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엔 특별기획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 시리즈 열여섯 번째, 김강윤 소방관의 홍수에 관한 이야기

스타트업엔에서는 특별 기획으로, 사회 각계각층의 사람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연재하고자 한다. 그 열여섯 번째 이야기는 불철주야 국민의 안전을 위해 헌신하는 부산 소방본부 산하 특수구조단 수상구조대 소속 김강윤 소방관의 홍수에 대한 이야기인 '다시 사는 삶'이다.

빗물에 잠긴 논 (사진=김강윤 소방관)
빗물에 잠긴 논 (사진=김강윤 소방관)

◇다시 사는 삶

어릴 적, 그러니까 7, 8살쯤으로 기억하는데 '셀마'라는 태풍이 한반도에 상륙했을 때이다. 뉴스에는 온통 곧 태풍이 들이닥칠 것이니 만반의 준비를 하라는 소식만 보도됐다. 어린 눈에 보이는 하늘은 온통 시커멨고 비는 올 듯 말 듯 하면서 바람만 불어대는 것이 여간 겁이 나는 것이 아니었다. 어쨌든 태어나 처음으로 태풍이라는 무서운 자연의 힘을 이때 보게 된 그때였다.

어마어마한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바람도 바람이었지만 시골 동네의 도랑이 다 넘쳐흘렀고, 멀리 보이는 논밭이 다 물에 잠겼다. 집안의 방 한구석에 숨어 두 살 터울의 형이랑 내리치는 빗소리와 천둥소리에 깜짝깜짝 놀라며 토끼 눈으로 문밖의 비만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 비가 좀 잦아들 오후 늦게 때쯤이었다. 소변이 마려워 일을 봐야 했는데 화장실을 가려니 뒷마당을 가로질러 가야 있는 푸세식 화장실까지 걸어가기 귀찮아 대문 밖 도랑으로 조르르 달려 나갔다. 평소 내 무릎까지밖에 차지 않았던 도랑물이 길 위로 찰랑찰랑 넘쳐흘러 있었다. 황토색 물이 세차게 흘렀는데 얼른 일보고 들어갈 생각에 물가로 성급하게 다가갔다.

홍수로 넘친 도랑(사진=김강윤 소방관)

그때였다. 넘쳐흐르던 도랑물이 내가 신고 있던 슬리퍼를 쓸어가 버렸다. 그 슬리퍼는 형이 새로 산 슬리퍼였고 형한테 혼날 거 같은 생각이 들자 손을 뻗어 슬리퍼를 주우러 허리를 숙였던 것이 화근이었다. 순간 몸이 앞으로 쏠리며 나는 황토색 도랑물로 빨려 들어갔다. 순식간의 일이었다. 그 이후로는 기억이 없다.

아버지의 말에 의하면 그 이후 상황은 다음과 같다. 어른 키만 한 깊이가 되어버린 도랑물에 나는 떠내려 갔다고 한다. 그러던 중 앞집에 사는 한 살 위 누나가 길을 가다가 나를 보고 "인형이 떠내려간다" 외쳤다고 한다. 이 말을 들은 동네 어른들이 나를 확인하고 아버지에게 달려갔고 그러는 중에도 나는 빠른 물살을 따라 계속 떠내려갔다.

잠깐 나를 보고 인형이라고 외쳤던 그 누나를 생각해보자면 그 누나는 이 일로 나를 많이도 놀렸다. 도랑에 떠내려간 인형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 누나가 나를 인형으로 보지 않았다면 난 발견되지 못했을 것이다. 생명의 은인인 그 누나가 지금은 고맙다.

어쨌든 그렇게 둥둥 떠내려가던 나는 동네 어귀 밖 큰 냇가로 향해 가고 있었다. 동네 초입에는 경찰 지서(지금의 파출소)가 있었는데 거기에는 방위 아저씨들이 빗속에도 족구를 하고 있었다. 나는 평소 그 아저씨들을 똥 방위라고 불렀는데 딱히 이유는 몰랐고 그냥 아버지가 그렇게 불렀기 때문에 나도 그랬던 것 같다.

그런 방위 아저씨들은 아버지와 동네 아저씨들이 사라진 나를 찾기 위해 소리치며 도랑을 따라 뛰어 내려오자 그 소리를 듣고 일제히 도랑쪽을 쳐다봤다고 한다. 때마침 얼굴만 겨우 내놓은 채 떠내려가는 나를 발견한 방위 아저씨들이 도랑으로 지체 없이 뛰어들었다고 한다.

서너 명의 장정이 들어온 도랑의 물살은 거셌다고 한다. 어른도 버티고 서있기 힘든 도랑물에서 겨우 나를 건져 냈고 나는 아버지에게 인계(?) 되어 집으로 오게 되었다. 그 동네 초입만 벗어나면 큰 냇가를 만났을 것이고 그 냇가는 다시 낙동강으로 흘러갔을것이니 나는 찰나의 순간에 극적으로 구조된 것이다.

눈을 뜨자 뜨끈뜨끈한 방 안에서 이불을 덮고 있었다. 한 여름이었지만 내가 체온이 많이 떨어졌을 거라 판단한 아버지가 군불을 땠고 어머니는 푹신한 이불로 나를 덮어 놓은 것이다. 그런데 나를 왜 병원에 데려가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들어 훗날 아버지에게 물어보니 비도 많이 오고 버스 기다리기도 힘들어 나를 일단 지켜보기로 했다고 한다. 그럴만한 것이 그 사단을 겪은 어린 내가 숨이 온전히 잘 붙어 있더라는 것이다. 기침 몇 번 하는 거 말고는 사지 멀쩡히 살아 있으니 아버지 생각엔 별일 없을 거라 판단했던 것 같다. 천운이었던 것 같다.

