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엔 신년 특별기획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 시리즈 두 번째 김강윤 소방관의 구조대 현장 이야기

신년을 맞이하여 스타트업엔에서는 특별기획으로, 사회 각계 각층의 사람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연재하고자 한다. 그 두 번째 이야기는 불철주야 국민의 안전을 위해 헌신하는 부산 기장소방서 구조대 소속 김강윤 소방관의 구조대 현장 이야기인 '반드시 살아야 한다.'이다.

나는 소방관이다. 좀 더 세부적으로 소개하자면 그중에서도 구조 대원이고 꽤나 다양한 업무를 한다. 일반적으로 가장 많이 알고 있는 소방관의 업무인 화재현장에서는 불이 난 곳으로 들어가 인명을 검색하고 구조하는 일을 하고, 교통사고 현장에서는 부서진 차량 안에 있는 요 구조자를 안전하게 빼내는 일을 한다.

물에 빠진 사람을 건져내고 때론 물속으로 들어가 실종된 사람을 수색하기도 한다. 무너진 건물 잔해를 파헤치기도 하고 유해화학물질이 노출된 곳으로 서슴없이 들어간다. 지금 나열한 구조 상황은 스케일이 좀 크다고 볼 수 있겠다.

일상적인 생활에 있어 구조 상황은 훨씬 더 광범위하다. 개, 멧돼지, 뱀 등 혹여나 시민에게 위협을 가할 수 있는 동물을 포획(구조)하고 응급환자가 있을 법한 집안의 문이나 엘리베이터 문을 강제 개방하기도 한다. 그 외에도 생각하는 것 보다 훨씬 더 많이 구조대원의 출동은 다양하다.

구조 현장 (사진=김강윤 소방관 제공)

혹시 어떤 출동이 기억에 남느냐고 물어본다면 개인적으로는 자살 출동이라고 대답하고 싶다. 높은 곳에서 몸을 던지려는 사람, 칼로 자신의 신체를 위해 하려는 사람, 목을 매다는 사람.... 일생에 한번 보기도 힘든 타인이 죽으려는(또는 죽어있는) 현장을 구조 대원들은 심심찮게 보게 된다. 결코 쉽지 않은 현장이다.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는 자와 그런 자를 살려야 하는 구조 대원이 대치하는 상황은 서로에게도 피를 말리고 살이 떨리는 순간이며 이렇듯 삶과 죽음을 가까이에서 본다는 것 자체가 여간 힘든 일이 아닐 것이다.

긴박한 현장 사진 (사진=김강윤 소방관)
구조 현장 (사진=김강윤 소방관 제공)

언젠가 아파트 공사현장에서 누군가 뛰어내리려 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을 했다. 회색빛 콘크리트가 그대로 노출되어 있는 한창 지어지고 있는 아파트 15층 높이에 한 남성이 올라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보기에도 아찔하게 서 있었다. 그가 내지르는 소리를 들어보니 자신은 뛰어 내릴 것이며 똑똑히 지켜보라며 절규하듯 말하고 있었다.

위험천만한 현장이었다. 우리는 에어매트라는 장비를 그가 떨어질 만한 위치에 설치해놓고 부디 떨어지더라도 에어메트 위로 떨어지기를 바라고만 있었고 경찰과 소방으로 구성된 몇 명의 설득자들이 그가 있는 고층으로 대화를 하기 위해 올라갔다. 다행히도 수 시간에 걸친 설득 끝에 그는 내려왔지만 자신이 가지고 있던 술병을 깨서 스스로 자해를 한듯하여 온몸은 피로 물들어 있었고 구급 대원들은 신속히 그를 응급처치 후 병원으로 이송하였다.

어찌 됐든 뛰어내리지 않았음에 지켜보던 모든 사람이 안도했다. 전해 들은 얘기로는 그는 공사현장의 하청업체 사장이며 밀린 공사대금을 받고자 그러한 충격적인 행동을 했다고 한다.

또 다른 사례도 있다. 어느 날 새벽 경찰로부터 아파트 현관문 개방을 요청받고 출동을 나갔다. 아파트 1층에 위치한 집에 현관문을 강제 개방하여 진입하였는데 초등학생쯤으로 보이는 어린 남매는 거실에서 하얗게 질린 얼굴로 울고 있었고 그 아이들의 엄마로 보이는 여자는 욕실에서 자신의 손목을 칼로 긋고 있었다.

