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서 제일 먼저 가는 곳이 서재다. 기도를 하던, 책을 읽던, 하루를 시작하기 위해 제일 먼저 들어가는 곳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크고 작은 성과들을 만들어낸다. 때로는 눈에 보이지 않는 성과이지만, 작고 조악한 인간인 나를 크고 놀랍게 변화시키는 성과물도 있다.

지난 주말 아침, 서재에서 곰곰이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다. 지난 한 주 동안 무엇을 했나 생각하며 다음 주 계획을 짜는 시간이었다. 놀랍게도 이렇다 할 성과가 아무것도 없었다. 사업 성장률 관점에서 목표로 잡았던 업무들을 한 건도 제대로 해내지 못했다.

심지어 하루 동안 아무런 성과가 없었던 날도 있었다. 책 읽을 시간도 없었다. 열심히 산다고 살았는데, 육아를 병행하다 보니 저녁에 2시간 내는 것도 빠듯한 것이 핑계라면 핑계일까. 결국 시간관리 착오로 이어졌고, 목표로 했던 일들이 모두 물 건너가 버렸다. 아무런 결과물이 만들어진 게 없었다. 성과가 없었던 한 주. 시간관리의 실패로 성과를 남기지 못했던, 아쉬움이 남는 한 주. 허탈감으로 가득한 한 주. 그렇게 한 주를 보냈다는 생각에 강한 상실감이 들었다. 서재에서 많은 생각을 했다.

그중에는 종일 울적한 날도 있었다. 평소 면 종류를 즐겨먹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그날 저녁에는 비빔면을 3개나 끓여먹었다. 울적한 기분을 대변하는 행동이었다. 사무실에 나가는 것도 부담스럽고, 일을 하는 것도 부담스럽고, 사람들과 대면하는 것도 싫고 부담스러웠다. 어떤 것도 마음에 드는 게 없었다. 날씨도 흐리고, 기분도 울적하고, 마음도 싱숭생숭했다. 그 모든 일들이 나의 부족함과 어리석음때문에 만들어진 거지만, 주변 상황이 모두 부정적으로만 느껴지다 보니 작은 것 하나하나 마음에 상처가 되고 어두움이 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뜨겁게 한 주를 보냈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가, 누군가 묻는다면, 그렇다고 이야기할 수 있었다. 뜨거운 한 주였다.

우연히 유튜브에서 보게 된 누군가의 죽음, 그들을 향한 그리움과 상실감을 함께 위로하고, 함께 슬퍼하고, 그 슬픔에서 느껴지는 인지상정의 마음을 용기 삼아 공저 원고를 투고했고, 계약까지 완료되었다. 책을 쓰고 있지만 본업 때문에 바빠서 진척에 어려움을 겪는 어느 작가님의 원고를 집필하는 일 앞에 페이스메이커가 되어드리기로 자처했고, 덕분에 기업과 퍼스널 브랜딩 전문가인 그분에게서 브랜딩과 글쓰기 강의에 대한 조언까지 얻었다.

작가들이 모인 사회적 협동조합의 기획이사 자리를 제안받아서 새로운 감투가 하나 생겼고, 국제포럼, 도서 출판, 대안학교 운영을 추진하는 재단법인 연구소의 겸임 사무국장도 제안받았다. 크고 놀라운 사업들을 하나 둘 진행해보기로 결심한 것도 뜨거운 시간들을 채운 사색의 결정체들이다.

중요한 미팅이 있던 날에는 몸이 좋지 않아서 하루 정도 빠져도 되지 않을까, 하고 고민하며 기도하다가 아무렇지 않게 참석해서 뜨거운 열기와 감사한 시간을 보내고 왔다. 그것도 스스로 부담을 뛰어넘은 시간이었고, 하늘의 도우심으로 아직까지 건강히 살아있음에 감사한 것도, 아들과 책을 읽고 노래하며 행복한 시간을 나누는 것도, 뜨거운 시간들을 채우는 놀라운 경험들이었다. 결국 그 모든 시간들이 응축되어 나의 솔직한 마음을 만들어갔다.

