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엔 특별기획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 시리즈. 전준우 작가의 인성&인간에 관한 이야기

스타트업엔에서는 특별 기획으로, 사회 각계각층의 사람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연재하고자 한다. 배우론, 교육의 힘, 탁월한 책쓰기, 초격차 독서법, 하루 10분 부모연습 (가제 : 부모가 되고 나니 비로소 보이는 것들)을 집필한 '전준우' 작가의 다섯 번째, 인성&인간에 대한 이야기인 '진짜 제 이름은 따로 있습니다'이다.

유약한 인간으로

얼마 전에 있었던 일이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난 뒤 아내가 내게 이야기했다.

“오빠. 오늘 어떤 연예인 수상소감 영상을 봤는데, 오빠한테 한 번 보여주고 싶었어. 영상이 참 인상적이야. 뭐랄까, 평소에 방송에서 하지 못한 이야기들을 하는 것 같았어.” “무슨 이야기였어?” “이것저것 많이 이야기했는데, 오빠도 일단 한 번 봐봐. 되게 인상적인 수상소감이었어.”

아내가 해당 배우의 수상소감을 유튜브로 찾는 동안, 나는 시큰둥한 표정으로 그가 모델로 활동 중인 커피 브랜드의 바닐라 라떼를 마시고 있었다.

이름만 대면 알 만한 한국을 대표하는 탤런트이자 영화배우로 유명한 사람이긴 하지만, 연예인 수상소감이 뭐 그리 특별할까 싶었기 때문이다. 대단한 기대랄 것도 없이 멀뚱멀뚱 아이패드 화면만 쳐다보고 있었다. 그렇게 시청하게 된 수상소감에서 나는 생각보다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쓸쓸하고 찬란한 신이었는데, 지금은 굉장히 유약한 인간으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배우로 데뷔하지 않았더라면 무슨 일을 했을지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조각 같은 외모와 풍겨지는 이미지에서 확실히 남다른 매력을 발견할 수 있었지만, 일단 내 기억은 거기까지였다. 연예계라는 곳은 내가 크게 관심을 두지 않는 분야 중 하나다.

게다가 세상에 키 크고 잘생긴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 면에서 대단한 유명세를 치르거나 이름을 휘날리는 배우는 아니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자주 얼굴을 내비치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최우수연기상을 수상하기에 이르렀다. 그의 나이 39살 때의 일이다.

서른 즈음에

‘나도 제법 어른이 된 것 같다.’ 하는 생각이 든 때가 있었다. 대학을 졸업하던 2011년, 28살이 되던 해였다. 멀게만 보이던 서른이 코앞에 다가오자 비로소 어른이 된 것 같아서 기분이 묘했다. 왠지 모르게 든든한 마음이 드는 반면, 한 편으론 싱숭생숭했다.

돌아올 수 없는 시간의 공간 속에서 살고 있으면서, 어떻게 시간을 보내야 잘 보내는 것인지 몰라 무척 방황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서울에서 공부하다가 울산으로 내려와 대안학교 교사로 활동하게 된 것도 그 무렵이었다. 대안학교에서 교사 생활을 했다고 하면 사람들의 반응이 비슷비슷했다.

“장애 있는 학생들 가르치면 힘들지 않아요?”
“문제아들이 많은가 보네요.”
“거기에서는 애들이 적응 잘 해요?”

대안학교라는 이름을 가진 특목고였다. 3년 동안 이 학교에서 공부한 대부분의 아이들은 졸업할 무렵이 되면 어느덧 팀을 이끌어가는 탁월한 리더로 성장했다.

어느 단체에 속해있던지 눈에 띄었다. 대안학교라고는 해도 수준 높은 교육과 동아리 활동, 전원 기숙생활을 하면서 만들어진 동기들과의 우애, 가족과 같은 사제관계,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설립된 학교였기 때문에 정신의 성숙도와 지적 탁월함, 마음의 깊이가 일반 고등학교를 졸업한 아이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수준이 높았다.

