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재희 기자의 ‘스토리가 있는 꽃 이야기’ ⑦
상태바
방재희 기자의 ‘스토리가 있는 꽃 이야기’ ⑦
  • 방재희 객원기자
  • 승인 2020.06.24 14:3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사랑한다면 자귀나무처럼 (feat.여설수)

화려한 공작을 연상시키는 자귀나무 꽃이 나무에 그득 핀 걸 보니 장마철이다.

장마철에 꽃을 피우는 자귀나무.습한 공기속으로 퍼지는 꽃향기가 일품이다
장마철에 꽃을 피우는 자귀나무.습한 공기속으로 퍼지는 꽃향기가 일품이다

자귀나무는 잠자는 시간을 귀신같이 알아 활짝 벌렸던 잎을 접어 짝을 찾고, 장마철을 귀신같이 알아 꽃을 피운다. 영물이다.

우리는 실수가 없이 정확하고 재주가 뛰어날 때 '귀신같다'라는 표현을 쓴다. 故 신영복 교수는 나무를 일컬어 '신발 한 켤레 넓이도 안되는 땅뙈기에서 평생을 보낸다'라고 했는데, 한낱 미물에 불과한 나무가 보여주는 정확함 때문에 자귀나무에는 귀신귀(鬼)자가 붙었다. 

농경사회의 우리 조상들은 자귀나무를 꽤나 신뢰했나 보다. "자귀나무 움이 트면 늦서리 걱정없이 곡식을 파종하고, 첫 꽃이 피면 팥을 심어라"며 농사 맞춤형 자명종으로 삼기도 하고, "자귀나무 꽃이 만발하니 올해 농사는 풍년"이라며 가을 수확을 미리 점치기도 했다. 게다가 농사일의 1등 공신인 소가 자귀나무의 길쭉한 쌀알처럼 생긴 잎을 좋아해서 소쌀밥나무라고 불렀으니 여러모로 고마운 나무다.

소쌀밥, 자귀나무 잎이 밤에는 홀아비 잎 없이 서로 짝을 맞추어 잠을 자는 모습 때문에 한자이름은 합환목(合歡木), 야합수(夜合樹)다. 일본에서는 아예 '잠자는 나무'라고 부른다.

한낮에 활짝 벌린 자귀나무 잎
한낮에 활짝 벌린 자귀나무 잎
짝맞춘 자귀나무는 deep sleep중
짝맞춘 자귀나무는 deep sleep중

중국 당나라 때 금슬 좋은 부부에게 다투지 않는  비결을 물었다. 그 부인이 단오 때 자귀나무 꽃을 따서 말린 다음 베개 속에 넣어두었다가 남편의 기분이 안 좋을 때 조금씩 꺼내 술에 타주면 기분이 편안해진다는 비방을 공개하자 너도나도 따라 했다고 한다.

자귀나무의 학명은 Albizia julibrissin다. julibrissin은 '비단 꽃'이라는 의미로, 영어 이름은 silk tree, 충청도에서는 '공작화'라고 부른다. 모두 꽃잎 한 올 한 올이 비단처럼 보드랍고 몽환적인 데서 유래했다. 더욱이 자귀나무 꽃에서는 기분 좋은 향기가 난다.

충청도에서는 '공작화',영어로는 silk tree
충청도에서는 '공작화',영어로는 silk tree

<동의 보감>에서는 '자귀나무가 오장을 편안하게 하고, 마음을 안정시키며, 근심을 없애서 만사를 즐겁게 한다'라고 했다. 천연 우울증 치료제다. 실제로 자귀나무꽃차는 우울하거나 잠 못 드는 사람에게 권한다.

신경쇠약이나 불면증에 효과적인 자귀꽃차
신경쇠약이나 불면증에 효과적인 자귀꽃차

우울증과 불면증은 인간관계가 꼬이거나 가정이 불화할 때 주로 찾아온다. 자귀나무의 수면운동을 보고 야합수(夜合樹)라는 다소 야한 이름을 붙였지만, 부부간의 연합을 단순히 육체적인 관계만으로 얘기할 수 있을까?

미국 코넬대와 이탈리아 피사대 연구팀이 각각 남녀간에 사랑을 느끼는 기간을 연구했다. 그 결과 사랑의 유효기간은 18개월에서 길어야 30개월인 것으로 나타났다. 대뇌에 항체가 생겨 더 이상 도파민이나 페닐에틸아민이 생성되지 않고 사랑의 감정이 변하더라는 얘기다. 결혼 3년 차에 이혼율이 높은 이유에 대한 생리적인 근거다.

중년부부는 '전우애'로 산다고 우스개 삼아 얘기하지만, 사랑의 콩깍지가 벗겨진 후에도 함께 다양한 삶의 전장에서 지지고 볶으며 다져진 전우애는 또 다른 사랑의 모습이다.

자귀나무 열매는 콩꼬투리 모양으로 여럿이 함께 달린다. 열매가 바람결에 달그닥거리는게 여성들의 수다를 연상한다고 여설수(女舌樹)라고 부른다. 직역하면 시끄러운 여인의 혀 나무, woman's tongue tree다. (이제는 고교 한자교육도 선택과목이 됐으니, 누가 한자를 익힐까? 영어로 번역해야 알아듣는 시대가 됐다. 슬프다.)

열매가 바람에 달그닥거린다고 '여설수(女舌樹)'라는 별명이 붙었다
열매가 바람에 달그닥거린다고 '여설수(女舌樹)'라는 별명이 붙었다

여성의 입장에서 이런 남존여비 사상의 산물은 좀 불편하지만, 어찌 보면 맞춤한 이름인 듯싶다. 인간관계가 서먹할 때 화해의 총대를 메는 사람은 먼저 말문을 여는 사람이다. 말이 서로 오가야 오해도 풀리고 이해가 깊어진다. 부부 중 그 역할은 주로 아내가 맡는다.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말의 열매가 사람의 배를 채워 주고, 그 입술에서 나오는 말의 결과로 만족하게 된다. 죽고 사는 것이 혀의 힘에 달렸으니, 혀를 잘 쓰는 사람은 그 열매를 먹는다"라며 말의 힘을 강조한 잠언의 바로 다음 구절에 "아내를 맞이한 사람은 복을 찾은 사람이요, 신으로부터 은총을 받은 사람이다"라는 구절이 등장한다. 가정의 분위기를 이끄는 건 여설(女舌)이라는 두둔이다.

현대사회에서 여성이 다양한 분야에서 남성보다 탁월한 능력을 보여주는 것도 바로 이 여설(女舌) 덕분이다. 말은 많이 해본 사람이 잘 한다. 정성을 담아 혀를 '잘' 써야, 나도 살고, 남도 살고, 사회도 산다.

미국 최고의 화술 전문가 카민 캘로가 쓴 책 <말의 원칙>에서는 의사소통 능력이 자신을 대체 불가능한 존재로 자리매김하게 만든다면서 리더로 성장하는 제1의 능력을 마음을 움직이는 말의 기술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단오다.

향긋한 자귀나무 꽃을 따다가 말려서 티타임을 가지며 말의 힘을 느껴보자.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우울한 코로나19 전쟁터에서도 꽃 피는 전우애를 나눌 수 있을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