그런 시간들을 통해 마음에 발견된 작은 깨달음이 하나 있었다.

내 인생은 왜 그와 같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왜 나는 어려움을 겪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왜 나는 슬프지 않아야 하며, 왜 나는 고통스럽지 않아야 하며, 왜 나는 외로움을 겪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돌이켜 생각해보면, 마음은 항상 뜨거운 시간을 갈망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내가 느끼지 못했을 뿐이었다, 고 생각했다. 아직 드러나지 않은 결과 때문에, 뜨거웠던 시간들을 대수롭지 않은 결과물들로 채워진 낭비의 시간으로 생각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사람은 하루아침에 달라지지도, 변화하지도 않는다. 하루, 이틀 채워지는 시간들 속에서는 미미한 변화밖에 측정할 수 없다손 치더라도, 5년 10년 뭉텅이 시간이 지나고 나면, 마음의 그릇이든 사업이든 내가 한계를 그어놓은 선까지 커져있음을 발견하게 되리라 믿는다.

울적하고 힘들게만 느껴지던 시간들이 있었지만, 어제와 전혀 다를 바 없이 무의미하게 흘러가는 하루하루처럼 느껴져서 왠지 더욱 지치고 울적한 시간들이 있었지만, 그런 내 곁에 조용히 앉아 뽀로로를 보는 아들의 모습이, 그런 내 옆에서 종알종알하는 아들의 모습이, 잠결에 내 손을 잡아주는 아내의 모습이, 문득 손으로 잡고 싶어도 잡히지 않는 머나먼 꿈결처럼 느껴졌다. 처음 겪어보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마음이 달라짐을 느꼈다.

정리정돈이 되어 있지 않은 집, 테이블, 주방의 설거지, 난장판이 된 게스트룸에 산처럼 쌓여있는 짐꾸러미들, 거실 바닥에 발 디딜 틈도 없이 뒹굴고 있는 콘프레이크 부스러기와 동물친구들 장난감 때문에 걸을 때마다 발바닥에 뭐라도 밟히는 바닥이 마치 따스한 소망으로 가득 담긴 행복한 일상처럼 느껴졌다. 혼자만의 조용한 저녁시간을 가질 겨를도 없이 아들에게 뽀로로를 보여주고, 씻기고, 재우는 그 모든 과정들이 마치 깨면 사라질 꿈처럼 느껴졌고, 있을 수 없는 소망의 하루처럼 느껴졌다.

울적하다고 생각하면 울적한 하루였고, 실패했다고 생각하면 실패한 하루였고, 이렇다 할 사업적인 성과도 없는 하루라고 생각한다면 그런 하루였을 시간들. 그러나 하늘이 내려주신 선물과 같은 아들과 아내가 내 곁에 살아 있음을 확인하며 돌아본 집은 너무나 크고 아름다운 곳이었고, 행복과 소망으로 가득한 곳이었다. 잠결에 아내가 옆에 있는 것을 느낄 때면, 아들이 나와 아내 사이를 비집고 들어와 내 팔과 아내의 팔을 베고 새근새근 잠들어있는 모습을 느낄 때면, 그렇게 마음이 행복할 수가 없었다. 

하루, 이틀 시간이 흐르면서 만들어지는 마음이 있다. 절망감과 불안함, 나는 과연 잘살고 있는가 하는 걱정 등이 그 예다. 걱정을 해서 걱정이 없으면 걱정이 없겠구나, 하는 말도 있지만, 살면서 누구나 할 수 있는 고민들이 아닌가 싶다. 늘 좋을 순 없으나, 좋지 않을 때에도 행복을 갈망하는 습관이 필요했다. 

급격한 한파주의보가 내려졌다. 어제보다 더 춥고 어두운 날이다. 그러나 오늘은 어제보다 행복하다. 오늘은 어제보다 감사하고, 어제보다 소망스럽고, 어제보다 꿈같은 하루다. 그렇게 나의 시간은 흐르고, 나는 조금씩 나아간다.

글/사진=전준우 작가
글/사진=전준우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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