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준우 작가의 글쓰기 방법에 관한 시리즈 첫 번째

◇아침형 인간

아침 5시 30분. 나의 기상시간이다. 그다지 빠른 시간도 늦은 시간도 아니지만 나름 아침형 인간이라고 자부하고 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다 보니 얻어지는 게 많다. 책을 한 장 더 읽을 수 있고, 저녁에 못한 설거지에 밀린 빨래, 다림질도 느긋하게 할 수 있다.

그렇다고 유달리 부지런하다거나 이렇다 할 심경의 변화가 있었던 건 아니다. 순전히 태어난 지 5개월 차 되는 아들 때문이다.

아들은 저녁 7시, 늦어도 8시만 되면 앙앙거리며 운다. 그럼 아내는 기다렸다는 듯이 분유를 먹이고 초저녁 재우기에 돌입한다. 직업 특성상 퇴근시간을 자유롭게 조절할 수 이따 보니, 그 시간쯤 되면 나도 퇴근해서 아들을 씻기고 함께 재운다. 그렇게 꿈나라로 여행을 떠난 아들은 아침 5시 반까지 잠을 잔다. 밤중에 깨서 우는 경우는 딱 한 번 있었다. 그때도 잠깐 앙앙거리긴 했지만, 아내가 토닥토닥해주니 금세 잠들어버렸다.

덕분에 저녁 7시부터 아침 5시 반까지는 오롯이 우리의 시간이다. 5개월 된 신생아 혼자 집에 둔 채 밖에 돌아다닐 수도 없고, 외박을 할 수도 없다. 그러다 보니 아내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엄청나게 많아졌다. 생활이 규칙적인 아들이 우리에게 훌륭한 기회를 제공해 준 셈이다.

◇서재의 품격

아들이 꿈나라로 떠나면 서재를 제외한 집안의 모든 전등을 끈다. 그리고 아내는 뜨거운 아메리카노, 나는 커다란 물병을 들고 서재로 간다. 두 번째 하루가 시작되는 순간이다. 서재가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크다. 서재는 우리 가족이 머무는 공간 중에서 가장 조용한 곳이자, 나의 내면을 재창조할 수 있는 공간이다. 결혼할 때 할머니께서 주신 쌈짓돈 200만 원으로 책꽂이와 책상을 샀고, 서재를 만들었다. 영화는 가끔 보지만 티브이는 안 본다. 서재에서 시간을 보내는 걸 즐긴다는 점에서 확실히 얻는 게 많다.

서재에서 시간을 공유한다는 점에서 우리는 같은 내면의 방향성을 갖고 있지만, 취미는 완전히 다르다. 아내는 종영된 드라마를 순차적으로 보는 것과 영어 통역 공부하는 걸 좋아하는 반면, 나는 드라마를 즐기지 않는다. 독서와 글쓰기처럼 읽고 쓰는 것에 주로 관심이 있다. 장르를 가리지 않고 책을 읽지만, 에세이나 그림이 들어간 종류는 읽지 않는다. 오래된 고전, 이를테면 삼국지나 수호지 같은 책을 즐기는 편이고, 마이클 샌델처럼 이름이 알려진 작가들의 책을 즐기는 편이다.

재미있는 경험도 있었다. 언젠가 대형서점에 갔는데 가판대에 두꺼운 책들이 쌓여 있었다. 모두 평소에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책 들이었다. 그런데 낯익은 책들이 대부분이었다. 집에 와서 보니 서점에 쌓여있던 책들이 책꽂이에 그대로 꽂혀있는 게 아닌가. 한 권 두 권 사서 읽었던 책들이 대형서점 정중앙 가판대를 차지하고 있는 걸 보니 한편으론 신기하기도 하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좋은 독서습관이 형성되었구나 하는 생각에 감회가 새로웠다.

이런 경험을 두고 “작가라서 그런지 어려운 책만 골라 읽는구나.” 하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틀린 말도 아니다. 꾸준한 독서를 통해 섭렵하는 책의 종류와 깊이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독서의 관점에서 봤을 때 내가 어려운 책만 골라서(?) 읽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시간의 압축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금보다 조금 더 발전된 상황을 원하는 경우에 시간의 밀도를 촘촘하게 압축해서 사용하려는 경향이 있다. 시간의 압축은 어떤 일을 하기 전에 투여되는 시간에 비해 높은 결과물을 도출해내기 위한 노력을 더 많이 기울이기로 결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만큼 집중된, 몰입된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다. 시간의 압축으로 인한 결과물이 어영부영 시간을 활용했을 때 얻어지는 결과물보다 훨씬 더 밀도가 높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을 두고 흔히 ‘선택과 집중’이라고 이야기한다.

예를 들어 헬스장에서 운동을 한다고 했을 때, 혼자서 운동하는 것보다 트레이너의 도움을 받으면서 운동을 하면 훨씬 쉽고 빠르게 근육량을 늘릴 수 있다. 성적이 오르지 않아서 힘들어하는 학생이 과외 선생님의 도움으로 성적이 올라가는 경우도 그렇다. 헬스장 트레이너, 과외 선생님, 혹은 그와 비슷한 모든 과정들은 시간의 밀도를 높여서 시간을 단축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기 위해 존재하는 도구로서의 목적을 갖고 있다.

운동을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사람에게는 퍼스널 트레이너의 식습관 제안과 훈련 방식이 어렵게 느껴질 수 있다. 당연하다.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올바른 인도자의 제시는 몸으로 맞닥뜨려서 습관으로 굳어지기 전에는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익숙해지면 변화는 시간문제다. 처음엔 작은 변화처럼 보일지라도 시간이 지날수록 변화의 속도와 방향성은 눈에 띄게 향상된다.

