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준우 작가의 글쓰기 방법에 관한 시리즈 여섯 번째

◇쉽지만 쉽지 않은

어떤 형태로든지 우선 글을 쓰기로 결심한 뒤에는, 글을 쓰는 사람의 자세를 갖추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우리가 쓰는 글이 친구들 혹은 지인들과 나누는 단발성 메시지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면, 꾸준히 글을 읽고 공부하는 것은 일상 속에서 없어서는 안 될 습관으로 자리 잡아야 한다.

책을 쓰던, 혹은 개인 블로그나 다른 SNS에 글을 쓰던, 처음 글을 쓰기 시작하면   여러모로 신경 써야 할 게 많아진다. 소재를 찾는 것도 중요하고, 어떻게 사람들이 호기심을 갖고 내 글을 읽을 것인지 고민하는 시간도 필요하다. 그리고 종류가 무엇인지에 따라(편지인지, 독후감인지, 혹은 맛집 후기인지) 쓰는 글의 분량도 달라지게 마련이다.

처음부터 훌륭하고 좋은 글을 쓰는 건 쉽지 않은 일이지만, 엄격한 잣대가 필요한 글쓰기를 꾸준히 접하다 보면 빠른 속도로 실력이 좋아짐을 느낄 수 있다. 지금 읽고 있는 칼럼이나 다양한 경로를 통한 독후감, 논설문, 필사가 이에 해당한다. 특히 필사는 이미 정해진 방향성을 그대로 따라가면서 어떻게 문장을 쉽고 담백하게 쓸 수 있는지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다.

한동안 『성경』 필사를 한 적이 있다. 『성경』을 필사하다 보면 웬만한 책은 쉽게 느껴졌다. 그만큼 어렵고, 문장도 난해하다. 의미를 파악하는 건 둘째치고라도 모르는 단어가 빽빽하게 나왔다. 책을 쓰는 데 어디에서 가장 큰 도움을 받았느냐 누가 묻는다면, 단언컨대 『성경』 필사와 운동이라고 이야기할 만큼 어휘력의 확장과 문장을 다듬는 기술을 익히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글을 쓰는 데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는 책쓰기다. 글이 좋지 않으면 책이 안 된다. 돈만 내면 책을 출간해주는 곳도 있다고 하는데, 의미 없는 글이 책으로 출간되면 아까운 나무만 버리는 셈이다.

책(冊) : [명사] 종이를 여러 장 묶어 맨 물건.

「네이버 어학사전」에 나와 있는 책의 사전적 의미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사실 책을 쓰려면 신경 써야 할 것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주제를 정하고, 제목을 짓고, 목차를 짜고, 목차에 맞는 글을 쓰고, 퇴고하고, 퇴고하고, 퇴고해야 한다. 어느 정도 판매고를 올릴 수 있을 만한 가치를 담고 있어야 함은 물론이다.

방관자의 시선에서 관찰자의 시선으로 빠르게 위치 이동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확실히 글을 잘 쓴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주변 환경,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불현듯 찾아오는 놀라운 사건들이 모두 글과 책의 소재가 될 수 있다.  책을 한 번 써봐야겠다고 마음먹고 난 뒤부터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상황들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세상에나, 쓸거리가 그렇게 많은 줄 몰랐다.

이렇게 글을 쓰기로 마음먹고 꾸준히 써내려가기 시작하던 어느 날, 나는 깜짝 놀랄 만 한 몇 가지 사실을 발견했다. 생각보다 내가 모르는 어휘가 많다는 것과, 집에 그 흔해빠진 국어사전 하나 없다는 사실이었다.

◇사전은 기억력보다 뛰어나다

하지만 내가 석대를 잊게 된 것은 반드시 내 삶이 숨 가쁘고 힘겨웠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그 동안의 내 환경에 그 시절을 상기시킬 요소가 거의 없었다. 일류와 일류, 모범생과 모범생의 집단을 거쳐 자라가는 동안 나는 두 번 다시 그 같은 억눌림 또는 가치박탈의 체험을 안 해도 좋았기 때문이었다. 재능과 노력, 특히 정신적인 능력과 학문에 대한 천착의 깊이로 모든 서열이 정해지고 자율과 합리에 지배되는 곳들만을 지나와, 그때까지도 석대는 여전히 부정否定의 이미지에 묻혀 있을 수밖에 없었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194P, 이문열, 민음사

중학생 필독도서에서 빠지지 않는 이문열 작가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은 내가 좋아하는 도서목록 중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소설이다. 쉽고 재미있게 쓰인 책이지만, 다분히 정치적 권력 관계를 상기시키고 정치철학의 참된 의미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그런데, 위 소설을 읽으면서 나는 「천착」이라는 단어가 있는 줄 처음 알았다.

천착(穿鑿) : [명사] 어떤 원인이나 내용 따위를 따지고 파고들어 알려고 하거나 연구함.

천착의 사전적 의미다. 쉽게 이야기하자면 공부를 의미하는 것 같기도 한데, “특히 정신적인 능력과 학문에 대한 천착의 깊이로 모든 서열이 정해지고”라는 구절을 보면 딱히 공부를 의미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 흔히 쓰는 표현 중에 「학구파」라는 단어가 있다. 학구學究라는 단어에 담긴 의미가 “학문을 깊이 연구하는 것, 혹은 학문에만 열중하여 세상 물정을 모르는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는데, 문장으로 표현하는 데는 별다른 어려움이 없다.