2016년에는 케냐 대통령궁을 방문해서 대통령 앞에서 부채춤을 선보였고, 대통령의 지시로 그 자리에서 청소년부 장관과 청소년 교육에 관련한 MOU를 맺기도 했다.

감사하고 행복한 시간의 연속이었지만, 오래 근무하진 않았다. 결혼을 해야 했고, 좀 더 안정적인 직장이 필요했다. 제자들을 졸업시키고 난 뒤 나는 평범한 직장 생활을 했고, 결혼했다. 서른이 되던 해 겨울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결혼 7년 차, 어느덧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다.
수상소감에서 그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요즘엔 조금 헷갈리는 중입니다. 내가 어디에 있고, 내가 누군지,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나도 그런 때가 있었다. 회사를 다니면서, 퇴사하고 사업한답시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면서, 아내를 끌어안고 펑펑 눈물을 흘리면서 수없이 헷갈리던 때가 있었다.

나는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하고 있는 것인가? 고민하던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답은 아무래도 좋았다. 살면서 이렇다 할 고민 한 번 안 해본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1주일 사이에 3권의 책이 계약되었던 지난 2019년 여름, 나는 ‘왜 책을 읽어야 하는가?, 책은 나에게 무엇인가?, 어떤 책이 좋은 책인가?’ 하는 문제로 심각하게 고민하곤 했다.

책을 출간한 작가에게 ‘책이 무엇인가’하는 의문은 원론적인 설명만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기에, 그 누구도 내게 정확한 답을 이야기해 주지 못했다. 스스로 찾을 수밖에 없었다. 남들 보기엔 아무렇지 않게 사는 것 같았겠지만, 마음속으로는 끊임없이 고민하고 답을 찾았다.

내 팔꿈치를 구성하는 원자핵들이 어째서 책상의 원자핵들 사이로 스르르 미끄러져 들어가지 않는단 말인가? 책상이나 걸상을 만든 목재가 이렇게 텅 비어 있다면, 어떤 연유에서 나는 마루로 그냥 내려앉지 않는가? 아니 지구의 저 속으로 그냥 떨어져 들어가지 않는 까닭은 무엇이란 말인가? -『코스모스』 434p, 칼 세이건

언젠가 인성교육 강사로 활동 중인 강사에게서 양치기 소년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늑대와 양치기 소년의 이야기를 잘 알고 계실 겁니다. 양치기 소년은 마을에 있는 사람들에게 “늑대가 나타났다!”하고 거짓말을 했고, 몇 번 속아넘어간 사람들은 결국 양치기 소년의 이야기를 믿지 않게 됩니다. 결국 늑대가 정말로 나타났는데도 사람들은 거짓말이라고 생각하며 도와주지 않았고, 결국 소년은 양을 모두 잃고 말았습니다.”

여기까지는 누구나 아는 이야기였다. 중요한 질문은 그 다음이었다.

“양치기 소년이 왜 “늑대가 나타났다!”하고 소리쳤는지 아십니까?”

불혹의 의미

시큰둥하게 아이패드 화면을 쳐다보며 그의 수상소감을 듣고 있었지만, 사실은 진지해졌던 것 같다. 24개월 할부로 구매한 12.9인치 아이패드 프로 3세대와 애플 펜슬은 내게 ‘제법 있어 보이는 작가 이미지’를 선사해 주긴 했지만,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아이패드만 생각하면 아내의 얼굴을 제대로 쳐다보기가 미안했다.

작가는 명예로 사는 사람이다. 초대형 베스트셀러 작가가 아닌 바에야 전업작가는 먹고살기 힘들다. 게다가 아무한테나 작가라는 이름을 붙일 순 없다. 책을 쓰면 작가가 되는 건 맞다. 그러나 축구화만 신는다고 모든 사람들이 리오넬 메시가 되는 건 아니지 않은가?

