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박 겉핥기 식'

문자 그대로, 맛있는 수박을 먹는다는 것이 딱딱한 겉만 핥고 있다는 뜻이다. 겉만 건드리다 보니 대상 사물의 속 내용은 모르게 된다는 말로 아무런 소득이 없는 행위를 이르는 말로 자주 인용된다. 비슷한 고사성어로는 주마간산(走馬看山)이 대표적이고, 다른 관용어구/속담으로는 "처삼촌 산소 벌초하듯”, “꿀단지 겉핥기” 등이 있다. 영어에서도 "겉만 핥아 보다", "아주 조금이다" 정도의 단어로 smatter가 있다.

요즘 주변에 나이가 차고 이러저러한 이유로 회사(조직) 생활을 그만두는 지인들이 많이 늘어나고 있다. 아직 젊고 체력도 튼튼하고 경험도 많고 그러다 보니 계속 일을 하고 싶어 한다. 그런데, 아무래도 나이가 이따 보니 재취업의 길은 요원하다.

물론, 눈 높이를 팍 낮춰서 도전하는 사람들은 그나마 쉽지만 기술은 없이 영업, 마케팅, 기획, 인사 등 소위 말하는 사무직 출신들은 더더욱 벽이 높아 보인다. 각자 맡은 영역에서 적게는 15년에서 많게는 30년 가까이 근무하다 보니 해당 분야에서는 전문가임에는 틀림이 없다. 사실, 그렇게 사장(死藏) 되는 역량들이 아까울 정도이고 국가적으로도 손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많이 든다.

일은 하고 싶고 해야 하나 조직에 다시 들어가긴 쉽지 않으니 창업을 많이들 고민한다. 친구나 동료들끼리 각자 보유한 역량과 인적 네트워크를 공유하면 꽤 가능성이 높아 보여 의욕을 갖고 법인을 설립하고 대표이사, 이사 선임할 계획을 진행한다.

법무사나 세무사 자문도 받으며 진행한다. 인터넷에서 검색하면 아주 많은 정보가 친절하게 잘 정리되어 있어 어렵지 않게 법인설립이 진행된다. 그런데, 왠지 시간이 지날수록 막막하다. 회사 다닐 때 사용하던 노트북이 슬슬 속도가 느려지고 작동이 잘 안된다. 사무직 직원 채용하고 싶은데 어디다 제안할지도 막막해진다. 조직생활 할 때는 노트북 작동 안 되면 IT 부서에서 뚝딱 고쳐주고, 인력 필요하면 인사부서에서 빠르면 일주일 이내 착착 준비해 줬는데 일일이 직접 하려니 낯설고 시간도 무척 오래 걸린다.

슬슬 무기력 감이 몰려온다. 지난 조직생활에 대한 자괴감도 든다. 어렵다. 생존해야 한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나! 막막하다. 특히, 큰 조직에서 오랫동안 근무한 사람들에게 나타날 수 있는 현상들이다.

안정적인 직장에서 결혼도 하고 아이들도 잘 키워냈다. 그런데, 막상 조직을 떠나니 모든 것을 내 손으로 직접 해야 한다. 하지만, 잘 모르겠다. 알음알음 예전에 사업을 시작한 지인들 찾아가서 배우고 하나 둘 만들어 가는데 손도 머리도 잘 안 돌아간다.

수박 전체를 모두 먹어보진 못했더라도 그 맛이라도 알고 있는 것과 진짜로 껍데기만 핥은 것은 엄연한 차이를 지닌다. 창업을 하려면 참여하는 사람은 전체 프로세스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배워야 한다.

젊은 창업가나 조직 경험이 풍부한 창업가나 사회의 규범과 새로운 환경에 대한 신속한 습득이 필요하다. 내 손으로 매출을 단돈 1만 원이라도 창출한다는 작지만 구체적인 목표 의식을 갖고 기초를 다져야 한다.

국세청 자료 기반 결과 10년간의 창업(자영업)자의 생존 비율은 20%가량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별다른 준비 없는 ‘묻지마 창업’ 탓이 크다는 지적이 많다.

21세기 정보화와 과학기술의 급격한 발전으로 인해 새로운 패러다임과 글로벌화 촉진으로 가치 창출의 원천이 지식과 정보 기반의 자본으로 이동하고 경제 활동의 범위도 글로벌로 확대되면서 창업은 지속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올 1월 중기부 발표에 따르면 창업 지원 예산 1조 4517억 원으로 전년대비 약 30% 증가하게 된다. 창업이 보편화되는 시대, 수박 겉핥기 식 창업이 아닌 기초를 다지고 도전하는 준비 자세가 절실히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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