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방송 프로그램인 'SBS 접속무비월드'의 코너인 '영화는 수다다' 등 다양한 예능 프로그램을 연출한 박주은 PD가 본인의 첫 장편영화 '탈주의 동물기'로 영화감독에 입봉했다. 영화감독의 꿈을 늘 간직하고 있던 박 감독은 드디어 2023년 본인 이름으로 첫 장편 영화를 연출했다. '탈주의 동물기'는 조지 오웰의 우화 '동물농장'에서 영감을 얻었다. ‘누가 돼지고 누가 인간인지, 어느 것이 어느 것인지 이미 분간할 수 없었다’라는 마지막 문장이 꽤 오랫동안 박 감독의 머릿속에 남아있었다고 말했다. 영화감독으로 첫발을 내디딘 박주은 감독을 만나서 인터뷰했다.

인터뷰 중인 박주은 감독
인터뷰 중인 박주은 감독

Q. 간략하게 본인 소개 부탁드립니다.

현재 독립영화 연출 및 방송 예능 편집을 하고 있는 박주은 감독입니다. 2004년부터 영화 연출부와 방송 조연출을 겸하면서 지금까지 연출 현장에 몸을 담고 있습니다. 사실 영화 연출부 생활은 그럴만한 필모그래피가 없을 정도로 힘들었었습니다. 4작품 정도 연출부 막내로써 생활을 하였는데 모두 엎어지기 일쑤였고, 당연히 생활은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시간을 자유롭게 조절할 수도 있으며 일당도 받을 수 있는 방송 조연출을 겸하게 되었고, 자연스레 방송 연출로 이직하게 된 것입니다. 

영화 연출이라는 꿈을 계속 가지고 있던 저는 <SBS 접속무비월드 영화는 수다다>라는 코너를 연출하였고 그 외 다수의 방송 예능 연출을 하게 됩니다. 예능 현장이 영화 현장과 꽤 닮아있기 때문에 예능 연출을 꽤 오래 하게 된 것 같습니다. 2019년부터 방송 예능 편집 및 영화 제작을 하는 <주리메지>라는 사업체를 만들어서 근근이 버텨내고 있습니다.

Q. 영화에 입문하게 된 계기에 대해 말씀해 주시겠어요?

사실 어떻게 영화계에 입문하게 되었는지는 모호합니다. 여느 씨네 키드처럼 영화관의 커다란 스크린 속 세계가 저를 이끌었고, 마냥 그 세계를 향해 걸었던 것 같습니다. 하나의 작은 예가 있다면 1999년 학부 때 우연찮게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라는 작품의 2D 후반작업 업체를 견학하게 되었습니다. 저희 학부가 2D masking 작업의 하청을 맡아서 진행하고 있었는데, 어느 선배의 지도하에 2D 후반 업체를 견학을 하게 된 경험이었습니다. 당시에 2D 합성이라는 분야가 막 각광을 받고 있었던 때라 꽤나 신기한 경험이었고, 상업영화가 만들어지는 과정의 일부를 목격한 것이었지만 굉장히 매력적으로 다가왔던 경험이었습니다. 

그때의 저를 회상한다면 국어, 영어, 수학에는 당연히 흥미가 없었고 꽤 모호한 미래를 가지고 있었던 미천한 지방대 학생이었습니다. 그런데 2D 후반 업체 견학 이후 이상하리만큼 영화에 관심이 커지게 되면서, 밤새도록 학교 작업실 편집기 앞에 있는 저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주 조금씩 주변에서 긍정적인 피드백을 받기 시작하였으며, 편집으로 인정을 받기 시작하였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학부 졸업 후 직접 뛰어든 영화 연출부는 만만치 않은 곳이었지만, 그때 만나게 된 지인들이 편집으로 저를 찾기 시작하였고 그들을 도와가며 독립영화들을 만들기 시작한 것이 지금까지 독립영화계에 몸을 담게 된 계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Q. 영화감독이 되기로 결심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sbs 접속무비월드>를 연출하면서 꽤 많은 감독님들과 배우들이 <영화는 수다다> 코너를 방문해 주셨고, 그들의 이야기를 밤새 편집해 가면서 더욱 영화를 찍고 싶다는 욕망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잘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왠지 모를 자신감이 생겼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혼자서는 도무지 여력이 생겨나질 않아 무조건 단편영화를 찍어내야만 했던 대학원에 입학하게 되었고, 제 연출력의 부족함을 뼈저리게 느끼고 또 느끼는, 왠지 모를 자신감이 뼈저리게 부끄러웠던 대학원의 생활을 하게 됩니다. 동시에 쓸데없는 것들을 많이 비워내게 되고 작가 의도와 이미지를 접목시키는 연출을 아주 조금씩 깨우치게 됩니다. (아직도 깨우치는 중이긴 함) 

모두 연출로 참여한 것들은 아니지만 단편영화로 많은 습작을 내놓게 되고, 이제는 긴 호흡으로 장편을 연출해야겠다는 결심이 서게 되면서 2023년 올해 <탈주의 동물기>라는 독립 장편영화 한편을 완성시키게 됩니다.   