함께 진입한 경찰이 신속히 대처하여 요구조자의 칼을 뺐었고 다행히 목숨을 잃지는 않은 듯했다. 그 후 환자를 이송했던 구급 대원의 말로는 다행히 혈관을 자를 정도로 충분히 깊숙이 베지 못해 그나마 살 수 있었다는 것이다. 조금만 늦었다면 요구조자는 자신의 손목에 더 깊숙이 칼날을 넣었을 지도 몰랐을 것이다.

구조현장 (사진=김강윤 소방관)
구조 현장 (사진=김강윤 소방관 제공)

위의 두 사례를 보자면 자살을 시도하다가 다행히 살아난 사람들의 이야기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자살 관련 출동 현장에 도착하면 이미 숨이 멎어 있는 상황이 더 많다. 놀라운 것은 앞선 출동에서 구조하여 살아난 사람이 그 후 자살을 재시도하여 결국 목숨을 잃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한 현장에 도착하면 온몸에 힘이 빠지고 등줄기에는 식은땀이 흐른다. 혹여나 가족들이 함께 있는 현장이라면 구조대원이 겪는 트라우마는 자못 심각하다. 구조대원 각자의 차이가 있을 뿐 현장을 떠나 돌아오는 내내 그 현장의 모습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최근에는 소방관의 자살이 늘고 있다고 한다. 놀랍고도 슬픈 일이다. 통계를 보자면 최근 5년간 스스로 목숨을 끊은 소방관은 56명이다. 가장 최근에는 현장에서 함께 일하던 친형제와 같은 동료의 순직을 목격한 구급 대원이 혼자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에 3년간 심적 고통에 시달리며 괴로워하다가 스스로 차가운 물속에 몸을 던져 세상을 떠났다.

소방관이든 일반인이든 그러한 극단적 선택을 하는 그들의 마음을 우리는 알기 힘들다. 다만 자살이라는 것이 빈부나 직업, 또는 연령이나 환경에 따라 달리 나타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최근 스스로 목숨을 끊은 유명한 여자 가수 두 명에 대한 언론 보도를 보듯이 대중의 사랑을 많이 받고 부와 명예를 가진 것으로 보이는 유명 연예인조차 이러할 정도로 자살의 선택 이유를 가늠하기 힘들다.

우리나라가 OECD 가입 국가 중 자살률이 최고라는 사실은 새삼스럽지도 않고 자살에 관한 뉴스에 등장하는 내용에도 남녀노소가 따로 없을 정도이다.

생각해 볼 문제는 자살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예방적 활동이 잘 이루어지고 있느냐이다.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고 내 주위에는 그런 사람이 없으니 심각하게 다가오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다만‘나 죽을 거야’라고 마음먹은 사람의 속내를 알 수 있는 방법이야 없다 치더라도 최소한의 징후는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알 수 있다고 한다.

자살을 암시하는 언어적 표현을 하고, 갑자기 고마움이나 미안함을 드러내는 행동을 하며, 극도의 불안한 모습이나 집중력이 떨어지는 모습을 보인다고 한다. 함께 생활하는 가족이나 직장의 동료라면 쉽지 않게 알아차릴 수 있는 모습이라는 것이다. 어쩌면 이러한 징후는 자살자들이 보내는 마지막 신호일 것이다.

자살자들 중 적게는 50%, 많게는 80%까지 이러한 신호를 보낸다고 한다. 그러나 이것을 알아차리는 주변인은 10%가 채 안 된다고 하니 좀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살릴 수 있는 사람을 죽게 두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우울증이나 알코올 중독, 공황장애 등 질병으로 진단받고 의료적 치료를 받는 경우는 그나마 다행인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전문가의 치료와 상담으로 다행히 잘 극복하고 일상의 생활로 복귀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그러나 정신과적 치료를 부끄럽게 여기는 사회 현상, 즉 가족이나 직장동료들에게 자신의 정신 질환을 들어내 놓기가 어려운 현실이 우리 사회에는 여전히 존재한다.

