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준우 칼럼 '아프리카의 대지에 서서'
상태바
전준우 칼럼 '아프리카의 대지에 서서'
  • 스타트업엔(StartupN)
  • 승인 2020.11.21 09:4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사그라들지 않는 슬픔

공부에 별다른 흥미는 없었지만 책을 참 좋아했던 학창시절을 보냈다. 몇 권의 책을 출간하고 꾸준히 글을 쓰는 일을 하게 된 것도 어린 시절의 습관이 다분히 큰 역할을 했다고 믿는다. 그러나 분명한 꿈과 목표가 아닌 성적에 맞춰 입학한 대학이었다. 흥미로운 경험들도 많았지만 그 이상의 발전은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대학에 들어왔지만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돈과 시간을 낭비하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아프리카로 떠난 25살이 되기 전까지 내 인생에 이렇다 할 목표라는 건 없었다.

누구는 꿈을 이야기하고, 누구는 아름다운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나는 현실이 참 버겁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내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현실이 그때는 참 싫었다. 군에서 제대하고 복학한 나를 후배들은 무척 잘 따라주었다. 그들을 위해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다 주고 싶었기에 틈만 나면 후배들을 데리고 이곳저곳 많이 돌아다녔다. 무척 즐거운 시간이었다. 하지만 마음에 채워지지 않는 게 하나 있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고독과 막연한 두려움이었다.

마음으로 따라와 주면서 즐거움을 함께 나눈 후배들이 있었기에 행복한 추억들이 많지만, 한 편으로는 알 수 없는 두려움 가운데서 살았다. 사회생활이 힘들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정말 그렇구나.’하고 생각했다. 지금도 이렇게 힘들고 버거운데 사회에 나가서 직장인이 되면 얼마나 어려운 일들이 많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20대의 대부분을 보냈다. 내 마음은 늘 표현할 수 없는 슬픔 가운데 젖어 있었다.

그런 가운데서도 내 마음은 늘 뭔가를 찾고 있었다. 내가 모르는 어떤 세계가 있지 않을까, 유토피아와 같은 행복이 가득한 나라가 세상 어딘가에 있지 않을까, 혹 인생에 어떤 변화가 찾아와서 삶을 바꿀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면 마음을 들여 배우고 의미 있는 일을 하며 남은 인생을 살리라는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리고 그리 오래지 않아, 내 인생의 많은 부분을 변화시켜줄 위대한 기회가 찾아왔다.

2007년 5월의 어느 날, 아르바이트를 하러 가는 길에 아프리카 해외봉사단원을 모집한다는 포스터와 현수막이 학교 게시판에 붙어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10년이 지난 지금도 그 순간을 잊을 수 없는 이유는, 당시엔 그저 흥미로운 장면에 불과했지만 그 이후로 내 인생의 많은 부분이 바뀌고 성장했기 때문이다.

물론 당시엔 기회라고 보기엔 어려웠다. 나는 그저 도망치고 싶었을 뿐이었다. 뭔가 채워지지 않는 마음의 공허함, 알 수 없는 두려움, 겉으로는 웃고 있지만 마음속에서는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분노와 슬픔을 이길 힘이 없었기 때문에, 누군가 마음을 부드럽게 보듬어주고 위로를 해줄 수 있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렇게 떠난 아프리카에서, 평생 잊을 수 없는 아름다운 추억을 많이 만들 수 있었다.

◇흑진주의 나라, 아프리카

아프리카라는 나라가 막연히 미지의 세계라거나 일평생 한 번 경험해볼까 말까 하는 신기한 곳이었기에 그 때의 추억이 지금까지 내 마음을 뜨겁게 달구어놓는 건 아니다. 어두컴컴하던 내 마음과 인생에 한 줄기 빛이 되어주는 놀라운 경험들을 매일마다 경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살아 숨쉬는 것조차 꿈결과 기적처럼 느껴지던 1년의 시간동안 스스로 느끼기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기에 아프리카에서 보낸 하루하루를 사랑할 수 밖에 없었다.

매일 저녁노을이 질 때면, 나는 광활한 아프리카의 어느 마을에서 하염없이 걷고 또 걸었다. 지평선 너머로 지는 해를 바라보며 인생에 대해서 생각하고, 슬픔과 기쁨에 대해서 생각했다. 25살에 만난 아프리카의 하늘은 무척 고요하고, 높았으며, 숨막힐 듯 아름다웠다.

그곳에서는 모든 것이 부족했다. 그래서 늘 감사한 마음으로 생활했다. 한국에서는 손가락 하나만 움직여도 펑펑 쏟아지는 물이 아프리카에서는 무척 귀했다. 커다란 양동이를 머리에 이고 한 손에는 코흘리개 아이의 손을 잡고 5킬로미터 가까운 거리를 걸어서 물을 구하러 오는 여인들의 모습은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었다. 물만 귀한 게 아니라 음식도 귀했다.

