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으로 산다는 것은

첫째 아들이 태어났을 때가 생각난다. 핏덩어리 아들을 품에 안고 있으면서도 생명체가 태어났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아내의 품에 안겨서 우는 아기를 보고 있으면서도 아무렇지 않았다. 현실세계와 동떨어진 어느 존재를 보고 있는 듯 했기 때문이리라. 아기가 태어나면 그저 귀여운 줄만 알았지, 새로운 생명이란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것인지 전혀 몰랐다. 그러다 갑자기 눈물이 뚝뚝 흘러내렸다. 부모가 되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우리가 얼마나 위대한 일을 했는지 느낄 수 있었다. 비로소 생명의 소중함을 알게 되는 순간이었다.

요즘은 아들과 노는 데 정신이 팔려 있다. 그렇게 예쁠 수가 없다. ‘훌륭한 아버지가 되기보다는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아버지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작은 소망이 생겼다. 마음은 밖으로 드러내지 않으면 곯고 썩는다. ‘분노조절장애’와 같은 현상은 마음을 드러내지 않는 사람들에게서 종종 발견되는 마음의 병이다. 내가 꾸준히 글을 쓰는 이유 중 하나다.

세상에 태어나면 10대가 되고 20대가 되고 30대가 된다. 학생이 사회인이 되고 사회인이 가족을 꾸리게 되고, 또 다시 가족을 만든다. 똑같은 인생을 사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사실은 우리 모두 육체라는 물질 안에 이성이라는 의식을 갖고 살아가는 생명체다. 평범하게 살아가는 것 같이 보이지만 사실은 수많은 이야기들이 인생 속에 숨어 있고, 또 다양한 형태로 남아서 한 사람 한 사람을 만들어간다. 기록되지 않으면 사라져버리는 그런 이야기들이 우리 모두에게 있다.

연극배우나 영화배우만 무대 위에 서는 건 아니다. 인생이라는 무대는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우리는 모두가 인생이라는 무대 위의 주인공이다. 평범한 인생이 결코 평범함으로 끝나서는 안되는 이유다.

◇잃어버리기 쉬운 것들

친기스 아이뜨마또프의 소설 『백년보다 긴 하루』 는 자신을 잃어버리고 사는 사람들에게 깊은 교훈을 주는 이야기가 나온다.

악독한 부족으로 유명한 츄안츄안족은 주변 부족들과 소규모 전쟁을 자주 벌였는데, 사로잡은 노예를 붙잡아서 만꾸르뜨라고 불리는 노예로 만든다. 포로로 잡혀온 노예들의 머리털을 밀고 모근까지 뽑아낸 뒤, 암낙타의 가슴 부분 가죽을 도려내서 포로들의 머리에 씌우고 사막 한가운데에 묶어둔다. 뜨거운 햇빛 아래 가죽이 말라 오그라들면서 머리를 강하게 옥죄어 오는데, 그와 함께 머리카락이 두피로 파고들면서 엄청난 고통을 느낀다. 대부분이 머리를 파고드는 고통으로 죽고, 겨우 살아남은 몇 명은 인간이라는 사실도 자각하지 못하는 존재가 되어 주인의 명령에 무조건 순종하는데 이것이 만꾸르뜨다. 내가 누구인지,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도 모른 채 살아가는 사람이 된다.

소설 속에서 나아만 아나는 만꾸르뜨가 된 아들 졸라만을 찾기 위해 추안추안 부족을 찾아가지만, 이미 만꾸르뜨가 되어버린 아들은 엄마를 알아보지 못했다. '너를 죽이려고 온 사람'이라고 이야기한 츄안츄안 부족의 이야기를 듣고 두려워한 아들은 엄마에게 활을 날렸고, 아들이 쏜 화살에 맞고 쓰러진 엄마의 목에 걸린 흰 수건은 새가 되어서 날아갔다. 그리고 여행자를 보면 날아와서 '네가 누구의 자식인 줄 아느냐? 네가 누구지? 네 이름이 무엇이냐? 네 아버지는 도넨바이였어. 도넨바이, 도넨바이.'라고 이야기한다. 오래전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슬픈 전설이다. 나를 잃어버리고 살지 않는지, 어떤 마음으로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교훈을 주는 슬픈 이야기다.