영화 탈주의 동물기 배우와 스텝
영화 탈주의 동물기 배우와 스텝

Q. 감독님이 가장 좋아하는 영화는 무엇이며 감독님의 작품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요?

미디어가 범람하는 시대여서인지 사실 가장 좋아한다는 영화가 매번 바뀝니다. 하지만 영화 연출을 할 때 가장 많이 참고하는 감독님이 계시긴 합니다. ‘누리 빌게 제일란’ 감독님입니다. 터키 출신의 감독님인데 연출작들을 살펴보신다면 동유럽의 풍경들을 굉장히 아름답게 담아내고 있지만 그 아래의 추악한 인간들의 모습들을 잘 그려내는 연출이라는 것을 느끼실 겁니다. 

그의 초창기 작품 중에 <우작>이라는 작품을 추천해 드리고 싶은데, 사촌지간이지만 학벌과 소득격차로 인해 미묘하게 생겨나는 계급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고달픈 현실이지만 위트도 있었던 작품이었고, 주인공이 바다 벤치에 앉아 상념 하는 마지막 장면은 저에게 꽤 오래 남는 명장면 중에 하나입니다.

꽤나 철학적인 대사들(의도)과 독특한 카메라의 구도(이미지)로 한편의 가성비 있는 영화를 만들어내는 감독님이라 생각됩니다. 저도 아직 인문학이 부족하여서 그의 모든 의도들을 파악할 순 없으나, 인물의 눈을 익스트림 클로즈업하여 극의 긴장감을 가중시킨다든지 하는 카메라 구도들은 제가 연출을 할 때 많이 참고가 되는 것들입니다. 

Q. 콘셉트부터 최종 결과물까지 새로운 프로젝트에 접근할 때의 창작 과정을 설명해 주세요

어떤 사건을 목격했다든지, 인상 깊은 이미지를 봤다든지, 재미있는 경험을 했다든지, 이러한 것들을 사람들과 함께 공유하고 내 이야기를 너무 좋아해 준다면 창작자로써 그만큼 보람 있는 일은 없을 겁니다. ‘나는 창작을 하고 싶다. 컴퓨터에 앉았다. 컴퓨터 모니터에 깜박이는 커서만 쳐다보다가 잠이 들고 말았다.’ 이런 말들을 많이 접했을 것이고, 경험해 본 분들도 꽤 있을 것입니다. 그만큼 새롭고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잘 정리하기란 참으로 난해하고 막막합니다. 그러나 ‘시나리오를 잘 써야지!’라는 욕심을 조금만 비워낸다면 창작 과정은 꽤 재미있는 경험이 될 것입니다. (상업 시스템이면 좀 다른 이야기가 되지만)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어진다면 저는 일단 한 문장이든 두 문장이든 무조건 적어 놓고 보는 타입인 거 같습니다. 그 후 참고 자료들을 마구 찾아봅니다. 예를 들어 <인간극장>과 같은 다큐들을 보면서 인물들의 말투나 행동들을 구체화하고, 수많은 고전영화와 b급 영화, 예술 영화들에서 이미지들을 공부합니다. (같은 하늘 아래 다른 것은 없다는 주의임) 이것이 ‘포스트모더니즘의 혼성 모방’일 것입니다. 기존의 것들이 응용이 되면서 새로운 의미가 형성되는 작업입니다.

우리의 선배님들께서 이뤄놓으신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미 100년이 더 된 오래전에 개념은 확립이 되어있는 것이죠. 우리는 창작하기에 아주 좋은 시대에 살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똑같이 따라 하는 것은 창작자로써 매우 조심해야 할 덕목인 것 같습니다. 그만큼 많이 보고 공부를 계속해야 하는 것이 창작 과정의 시작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탈주의 동물기 배우들이 리딩을 하고 있다.
탈주의 동물기 배우들이 리딩을 하고 있다.

