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전준우 작가의 '사용할 수 없는 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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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전준우 작가의 '사용할 수 없는 돈'
  • 스타트업엔(StartupN)
  • 승인 2020.05.23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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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업엔 특별기획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 시리즈. 전준우 작가의 은사님에 관한 이야기

스타트업엔에서는 특별 기획으로, 사회 각계각층의 사람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연재하고자 한다. 배우론, 교육의 힘, 탁월한 책쓰기, 초격차 독서법, 하루 10분 부모연습 (가제 : 부모가 되고 나니 비로소 보이는 것들)을 집필한 '전준우' 작가의 일곱 번째, 은사님에 대한 이야기인'사용할 수 없는 돈'이다.

◇ 마음의 벽

몇일 전, 전화가 한 통 걸려왔다.

“준우씨, 잘 지냅니까? 요새 뭐하고 있어요?”
“아 예, 안녕하세요. 잘 지내시죠? 그냥 책 쓰면서 회사 다니고 있습니다.”
“예. 생각나서 한 번 전화했습니다. 조용할 때 한 번 놀러 오세요.”

아버지 연배의 은사님이었다.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 친분을 쌓은 분이었다. 그 분이 가진 내면의 깊이는 가늠할 수 없었다. 거칠게 살아온 내 인생에 진중한 충고와 격려를 해줄 수 있는 사람이 주변에 있다는 것은 분명히 놀라운 일이었고, 내 인생에 축복이었다. 그만큼 그 분의 삶을 존경했고, 삶에서 보여지는 겸손과 품격에 대한 권위도 인정했다. 날카롭게 단련된 칼과 같은 마음을 갖고 있었다.

당당한 걸음걸이, 상대를 집중하게 만드는 깊은 눈, 그리고 내면의 깊이. 확실히 마음이 깊고 겸손한 분이었지만, 거기까지였다. 마음에서 가깝다고 느껴본 적은 별로 없었다. 쉽게 다가가기가 어려웠다.

아버지만큼 나이가 많은 분이라는 것도 그 이유가 되었겠지만, 마음을 활짝 열고 다가가기 어려운 사람들은 모두 그만한 이유를 하나씩 갖고 있었다.

“자네는 내가 일을 시키고 싶어도 시킬 수가 없어. 마음으로 일하고, 마음으로 배우라고 해도 말을 안 듣잖아. 마음으로 사는 방법을 모르는데 그런 사람이랑 어떻게 일을 같이 하는가?”

국어사전에서 내면의 품격에 관해 기록되어있는 훌륭한 단어들을 모두 뽑아내서 사람을 빚으면 딱 저 사람이 되겠다 싶을 정도로 훌륭한 분이었지만, 늘 듣는 잔소리가 기분 좋을 리는 없었다. “젊은 사람이 왜 그렇게 생각이 없나?” 하는 잔소리를 피하려고 저 멀리 은사님이 보이면 조심스레 자리를 피해버린 적도 많았다.

게다가 평생을 건축업에 종사해온 분이었다. 마음이 깊고 겸손한 건 맞지만, 다혈질적인 성격에 목소리도 컸다. 그만큼 불협화음도 많았다. 면전에 대놓고 이야기하진 못했지만, 급기야 언젠가는 그간 있었던 이야기들을 장황하게 늘어놓으면서 “그래서 저는 선생님이 그렇게 하신 게 너무 싫고 불편했습니다. ”하고 메세지를 보낸 적도 있다. 잠시 이야기가 잘 풀리는가 싶더니 그때뿐이었다. 세대차이라는 건 확실히 극복하기 어려운 문제였다.

‘우리가 가질 수 있는 세상에서 가장 위험천만한 생각은 내가 누구보다 잘났고 우월하다는 생각이다.’라고 주장한 부시맨 교수(Brad Bushman, lowa state university)는 그의 저서 『It takes a parent』에서 이렇게 이야기했다.

"If kids begin to develop unrealistically optimistic opinions of themselves and those beliefs are constantly rejected by others, their feelings of self-love could make these kids potentially dangerous to those around them."

