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와 치유
 
나에겐 지금도 지워지지 않는 평생 잊지 못할 아픈 기억이 있다.

지금 생각해 봐도 왜 나에게 그런 아픔이 찾아왔을까 하는 쓰라린 기억이다. 나에게 가장 무서운 것은 경운기이다. 지금도 지나가는 경운기를 보면 무섭고 보기가 싫다.왜냐하면 내 몸에 지울 수 없는 상처가 경운기로 인해 생겼기 때문이다.

이제는 마음에 상처는 치유가 되었지만 내 몸에 남아있는 상처는 지울 수가 없다. 나에게 상처를 남기고 아프게 했던 초등학교 2학년 때로 돌아가 본다.

?나는 4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어머니는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 대신 혼자서 6남매를 키우셨다. 어머니가 젓갈 장사를 하셨다.

그렇게 어렵게 번 돈으로 시골 동네에서 시내로 이사를 했다. 다니던 초등학교에서 전학을 해야 했지만 어머니가 장사를 하시기 때문에 전학을 시킬 시간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1시간 30분 정도 걸어서 학교를 가야만 했다.

사고 나는 그날도 여느 때처럼 언니와 함께 손잡고 등교를 하기 위해 집에서 나와서 시골길을 걷고 있었다. 걸은 지 불과 10여 분 지났을까? 언니와 내가 걸어가고 있는데 갑자기 뒤에서 경운기가 우리를 덮쳤다. 가만히 세워져 있던 경운기가 무엇 때문인지 움직이는 바람에 나는 바퀴에 깔리고 말았다. 경운기 바퀴 앞으로 들어갔다가 뒤로 나왔는데 나는 전혀 기억이 없다.

정신 차리고 보니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큰일 났다고 빨리 병원에 가야 한다는 말밖에 들리지 않았다. 나는 언니가 다친 줄 알고 걱정을 많이 했는데 다행히 언니는 다친 곳이 없었다. 자갈이 많은 도로 바닥을 보니 피가 흥건히 젖어 있었고, 나의 얼굴에서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나는 겁이 났다. 금방 죽을 것 같은 공포감에 사로잡혔다.
 
사람들이 병원에 가야 한다고 하여 경운기 주인과 함께 병원으로 갔다.  시골 동네라 병원이 없었다. 조그만 의원이 하나 있었는데 나를 본 의사는 입술 인중이 완전히 찢어져서 꿰매야 한다고 했다. 문제는 마취제가 없다는 것이다. 울고 있는 나를 어른들이 양손과 다리를 부여잡았다. 그리고 인중 전체를 무자비하게 꿰매기 시작했다.
 
‘왜 나에게 아픔이 찾아왔을까? 어떻게 주인도 없는 경운기가 우리를 덮쳤을까? 왜 하필 나일까?’
 
이런 생각에 많은 고민과 방황을 했다. 그때 꿰맨 흉터가 지금도 그대로 남아 있다. 지금은 성형외과가 있어 상처가 나면 흉터 없이 잘 꿰매지만 그때는 성형외과나 정형외과가 없던 시절이다. 사춘기 시절에는 흉터로 인해 마음에 상처가 있었다.

성인이 되어 성형외과에 가서 흉터를 없앨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 알아보았으나 내가 특이 체질이라 전신마취를 하면 위험하다고 하여 '이렇게 살아야 할 운명인가 보구나' 생각하고 포기하고 살고 있다.
 

그런데 세상을 살다 보니 나보다 더 심한 흉터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본다. 그렇게 나의 아픈 상처를 통해 다른 사람의 마음을 위로하고 격려하며 살아간다. 더 큰 상처와 아픈 기억들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그때마다 나는 느낀다. 나의 흉터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흉터가 있다고 기죽을 일도 아니라는 것을……. 나 자신을 위로하며 살아간다.

그 후 나는 대학원에서 상담학을 전공하여 마음이 지친 사람들을 상담하며 살아가고 있다. 나처럼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돌보아 주고 있다. 상담을 하다 보니 외면의 상처보다 내면의 상처가 더 크고 깊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런 내면의 상처 치유도 필요하다는 것도 느끼게 되었다.
 
남에게 보이는 나의 모습이 중요한 세상이다. 하지만 진정 가져야 할 것은 내면의 편안함이다. 스스로가 자신의 모습에 당당해야 한다. 살갗으로 보이는 상처가 다가 아니다. 살면서 겪는 아픔은 외적이든 내적이든 적절한 치유를 하고 자신 있게 세상에 나갈 수 있어야 한다.
 
어린 시절 나에게 큰 상처를 남긴 그 사고. 아픈 기억이지만 그 또한 나의 삶의 일부분임을 나는 안다.

글/사진=박성옥 소장
글/사진=박성옥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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