첫 책이 출간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작가 명함을 제작했다. 처음엔 사람들을 만나면 자랑스럽게 <작가 전준우>라고 쓰인 명함을 내밀었다. 그러다가 네댓 권의 책이 출간 및 계약까지 된 지금은 슬그머니 작가 명함을 숨기고 회사에서 만든 명함을 내민다.

구구절절 좋은 내용 담은 책만 쓰느라 가정 하나 제대로 건사 못하는 사람이라는 오명을 뒤집어 쓸 바에야 일단은 번듯한 회사에 몸담고 있으면서 꾸준히 책을 써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렇듯 아등바등 살고 있는 내 모습에 비추어봤을 때, ‘주변에서 절대 찾을 수 없는 비현실적인 외모’를 가진 그의 수상소감이 처음부터 대단하게 느껴질 리 없었다. 세상에서 가장 불필요한 걱정 중 하나가 연예인 걱정이라고 하던데, 어찌 되었건 남들이 가지지 못한, 노력만으로는 결코 얻을 수 없는 뛰어난 능력을 타고난 사람들이야 자기 밥벌이 정도는 잘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수상소감을 들었던 거였다. 그런데 그가 수상소감을 시작하자마자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흐를 뻔했다.

불혹. 세상 일에 정신을 빼앗겨 판단을 흐리는 일이 없는 나이.

40세를 의미하는 이 단어는 훌륭하고 아름다운 정신세계를 가진 인간의 성숙한 모습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40세가 되면 판단을 흐리게 하는 것들을 분별할 수 있는 마음의 힘이 생긴다.

배려, 겸손, 존립, 용기와 같은 단어들을 직접 입으로 말하지 않더라도, 오직 평소 사용하는 단어와 삶의 모습만으로 상대방에게 보여줄 수 있는 나이다. 그래서 나는 40이 되면 나의 정신적 강인함과 삶의 태도가 충분히 갖추어져서 주변 사람들에게 적잖은 귀감이 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서른이 되고, 서른다섯이 되고, 서른일곱이 되어보니 생각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배려, 용기, 혹은 겸손과 같은 단어보다는 외로움, 혹은 그리움과 같은 단어들이 훨씬 더 친숙하게 느껴졌다. 평생을 함께 할 것 같던 친구들은 고향을 떠나 머나먼 타향에서 자리를 잡았고, 첫사랑이 아닌 사람과 결혼을 했으며, 하루가 멀다 하고 술을 마시는 모양이었다. 그렇게라도 아등바등 살아주면 좋으련만, 내가 결혼한 이듬해 몹쓸 병으로 세상을 떠난 친구도 있었다.
늘 자기 잘난 맛에 산다 싶은 그 친구의 모습이 몹시 얄미워서 일부러 무안을 준 적도 있었는데...

수상소감을 발표하던 그는 불혹을 눈앞에 둔, 한국을 대표하는 톱배우였다. 그의 수상소감을 들으며 나는 그의 마음의 세계를 더듬어가기 시작했다. 지금은 한국을 대표하는 톱배우지만 세월은 모든 인간에게 동일하다. 평생 젊은 사람도 없고, 평생 톱배우도 없다. 마지막에 그는 “다시는 이 자리에 못 설 수 있기 때문에”라고 운을 떼며 지인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난 당신을 한 번도 매니저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어. 형, 나 때문에 마음고생하게 해서 너무 미안하고, 나 상 받았다.”

이제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에게 물어본다. 당신은, 왜 양치기 소년이 사람들에게 “늑대가 나타났다!”하고 외쳤는지 알겠는가? 그 해답을 안다면, 오늘 하루를 소중하게 여기길 바란다. 어쩌면 당신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당신의 관심, 혹은 당신의 진심 어린 충언을 기다리며 오늘 하루를 외로움으로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글/사진 전준우
글/사진 전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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