이러한 인식은 소방관들에게는 치명적이다. 타인의 생명을 구하는 소방관이 정신적 질환을 겪는다는 것은 어찌 보면 약해 보일 수 있고 소방관이라는 직업의 일을 수행하기에는 부적합해 보일 수 있다는 시각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소방관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냉정함을 잃지 않고 끔찍한 사고 현장에서도 담담해야 하며 그러한 것들을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오히려 남들은 평생 한번 볼까 말까 할 사고에 수시로 노출되어 있고 함께 일하는 동료가 어느 날 사고로 세상을 떠나는 모습을 보게 되는 이들이야말로 심리적 공황에 빠지기 쉬운 환경에 놓여있는 것이다.

내가 처음 소방관이 되어 일을 시작했던 십 여년 전만 해도 이러한 인식을 당연시 여겼고 지금은 비록 많이 완화되었다고는 하지만 드러내놓고 표현하기 힘든 것은 여전하다고 본다. 나는 초임 소방관 시절 삼풍백화점 붕괴사고의 처참한 구조환경에 노출되어 일하다가 심각한 트라우마를 이기지 못하고 결국 소방관의 일을 그만두신 선배님을 본 적이 있고 그날의 충격에 그 당시까지 여전히 육체적, 심리적 고통에 시달리는 팀장님도 가까이 모신 적도 있다.

그분들은 그러한 고통을 당연하듯 받아들이고 오히려 겉으로 내보이기를 꺼려 하셨다. 이런 선배님들이 극단적 선택을 하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불과 그때만 해도 소방관들의 심리적 고통에 대한 관심은 전무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다행히 최근에는 국가적 차원에서 소방관에 대한 심리치료 등 지원이 활발하다. 내가 있는 부산만 하더라도 지역의 관련 의료기관과 연계하여 다양한 심리치료를 제공한다. 치료를 무상으로 하고 진료 내용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비밀을 유지하여 정신질환을 겪는 직원에 대한 배려에 많은 신경을 쓴다.

출동 중 심각한 사고 현장에 노출되면 적어도 며칠 이내 전문가의 상담을 통해 PTSD(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해소를 돕기도 하고 정기적으로 소방관들에 대한 심리 상담도 진행한다. 충분히 좋아지고 있음을 느끼고 노력해주는 분들께 항상 감사하는 마음이 많다.

다만 이러한 정책적 지원뿐만 아니라 소방관 스스로의 인식 전환도 함께 필요하다고 본다. 심리적 고통을 겪고 있는 동료의 마음을 이해하고 그가 겪는 일이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인간의 마음이 하나같을 수는 없는 것이다. 내가 괜찮다고 나의 동료도 아무 일 없을 거라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어쩌면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동료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의사 치료보다, 전문가의 상담보다 나와 같이 먹고 자며 생활하는 동료의 관심과 배려 그리고 격려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난 단 한 번도 소방관이 된 것을 후회해 본적이없다. 육체적으로 힘들 때나 정신적으로 고통받을 때나 내가 선택한 직업에 대한 자부심으로 스스로를 다독였고 다행히도 아직까지는 다친 곳 하나 없이 그리고 특별한 정신적 고통 없이 무사히 이 일을 하고 있다.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굳이 따지자면 어렵고 힘들 때마다 내 옆에는 나의 동료가 있었기 때문에 지난 시간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 같다.

막내 시절에는 끌어주는 선배가 있어 좋았고 지금에 와서는 도와주는 후배가 있어 행복하다. 이 일을 사랑하는 이유 중에 하나가 바로 이러한 동료들에 대한 믿음일 것이다. 

우리는 사고 현장에서 나를 살려주는 동료에 대해 감사하고 서로 믿고 의지하라고 서로 말한다. 이제 조금만 시선을 돌려 사고 현장이 아니더라도 또 다른 고통에 힘들어하는 동료가 있는지 살펴 볼 때이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할 무언가를 우리는 진지하게 들어줄 필요가 있다. 나는 너보다 더 힘든 것도 겪었다고 너의 고통은 별거 아니라는 식의 평가 절하는 절대 안 될 것이다. 누군가를 살려야 할 소방관이 스스로 이 세상을 떠나게 만드는 일은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는 것이 내가 사는 길이기도 하다.

우리는 누군가를 살리고 또 우리도 살아야 한다. 반드시 그래야 한다.

글/사진 김강윤 소방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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