한국에서 느낄 수 있는 성실함의 기준과 그들이 생각하는 성실함의 기준은 전혀 달랐다. 그래서 사람도 귀했고 물자도 귀했다. 모든 것이 부족하고 귀하기만 한 아프리카에서의 삶은 내게 불편함과 감사함의 기준을 알게 했다. 한국에서 당연하게만 느껴지던 일상들이 그들에게는 굉장한 놀라움이거나 편안함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며, 철부지 어린아이처럼 행동하고 생각한 지난 과거를 돌아보게 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인근 마을에 사람을 만나러 갔다가 우연히 18세 소녀를 만났다. 먼 타국에서 온 이방인을 반갑게 맞이해주던 그 여자아이는 먼지가 풀풀 날리는 시골 마을에 위치한 판잣집에서 살고 있었다. 꿈이 무엇인지 묻는 우리에게 그 여자아이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평범한 엄마가 되는 게 꿈이에요. 아프지 않고, 또 너무 가난하지만 않으면 좋겠어요."

아픈 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그 여자아이는 8개국어를 할 수 있다고 이야기했다. 단일민족국가인 한국과 달리 40개가 넘는 부족과 많은 외국인이 공존하며 살고 있고, 부산에서 서울까지의 거리를 가는 동안 몇 개의 국가를 넘나들 수 있는 남아공의 지리적 특성상 다양한 언어의 구사능력은 당연한 것인지도 몰랐다. 그때까지 토익 점수 고득점에만 일희일비했던 나는 이전에 경험해보지 못한 세계들에 놀랐고, 그런 시간들을 경험할 수 있음에 감사했다. 18살이던 여자아이는 이제 어른이 되었으리라. 나보다 훨씬 더 크고 깊은 마음의 그릇을 갖고 있던 그 여자아이가 어떤 삶을 살고 있을지 사뭇 궁금해진다.

그런 시간들 속에서, 25살 때 내 마음을 강하게 두드렸던 깨달음이 하나 있었다. 그 깨달음은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고, 내가 무슨 일을 하던지간에 내 마음 중심에 기준이 되어주었으며 분명한 잣대가 되어 주었다. 나는 흙이라는 사실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삶과 죽음에 대해 진지한 고찰을 하지 않는다. 죽음이라는 단어는, 마치 살아 숨쉬는 것에 대해 무한한 감사함을 느끼는 사람들에게나 어울리는 단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렇지 않다. 죽음이라는 단어가 ‘이승에서의 이별’이라는 점에서 양면성을 갖고 있긴 하지만, 삶과 죽음이라는 두가지 결론 이외엔 어떤 결과도 인생에서 찾아볼 수 없다. 어떤 식으로든지 의도하지 않은 죽음을 체험한 사람들에게는, 삶에 대한 감사함과 더불어 가치있는 삶에 대한 갈구가 찾아오는 것을 본다. 비로소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답을 찾기 시작한 것이다.

건강하게 오랫동안 살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까? ‘가야 할 때를 알고 떠나는 사람의 뒷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하는 시나 읊조리기엔 우리 인생에 중요한 일이 너무 많다. 좋은 대학과 대기업에 들어가기 위해 하루하루를 고군분투하는 것보다 어떤 일을 하며, 어떤 인생을 살아야 할지 먼저 구상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되지 않은가? 이 시대 가장 우수한 지성으로 불리우는 한국의 석학들이 공동 집필한 『우리는 무엇으로 행복해지나』에서 황농문 서울대학교 교수는 ‘우리는 언젠가는 틀림없이 죽는다.’ 라고 이야기한다.

숨을 쉬고, 밥을 먹고, 사랑하는 사람과 행복한 인생을 살아가는 것처럼 보여도 결국 나는 흙이라는 것. 누군가와 다투고, 때로는 미워하고, 슬퍼하는 일을 만나며 세상을 살아가지만 결국은 흙으로 돌아가는 존재라는 사실이 매 순간마다 내 마음을 위로하고 보듬어주었다. 언젠가 흙으로 돌아갈 내 인생은, 세상에 가치 있는 무엇인가를 남겨두지 않으면 흐르는 세월 속으로 영영히 사라질 수도 있다는 걸 자주 느꼈다. 그런 깨달음이 나로 하여금 독서의 중요성을 알게 했고, 글쓰기의 힘에 대해 숙고하게 하였으며, 작가로서의 삶을 살 수 있도록 인도해준 나침반이 되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다이아몬드와 금은 흙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값어치가 있고 아름답다. 영롱한 빛을 띠는 다이아몬드와 금은 흙처럼 쉽게 구할 수 없고 비싼 돈을 주고 사야 하는 것들이다. 그러나 다이아몬드나 금과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은 흙의 마음을 가진 사람만큼 가치있진 않다. 흙의 마음을 가진 사람의 글은 금의 마음을 가진 사람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다.

글을 쓰는 사람은 흙에 위치에 있어야 한다. 흙은 두려움 앞에서도 무덤덤하고, 슬픔 앞에서도 무덤덤하다. 경박하지 않고, 음란하지 않으며, 소란스럽지 않다. 그저 수더분하다. 그러나 흙 속에 묻어둔 작은 씨앗에서 사과나무가 자라나서 탐스러운 사과를 맺고, 아름드리 도토리 나무가 자라며 시원한 그늘을 만든다. 흙에서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흙냄새가 나는 글, 흙처럼 수더분하지 않은 글. 얼마나 담백한 맛이 있는가?

글/사진=전준우 작가
글/사진=전준우 작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