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재희 기자의 ‘스토리가 있는 꽃 이야기’ ⑨
상태바
방재희 기자의 ‘스토리가 있는 꽃 이야기’ ⑨
  • 방재희 객원기자
  • 승인 2020.07.27 13:2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연꽃이 불교의 상징만은 아니랍니다

남양주 세미원에는 올여름에도 연꽃이 그득 피었다. 은은한 파스텔톤의 그라데이션이 멋진 큼지막한 연꽃은 고고한 듯 여린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설레며 찾아간 걸음을 기쁘게 하는 매력만점의 선물이다.

연꽃이 그득 핀 남양주 세미원

수련은 연꽃보다 작지만 조금은 더 당차게 생겼다고 할까. 이참에 연꽃과 수련의 차이를 짚어보자. 하화(荷花)라고 부르는 연꽃은 수면에서 1m 정도 떨어져 피는 정수(挺水, 물 위로 높이 솟는다는 뜻) 식물이다.

둥글고 커다란 잎은 발수성이 있어서 물을 머금지 않는다. 비가 오는 날이면 연잎 위로 빗방울이 구슬처럼 구르며 모이다가 낮은 잎들로 미끄럼 타듯 떨어지는 재미있는 모습을 만날 수 있다. 연잎이 수분을 머금지 않기 때문에 기름진 음식을 싸는 용도로 사용되어 왔는데, 특히 연잎에 여러 곡식을 감싸서 찐 연잎밥은 그 향과 맛이 일품이다.

그윽한 연꽃 향기를 즐길 수 있는 연꽃 차는 차의 최고봉이다. 법정 스님은 연꽃을 따서 차로 우리는 것조차 살생이라 저어하여 꽃봉오리가 닫히기전에 잎차를 넣어두었다가 꽃봉오리가 열리는 이른 아침 찻잎을 꺼내어 찬물에 우리는 방법을 즐겼다.

보통의 식물은 꽃이 진 후에 열매를 맺지만 연꽃은 꽃과 열매가 동시에 생장하기 때문에 연밥 안에 가득한 연자는 빠른 시일에 아들을 낳으라는 다산의 상징이 되었다. 연자는 껍질을 까서 먹기도 하고, 단단한 표피 덕에 염주로 쓰이기도 한다.

지난 2009년 어느 날, 함안군의 아라가야 옛 궁터에서 7백 년 된 연자가 발견됐다. 단단한 표피에 싸여 타임캡슐을 타고 건너온 놀라운 생명은 700년 만에 꽃을 피워냈는데, 이 '아라홍련' 군락은 함안 연꽃테마파크에 가면 아라 가야인들이 보던 그 모습 그대로 만날 수 있다.

타임캡슐에 담겨와 700년 만에 꽃을 피운 아라홍련의 붉은빛이 아름답다-출처: 함안군 공식 블로그
타임캡슐에 담겨와 700년 만에 꽃을 피운 아라홍련의 붉은빛이 아름답다. (출처: 함안군 공식 블로그)

비타민과 미네랄이 풍부한 연근도 다양한 음식재료로 쓰이니 뭐하나 버릴 게 없는 식물이다. 우리 옛 그림과 장식에 등장하는 건 바로 이 연꽃이다. 연근을 얻기 위해 연농사를 지으며 꽃도 향도 덤으로 누렸기 때문이다. 

단원 김홍도의 연꽃 그림(출처:간송미술관)
단원 김홍도의 연꽃 그림(출처:간송미술관)

반면 수련은 연화(蓮花)라고 부르며, 잎도 꽃도 수면에 닿은 부수(浮水,물 위에 뜬다는 의미) 식물이다. 수술만 많아서 열매도 맺지 않고, 연근도 없으며, 잎이 작은 데다가 발수성이 없어서 물을 머금으니 포장용으로도 실격이다. 

