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재희 기자의 ‘스토리가 있는 꽃 이야기’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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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재희 기자의 ‘스토리가 있는 꽃 이야기’ ②
  • 방재희 객원기자
  • 승인 2020.05.12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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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산홍 말고 연산홍

아파트 화단마다 화려함을 뽐내던 연산홍의 빛이 바래지고 있다. 우리가 철쭉으로 알고 있는 대부분의 키 작은 꽃은 연산홍이다. 다 같은 진달래목 진달래과이기는 하나, 굳이 차이를 구분하자면 연산홍과 철쭉의 가장 큰 차이는 키다. 화단에 납작 엎드려 무리 지어 피는 꽃들은 연상홍이고, 산길에서 마주친 키큰 나무는 철쭉이라고 생각하면 큰 무리는 없을 듯하다. 연산홍의 원래 이름은 영산홍인데, 연산군이 사랑했다 하여 연산홍으로 더 자주 불린다.

강화도 교동의 연산군 유배지에서 만난 계절의 끝물 연산홍들-연산홍 너머로 보이는 초가지붕이 연산군 유배처다
강화도 교동의 연산군 유배지에서 만난 계절의 끝물 연산홍들-연산홍 너머로 보이는 초가지붕이 연산군 유배처다.

빛바랜 연산홍을 보니, 꽃의 이름을 바꿔준 연산의 불운했던 생과 자연스레 오버랩된다. 연산군은 정치보다 풍류를 좋아했던 사람이었다. 연산홍을 좋아해서 전국에서 꽃을 모은 낭만가, 우리 역사상 왕 중에서 유일하게 시집을 낸 시인, 신하들 앞에서도 처용무를 췄던 예능인, 전국의 내놓라하는 기생들을 모아 흥청이라 이름 붙이고 경회루 연못에 배를 띄우며 국고를 탕진했다고 흥청망청의 기원이 된 연산은 임금보다는 풍류 가요, 풍운아에 어울렸다.

연산이 흥청 기생들과 뱃놀이를 즐기던 경복궁 경회루 연못
연산이 흥청 기생들과 뱃놀이를 즐기던 경복궁 경회루 연못

그가 왕이라는 버거운 자리를 지키지 않아도 됐더라면 어땠을까?

인수대비가 손자 손에 한 많은 인생을 마감하게 되지도 않았을 것이고, 아버지 성종의 후궁을 때려죽인 천하의 파락호로 후세에 오르락거리지 않아도 됐겠지. 왕족 정도로 한량처럼 살았다면 좋아하는 풍류 즐기고, 좋아하는 연산홍 키우면서 천수를 다했겠지. 정종처럼. 

조선의 2대 임금 정종은 야심가 태종 이방원의 형이었다. 동생의 야심을 알았기에 태조와 태종 사이의 징검다리 노릇을 일찌기 마무리 짓고, 어쩌다가 차지한 임금 자리에서 2년 만에 물러앉아 평생을 야인으로 살았다. 정종은 재위 기간에도 격구를 즐김으로써 자신은 정치에 '전혀' 뜻이 없음을 온몸으로 보여줬다. 그의 이런 행동은 확실히 이방원을 안심시키는 효과가 있었다.

동생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상왕(上王)이 된 정종은 왕의 형으로 누릴 수 있는 예우를 받으며 즐겁게 살았다. 인덕궁에 거주하면서 사냥과 격구, 연회, 온천여행 등으로 세월을 보낸 정종은 상왕이 된 이방원과 왕이 된 조카 세종의 마지막 인사를 받으면서 1419년 63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조선 왕의 평균수명은 46세로 정종은 조선 왕 장수 랭킹 5위다. 10명의 부인과 17남 8녀의 자녀까지 두었으니 자녀수는 조선 왕 중 네번째로 많다. 정종은 정치 욕심에 연연하지 않음으로써 마지막까지 행복했던 사람이었다.

