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준우 작가의 글쓰기 방법에 관한 시리즈 세 번째

◇말의 힘, 말의 힐(?)

말 한 마디에 천냥빚을 갚는다.

한번쯤 들어본 속담이다. 말의 중요성을 알기 쉽게 설명한 이 속담은 말이 가진 가치와 파급력의 영향력을 쉽고 재미있게 알려주고 있다.

천 냥의 가치는 얼마일까? 인터넷으로 천 냥의 가치를 검색해보았다. 18세기 서울 기준으로 쌀 한섬(약 144kg)의 가격이 5냥이었다. 지역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겠지만, 현재 20kg 쌀 한 포대의 가격은 약 5만원 정도다. 그럼 쌀 한 섬의 현재 시세는 대략 36만원 정도라는 계산이 나온다. 18세기 당시 천 냥으로 쌀 200섬을 구입할 수 있었다고 할 때, 천 냥의 가치는 현 시세로 약 7,200만원 정도의 가치가 있다는 의미가 된다.

그리 큰 돈도 작은 돈도 아니지만, 18세기라는 시대 정황상 흰 쌀의 가치를 살펴봤을 때 지금의 수십억 이상의 가치를 내포하고 있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 그만큼 말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속담이라고 할 수 있다.

어릴 때부터 말을 조리있게 한다는 이야기를 종종 들었다. 학창시절 논술시험에서 1등을 한 적도 있다. 논술은 언어를 활자화한 것에 불과하지 않은가? 공부에는 영 소질이 없었지만 글쓰고 말하는 건 타고난 재능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20대 중반의 어느 날, 존경하던 은사님에게 호되게 야단을 맞았다.

“자네는 말이 너무 많아. 본인이 말을 잘한다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자네가 이야기할 때 상대방이 불편해하는 게 느껴지지도 않는가?”

말은 주워담을 수 없다. 입 밖으로 꺼내는 순간 음파의 진동으로 사라진다. 그러나 때로는 비수가 되고, 칼이 되며, 잊을 수 없는 은혜로 남는다. 말이 가진 치명적 단점이자 무기다. 힘이 되는 말이 있는 반면, 상대방을 비난하고 힐난하는 용도로 쓰이는 말도 많다.

대학생 시절, 친하게 지내던 친구와 메세지를 주고 받던 도중 말실수를 했다. 시작은 작은 실수에 불과했다. 그러다 급기야 험한 말이 오가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오래 지나지 않아 내가 먼저 사과하고 끝내긴 했지만 이후에도 서먹서먹한 관계가 유지되면서 결국 친했던 친구를 잃어버린 경험으로 남고 말았다.

말을 잘한다는 건 그저 자신의 생각을 조리있게 표현할 수 있다는 말이지, 마음이 깊다거나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겸손함을 갖추었다는 뜻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는 것을 그 때 알았다. 강의를 하는 동안에는 말을 많이 하지만 평소엔 사람들이 답답하다고 느낄 정도로 말을 아끼는 성격은 이때부터 만들어졌다.

◇같은 듯 다른 말과 글

글은 조금 다르다. 글쓴이의 마음에 들 때까지는 탈고는 끝이 없다는 치명적 단점 이외에, 글은 언제든지 수정이 된다는 장점이 있다. 나는 글을 쓸 때 칼럼은 평균 3번, 책은 평균 30번 퇴고를 하는 습관이 있다. 그럼에도 종종 오타가 발견된다. 문제 없다. 수정하면 그만이다.

지난 몇 년간 지독한 활자중독에 빠져 있었다. 한달 월급의 대부분을 책을 사서 모으고 읽는 데 빠져있었다. 남들 보기에 좋은 습관이라는 단순한 생각, 직장생활을 하면서 종종 찾아오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시작한 독서습관은 날이 갈수록 깊어져서 어느 순간부터 책을 손에서 떼는 순간 긴장하는 버릇이 생겼다. 저자의 사상과 경험을 습득하려는 목적에서의 책읽기에서, 탁월한 문장에서만 느껴지는 전율이 좋아서 글 자체를 음미하게 되었다.

글쓰기를 시작하면서 내게 큰 영감을 준 책들이 몇 가지 있다. 그 중 하나가 『대망(大望)』이다.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일대기를 다룬 야마오카 소하치의 장편소설로, 1부에만 무려 12권이 있는데 권당 600페이지가 넘는 글이 깨알같은 글씨체로 쓰여져 있다. 다른 저자가 집필한 2부 3부까지 합하면 총 36권에 달하는 엄청난 분량의 대하소설이다.

큰 영감을 줬다고 하니 페이지가 너덜너덜해지도록 읽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부끄럽게도 몇년 째 2권에서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소설을 별로 즐기지 않고, 새로운 책을 구입할 때마다 한 번에 네댓권 씩 구매해서 돌려보는 습관 때문에 하나에 집중하지 못한다.

언젠가는 완독하리라 다짐하지만, 쉽진 않을 듯 싶다. 줄거리가 지나치게 어렵다거나 따분하다기보다는, 문장들이 너무 아름답고 매끄럽게 쓰여져서 찬찬히 음미하면서 읽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두 시간이면 다 읽고 줄거리까지 쓸 수 있는 신간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깊이가 숨어 있었기에, 일본을 대표하는 대하소설로 손색이 없다는 생각을 종종 했다.