내게는 책이 그런 도구가 되었다. 이렇다 할 계획과 구체적인 검토도 없이 책을 구매하진 않지만, 평생 글을 쓰면서 살기로 마음을 정한 뒤로는 내 수준을 뛰어넘는 어려운 책을 구매해서 읽는 것이 습관처럼 굳어져 버렸다. 내 수준에 맞지 않는 책들을 읽기로 마음을 정한 뒤로는 이해가 되지 않아도 어려운 책을 골라서 읽었다. 즐거움으로서의 독서보다는, 한 단계 성장하기 위한 훈련으로서의 독서였다.

지나온 과정들을 돌아보면 내 인생은 게으름, 교만, 불성실, 그로 인한 지독한 실패로 굳어진 시간의 연속이었다. 세상에 나만큼 자기 계발에 실패한 사람도 없을 거라는 생각을 갖고 하루하루를 살았다. 그리고 실제로도 그랬다. 잘하는 것보다 못하는 게 더 많은 사람이라는 생각에 좌절감에 빠진 적도 많았다. 독서와 글쓰기는 그런 잘못된 관념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큰 힘이 되어준 기폭제였다.

처음부터 어렵거나 부담스러운 책을 읽고 글쓰기를 시작한 것은 물론 아니었다. 어려운 책을 섭렵하는 것과 꾸준히 글쓰기를 하기로 마음먹은 이유는 독서와 글쓰기를 통해 얻어지는 시간의 압축이 내 삶에 미치는 영향이 적지 않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이해가 되고 안 되고는 둘째 문제다. 트레이너 선생님의 제안이 이해되지 않아도 따라서 배우다 보면 멋진 근육이 만들어지고, 과외 선생님이 밑줄 긋고 외우라는 것만 외워도 성적이 올라가지 않은가? 독서와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글과 책에 대하여

첫 책을 출간하기 전에 책을 한 번 써보겠다고 펜을 부여잡고 하루 종일 끄적거려도 한 장 쓰는 게 불가능했다. 6개월 동안 열심히 노력했는데 다 쓴 자료를 모아보니 90페이지가 채 안 됐다. 그마저도 책으로 엮을 만한 내용이었다기 보다는 어쭙잖은 수준의 글이었다. 무척 심란했고, 되려 시간만 낭비하는 것 같아서 두려운 마음도 들었다. 서점에 빼곡하게 꽂혀있는 책은 도대체 누가 쓴 책인지, 그 사람들은 300페이지 분량의 책을 어떻게 쓰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수준 높은 독서를 시작으로 필사와 글쓰기를 시작한 게 그 무렵이었다.

어느 순간 독서와 글쓰기가 일상생활의 습관으로 자리 잡으면서 이전과 비교할 수 없는 속도로 글쓰기에 탄력이 붙기 시작했다. 글쓰기는 학문이나 이론으로 정립되는 기술이 아니라 언어의 문서화라는 점을 깨닫는 순간 엄청난 속도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글쓰기에 대한 어려움과 두려움도 사라졌다.

"8시간 분량의 강의자료를 엮으면 한 권의 책이 됩니다."

어느 지인에게서 들은 말이다. 한 권의 책에 담긴 내용의 깊이가 8시간 분량의 강의자료라는 말도 되지만, 누군가에게 정보를 전달하는 목적의 강연자료를 글로 엮으면 책이 된다는 말과 같다.

누가 봐도 어려운 책은 오랜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대부분의 책은 누구나 훈련을 통해 2,3시간 안에 한 권을 읽을 수 있다. 그렇게 읽을 수 있도록 만들어진 게 '대부분의 책'이다. 그 책은 곧 언어의 문장화이며, 언어를 글로 풀어쓴 것에 불과하다. 8시간 집중해서 들어야 할 강연을 2,3시간 안에 읽을 수 있는 책으로 만들어두었다면, 굉장히 많은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는 말과 같다. 한 권의 책 안에는 한 사람이 쌓아온 인생의 지혜가 들어있다는 말과 다름 아니지 않은가?

◇탁월한 필력의 시작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박지성, 손흥민과 같은 축구선수는 천부적인 재능 위에 지독한 훈련, 자기 관리의 습관화, 그리고 운명이라는 소스가 어우러진 역사의 결정체다. 신흥 스타로 떠오르는 음바페도 그렇고 재능은 확실히 무시할 수 없는 영역이다. 그러나 그들이 일반 사람들보다 더 많은 트래핑, 더 많은 경기, 더 많은 패배를 경험했다는 데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 믿는다.

능력 있는 작가도 물론 존재한다. 글쓰기도 수준 높은 창의력을 요구하는 예술의 일종인데 능력 있는 작가가 왜 없겠는가? 그러나 글쓰기에 있어서만큼은 능력, 재능이 별로 의미가 없다. 꾸준히 읽고 쓰기만 하면 어느 순간 몰라보게 달라진 문장력을 발견하게 된다.

무엇부터 써야 하는지 모르겠다면, 어떤 글을 써야 하는지 모르겠다면, 일단 펜부터 들어라. 펜이 없다면 컴퓨터를 켜라. 그리고 "무슨 글을 먼저 써야 하는지 잘 모르겠지만, "하고 일단 써보라. 시간을 압축시키는 글은 그때부터 시작된다는 걸 알게 될 것이다.

글/사진 전준우 작가
글/사진 전준우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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