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엔 특별기획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 시리즈 아홉 번째, 김강윤 소방관의 제복 입은 공무원에 관한 이야기

스타트업엔에서는 특별 기획으로, 사회 각계각층의 사람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연재하고자 한다. 그 아홉 번째 이야기는 불철주야 국민의 안전을 위해 헌신하는 부산 기장 소방서 구조대 소속 김강윤 소방관의 제복 입은 공무원에 감사의 마음에 대한 이야기인 'Thank you for your service!'이다.

봄볕이 따뜻한 일요일 오후. 무료함을 달래려 노트북을 켰다. 볼거리로 가득 찬 유튜브 채널을 이것저것 즐기다가 우연히 영화정보를 전달해 주는 채널을 보았다.

‘테이킹 챈스(Taking Chance)’라는 영화를 간략하게 소개하는 15분짜리 영상을 보았는데 어디서 많이 본 듯했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수년 전 친형이 추천해서 보게 된 미국 영화였다.

영화의 줄거리는 대략 이렇다. 이라크 전쟁에 참전하여 싸우던 미 해병대 ‘챈스 펠프스’일병은 적과의 교전 중에 동료를 구하려다 그만 전사하게 되는데 같은 해병대 행정장교인 ‘마이크 스트로블’ 중령이 챈스 일병의 시신을 고향의 가족에게 운구하는 임무에 자원하게 된다.

영화는 그렇게 미 대륙을 횡단하는 챈스 일병의 시신과 스트로블 중령의 여정을 담담히 그린다. 그리고 그 여정에서 전사한 군인에게 경의를 표하는 시민들의 모습도 함께 나온다.

영화 데이킹 챈스
영화 데이킹 챈스

이 영화를 보며 20대 시절 군인으로서 보낸 6년 동안의 젊은 날과 지금도 제복을 입고 생업을 이어가는 현재의 내 모습을 챈스 일병에 비춰 보았다. 그렇다. 비록 젊은 군인의 죽음이 안타까웠지만 그와 함께 부러움도 함께 생겨났다. 미국이라는 거대한 나라의 자화자찬(?) 같은 영화라 할지라도 제복을 입은 자들에 대한 그들의 경의는 그냥 남 보기 좋으라고 하는 행동은 아닌 듯 보였다.

내가 속한 소방이라는 조직과 소방관들에 대한 처우를 굳이 내 입으로 꺼내기는 스스로가 부끄럽고 민망하다. 떡 하나 더 먹고 싶은 어린아이가 떼쓰는 듯 보이기 때문이다.

다만 미국이나 다른 선진국에서의 군인, 경찰, 소방 등 제복을 입고 봉사하는 직업군에 대한 일반 시민들의 태도는 우리와는 사뭇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위험을 전제로 한 직업을 가진 이들에 대한 평소의 존경도 그렇겠지만 사후 그들에 대한 예우 또한 우리와는 차이가 있다.

미국의 소방관이나 경찰, 군인이 사고나 범죄현장, 그리고 전장에서 순직하여 치러진 영결식에는 대통령은 물론이고 고위 정치인이나 인기 연예인이 참석하는 경우를 흔하게 볼 수 있다. 운구차(소방차나 경찰차를 이용하기도 한다)는 도시의 교통을 통제한 채 시내를 가로지르고, 시민들은 누구랄 것도 없이 도로변에 나와 떠나는 영웅들을 배웅한다.

누구도 교통통제에 대한 불만을 말하지 않는다. 수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거대한 미식축구 경기장에서 영결식을 거행하기도 한다. 자신이 사는 도시를 지키다가 떠나는 이의 마지막 모습을 보기 위해 그들이 가장 좋아하는 스포츠의 주 경기장도 기꺼이 비워 놓는다.

뉴욕 소방관 영결식
뉴욕 소방관 영결식

우리나라의 시민의식이 낮다거나 예우가 소홀하다고 말하는 것이 절대 아니다. 대한민국 대다수의 국민은 제복 공무원에게 아낌없는 격려와 존중을 표해주신다. 늘 고맙게 생각하고 내가 그런 과분한 관심을 받을 만한 일을 하느냐고 스스로 돌아보면 한없이 부끄러워지기도 한다.

하지만 일을 하다 보면 여전히 아쉬울 때가 종종 있다. 소방차가 긴급 출동할 때 비켜주기는커녕 오히려 끼어드는 차량은 아직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현장에서 구조 대원에게 그것밖에 못하냐는 식의 시비도 걸어온다.

술에 취해 휘청거리는 주취자를 대하느라 경찰이나 구급 대원들은 밤을 새우기 일쑤다. 군인은 어떠한가? ‘군대 가면 개고생’이라는 우스갯소리는 그저 하는 소리가 아닐 것이다.