「아이들이 자신들의 비현실적이면서 낙관적인 의견을 조금씩 개진시켜 나가기 시작할 때 타인들로부터 지속적으로 거절과 비난을 받는다면, 그들의 이기주의적 감정들은 그들을 둘러싼 주변사람들을 무척 위험한 상황에 이르게 할 수 있다.」

문제는 나였다. 세대차의 문제는 아니었다.  이 분이 생각하는 방향과 내가 생각하는 방향은 항상 어긋났다. 나는 거만했고, 어리석었으며, 입으로만 겸손한 척 성실한 척 하는 사람이었다.

반대로 이 분은 마음의 중심을 보는 힘이 있었다. 이 분 앞에서는 함부로 거짓말을 할 수도 없었고, 농담따먹기 식의 말장난을 하는 것도 실례였다. 어른에 대한 예의를 말하는 게 아니다. 그만큼 마음에 힘과 깊이가 있었다.

그래서 나는 이분이 더 어려웠다. 언제까지 이런 불편한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가, 아무리 머리를 굴려보고 나름대로 해답을 짜내봐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런 불편한 관계가 재정립된 것은 2019년 9월, 가을비가 내리던 어느 저녁이었다.

◇ 마음을 열면 보이는

모처럼 가까운 지인들과 모임을 가지는 날이었다. 세상에서 만나는 풍파라는 단어가 아직은 익숙하지 않은 나이지만, 바쁜 일상 속에서 좋은 사람들과 함께 고즈넉한 저녁 시간을 가지는 것은 분명 기분좋은 일이었다.

일을 마치고 모임 장소로 갔는데 몇몇분들이 일찍 도착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계셨다. 거기엔 그 은사님도 함께 계셨다.

“준우씨, 어서 오세요. 식사는 했습니까?” “안녕하세요. 밥 먹고 왔습니다.”

슬그머니 다가가서 옆자리에 앉았다. 그리 편한 자리는 아니었지만 어디 갈 데도 없어서 무슨 이야기들을 나누시는가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은사님의 아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계셨다.

사모님이 많이 편찮으신 건 알고 있었다. 이 분과 알고 지낸 지 10년이 되었지만, 한 번도 사모님의 얼굴을 뵌 적은 없었다. 거동이 불편하셔서 외부활동은 일체 할 수 없다고만 들었다. 그럼에도 이분은 아내분이 나을 수 있다는 소망을 갖고 있었다.

 “집에 혼자 있으면 종일 노래도 듣고, 좋은 강연도 듣고 그럽니다. 계속 듣다 보면 그런 강연 중에서 한 구절이 귀에 안 들어가겠습니까? 그럼 또 힘을 내고 그러지요. 이제 좀 지나면 훌훌 털고 일어나서 다시 걸을 겁니다.” 아무 생각 없이 앉아서 테이블 위의 포도를 집어먹고 있다가, 무언가 뜨거운 것이 속에서 왈칵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마음이 깊고 겸손한 분이었지만, 다혈질에 목소리가 큰 은사님의 성격은 내가 쉽게 다가갈 수 없는 벽이었다. 남들이 보는 형편과 상관 없이 어린아이처럼 말씀하시는 그 분의 모습에서 나는 잔잔한, 그러나 무척 큰 감동을 받았다.

아버지만큼 깊고 따뜻한 마음을 느낀 뒤에야, 그 분의 뒷모습이 무척 존경스럽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 뒤로 마음을 열고 다가갔던 것 같다. 처음엔 쉽지 않았다. 어렵게만 느껴지던 은사님이었기에 무슨 이야기를 어떻게 이야기를 드려야 할 지 감이 오지 않았고, 주변에서 ‘매우 조곤조곤하고 정적인 사람’이라는 평가를 줄곧 받아온 나와는 달리 강한 성격과 직설적인 말투를 가진 은사님이 쉽게 편안하게 느껴질 리는 없었다.

그러나 오래 지나지 않아 그런 두려움은 차츰 사그라들었다. 누구를 만나던지 직접 마음의 맛을 발견한 뒤에는 편안하게 대할 수 있는 법이니까.