Q. 다른 영화 제작자와 차별화되는 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제작사 <주리메지>를 근근이 이끌어가는 입장에서 접근을 한다면, 제작이라는 분야는 창작물에 상품성을 입히는 단계라고 생각됩니다. 창작하려는 연출자와 이를 구현 가능케하는 제작자는 엄밀히 이야기하자면 완전히 다른 분야입니다. 하지만 이 둘이 타협이 된다면 가장 이상적인 창작물이 탄생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마치 k-pop 아이돌과 같은) 

제작사 <주리메지>는 상업 시스템 속 방송 예능 제작과 독립적인 창작 형태의 영화 제작을 통해 그 타협점을 맞춰가고 있습니다. 차별화라면 두 가지의 시스템을 동시에 구축하고 있다는 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Q. 첫 장편 영화를 제작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무엇이었으며 어떻게 극복했나요? 

저희 첫 독립 장편영화 <탈주의 동물기>는 조지 오웰의 우화 <동물농장>에서 시작됩니다. ‘누가 돼지고 누가 인간인지, 어느 것이 어느 것인지 이미 분간할 수 없었다’라는 마지막 문장이 꽤 오랫동안 저의 우뇌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었고, 장편을 하기로 결심했을 때 우뇌 한구석에서 바로 끄집어낸 아이템이었습니다. 돌이켜보면 꽤나 난해한 아이템이었던 것이었죠.

시나리오 1 고를 탄생시키는 것이 가장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웹드라마 연출 때 추천받은 작가님과 한 달에 한 번꼴로 5번 정도 미팅을 해가며 캐릭터를 구축하였고, 그 무렵이 코로나가 발병하는 시기이기도 하였습니다. 

서로의 삶이 달랐던 작가님에게 저의 연출 방향과 이미지들에 대한 소통은 꽤나 노력이 들어가는 작업입니다. 예를 들어 인간을 어떻게 동물화하여 촬영할 것인지부터 CG가 들어간다면 예산은 어떠한지까지, 제가 계획한 프로덕션의 단계를 소통해 가면서 찍을 수 있는 시나리오를 만들어내는 작업은 끈기와 타협이 필요했습니다. 물론 앞서 말씀드린 콘셉트 구축 단계에서의 참고 자료들을 작가님에게 제시하며 저의 생각들을 쭉 풀어놓는 작업들이 기반이 되었고요. 이러한 소통에서 다시 한번 더 느낀 것이 바로 타협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저는 좀 더 정치적인 이야기를 이끌어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작가님은 정치에는 관심이 없었고, 취재할 정치인을 찾기에는 여러모로 부족한 상황이었습니다. 여러 토론과 타협 끝에 가족들 이야기로 좁혀졌고, 트리트먼트를 작성하여 캐릭터들의 방향성을 제시해 주셨습니다. 다행히도 작가님께서 저의 산만한 생각들을 잘 다듬어 주셨고, 지금의 <탈주의 동물기> 1고가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Q. 예술적 비전과 예산 및 시간 제약과 같은 실용적인 고려 사항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맞추나요?

앞서 말씀드린 것과 같이 창작자의 생각이 바로 제작 예산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또한 촬영 단계에서 시간 제약을 염두에 두고 예산을 책정해야 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독립영화 현장일수록 이러한 제약은 많아집니다. 즉, 예산이 적을수록 실용적으로 빨리 찍어내야 하는 것입니다. 가장 빨리 촬영을 마치는 방법 중에 하나는 로케이션을 최소화는 것입니다. 이를 염두에 두고 시나리오를 제한적인 씬들로 전략적으로 마무리 지었고, 프리프로덕션 단계에서 장소 헌팅에 상대적으로 많은 시간을 할애하였었습니다. 다행히도 경기도 파주에 알맞은 폐차장을 섭외할 수 있었고, 이에 맞춰 촬영 스케줄을 작성하게 됩니다. 

촬영 스케줄 작성 시 여러 요건들이 적용되는데 가장 큰 점이 배우들의 스케줄에 맞춰 찍어내야만 하는 것입니다. 촬영 시 여주인공인 ‘고우리’ 배우가 드라마 촬영 스케줄과 겹치는 스케줄이 있었습니다. 저희 상황도 도저히 미룰 수 없는 회차였기 때문에 최대한 타협점을 찾아서 여주인공의 리액션 위주로 몰아서 촬영이 진행되었고, 주변에서 다음에 촬영하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일단 밤샘 촬영을 강행하였습니다. 아슬아슬하게 ‘고우리’ 배우의 다음 스케줄에 맞춰 끝낼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만들진 장면이 <탈주의 동물기>에서 마지막 시퀀스인데 시사회 때 반응들은 그다지 나쁜 반응은 아니었던 걸로 기억됩니다.  

