료 개발 등에 약 5억 달러를 투자하게 된다. 또한, 국립과학재단(NSF)과 에너지부가 각각 3200만 달러, 1억7800만 달러 예산을 투입해 미국 내 바이오 관련 기술 혁신을 견인한다.

◇높은 원료의약품 수입의존도에 위기감

작년 6월 백악관이 공개한 ‘100일 공급망 검토 보고서’는 미국 의약품 공급망의 문제점 중 하나로 원료의약품(API: Active Pharmaceutical Ingredient)의 특정 국가(지역)에 대한 과도한 수입 의존을 꼽았다. 조사에 따르면, 2021년 기준 미국 식약청(FDA) 승인 복제 의약품에 사용되는 API를 생산하는 시설의 약 87%가 미국 밖에 소재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인도에 29%가 소재하고, EU에 27%, 중국에 16%, 전체 API 생산시설 중 약 13%만이 미국에 소재한다. 또한 보건부 선정 120개 필수 의약품 중에서 60개 약품만이 해당 원료의약품을 미국에서 생산할 수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더욱이 50개 필수 의약품에 사용되는 API 수급의 70%를 중국, 인도 등 아시아 지역에 의존하고 있다. 만일 국제 분쟁으로 원료의약품이 무기화될 경우 자칫 미국 보건의료체계가 붕괴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높아졌다.

FDA 승인 복제 의약품용 API 생산시설 국별 소재 비중
FDA 승인 복제 의약품용 API 생산시설 국별 소재 비중 [자료: 보건부, 100일 의약품 공급망 보고서]

◇산업 전반으로 확산하는 ‘아메리카 퍼스트 2.0’

바이든 정부는 △인프라 투자 및 일자리 법, △반도체 과학 법, △인플레이션 감축법의 연이은 입법 성공에 힘입어 반도체, 전기차, 배터리, 친환경 소재 등의 국내 제조업 기반 확충에 전념하고 있다. 특히 코로나19를 거치면서 미국민의 건강과 생명에 직결된 제약산업의 자립이야말로 현 정부의 중대 과제가 됐다. 일각에서 바이든 정부 ‘아메리카 퍼스트 2.0’ 정책을 11월 중간선거 승리를 위한 캠페인으로 치부하고, 정책 지속 여부를 의심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하지만, 바이든 경제정책 향배를 가늠하기 위해서는 제이크 설리번(Jake Sullivan) 백악관 국가안보 보좌관에 주목해야 한다는 의견이 높다.

예일대학 법대를 졸업한 설리번 보좌관은 35살의 나이에 오바마 정부의 국무부 정책기획 실장으로 임명되며 외교계의 ‘신동’(Wunderkind)으로 불렸다. 설리번은 클린턴 국무장관의 오른팔로 막후에서 2015년 이란 비핵화 합의(JCPOA)를 성사시키기도 했다. 마침내 2021년 안보 보좌관으로 백악관에 입성한 설리번은 현재 바이든 대통령의 외교 안보, 대외 경제, 공급망 등 정책을 총괄하고 있다. 

2020년 당시 카네기 국제평화재단에서 재직 중이던 설리번은 ‘중산층 재건을 위한 미국의 외교정책’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공저했다. 논란이 됐던 보고서는 그간 미국의 외교정책이 오직 지정학 패권을 위해서 복무해 왔으며, 이로써 정책의 사각지대에 방치된 미국 중산층은 쇠락의 길에 들어섰다고 비판했다. 따라서, 앞으로는 모든 외교, 안보, 경제 정책이 혼연일체로 중산층 재건을 최우선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기 위해서 △전반적인 국익 차원에서 무역의 역할을 재조명하고, △국내 제조업 부활을 통해 소득 불평등을 완화하고, △우방과 돈독한 협력으로 미국의 지정학적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놀랍게도 현재 바이든 정부의 정책 기조와 정확하게 일치한다. 

바이든 정부의 모든 대외 경제 정책은 설리번의 책상을 거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공급망 재건에서 이번 바이오 기술·제조 육성까지 모든 정책이 설리번을 통해 대통령에 보고되고 부처별 가이드라인이 마련된다. 이런 상황에 비추어 중간선거 결과와 무관하게 지금 바이든 경제 정책이 지속 강화될 것이라는 추론이 어렵지 않다는 것이 현지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9월 16일 한 첨단기술 관련 행사에 참여한 설리번 보좌관은 지난 2년 동안 바이든 정부는 미래산업 분야에 전대미문의 투자를 끌어내고, 글로벌 인재를 유치하고, 첨단기술 보호 장치를 마련했다며, “이 모든 것들이 한층 강력해진 미국의 ‘힘’(power)과 ‘영향력’(influence)의 토대 위에서 가능했다”라고 역설했다.

자료출처 : 백악관 팩트시트, 백악관 100일 공급망 검토 보고서, 뉴욕타임스, 폴리티코 및 KOTRA 워싱톤 무역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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