◇ 사용할 수 없는 돈

올해 초, 많은 일들이 겹치면서 마음앓이를 좀 했다. 심적으로 무척 힘든 시간을 보냈다. 게다가 첫째아들이 태어났는데 글쓰고 강의만 다니기엔 먹고 사는 것조차 벅찼기에 지인의 권유로 외국계 보험사에 입사했다.

평소 생각하던 보험업에 대한 인식과는 달리 매우 복잡하고 정교한 금융시스템 속에서 놀라움을 느꼈지만, 적응하기 쉽지 않았다.

나는 전형적인 ‘문과’ 체질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금융업과는 전혀 상관 없는 인생을 살았다. 내가 살아온 인생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뛰어난 사람들 사이에서 난 한참을 헤매었다. 경영자의 마인드를 갖는다는 것도 힘들었지만 무엇보다 마음의 고통은 쉽게 풀어지지 않았고, 이전에는 쉽게 넘겨버렸을 사소한 문제도 목에 핏대를 세우며 주장하기 일쑤였다. 마음에 힘이 없으니 어떤 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그렇게 전쟁같은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을 때, 이 분에게서 연락이 온 것이었다.

간만에 은사님을 만난 자리에서 나는 어린아이처럼 재잘재잘거리며 이야기했고, 무섭고 어려운 존재로만 느껴지던 은사님이 처음으로 아버지처럼 느껴졌다. “리더의 자격은 조울의 깊이에 따라 결정된다.”고 했던가. 그러고 보니 한 번도 이분에게서 ‘힘들다’거나 ‘어렵다’는 단어를 들어본 적이 없었다. 나는 이 분이 가진 마음의 그늘 아래에서 한참을 쉼없이 떠들어댔다.

조용히 내 이야기를 듣고 있던 이 분이, 갑자기 지갑에서 돈을 꺼내더니 내게 주셨다. 10만원이었다. “이 돈은 자네랑 상관 없어. 얼마전에 아들이 태어났다고 하는데 내가 축하도 못해주고, 코로나 때문에 한 번 찾아가보지도 못하고 미안해서 주는 거라. 아들 양말 한 켤레 사주고 아내 맛있는 거 사줘.”

그 분의 아들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건 그로부터 한 달쯤 전이었다. 외동아들이었고, 나보다 한 살 어린 동생이었다. 이유는 지금도 모른다. 우울증이 있었다는 것과, 장례식이 하루만에 끝났다는 것만으로 대강 지레짐작할 뿐이었다.

그 때도 은사님에게 전화를 걸어서 어린아이처럼 울었다. 그런 내게 은사님은 “나는 내 아내도, 내 아들도 지키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나는 이렇게 부족한 사람입니다. 우리 부족한 사람끼리 마음 나누면서 같이 삽시다.”하고 이야기하셨다.

“언제든지 연락하고 밥 얻어먹으러 오면 돼. 그래도 내가 나이가 있는데 밥을 사먹이지 얻어먹기 하겠나? 자주 연락합시다.”

용돈을 건네줄 며느리, 로보트 장난감을 사줄 손주, 예쁜 인형을 사줄 손녀, 그 분에게는 결코 가질 수 없는 것들이었다. 어쩌면 당연한, 아니 반드시 가져야 할 자연의 섭리조차 그분에게는 허락되지 않은 선물이었다. 그 분에게는 일상의 행복조차도 허락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 분은 단 한번도 두려워하거나 고통스러운 마음을 내비치지 않았다. 평소와 다름없는 그 분의 모습에서 나는 인간의 한계를 넘는 마음의 깊이가 얼마나 위대한 것인가를 느끼면서도, 강한 애착과 슬픔을 함께 느꼈다.

그 분이 내게 준 것은 돈이 아니었다. 그건 결코 사용할 수 없는 돈이었다. 그 분의 심장이었고, 그 분의 피였으며, 그 분의 숨결이었다.

글/사진 전준우 작가
글/사진 전준우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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