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준우 작가의 글쓰기 방법에 관한 시리즈 다섯 번째

◇글쓰기의 아름다움에 대해

우리는 입체적인 달을 볼 수 없다. 항상 같은 면의 달만을 볼 수 있다. 우주선으로 달의 뒷면을 보기 전까지, 우리는 달의 표면적인 부분만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달은 분명한 형체를 갖고 있으며, 꽤 오랜 세월동안 태양의 반사판이면서 하나의 행성으로 존재해왔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사실이라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글을 쓰는 것도 마찬가지다. 글을 쓰는 것은 입체적이지 않다. 일방적이다. 대화할 대상도 없고 가르쳐주는 사람도 없다. 반면에 계속해서 새로운 무엇인가를 만들어내야 하는 창조적인 일이다. 그래서 강한 결심과 결단이 없다면 글을 쓰는 게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다. 독서, 습관적 메모, 예술적 감각과 훌륭한 인생 선배들은 모두 훌륭한 글을 쓰는 데 도움이 되는 좋은 길잡이다. 다만, 그 전에 우선적으로 준비되어야 하는 것이 있다. 나를 발견하는 것이다.

 25살 때 떠난 아프리카에서 내 마음을 강하게 두드렸던 깨달음이 하나 있었다. 숨을 쉬고, 밥을 먹고, 사랑하는 사람과 행복한 인생을 살아가는 것처럼 보여도 결국 나는 흙이라는 것. 누군가와 다투고, 때로는 미워하고, 슬퍼하는 일을 만나며 세상을 살아가지만 결국은 흙으로 돌아가는 존재라는 사실이 매 순간마다 내 마음을 위로하고 보듬어주었다.

언젠가 흙으로 돌아갈 내 인생은, 세상에 가치 있는 무엇인가를 남겨두지 않으면 흐르는 세월 속으로 영영히 사라질 수도 있다는 걸 자주 느꼈다. 그런 깨달음이 나로 하여금 독서의 중요성을 알게 했고, 작가로서의 삶을 살 수 있도록 인도해준 나침반이 되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때의 경험은 나이가 들어서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 앞에서 이야기한 사업들이 실패로 돌아가면서 비로소 ‘이제 무엇을 하고 살 것인가?’하고 인생의 정확한 목표를 향해 나아갈 수 있는 고민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꿈을 하나하나 정리해 보기 시작했다.

글쓰기는 다양한 방식의 훈련을 통해서 발전하는 기술이다. 타고난 재주꾼들도 있겠지만, 세상에 재주만으로 성공가능성을 보장해주는 일은 별로 없다. 독서와 집필은 꿈을 이룰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라는 것을 (어떤 방향성을 갖고 있는 꿈인지를 불문하고) 경험을 통해 깨달았다. 그리고 그 방법은 결코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의도적인 훈련을 통한 습관화가 필요했다.

◇준비의 의미

다른 누군가가 할 수 있거나 인생에서 이룰 수 있는 일이라면 나 역시 그럴 수 있다. ­윌리엄 해즐릿 (William Hazlitt)

교육기관에서만 줄곧 일해오던 내가 사업을 해보겠다고 처음 입을 뗀 것은, 결혼하고 나서 얼마 되지 않은 무렵이었다. 주변에는 사업을 해본 사람도 없었고, 이렇다 할 큰돈을 벌어본 사람도 없었다. 혼자 열의에 차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아니나 다를까, 주변에서는 아연실색하는 사람 천지였다.

돈은?
아이템은?
소비자는?
회사 그만두고?

물론 당시엔 한 귀로 흘려버린 말들이었다. 분명한 확신이 있다면 도전은 언제나 옳다. 다른 사람의 의견은 의견에 불과하다. 하지만 철저한 준비가 없이 시작한 사업은 결코 수월하지 않았고, 생전 처음 만나는 두려움들과 직면하면서도 담대하기는커녕 어쩔 줄 몰라서 허둥지둥 대는 나를 발견했다. 준비되지 않은 시도는 훌륭한 성과와 성공보다는 익숙지 않은 두려움과 더 자주 마주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래서였는지도 모르겠지만, 언젠가부터 나는 늘 펜과 노트를 들고 다니면서 기록하는 습관이 생겼다. 순전히 두려움에서 비롯된 습관이었다. 어떤 해에는 작고 밝은 노란색 수첩을 하나 구입했는데 지인분이 “노란색만 보면 준우씨 생각이 납니다. 노란 수첩이 무척 인상적이었거든요.”라고 이야기한 적도 있다.

대단한 걸 기록하는 건 아니었다. 그 때 그 때 떠오르는 생각들, 주변 지인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느꼈던 감사와 감동, 그 날의 즐거운 일과 행복한 일들을 휘날리듯 적어둔 정도였다. 개중에는 시시콜콜한 이야기도 있었고, 시간이 지나 후회하게 만드는 것들도 있었다.