마음을 잃어버리고 사는 사람이 많다. 바쁘게 하루하루를 보내면서 중요한 것을 잃어버리고 살아간다. 현실판 만꾸르뜨인 셈이다. 소중한 것들을 뒤로 한 채 앞만 보고 달려가는 우리에게 만꾸르뜨는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가족, 친구, 일, 마음의 휴식. 어느 것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다. 하나라도 결핍된다면 균형이 흐트러진다. 그래서 삶의 균형이 필요하다. 마음을 공부하며 마음을 지키는 과정이 필요하다. 글쓰기는 마음을 공부하는 일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마음을 다스리는 훈련을 하는 것과 같다.

◇마음공부의 힘

수년 전부터 심리상담채널을 몇 군데 운영하고 있다. 마음에 큰 어려움과 고통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기에 작은 도움이 되어드리고 싶다는 취지에서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한 상담채널에서 생각보다 큰 수확을 얻는다.

우연히 상담을 나누게 된 분이 있었다. 젊고 예쁜 간호사였다. 그 분은 10년간 사귄 남자친구가 있었다. 결혼을 약속하며 만나던 남자친구는, 그러나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자마자 이별을 통보했다. 너무 속상하고 힘이 들어서 오랫동안 알고 지내던 지인과 술자리를 나누며 마음에 담긴 슬픔을 이야기했는데, 그 날 성폭행을 당했다고 했다. ‘사랑해서 그랬다, 전부터 네가 좋아서 그랬다.’라고 이야기하던 지인은 그녀가 고소하자마자 곧바로 변호사를 선임했다. 끝나지 않는 논쟁 속에서 끊임없이 죽음을 생각하고 있었다.

“선생님, 하루하루가 지옥 같아요. 길을 가다가 누가 저를 차로 치어서 죽여줬으면 좋겠어요. 사는 게 사는 게 아니에요. 하루하루 불면증으로 미칠 것만 같아요. 제발 저 좀 도와주세요!”
내 힘으로 어떻게 해줄 수 없는 슬픈 이야기만 있는 건 아니다. 자꾸만 떨어지는 성적, 혹은 부모님과의 다툼으로  하소연하는 학생들도 더러 있었다. 어떤 고등학생은 내게 “고등학생도 글을 쓰고 책을 출간할 수 있나요?”하고 물어왔다.

“물론입니다. 네이버 카페 [전준우책쓰기아카데미]에 가입하시고 상담 신청하시면 됩니다.” 책쓰기는 어려운 일이다. 사람마다 관점이 다른데다 트렌드라는 것도 있으므로 좀 더 엄격한 자격요건이 요구된다. 그러나 글을 쓰는 데 자격이라는 건 필요없다. 노력과 의지만 필요할 뿐이다. 퇴고작업의 지루함과 매끄러운 문장이 만들어지는 것에 대한 깊은 감동만 느낄 수 있다면, 글쓰기란 지루한 작업이 아니라 상상할 수 없는 깊은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일이다.

◇소망을 전하는 기회

글은 생각의 문자화, 그리고 생각의 활자화다. 생각을 입으로 내뱉으면 말이 되고, 말을 글로 쓰면 글이 된다. 생각, 좀 더 세밀하게 이야기해서 일평생 만들어진 개인의 사상, 철학, 가치관 같은 것을 말과 글로 옮긴 뒤 종이로 엮으면 책이 되는 셈이다. 대부분의 책에는 한 사람의 인생이 담겨 있다. 그렇다면 생각이 현실로 만들어지는 일련의 과정을 인생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 인생이라는 무대에서 겪은 경험과 시간을 압축해서 가장 깊은 농도의 마음을 담은 것, 그것이 글과 책으로 만들어질 수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살면서 만나는 우울증, 고립, 사업실패, 이혼의 슬픔은 씻을 수 없는 상처와 두려움, 어려움으로 남는다. 다만 그런 아픈 경험 이후에 스스로가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삶의 묘약이 될 수도 있고 평생 슬픔으로 남을 수도 있다. 묘약이 된다면 누군가에게 귀감이 될 수 있는 교훈이 될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또다른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 수 있는 걸림돌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글쓰기란 교훈과 같다. 상처와 아픔을 아름다움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남긴 기록물은 그 자체만으로도 영롱한 빛이 되고 소망이 되며 희망의 불꽃이 된다. 아름다운 글을 쓰는 사람에게서는 아름다움의 향기가 묻어나는 듯 하다. 우리에겐 어떤 글을 쓰느냐 고민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세상에는 우리의 소망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많다. 펜을 들고 글을 쓰는 행위는, 어쩌면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그들에게 작은 소망이 되어주기 위한 의무가 아닐까.

글/사진=전준우 작가
글/사진=전준우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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