반면 사랑했던 장녹수는 처형되고, 부인은 폐서인, 아들들은 뿔뿔이 흩어져 유배된 지 며칠 만에 모두 사사되고, 연산 자신은 강화도 교동으로 위리안치됐다.

위리안치는 오두막 주변을 탱자나무 같은 가시나무로 사방을 빽빽이 둘러 하루 세 끼 밥 들어가는 구멍을 제외하고는 사람은 커녕 햇빛도 못 들어오게 가두는 형벌이다. 굶어죽지 않을 만큼, 얼어 죽지 않을 만큼만 허용된 캄캄한 방안에 우두커니 혼자 앉은 연산에게 화려했던 시절은 꿈처럼 여겨졌으리라. 연산군은 유배된 지 2개월 만에 만 30세 생일을 3일 앞두고 병으로 죽었다. 그는 정종과 같은 삶을 살지 못했던 회한과 부러움으로 마지막을 채웠으려나?

연산군 유배지에 심기 운 위리안치에 사용되는  탱자나무 울타리. 굵은 가시가 위악스럽다.
연산군 유배지에 심기 운 위리안치에 사용되는 탱자나무 울타리. 굵은 가시가 위악스럽다.

진달래는 참꽃이라고 부른다. 진달래는 배고플 때 입 주변을 분홍으로 물들여가면, 허기진 배를 채울 수 있는 먹거리였고, 화전의 소소한 장식이 되어줬다.

먹을 수 있어서 참꽃이라고 불리는 진달래
먹을 수 있어서 참꽃이라고 불리는 진달래

같은 진달래목이지만 철쭉이나 연산홍은 못 먹는다. 개꽃이다. 진짜에 못 미치는 짝퉁에 '개'접두사를 많이 붙였다. 개오동, 개망초, 개나리... 배고팠던 우리네 민초들에게는 먹을 수 있으면 진짜, 못 먹으면 꽝이었다.

연산홍은 낮은 눈높이에서 자라지만 못 먹는다는 이유로 사람들의 손을 타지 않은 덕분에 오랫동안 자태를 뽐내다가 빛바랠 수 있다. 연산군이 그가 사랑했던 연산홍처럼, 납작 엎드려 있으면서도 뭇사람들이 범접하지 못하는 인생을 살았더라면, 그저 자신의 매력을 뽐내며 예인으로 살았더라면, 정종처럼 행복한 자신만의 최고의 인생을 누리지 않았을까?

즉위 초기 치적조차 개망나니 타이틀에 묻힌 연산. 그가 캄캄한 방 안에서 아무리 후회해도 그의 인생을 돌이킬 수는 없었다. 아마도 그의 죽음은 화병(요샛말로 우울증)에 기인한 건 아니었을지.

지금 온 세계는 누구 하나 예외 없이 화병에 시달리고 있다. 오죽하면 코로나 블루라는 신조어가 생겼을까. 코로나로 인해 운신이 어려운 것뿐만 아니라 경제적인 타격은 어마어마한 것이어서, 참꽃이라도 뜯어먹어야 할 판이다. 신보릿고개. 모든 것이 멈춘 예측 불가능 시대.

연산군은 위리안치되어서야 비로소 폭주를 멈출 수 있었고, 울분과 후회로 점철된 날들을 보냈지만 빛나는 세상으로 돌아갈 수가 없었다.

빛이 보이지 않는 지금. 연산군의 출구 없는 단칸방이다. 그는 후회를 거듭해도 소용없었지만 우리는 다르다.

나는 반면교사(反面敎師-다른 사람이나 사물의 부정적인 측면에서 가르침을 얻는다는 뜻)라는 말이 좋다. 비슷한 말로는 타산지석(他山之石). 연산의 캄캄했던 시간은 빛으로 나아가지 못했지만, 우리는 코로나 블루를 끝내고 빛나는 시간을 맞이할 때 지금의 멈춤이 반면교사가 되어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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