· 저 녀석, 순전히 학구파라니깐!
· 학구파 친구라도 하나 있으니까 좋긴 좋네.

그런데 천착이라는 단어는 어떻게 써야 하는 건지도 몰랐고, 어떤 의미로 써야 하는지도 몰랐다. ‘천착하다? 천착의 과정?’우물쭈물하다가 네이버에서 사전을 검색하고 난 뒤에야 그 의미를 파악할 수 있었다. 칠순에 접어든 이문열 작가가 이 책을 쓴 때는 1987년, 그의 나이 마흔이 되던 해다. 지금의 나만큼 젊은 나이에 그는 삼국지와 수호지를 평역했다.

◇별, 달, 구름, 하늘

몇 년 전, 웹서핑을 하다가 고급영어 과외를 한다는 분을 알게 되었다. 교육기관에 몸담고 있었던 나는 틈날 때마다 그 분의 블로그를 들락날락하면서 영어공부법에 대한 견해를 읽고 혼자 탄복하곤 했다. ‘영어공부는 이렇게 해야지!’ 하면서 말이다.

그 분의 말을 빌리자면, 시중에 판매되는 영어사전이라고 해서 다 같은 사전이 아니고 영어교사들 사이에서는 우수하다고 알려진 사전이 있단다. 그러면서 “그 영어사전에 나오는 필수어휘 10,000개만 외워도 토익, 토플과 같은 시험에서도 단어를 몰라 문제를 못 푸는 일이 없다.”고 이야기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우리가 매일 쓰는 어휘도 사실 어느 정도는 한정되어 있지 않은가? 한예종 연극원 진학을 준비하던 시절, 나는 하루에 70개에서 100개의 영어단어를 암기했다. 대학원 진학 실패 후 필수어휘 외우기는 기억 속에서 아스라이 사라져버렸지만, 영어공부에 관한 한 천착의 깊이에 있어서만큼은 확실히 도움이 되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다 얼마 전, 존경하는 은사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

“더러운 것과 깨끗한 것을 분리하는 것을 정리라고 말하고, 정돈은 정리된 것을 순서대로 차곡차곡 정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흩어져 있는 기구들과 연장들도 정리뿐만 아니라 정돈도 해야 하듯이, 우리 마음도 정리한 뒤에 정돈까지 마무리해야 합니다.”

기실 정리나 정돈이나 같은 말이다. 누가 그런 것까지 따져가면서 말을 하겠나. 그러나 그제야 아차, 싶었다. 글을 쓴다는 사람이 정리와 정돈의 정확한 차이도 모르고 있다는 것은 치명적인 단점이다. 물론 어휘력이 좋다고 해서 훌륭한 글을 쓰는 건 아니다. 그러나 준비되어 있는 자에게 기회가 오는 법이다. 배움에 있어서 늦은 때는 없다, 이제라도 국어공부에 만전을 기하자, 다짐하며 국어사전을 찾았는데, 집에 국어사전이 없다.

서재라고 부르고 창고처럼 보이는 서재 책상에는 늘 책이 수북하게 쌓여 있다.  언젠가 잘 안보는 책과 불필요한 책들만 모아서 중고서점에 팔았다. 3만원을 받았다. 그 중에 영영사전과 국어사전이 들어있었다. 사놓고 10번도 채 쓰지 않았던 그 책들이 지금은 필수불가결한 몽학훈장이 될 줄이야. 다시 사려고 가보니 2만원을 달란다. 3천원 받고 팔았는데. 울며 겨자 먹기로 사왔다. 한 장 한 장 펼쳐보니, 세상에 이렇게 아름다운 한국어가 있었는가 싶다. 별, 달, 구름, 하늘. 어떤 것도 허투루 버릴 말이 없었다. 헬 조선이니 닭이 어쩌니 해도 한국어만큼 애증을 남기는 모국어가 있을까 싶다.

◇발밤발밤

수년 전 연극무대에서 활동할 때, 틈만 나면 흥얼거리던 노래가 있었다. 「발밤발밤」이라는 곡이었다. 당시 인기 있던 드라마 주제곡이었는데, 20대 젊은 청춘의 마음을 무던히도 흔들어대던 기억이 난다. 노래를 듣고만 있어도 눈물이 나고, 가사의 아름다움에 젖어 몇 시간이고 반복해서 듣곤 했다.

발밤발밤 : [부사] 한 걸음 한 걸음 천천히 걷는 모양

음율의 아름다움에 젖어 흥얼거리며 흘려보낸 20대와 달리, 작가가 되어 대하는 이 단어가 왜 그토록 마음을 울렸는지, 지금에조차 뚜렷한 이유를 모른다. 한 걸음, 한 걸음 진중하게 나아가야 할 작가로서의 삶이 가벼운 요행으로서의 가치를 가지는 게 아닌, 울림을 주는 깊이를 가져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자기성찰 과 같은 위안으로 갈음할 따름이다.

글/사진 전준우 작가
글/사진 전준우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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