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킨게임

쌍둥이 여자 배구선수의 학교폭력 문제와 트롯트 가수의 학교폭력 문제가 불거지면서 검증되지 않은 공인의 실태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처음에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기억나지 않는다."고 발뺌하던 그들은, 계속적인 수사와 SNS를 통한 폭로를 견디지 못해 마지못한 사과를 하곤 한다.

모든 게시물을 삭제하고 검은 배경사진만 하나 올려둔다거나 손수 사과편지를 써서 개인 SNS계정에 올리기도 한다. 완벽한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의 본성이 악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본성을 절제하지 못할 정도로 거친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낸 사람들이 공인으로서의 자격을 갖춘다는 것은 쉽게 용납하기 어렵다. 방송과 SNS에서 보여지는 그들의 사과가 과연 진심어린 사과가 맞는지 의구심이 들 때도 있다.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격노한 운명의 화살과 물맷돌을
마음 속으로 견뎌내는 것이 더 고귀한가,
아니면 무기를 들고 곤경의 바다에 맞서,
끝을 내는 것이 더 고귀한가.
죽는 것은, 잠드는 것, 그것 뿐.
잠으로 심장의 고통과 육신으로부터 지음 받은
천가지 천부적인 충동을 끝낼 수 있다면
그것이 독실히도 바라던 것 아닌가.
죽는 것은, 잠드는 것.
잠이 들면 꿈을 꾼다.

-[햄릿], 셰익스피어

셰익스피어의 희곡 [햄릿]의 명대사 중 하나다.

셰익스피어에서의 햄릿은 죽음과 삶의 갈림길에서 괴로워한다. 가장 올바른 선택이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한다. 품위 있고 아름다운 청년이지만 행동력이 부족하다. 인간의 고뇌와 욕망, 탐욕에 대해 밀도 있게 기록한 역사적인 작품이다.

치킨게임은 햄릿의 고뇌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하나가 손해를 보거나, 둘 다 손해를 보거나 둘 중 하나다. 한가지 타협안을 두고 상대방을 포기하게 만들거나 상대방에 의해 포기하게 되는 강제성에 있다. 학교폭력은 가장 대표적인 치킨게임이자 확실하게 준비된 비극이다.

치킨게임은 다른 사람의 행동을 예측하고, 그 행동을 토대로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데 목적이 있다. 다른 말로 개인적 합리성Individual rationality이라고도 이야기하는데, 시대가 변함에도 끊임없이 대두되는 학교폭력 문제는 어긋난 개인적 합리성을 추구하는 학생들의 잘못된 사고관념에서 비롯된다. 심지어 당하는 입장에서도 더 큰 피해(보복성 집단구타, 감금 및 납치 등)를 피하기 위해 외부에 알리기보다는 마치 당연한 것인양, 사실인 양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결과적으로 모두가 피해를 본다.

한 사람은 가해자가 되고 한 사람은 돌이킬 수 없는 상처와 트라우마를 가진 피해자가 된다. 현 시대에서 가장 크게 대두되는 학교폭력 문제는 개인적 합리성을 내세운 치킨게임이 아니라 있어서는 안되는 비극적인 현실에 불과하다.

백보 양보해서 가해자들의 정신적 성숙도가 어른에 비해 비교적 미숙하다는 점을 감안했을 때, 가해자가 주변 선생님이나 가족들의 도움으로 변화를 입는다거나, 피해자가 적절한 도움으로 누구나 수긍할 수 있는 적절한 조치를 취한다면 최소한 피해자가 최악의 선택을 하는 식의 결과는 나오지 않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모든 사람에게, 사회 전체적으로 납득할 만한 긍정적인 결과, 즉 사회적 합리성collective rationality을 기반으로 한 긍정적인 결과가 만들어질 수도 있다.

◇합리성의 충돌

문제는, 이런 비극적인 현실을 반영한 사건 사고들이 매년 매스컴을 떠들썩하게 하고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키는데도 불구하고 적절한 조치가 취해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사회적 합리성을 추구하는 사람보다 개인적 합리성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시대다.