중요한 것은, 그렇게 틈틈이 메모하는 습관도 어느 시점이 되자 휘날리듯 갈겨쓰는 것에서 페이지를 빼곡하게 채워나가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휘발성이 강한 기억력을 믿을 수 없어서 조금씩 쓰던 글이었을 뿐인데, 나중에는 하루에 3장의 일기를 쓰는 게 습관처럼 굳어지기 시작했다.

작은 메모에서 시작된 글쓰기가 몇 권의 책을 출간해낼 수 있는 글쓰기 훈련에 무척 큰 도움이 되었다는 것을, 책을 출간하고 난 뒤에야 비로소 어렴풋하게 느낄 수 있었다. 물론 그 때는 앞으로 글을 쓰는 사람이 될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고 글을 쓰면서 인생을 산다는 것이 막연한 꿈으로만 존재했을 뿐이지만, 어찌 되었건 의도치 않은 결과들로 인해 훌륭한 내적 훈련이 되었으니 그마저도 내겐 기회의 순간들이었다고 믿고 있다.

다양한 방면에서 얻게 되는 예술적 영감도 글을 쓰는 데 훌륭한 도움이 되었다. 20대 때 경험한 연극배우로서의 활동을 통해 훌륭한 예술작품을 많이 접할 수 있었고, 이는 곧 나로 하여금 형이상학적인 세계와 문장의 아름다움에 심취하도록 만들었다. 연극배우로 활동하는 동안 만난 예술작품들에 담긴 사건과 주제들이 결국은 사람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것을 알았다. 내게 많은 문학적 영감을 준 경험이었다.

그리고 처음부터 도움이 되었다기보다는,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도움이 되었다고 느껴지는 경우도 있었다. 일례로 고등학교 3학년 무렵, 지인의 추천으로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故 최순우 前국립중앙박물관장 지음)』를 구입했다. 당시 MBC에서 「책을 읽읍시다」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그 방송에서 선정된 도서였기에 추천한 게 아니었을까 지레 짐작해본다.

하지만 당시 내 수준으로 그 어려운 책을 읽기란 무리였다. 무척 어렵게만 느껴졌고, 재미를 느낄 수도 없었다. 그토록 어렵게만 느껴지던 그 책이,  서른이 넘어갈 무렵에서야 비로소 양서良書로서의 가치를 담은 책으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소박하고 담담한 필체로 써졌지만 풍부하고 아름다운 필체가 아름답게 느껴졌다. 글쓰기의 아름다움에 대해 더 깊은 공경과 확신을 갖게 된 것은 물론이다.

인생에서는 일차적인 방향만 있는 건 아니다. 어떤 선택을 하게 되느냐에 따라 여러 갈래의 길이 생겨난다. 겪어보기 전에는 모르는 어려움과 슬픔, 고난, 역경이 생겨난다. 하지만 이겨내면 좋은 경험이 되고, 글로 옮기면 자서전이 된다. 시간이 지나면 문학이 되며, 때로는 고전 작품으로서의 가치를 지니기도 한다. 글쓰기를 시작해야 하는 이유다.

◇글쓰기를 통한 연결과 만남

사람들은 살면서 친구를 만나고, 선생님을 만나며, 새로운 가족을 만든다. 이처럼 인생은 끊임없는 연결과 만남으로 이루어져 있다. 연결과 만남을 통해 우리는 마음을 나누고, 행복을 느끼고, 감사를 배운다. 이 때 어떤 마음을 가진 사람과 관계를 유지하느냐에 따라 배울 수 있는 세계가 넓어지기도 하고, 좁아지기도 한다.

사람들은 살아온 환경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저마다 다른 마음의 그릇을 갖고 있는데다 생각도 다르다. 어떤 사람은 훌륭한 인격체를 갖고 있고, 어떤 사람은 삐뚤고 어두운 마음을 갖고 산다. 누구와 연결되느냐에 따라 삶의 방향이 달라지는 법이다. 독서가 중요한 이유가 이 때문이다.

나는 평균적으로 30년 미만의 책은 잘 읽지 않는다. 개인적인 취향 때문이다. 출간된 지 30년이 지난 책이라면 30년간 팔리고 있는 책이라는 의미가 되지만, 그렇지 않다면 1쇄만 출간한 책이라는 말이다. 오랜 세월동안 사람들에게 읽혀진 책들 속에는 무한한 지혜가 숨겨져 있다.

책은 기본적으로 저자의 마음과 사상이 녹아들기 마련이다. 마음의 이야기를 글로 풀어내는 훈련을 한 사람들은 자신들이 추구하는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책이라는 도구를 활용했다. 그리고 얼마나 많은, 그리고 다양한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칠 정도로 파급력을 갖느냐에 따라 책의 출간년도는 계속해서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기 마련이다.