이 일로 나는 도랑을 떠내려간 아이로 고향 일대에 소문이 났다. 학교 앞 구멍가게 둘째 아들이 인형 떠내려가듯이 도랑에 떠내려가는 것을 지서(파출소) 똥 방위들이 건져낸 사건이 된 것이었다. 암만 생각해도 전혀 웃을 일이 아닌데 내가 그 동네를 이사 나오던 중학교 1학년 때까지 동네 어른들이나 형, 누나들은 두고두고 이 일로 나를 놀려댔다.

나는 그 일 있은 후 물이라면 썩 좋아하지 않았던 것 같다. 물론 시골 동네다 보니 여름이면 냇가나 계곡으로 물놀이 다니며 즐겁게 놀기는 했지만, 비 오는 날 물가에는 절대로 가지 않았다. 무섭다기보다 부끄러운 마음이 컸는 듯했다.

수난 구조 교관(사진=김강윤 소방관)
수난 구조 교관(사진=김강윤 소방관)

40년이 지난 지금 나는 소방관이 되었다. 그중에서도 사람을 구하는 구조 대원이 되었다. 또 그중에서도 물에서 일어나는 사고를 담당하는 수상구조 대원이 되었다. 군대는 해군을 갔다 왔고, 그중에서도 수중침투를 전문으로 하는 특수부대(UDT)에서 4년을 넘게 근무했다.

그뿐인가? 50m, 60m 바닷속을 들락거리는 테크니컬 다이버가 되었고 깊고 깜깜한 수중동굴을 탐험하는 케이브 다이버도 되었다. 부산을 관통하는 낙동강을 담당하는 수상구조대의 구조반장이 되어있다. 소방학교에서는 수상구조사, 인명구조사, 구조 수영 등 수난구조 교육을 전문으로 하는 교관을 하기도 했다. 중고등학생들한테 해양 안전에 대해 알려주는 안전 강사도 한다.

물이 차 넘쳐흐르는 도랑에 빠져 떠내려가던 어린아이는 커서 물에서는 결코 죽을 거 같지 않은 남자가 되어 있다. 삶의 아이러니인지 모르겠지만 되려고 한 것도 아니었는데 이렇게 되어(?) 버렸다. 언젠가 군 전역 후 어머니는 나의 진로가 걱정되어 잘 아는 철학관에서 나의 사주를 보았다고 한다.

그 철학관에서는 절대 남쪽으로 그것도 바닷가로 가지 말라 했다고 한다. 어머니는 어릴 적 사고도 있고 해서 그 철학관의 말에 맞장구를 치며 우리 아이는 절대 물가로 보내지 않을 거라 했다고 한다. 아버지 역시 그 사고 이후 내가 물이 무서워 물과 관련된 일은 절대 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고 한다.

수중 구조 훈련(사진=김강윤 소방관)
수중 구조 훈련(사진=김강윤 소방관)

지금 나는 나의 고향(경북 김천)에서 남쪽인 곳, 그것도 바다로 둘러싸인 부산에 와서 13년째 살고 있다. 모든 이의 예상과 다르게 나는 물이 없으면 먹고 살수 없는 사람이 되어 버렸다. 물을 공부하고 어떻게 하면 물에서 나의 일을 더 잘할 수 있을지 매일 고민하는 직업을 가지게 된 것이다.

어쩌면 그날, 태풍이 지나가던 그때, 물속에서 죽다가 살아난 그 순간, 나는 지금 하는 일에 중요한 교훈을 이미 다 배웠던 거 같다. 자그마한 도랑물도 넘치면 어린 생명을 집어 삼키는 무서운 물의 위력을 알게 되었고, 매일 족구만 하다가 6시에 칼퇴근하는 똥 방위 아저씨들이 사람을 구하기 위해 물속으로 뛰어드는 놀라운 용기를 보게 된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지나가는 동네 누나의 외침이(그것이 인형이든 사람이든) 한 생명을 살리는 가장 큰 역할을 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이 모든것이 지금 내가 하는 일에 있어 가장 기본이 되는 수상 구조 이론에 다름이 아니다.

어찌 됐든 난 나의 일을 사랑한다. 이 일을 하는 것이 나의 운명인 듯 느껴진다. 최근의 홍수피해가 그래서 더욱 안타깝다. 더는 피해가 없기를 바란다.

정해진 운명이 있다고 맹신하지 않는다. 팔자가 어떻고 사주가 어떻고 하는 말들은 조심히 인생을 살아가라는 조언으로 여겨진다. 다가올 미래를 두려워하기보다 오늘 하루를 충실히 살아가는 것이 더 소중하다고 본다. 과거에 매몰되어 앞날을 두려워하는 것도 어리석은 일이다. 어릴 적 죽음의 문턱까지 다녀온 그 날을 생각하면 하루하루를 감사히 살아가고, 타인의 생명을 위한 나의 일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이 내가 해야 할 일임을 깨닫는다.

글/사진 김강윤 소방관
글/사진 김강윤 소방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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