Fire족(경제적 자립을 통해 빨리 은퇴한 뒤 자신의 삶을 살고자 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신조어)과 YOLO(You Only Live Once)족의 언저리쯤에서 서성이는 사람들이 사회 전반적으로 퍼져나가는 분위기 속에서, 특별히 타고난 재능을 가진 사람이 사회 전체를 이끌어가는 시대가 형성된다. 어느 시대나 그래왔듯이 1%의 부적응자들(shoe dog)이 99%의 일반인들을 이끌어간다. 반면 학교폭력 문제는 갈수록 심화되어 간다는 데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개인적 합리성을 추구하는 사람이 많아지는 시대이므로 거스를 수 없는 비극은 반복된다.

학교폭력의 가해자, 그러니까 개인적 합리성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가장 큰 공통점은 자신들에게 이득이 되는 것이 무엇인지만 생각한다는 점이며, 다음 단계의 사고를 거치지 못한다는 점에 있다. 그 다음의 생각을 거치지 못하면, 똑같은 출발점에 서게 되는 사회인이 되었을 때 돌이킬 수 없는 어려움을 마주하게 된다.

학창시절에는 힘이 세고 패션감각이 뛰어난 학생들이 멋있어보이고 좋아보인다. 그래서 값비싼 옷을 입고, 멋진 운동화를 신는 것에 관심이 많다. 10대 학생들에게는 육체적 강인함과 보여지는 이미지가 가장 큰 힘의 원천이다.

시간이 흘러 20대와 30대가 되면 사회적 합리성에 기초하여 상대방과 소통이 원활하며 마음을 잘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더 많은 파이를 차지할 수 있다. 인지능력과 공감능력이 부족한, 즉 개인적 합리성만을 추구하는 사람은 다양한 인간관계에서 쉽게 분리되며 배척당하기 쉽다. 무엇보다 개인적 합리성이 위험한 가장 큰 이유는 자기 자신에 대한 신뢰가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시작은 작은 생각에서 비롯된다. 내가 상대방보다 힘이 세고 낫다는 생각, 혹은 상대방보다 어떤 부분이 월등하게 뛰어나다는 생각 하나가 마음을 이끌어간다. 이후 나의 이득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나의 옳음이 올바른 사고를 하지 못하게 만들고, 결국 상대방을, 나아가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아내의 잔소리

협상이라는 것은 다소 무거운 주제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협상이란 것이 꼭 외교관이나 국가의 수장에게만 필요한 기술은 아니다. 다양한 상황 속에서, 다양한 인간관계 속에서 반드시 필요한,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능력이다.

아내와 종종 말다툼을 할 때가 있다. 첫째 아이가 태어난 뒤, 말다툼은 이전보다 조금 더 늘었다. 그렇게 다투고 나면 마음에서 힘이 빠진다. 마음을 맞춰가는 것이 쉽지 않다는 생각도 들고, 그러다 보면 귀담아들어야 할 잔소리도 귀찮게 느껴질 때가 있다. 아내가 가진 단점들이 커보이고, 괜한 억지를 부리고 싶을 때도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존경하는 지인이 이런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와의 대화를 통해 나는 아내와의 대화가 상당히 우수한 협상이자 수준 높은 심리학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남자들은 아내의 잔소리가 필요해. 아내들에게 잔소리하는 즐거움을 줘. 아내들이 하는 잔소리는 좋은 거야. 아내들이 잔소리하지 않으면 남편들은 마음이 관리가 안돼. 아내가 잔소리를 편하게 할 수 있도록 도와줘."

그러고 보면 아내에게는 참 많은 장점들이 있었다. 밝고, 쾌활하며, 사교성이 좋다. 소심하고 사람을 가려서 사귀는 나와는 완전히 반대되는 성격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아내가 가진 마음의 그늘 아래에서 자주 쉼을 얻는다. 아내가 편하게 잔소리를 할 수 있도록 보듬어준다는 것, 어떻게 보면 아내와 나누는 마음의 협상이라고 할 수 있다.

잔소리하는 즐거움이 가득한 인간관계라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지만, 참 멋진 관계이기도 하다. 마음이 흐를 때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삐걱대고 엇갈리는 관계보다 잔소리하는 즐거움이 가득한 관계는 가장 훌륭한 협상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봤을 때, 내게 있어 아내는 마음의 밭을 가꾸는 사람이다. 그래서 아내의 잔소리는 호미가 되고 삽이 되어서 내 마음을 가꾸는 데 큰 도움을 준다. 아내는 나에게 최고의 협상가이자 심리전문가인 셈이다.

글/사진=전준우 작가
글/사진=전준우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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