필자는 좋아하는 책이 있다. 아마 이 글을 읽는 독자도 좋아하는 책이 있을 것이다. 그럼 그 책이 왜 좋은지 곰곰이 생각해보라. 작가가 좋아서였을 수도 있고, 책이 재미있어서 좋았을 수도 있고, 혹은 당신만의 가치기준점에 부합하는 책이라서 좋아할 수도 있다. 하지만 더 세밀하게 따져본다면, 우리는 작가가 좋아서라기보다는, 그 사람이 쓴 글을 좋아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글은 마음과 마음을 연결하는 도구로 활용된다. 그래서 마음이 담겨 있는 글일수록 읽기 쉽고 더 담백하게 들린다. 신문의 사설면을 보는 것보다 동화책을 보는 게 더 재미있는 이유는 단지 쉽고 간단해서만은 아니다.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어주는 글들이 많기 때문이다.

글쓰기가 처음부터 쉽게 다가오지는 않는다. 첫 줄 쓰는 것조차 어렵게 느껴질 수 있다. 무엇을 써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섣불리 글로 표현하려니 어색하고 부담스러울 수 있다. 그럴 때는 부담을 갖고 다가가지 말고, 내 마음의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전달한다는 마음으로 써보길 바란다. 보다 확실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글은 내용을 전달하는 매개체로서의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마음을 전달하는 도구로서의 가치가 더 크다는 사실을 인정하자.

◇글이 아니면 안 된다는 각오로

글을 쓰는 건 사회적 기업을 설립하는 것과 같다. 일반 기업이 아니라 사회적 기업이다. 영리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조금 다르지만, 사회적으로 선한 영향력을 미치면서 무엇인가를 창조해낸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이렇다 할 방향성도 없이 운영되는 기업은 없다.

목표와 가치기준점이라는 게 존재한다. 사회적 기업은 거기에 추가적으로 사회에 어떤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무엇인가가 존재해야 한다. 글을 쓰는 것도 마찬가지다. 글을 쓰기로 시작했다면, 우선 방향성을 설정하는 게 우선이다.

펜을 들고 글을 쓰기 전에, 무엇을  쓸 것인가에 대해 정확한 목표점과 가치관을 갖고 새로운 세계를 창조한다는 마음으로 임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반드시 사회에, 혹은 누군가에게 '선하고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이어야 한다.

사회적기업의 설립은 전문 경영인Chief Executive Officer이 하더라도, 운영은 반드시 사회적 기업가 정신Entrepreneurship을 가진 사회적 기업가로 말미암아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entrepreneur가 아니다.

ship이다. ship은 어느 분야에서든지 통용되는 정신이다. 사업가든, 직장인이든, 장사꾼이든, 작가든, ship은 mind를 대변하는 정신세계다. ship이 부족하면 글쓰기도, 사업도 어렵다. 적어도 나는 그랬던 것 같다. ship이 부족해서 실패경험이 많았다.

글쓰기에서도 마찬가지다. 글을 쓰기 위해서는 마음에 ship을 채우는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 나는 운동, 아내와의 대화, 다양한 독서를 통한 영감, 감동스러운 경험과 삶에서 종종 찾아오는 여운이 남는 깨달음에서 ship을 얻는다.

작가로, 강사로, 푸르덴셜의 라이프 플래너로 생활하면서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눈다. 때로는 사회적으로 어느 정도의 성공궤도를 달리고 있는 분들과 좋은 시간을 가지기도 한다. 그 분들과 나누는 시간의 밀도는 확실히 다르다는 걸 느꼈다.

생각의 속도, 사업의 속도, 혁신의 속도가 무척 빠르다. 배울 점이 많고, 훌륭한 정보도 많이 갖고 있다. 그 속에서 많은 깨달음을 얻는다. 그 모든 것들은 내게 writership이라는 이름으로 다가와서 글의 훌륭한 소재가 되어 준다. 물론 훌륭한 사람들만 소재가 되어주는 것은 아니다. 잠결에 해골에 고인 물을 떠먹고 도를 깨달았다는 사람도 있지 않은가?

글을 쓴다는 건, 지금보다 나아지기로 결심한 사람들에게만 주어지는 인고의 훈련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단순히 좋은 취미나 훌륭한 배움 정도로 끝나버릴 일이 아니다. 다른 사람이 가지지 못한 나만의 세계를 누군가에게 전달하는 기회이자,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훈련의 시간이기도 하다.

글을 쓴다는 건 내면을 한층 더 깊고 세밀하게 연단해가기 위한 과정에 몰입하겠다는 것이다. 누구나 도전할 수 있지만, 아무나 글을 써서는 곤란하다. 훌륭한 학벌, 훌륭한 직장과 같은 수많은 장점들과 도구들을 갖고 글쓰기를 시작하고 책을 출간한다 할지라도, 마음에 창조성과 ship이 살아있지 않으면 이력서에 한 줄 들어갈 수 있을 정도의 그저 그런 자기계발서로 끝나버릴지도 모른다. 글쓰기를 시작하면서, 당신의 내면이 한층 더 깊어지고 고개 숙일 수 있는 마음의 그릇이 만들어지길 바랄 뿐이다.

글/사진=전준우 작가
글/사진=전준우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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