국방의 의무가 신성하다고 생각하는 국민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이런 생각이 종종 드는 것은 과연 나뿐인가? 내심 힘들고 어려운 일을 하는 사람들을 하대하는 문화가 아직 마음속에 남아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나 스스로의 속 좁은 생각도 들 때가 있다.

미국에 응급처치 관련된 유학을 다녀온 동료 소방관의 경험을 들어본 적이 있다. 유학 중 자신을 가르치는 교수가 하루는 소방관 제복을 입고 학교로 오라고 해서 그렇게 하고 갔더니 가까운 편의점으로 데리고 간 것이었다.

그곳에서 간단한 음료수를 사고 계산하려고 하니 미국의 편의점 주인은 교수에게만 돈을 받고 소방관 제복을 입고 있는 나의 동료에게는 돈을 받지 않았다고 한다. 그 이유는 언젠가 소방관은 자신이나 자신의 가족을 도와줄 수 있기 때문에 음료수 하나쯤은 당연히 공짜(free)라는 것이다.

몇 번을 사양하는 데도 주인은 돈을 받지 않았고 같이 간 교수는 오히려 그러한 미국 문화를 보여주기 위해서라며 기꺼이 공짜 음료수를 마시라고 권했다고 한다. 초임 소방관 급여가 5만 달러가 넘는 미국 소방관들이 음료수 하나 값 낼 돈이 없어서 그런 호의를 받는 것은 아닐 것이다. 자신에게 호의를 베푸는 시민의 뜻을 충분히 헤아릴 것이고 그렇게 현장에 가서 시민에게 진심 어린 봉사(service)로 되갚게 될 것이다.

거창한 대접을 받고 싶어서 피 터지는 구조현장을 뛰어다니는 소방관은 아무도 없을 것이며 범죄자의 칼이 두렵지 않은 경찰이나 쏟아지는 총알이 무섭지 않은 군인 역시 없을 것이다. 단지 그 일을 하는 것은 이것이 내 직업이고 내가 해야 할 일이라 하는 것, 스스로에게 주어진 임무이기에 하는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고 본다.

그 일을 하다가 내가 다칠 수도 있고 까딱 잘못하면 제 명에 못 살 것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이 일을 하는 이유는 자명하다. 바로 이 일이 내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일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그 이유는 스스로가 그 위험을 알면서도 그 일을 한다는 데 있다. 이것 하나만 보더라도 그들이 가진 업(業)의 무게는 존중받아 마땅하다. 물론 우리 사회는 위험을 담보로 하는 업에 종사하는 분들이 많다.

하지만 그 위험의 성격이 조금은 다르다. 굳이 언급하자면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일에서 오는 위험과 오롯이 타인에게 가해지는 위험을 자신의 위험으로 바꾸어 막아내는 일은 구분되어야 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한다.

내가 제복 공무원이니 대우받아야 한다는 이기적 말을 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다만 제복을 입고 일을 하다 떠난 이들에 대한 예우에 대해선 꼭 말하고 싶다. 타인을 위해 희생하다가 떠난 이들에 대한 예우가 있을 때 살아남은 자들은 스스로를 위로하고 다시 현장으로 뛰어들 용기를 가질 수 있다.

그리고 그 일을 하고 싶은 많은 젊은이들에게 적어도 나의 모든 것을 걸만한 가치가 있는 일임을 증명해 보일 수도 있는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다치고, 죽으면 나만 손해’라는 이기적 본성이 입고 있는 제복의 빛을 가릴 수도 있다. 가장 우려되고 일이다.

소방 충혼탑
소방 충혼탑

Thank you for your service! 미국 시민들이 현역이나 예비역 군인을 보면 자연스럽게 다가가 전하는 말이라고 한다. 표현이야 어찌 됐든 남들이 하지 않는 일을 하는 자들에 대한 최소한의 존경의 표시라 생각된다.

나도 얼마 전 어느 모임에 갔다가 내가 소방관이라는 것을 알고 나에게 굳게 악수를 청하며 고맙다는 말을 연신 해주시는 분을 만났다. 그는 진심으로 소방관을 존경하며 직접 보게 된다면 꼭 고맙다는 말을 해주고 싶었다고 했다. 처음 겪어보는 일(?)이라 잠시 당황했지만,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뿌듯하고 감동적이었다.

인간은 기억되길 바라는 존재이다. 수많은 영웅들이 자신을 알아주는 이를 위해 목숨을 바쳤다. 아니 알아주지 않아도 그렇게 사라져갔다. 사라지는 그 순간만 안타까운 마음에 그들을 목놓아 불러 본다. 이제 평소에도 그들에게 말해줬으면 좋겠다.

“당신의 봉사에 고맙습니다.”라고...

글/사진 김강윤 소방관
글/사진 김강윤 소방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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