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정권은 제3자에게 있다

전 세계에서 가장 핫하고 완벽한 제품만을 출시하는 애플에서 최근에 새로운 기기가 출시되었다. 무려 71만 9천원에 육박하는 애플의 에어팟 맥스다. 노이즈 캔슬링, 배터리 완충 후 20시간 연속 재생 가능한 기능을 갖춘 블루투스 헤드폰이다. 세계 최초의 헤드폰도 아니고, 세계 최초의 블루투스 헤드폰도 아니며, 세계 최고의 헤드폰도 아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어김없이 비판의 댓글을 남긴다.

너무 비싸!
이제는 헤드폰도 만드네.
한물 간 블루투스 헤드폰을 누가 구매하지?

하지만 우린 이미 알고 있다. 곧 엄청난 판매고를 올리면서 대유행의 흐름을 타게 될 것이라는 것을. 역시나 에어팟 출시에 대해 조롱 섞인 댓글을 던지는 사람들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공급부족으로 구매까지 3개월이나 걸린다는 기사가 나오고 있고, 해외 온라인사이트에서는 되팔기 대란까지 벌어지고 있다.

나는 업무를 위한 아이패드 외에는 애플 상품을 사용하지 않는다. 불편하고, 비싸기 때문이다. 한국인이기 때문에 한국인에게 특화된 안드로이드 체제의 휴대폰과 노트북, 컴퓨터가 저에겐 훨씬 더 편하고 익숙하다. 하지만 애플처럼 혁신적인 상품,애플처럼 훌륭한 디자인, 애플처럼 단순한 상품이라면 충분히 그 정도의 가치를 지불하고서라도 구매하고 싶다는 생각은 갖고 있다. 애플이 저자를 포함한 대다수의 사람들로 하여금 '비싼 돈을 주고서라도 구매하고 싶다.'고 생각하도록 만드는 데 마케팅만으로 가능했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트렌드의 힘이 아닌 바에야 제조업자나 판매자는 소비자가 강제로 상품을 구매하도록 할 만한 능력이 없다. 구매를 결정하는 것은 소비자에게 있다. 하지만 다른 측면에서 봤을 때 이는 완전히 틀린 말이다. 소비자는 적절한 가격을 지불하고 물건을 구매한다고 생각하지만, 이는 보이지 않는 협상의 원칙에 의해 구매되어진 것일 수도 있다. 즉 제 3자가 요구하는 바에 의해 결정권을 박탈당했다고 볼 수도 있는 것이다. 

◇가격선택의 권한

여기에 두 사람이 있다. 소비자, 즉 상품을 구매하는 구매자와 판매자가 있다. 그리고 협상의 원칙이라는 보이지 않는 제 3자가 존재한다. 협상이라는 존재는 아주 부드럽게, 그리고 강하게 상대방을 매혹하는 힘이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협상의 원칙에 쉽게 매료되어 결국 불필요한 것에까지 지갑을 여는 실수를 범한다.

세일즈 프로세스 중에 Low-ball(밑밥 던지기)이라는 게 있다. 야구에서 낮은 공을 던진다는 의미로, 판매자가 원하는 구매단계에 이르게 하기 위한 점진적 접근법 중 가장 기초단계에 있는 세일즈 과정 중 하나다. 익숙하지 않은 단어일지라도 괜찮다. 당신은 살면서 수많은 Low-ball을 받아봤을테니 말이다.

잘 모르겠다고? 백화점이나 대형 마트에서 증정하는 사은품, 무료 상품권, 혹은 시식행사 모두 로볼 중 하나다. 소비자로 하여금 쉽게 접근해서 구매 및 계약까지 체결하게 하는 모든 과정의 기초가 바로 Low-ball이다. 

이는 비단 C2C(개인과 개인간의 거래) 프로세스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B2C(기업과 소비자간의 거래), B2B(기업과 기업간의 거래)에서도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쉽게 생각해보자. 당신이 생각하는 훌륭한 브랜드란 무엇인가? 원론적이고 고리타분한 이론을 묻는 것이 아니다. 스타벅스, 애플, 넷플릭스, 삼성, 카카오톡, 구글은 모두 훌륭한 브랜드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모두 전 세계적에서 가장 최적화된 이미지, 훌륭한 브랜딩을 거친 상품을 판매하는 기업이다.

앞에서 언급한 기업은 모두 독특한 그들만의 도구가 있다. 굉장히 고급스러운 커피의 향을 판매하거나, 전 세계에서 가장 큰 비디오 대여점을 운영하거나, 전 세계에서 가장 빨리 반도체를 양산해내는 식이다. 그래서 우리들 중 대다수는 자판기에서 판매하는 인스턴트커피보다 초록색 siren의 로고가 그려진 텀블러나 종이컵을 들고 다니는 것을 더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가격이 얼마든 상관없다. 스타벅스 아닌가! 그것이 바로 Low-ball이다. Low-ball이라고 하기엔 그 다양성과 방법이 너무 High-Quality이므로 Low-ball이라는 표현 자체가 썩 어울리지 않을 뿐이다. 

스타벅스만이 아니다. 갤럭시 20, 아이폰 12 pro는 갖고 다니는 것만으로도 품위가 있다. 말쑥한 수트에 깔끔한 구두, 한 손에 아이폰 12 pro나 갤럭시 z폴드2를 들고 다니는 사람을 본다면 아마 대기업의 임원이거나 잘나가는 사업체를 운영하는 대표 정도라고 생각할 가능성이 높다. 그들이 만들어둔 고급화된 이미지 덕분에 우리는 가격에 상관 없이 구매를 서두른다. 구매를 선택하는 것은 소비자의 몫이지만, 가격을 선택하는 것은 기업의 몫이다.