무조건 주변의 의견을 따르는 것이 타협이라고 생각지는 않습니다. 철저한 준비 속에서 자신과의 타협이 가장 중요하다 생각됩니다. 독립영화는 정말 많은 계산이 필요한 작업입니다. 타협만이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장치였고, 영화 예술은 바로 타협의 예술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영화 촬영현장에서 박주은 감독이 현장 지도를 하고 있다.
영화 촬영현장에서 박주은 감독이 현장 지도를 하고 있다.

Q. 작품의 트렌드나 주제가 감독님 개인적인 가치관이나 관심사를 반영하나요? 반영한다면, 어떻게 반영하는지 설명해 주세요

영화는 감독의 예술이라는 말이 있듯이 당연 연출자 개인의 가치관이 반영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1인입니다. 그리하여 한때에는 어떻게든 저의 가치관을 욱여넣으려 끼워 맞추기 식의 연출이 많았습니다. 배우들은 물론 스텝들이 꽤 모호해하는 디렉팅이었던 것이죠. 이렇게 모호한 연출 의도, 가치관을 명확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하는 생각들이 발전되어 언어학자 소쉬르의 기호학을 적용하게 됩니다.

짧은 지식을 빌어 공유하자면 ‘기표(소리 또는 이미지)+기의(내재적 의미)=기호’라는 공식이 있는데, 이를 응용하여 작품 속에 녹여냅니다. <탈주의 동물기>에서 초반에 느닷없이 인민군이 등장하여 극중 인물에게 소중하게 몸에 품고 있던 ‘돌덩이’를 빼앗기게 됩니다. 이 돌덩이는 철과 맞닿으면 전기를 발생한다는 극중 설정의 광석입니다. 하지만 이 광석은 전기는커녕 어디에도 쓸 수가 없는 돌 덩이에 불과한 것으로 그려집니다. 곧 돌덩이는 허상이라는 내재적 의미가 생기게 됩니다. 

위의 공식에 대입을 하면 기표는 돌덩이이며 기의는 허상이 될 것입니다. 이에 돌덩이는 허상을 상징하는 기호가 되겠고, 이 돌덩이에 집착하는 인물들은 허상에 집착하게 되는 인물들로 그려지게 됩니다. 이러한 문법들로 찍힌 컷들은 ‘쿨레쇼프 효과’라 불리는 현재에도 통용되는 고전 편집 기법을 통해 영화로 태어납니다. 앞서 말씀드린 의도와 이미지를 접목하는 연출을 아주 조금 깨우치게 된 것이죠.

사실 이런저런 핑계들로 저의 가치관이나 관심사들을 대중들이 매력적으로 느낄만한 기호들로 연출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늘 반성합니다. (전 꽤 게으른 편임)

Q. 배우와 작업할 때는 어떻게 접근하며, 배우가 최고의 연기를 펼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어떤 스킬을 사용하나요?

사실을 고백하자면 배우가 최고의 연기를 펼칠 수 있는 스킬은 아직 저에게 없는 것 같습니다. 단지 배우가 시나리오를 어느 정도 이해하고 접근해야 할지에 대해서 크랭크인 되기 전까지 관철시키려고 노력을 하는 편인 것 같습니다. 

시나리오 속 인물들은 배우들의 일상 화법이 아니며, 배우들 일상 속에서 묻어 나오는 행동들이 아닙니다. 물론 진정한 배우라면 시나리오 속 캐릭터가 되도록 최대한 맞춰야 한다고 이해를 하고 있겠으나, 배우는 AI 로봇이 아닌 인간입니다. 실제 자신의 말투와 행동들이 시나리오 속 인물들과 어느 정도 일치해야만 관객들을 설득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를 메소드 연기라고도 일컬음) 그리하여 저는 배우들에게 시나리오는 당신들의 가이드일 뿐 절대적인 것은 아니라고 이야기를 자주 하는 편인 것 같습니다. 

너무 무책임한 디렉팅이라 여기는 분들도 있을 텐데, 저는 연기 쪼라고 불리기도 하는 배우의 습관을 후반 편집 시 작품에 많이 녹여내려고 노력하는 편입니다. 물론 자연스레 작품에 묻어 나오려면 배우와 많은 논쟁도 해가며 친해지는(?) 시간이 필요한 작업이기도 합니다. 꽤 많은 시간이 필요하죠. (작품 속 인물에 관한 생각이 서로 다르다면 끝도 없는 말장난으로 끝날 수도 있음) 또 <탈주의 동물기> 예를 들자면, 극 중에서 뱀으로 추정되는 캐릭터가 등장합니다. 그 캐릭터는 가족들 사이에 숨어들어 감시하며 간사하게 이간질을 시키는 사기꾼 같은 인물입니다.