잎도 꽃도 물에 닿은 수련. 연꽃에 비해 꽃을 오래 본다
잎도 꽃도 물에 닿은 수련. 연꽃에 비해 꽃을 오래 본다

다만 연꽃이 한 꽃당 3일만 피어있고, 개화기가 7~8월로 다소 짧은 것과 달리 수련은 한꽃당 5일, 개화기는 5~9월로 길어 꽃을 오래 볼 수 있기 때문에 관상용으로 더 적합하다.

모네의 수련 그림에 등장하는 것은 수련이다. 그는 연근 농사가 필요 없었을 터. 지베르니의 정원에 수련을 심고 꽃이 피어있는 여름 내내 수련 그림을 그렸다. 250장의 수련 그림은 같은 장소에서 그렸지만 같은 게 없다.  모네 수련 그림의 주연은 시시각각 달라지는 빛과 그것을 비추는 물이었고, 수련은 그 중심을 잡아주는 역할을 했다고 할까.

모네가 반했을 물, 빛, 수련
모네가 반했을 물, 빛, 수련
모네의 수련(출처:프랑스 오랑주리 미술관)
모네의 수련(출처:프랑스 오랑주리 미술관)

수련은 水蓮이 아니라 睡蓮이다. 물에서 피는 연꽃이 아니라 잠자는 연꽃이라는 의미다. 아침에 피고 저녁이 되면 오므려 자는 습성을 표현한 것이다. 개인적 의견으로는 연꽃이 대부분 오전에 가야 활짝 핀 꽃을 보는 만큼 연꽃이나 수련 모두에게 잠잔다는 한자를 붙이고, 수련은 수면에 가까우니 물수 자를 써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다.

수련의 원산지 이집트에서 벽화나 장식에는 수련이 자주 등장한다.

내세의 안내서인 '사자의 서(Book of the Dead)'에서는 수련을 태양에서 나온 가장 순수한 꽃이라고 부르고 있다. 고대이집트의 수련은 태양신을 상징한다. 태양이 뜨면 꽃이 피고 태양이 지면 꽃이 오무라지는 모습에서 재생, 부활, 영생의 상징이 되어 무덤의 벽화나 신전의 기둥을 장식했다.

네바문 무덤 벽화 주인공의 오른팔에 둘린 연꽃은 미라가 된 그가 죽음 후에도 부활하기를 바라는 소망을 담았다. (출처:영국박물관)
네바문 무덤 벽화 주인공의 오른팔에 둘린 연꽃은 미라가 된 그가 죽음 후에도 부활하기를 바라는 소망을 담았다. (출처:영국박물관)

연꽃은 고대 인도의 여러 신의 상징물로 등장하다가, 부처의 탄생을 알리는 불교의 상징이 되어 극락세계에서 환생하고 싶은 소망의 꽃으로 이어졌다.

우리 역사에도 연꽃무늬가 오래전부터 등장하는데 고구려 벽화, 삼국시대 기와, 조선 궁궐의 연꽃무늬의 의미는 같은 듯 다르다.  

고구려고분 쌍영총 널방 천장의 연꽃무늬. 태양을 닮았다. (출처:네이버 지식백과)
고구려고분 쌍영총 널방 천장의 연꽃무늬. 태양을 닮았다. (출처:네이버 지식백과)
신라 황룡사 거대한 치미에 새겨진 연꽃무늬와 신라인의 얼굴. 신라인은 왜 건물 높이 올려 까마득히 보이지도 않는 치미에 얼굴을 새겼을까?
신라 황룡사 거대한 치미에 새겨진 연꽃무늬와 신라인의 얼굴. 신라인은 왜 건물 높이 올려 까마득히 보이지도 않는 치미에 얼굴을 새겼을까?
경회루의 연꽃무늬. 연못을 가득 채웠던 연꽃은 간데없다
경회루의 연꽃무늬. 연못을 가득 채웠던 연꽃은 간데없다

불교 전래 전에 발견되는 연꽃무늬는 태양처럼 치세가 영원하기를 바라는 의미를 담았을 것이고, 불교 이후 유교국가에서의 연꽃은 군자의 청빈과 고고함에 비유되었다. 