그래서 소비자가 아무런 거부반응 없이 구매할 수 있도록 돕는 광고와 브랜딩에 덧붙여 추가할인, 추첨을 통한 상품, 선착순으로 판매하는 Limited Edition등을 통해 소비자의 적극적인 반응을 돕는다. 이런 이미지 메이킹과 Low-ball의 활용만으로도 판매라는 이름의 협상을 상당 부분 성공적으로 완수할 수 있다. 사실 이미지 메이킹은 기업보다 개인에게 더 적절한 단어라고 할 수 있다. 올해 초 있었던 경험을 통해 나는 이미지 메이킹이 얼마나 훌륭한 협상의 도구가 될 수 있는지 분명하게 깨달을 수 있었다. 

◇이미지 메이킹의 힘

지금은 육아로 정신없는 나날을 보내느라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스트레스가 한가득 쌓이지만, 연초만 해도 아들이 태어났다는 즐거움과 신기함 때문에 조리원에서 하루종일 아들을 데리고 노는 데 정신이 팔려 있었다. 동시에 4번째 원고의 최종 탈고를 준비하느라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고, 면도도 제대로 하지 않은 부시시한 얼굴에 후드티와 수면바지 차림으로 조리원 복도를 왔다갔다 했다. 아내와 비슷한 시기에 아기들을 출산한 산모들은 수상한 눈초리로 나를 쳐다보다가, 책을 몇 권 출간한 사람이라는 말에 그제서야 궁색한 옷차림과 부스스한 행태조차 그러려니 하고 수긍들을 하는 눈치였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중요한 미팅이 있어서 간만에 양복으로 갈아입고 조리원으로 퇴근했다. 잘 닦여진 구두, 말끔한 수트, 포마드를 발라서 말끔하게 머리를 넘긴 채 조리원으로 들어갔는데 직원들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아는 체를 했다. 넉살 좋은 한 직원은 “누구 아버님이신지, 참 미남이시네요.”하고 듣기 좋은 인사도 해주었다. 

“예, 하늘이 아빠입니다.”
“그러시군요. 하늘이가 아버님을 닮아서 그런지 이목구비가 참 뚜렷해요.”

태어난지 열흘 밖에 되지 않아서 눈맞춤도 못하는 아기에게 뚜렷한 이목구비라는 게 있을 리 만무하건만, 늘 수면바지에 구부정한 자세로 노트북과 책을 가슴에 안고 종종걸음으로 다니던 내게 이렇다 할 아는 체라곤 하지 않던 분들이 말끔하게 옷을 갈아입고 나타났다는 것만으로도 다른 태도를 취하는 모습이 제법 재미있었다. 

비단 조리원에서 있었던 경험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언젠가 트레이닝복을 입고 호텔 로비를 돌아다닌 적이 있다. 초행길이었던 나는 로비에서 근무하는 직원에게 이것저것 물어보았고, 직원은 친절하게 내가 묻는 질문에 답을 해주었다. 그러나 그 날은 결혼식이 있는 날이었고, 나는 그 결혼식의 사회자였다. 잠시 후 내가 말쑥한 양복에 갈색 코트로 갈아입고 나타나자 갑자기 웃음기가 사라진 표정으로 딱딱하게 예식장으로 안내를 해주는 게 아닌가. 편안하게 대해야 할 줄 알았던 사람이 말쑥한 양복을 입고 등장하니 그 직원의 입장에서는 편안한 고객에서 불편한 고객으로 바뀐 경험이었으리라.

◇눈빛까지 경계하라

협상이란 결국 사람과의 관계다. 서로의 감정에 집중하고, 감정의 선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목표하는 바를 이루는 것이 협상의 기본이다. 상대의 감정의 흐름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주의깊게 살피지 않는다면 협상은 실패하기 쉽다.

그래서 상대방이 어떤 태도를 취하는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어떤 가치관을 갖고 있으며 어떤 주관을 갖고 있는지에 따라 내가 구축해야 하는 이미지 메이킹 역시 달라져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런 면에서 전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이고 위대한 기업을 만든 사람들(어느 유명 작가의 표현에 의하자면, 그들은 타이탄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모양이다.)은 모두 이미지 메이킹의 대가이자, 협상의 대가들이라고 할 수 있다. 협상이라는 이름 안에 세일즈, 구매심리, 인간관계의 특성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고 할 때 확실히 탁월한 조예를 갖추고 있는 셈이다. 

상대방이 무엇을 요구하는지, 상대방이 무엇을 원하는지에 초점을 맞추면 협상은 어렵지 않게 성공시킬 수 있다. 때로는 그 초점이라는 것이 매우 사소한 것일수도 있다. 중요한 계약건을 마무리지어야 하는 날인데 하필 비가 와서, 눈이 와서, 햇살이 너무 따뜻해서, 길을 걷다가 껌을 밟아서 고객의 마음에 여유가 없을 수도 있다. 협상은 그 중심의 핵심을 찾아내서 제거하는 일인 것이다. 

협상에 있어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감정의 흐름이다. 내 감정은 중요하다. 내가 처한 상황과 형편 역시 중요하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상대방의 초점이라는 사실은 협상에서 잊어서는 안될 가장 중요한 포인트다. 상대방의 감정에 초점을 맞추고 대화를 주도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다면, 협상에 있어서 중요한 기회들을 많이 얻게 될 것이다. 

글/사진=전준우 작가
글/사진=전준우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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