이러한 인물을 어디 찾을까 하고 고민하는 와중에 지인의 추천으로 어느 남자 배우분을 미팅하게 됩니다. 그분은 이미지는 굉장히 강한데 실제 말씀은 조곤조곤하는 타입이었습니다. 

첫 미팅 시 그런 아이러니함이 인상 깊은 배우여서 사기꾼 역할에 딱 맞겠다는 판단에 캐스팅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배우분은 연기가 시작되면 톤을 낮게 내리깔고 분위기를 조성하려는 습관이 있었습니다. (개인적인 판단일 수 있음) 그러한 습관이 극 중 뱀으로 추정되는 캐릭터와 맞지 않다고 연출적으로 판단되었고, 평상시 대화하는 식으로 조곤조곤 연기하면 어떨까요라고 주문을 했으나 타협점을 찾지 못하고 촬영은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편집을 하면서 다시 접하게 되는 그분의 연기조에서 왠지 모를 미스테리함이 풍겨졌고, 그의 연기조가 다듬어지게 되면서 마지막 장면에서 큰 몫을 했다고 개인적으로 판단됩니다. 즉, 배우가 가진 고유의 연기조야말로 연출자로써 받아들이고 작품에 어떻게 녹여낼까를 고민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스킬이지 않을까 조심스레 견해를 밝혀봅니다. 오래된 영화이지만 <넘버 3>의 송강호 선배님 연기처럼 말입니다.

영화의 주요 무대가 되는 카라반에서 주연 배우들이 대본을 확인하고 있다.
영화의 주요 무대가 되는 카라반에서 주연 배우들이 대본을 확인하고 있다.

Q. 시나리오 작가, 촬영 감독, 편집자 등 영화 제작팀의 다른 팀원들과는 어떻게 협업하나요?

앞서 시나리오 작가님과의 작업을 잠깐 말씀드린 것처럼 준비해놓은 참고 자료나 진행 가능한 예산 범위를 먼저 말씀을 드립니다. 그 후 제일 중요시 여기는 것이 그들의 생각을 얼마나 수용할 수 있을까를 판단하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독립영화 프로덕션 현장에서는 촬영 감독님과의 소통을 가장 중요시 여깁니다. 배우와의 디렉팅을 먼저로 하는 연출자들이 많겠지만 이는 경우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 물론 예산이 허락한다면 모두를 소통하며 진행할 수 있겠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촬영 구도에 신경을 더 쓰는 편인 것 같습니다. 

<탈주의 동물기> 현장을 예로 들자면, 촬영 감독님께 인물들이 자궁 속에 있는 것처럼 보였으면 좋겠다는 촬영 방향성을 자주 주문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카메라 앞 쪽에 동그랗게 뚫려있는 오브제들을 배치한다든지, 가운데가 동그랗게 뚫려있는 것처럼 구도를 잡고 그 안에서 배우들이 연기를 하게끔 미장센을 구축하였습니다. 이런 식으로 촬영 감독님께서 구도를 제시하면 이를 받아들이며 현장을 진행하였습니다. (방향성을 제시하지 않고 현장에서 촬영 감독님만을 의지하는 연출자들이 생각보다 많음) 팀원들과의 협업은 의도를 명확히 제시를 한 후 그들의 아이디어를 받아들이는 것에서 시작되는 것 같습니다.

Q. 감독이 갖춰야 할 가장 중요한 자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다들 알고 있는 쉬운 단어들일 것입니다.  ‘책임감’, ‘마무리’, ‘소통’, ‘타협’, ‘끈기’... 쉽게 접하는 단어들을 실천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시간이 지날수록 많이 느끼게 됩니다.

Q. 영화감독을 꿈꾸는 후배 영화감독들에게 어떤 조언을 해주시겠어요?

아직 조언을 할 위치에 있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조언이라기보다 제 자신에게 늘 하는 속삭임 같은 것으로 대신하고 싶습니다. ‘영화는 감독의 예술이며, 그만큼 감독은 준비되어 있어야 할 것이다.’

Q. 앞으로 감독님의 개인적인 포부 부탁드립니다.

사실 큰 포부가 하나 있습니다. k-pop 아이돌을 양성해 내는 유명 엔터테인먼트처럼 k-movie를 창작하는 감독들을 양성하는 울타리를 만들고 싶은 포부가 있습니다. 물론 그전에 저부터 검증을 받아야 함이 먼저임을 자각하고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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