“별을 노려보면 앞것이 떠오르고 주방의 허둥거리는 소음이 귀에 들어오면 뒷것이 마음을 차지한다. 결국 인간은 살아 있는 한 영혼의 눈을 두려워하며 늘 무엇인가를 베려 조바심하고 고함치는 수밖에 도리가 없는지도 모른다.” ­『대망 2권 '난세의 모습'』, 199p, 동서문화사

수년 전, 대망을 9번 읽었다는 사람을 만나본 적이 있다. 대학교 2학년 때 9번을 읽었단다. 처음 읽을 때는 필자처럼 2권에서 막혔는데, 그 때 한 번 마음을 먹고 읽어내면 그 다음부터 진도가 잘 나간다고 했다.

내가 책을 썼다고 하니 사람 좋아보이는 얼굴로 밝게 웃어주던 분이었지만, 책에 대해서만큼은 묻는 질문에 “그 책은 아직 못 읽어봤어요.” 라는 말을 한 번도 하지 않았다. 그 분의 소개로 『코스모스』를 읽었고,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도전했다. 둘 다 완독은 아직 못했다.

비교적 신작으로는 강원국 저자의 『대통령의 글쓰기』가 있다. 자기계발서이긴 하지만 글쓰기에 관련된 책으로는 국내에서 손가락 안에 꼽히는 훌륭한 책이 아닐까 생각할 정도로 깔끔하다. 무엇보다 글이 굉장히 쉽다. 글쓰기에 관련된 책을 쓴건데, 이토록 쉽고 간결하게 쓸 수 있다니, 놀랄 따름이다.

글을 쉽게 쓴다는 말은 담백하다는 말과 같다. 담백하다는 게 무슨 말일까?

“남의 글을 쓰다가 남의 회사를 다니다가 우연히 출판사에 들어갔고, 난데없이 베스트셀러 저자가 돼서 지금은 저자 겸 강연자로 살고 있다.”

『강원국의 글쓰기』 첫 장 프로필의 서두를 장식하는 문장이다.  저자소개 첫 줄에서부터 담백한 글이란 무엇인가를 알려주고 있다.

강원국 작가는 보통 사람이 아니다. 일단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했다. 남들 놀 때 놀고 남들 잘 때 자다가 가는 학교가 서울대는 아니지 않은가? 대우그룹 김우중 회장의 회장비서실에서 스피치라이터로 근무하며 연설문 작성을 도왔고,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의 연설비서관실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다.

글쓰기에 있어서만큼은 대한민국 0.1% 안에 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요즘에는 티비에도 종종 얼굴을 비치는 모양이다. 그런 사람이 자신을 소개할 때 “남의 글을 쓰다가 남의 회사를 다니다가 우연히 출판사에 들어갔고, 난데없이 베스트셀러 저자가 돼서 지금은 저자 겸 강연자로 살고 있다.” 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담백한 말의 시작점

말을 조리있게 한다는 말은, 상대방의 눈높이에 맞춰서 이야기한다는 말과 같다. 사람들이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언어를 사용해서 마음을 표현한다는 말일 것이다. 글도 마찬가지다. 글은 누구에게나 쉬워야 한다. 어린아이에게 수박을 설명할 때, 햇빛을 설명할 때, 어린아이의 표현을 사용할 줄 알아야 한다. 깊게 생각하지 않으면 어려운 말을 사용하게 되고, 어려운 글을 사용하게 된다.

“놀랍게도 녹음은 한 번도 끊어지지 않는다.” ­『대통령의 글쓰기』, 18P, 메디치

강원국 저자는 두 대통령이 생각이 깊은 분들이었다고 이야기한다.  늘 철저하게 준비하고, 생각하고, 퇴고했다고 책에서 밝힌 바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연설문 하나를 만들기 위해 A4용지 500장 분량의 자료를 검토했다고 이야기한다. 오래전 고인이 된 분이지만, 한 나라의 대통령으로 거처하는 동안 겪었을 고초와 어려움이책을 통해 전해진다.

부끄럽게도 나는 정치를 잘 모른다. 크게 관심을 두지 않고 산다. 앞에서 언급한 두 대통령의 업적, 그와 반대되는 행실에 대해 왈가왈부할 생각은 단언컨대 전혀 없다. 그러나 정치를 한다는 사람들의 한마디 한마디가 가지는 파급력이 내가 던지는 말과 글보다 훨씬 더 힘이 있고 무서운 영향력을 갖는다는 것쯤은 안다. 말의 영향력, 그리고 말을 글로 옮겼을 때 얻어지는 파급력이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하는지 안다면 많은 것이 달라지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글은 말에 기초한다. 말은 마음에 기초한다. 담백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에게서 담백한 말이 나오고, 담백한 글이 나온다. 담백한 글은 평범하고, 소박한 글이다. 어렵게 이야기하거나 어렵게 말하지 말고, 힘주어 글쓰려고 하지 않고 평범한 글을 쓰는 습관을 들인다면 충분히 좋은 글이 나올 수 있다고 믿는다.

글을 쓰는 데는 제한선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는다. 사상, 종교, 국가, 가치관을 뛰어넘는다. 어린아이가 쓰는 글, 선생님이 쓰는 글, 경찰이 쓰는 글 모두 다르지만, 살면서 만들어진 마음을 담는다는 점에서 말과 글은 동일하며 제한선이 없다. 글과 말을 통해 마음은 연결되고 그릇 역시 만들어진다. 담백한 말과 글의 시작이다.

글/사진 전준우 작가
글/사진 전준우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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