중국 북송 시대의 유학자 주돈이(周敦頤)는 '애련설(愛蓮說)'에서 “내가 오직 연꽃을 사랑함은 진흙 속에서 났지만 물들지 않고, 맑은 물결에 씻어도 요염하지 않으며, 속은 소통하고, 밖이 곧으며, 덩굴지지 않고, 가지가 없기 때문이다. 향기가 멀수록 더욱 맑으며(香遠益淸), 깨끗이 우뚝 서 있는 품은 멀리서 볼 것이요, 연은 꽃 중에서 군자라 하겠다.”라고 하였다.

경복궁 후원의 향원정은 이 글 중 향이 멀리 퍼진다는 구절에서 따왔으며, 창덕궁 후원의 애련정 또한 이 시의 제목에서 유래됐고, 부용지와 부용정의 부용도 연꽃의 다른 이름이다.

교회 장로 출신 대통령 시절 경복궁과 창덕궁 연못에 가득했던 연꽃을 불교의 잔재라며 뽑아버렸다. 연꽃이 가진 여러 가지 상징과 우리 선조가 귀하게 여긴 맘을 헤아리지 못한 편협함이 아쉽다. 

불국사 왼쪽이 극락전으로 통하는 연화교, 칠보교. 오른쪽은 대웅전으로 통하는 청운교, 백운교다.
불국사 왼쪽이 극락전으로 통하는 연화교, 칠보교. 오른쪽은 대웅전으로 통하는 청운교, 백운교다.

불국사에는 두 개의 문이 있는데 왼쪽의 안양문은 극락전으로, 오른쪽인 자하문은 대웅전으로 통한다. 이중 안양문으로 오르는 계단에는 연잎이 새겨져있다. 불국사를 지은 신라 김대성 휘하의 석공이 새긴 그대로를 지금도 볼 수 있다. 한 걸음, 한 걸음 연꽃잎을 밟으면서 성불의 완성인 극락에 닿으라는 염원을 담았을 것이다.

신라인들이 불국사 극락전에 가려면 연꽃잎이 새겨진 이 계단을 올라야 했다.
신라인들이 불국사 극락전에 가려면 연꽃잎이 새겨진 이 계단을 올라야 했다.

염원을 담고 계단을 오르는 한 걸음, 한 걸음, 그런 간절함으로 매일매일을 성실하게 살다 보면 부처가 된다는 불교의 중심 생각이 연잎 무늬에 담겼다.

성실(誠實)의 한자에는 말한 대로(言) 이루며(成) 열매 맺는다(實)는 의미가 담겨 있다. 기독교에서도 이 땅을 천국의 그림자라고 한다. 주 기도문에는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예수가 수제자 베드로에게 준 천국의 열쇠는 이 땅에서 잠그면 하늘에서도 잠기고 이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린다. 이땅에서의 삶을 도외시하는 천국은 없다. 

이렇듯 종교와 시대를 초월해서 이 땅에서 성실하고 착하게 사는 이들을 축복하고 싶은 마음은 모두 같다. 매일매일 선하게 살면 일희일비하지 않는 내공이 쌓여  마음의 평화를 갖게 되고 그 마음이 이 땅에 천국도 극락도 만든다. 살아서 천국을 만든 사람에게 내세의 결과가 달라질까?

파라오의 영생, 불교의 윤회, 기독교의 부활은 죽은 몸이 다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어제의 낡은 내가 죽고 아침마다 새로운 나로 다시 태어나 하루하루 새로운 삶으로 채워나가는 건강한 에너지를 말하는 것은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심청의 희생이 연꽃에서 환생하는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된 것처럼 우리의 매일이 쌓여 궁극적인 해피엔딩을 이루기를 소망한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