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준우 작가의 글쓰기 방법에 관한 시리즈 일곱 번째

◇서재의 시작

갑작스럽게 눈병이 걸렸다.

얼마 전부터 눈이 조금씩 아프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빨갛게 충혈이 되서 출근도 못할 지경에 이르렀다. 동네 안과에 가서 진찰을 받았는데 결막염이란다. 이게 웬 마른 하늘에 날벼락인가 싶으면서도 얼씨구나 싶었다.

출근시간은 아침 7시 30분이다. 집에서 사무실까지 걸리는 시간은 무려 40분, 늦어도 아침 6시 50분에는 출발해야 제 시간에 도착할 수 있다. 5분이라도 늦으면 차가 많이 막히기 때문에 아침미팅에 늦는다. 서두를 수 밖에 없다.

살면서 아침식사를 거른 적이 별로 없었는데, 바나나 쉐이크나 구운 고구마 한 덩어리 들고 허겁지겁 집 밖을 나서는 날들이 많아졌다. 이른 출근 덕분에 하루를 계획적으로 쓰는 습관이 생겼지만 배가 조금씩 나오기 시작했고, 배우는 게 많아질수록 일정이 빠듯했다. 퇴근 시간은 매일매일 달랐다. 어떤 날은 오후 4시에 퇴근했다가도 어떤 날에는 새벽 1시에 들어왔다. 재밌게, 하지만 힘겹게 하루하루를 버텨나가는 동안 몸에 이상이 생길만 했다.

바깥출입을 일체 금하고 집에만 있는 동안, 그동안 못했던 것들을 하나 둘 해나가기 시작했다. 휴대폰 꺼놓고 늦잠 자기, 하루종일 씻지도 않고 컴퓨터 앞에서 글쓰기, 새로 구매한 널찍한 쇼파에 누워서 잔뜩 쌓아놓은 책 골라보기, 아내랑 같이 점심 먹기, 아내 다리 베고 누워서 낮잠자기 등등. 간만에 찾아온 여유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일주일이 훌쩍 지나갔다. 그렇게 일주일을 보내고 나니, 덜컥 겁이 났다. 내가 지금 뭐하는거지. 그제서야 내가 너무나 오랜 시간동안 사색과 묵상에서 벗어난 시간을 보내고 있었음을 발견했다. 다시 서재로 들어가서 그 동안의 시간을 참회하고, 일상으로 돌아갈 준비를 시작했다.

◇격리된 공간의 힘

대안학교에서 교사로 근무하는 동안 마음은 감사와 소망으로 가득했지만, 경제적인 안정을 보장해주는 곳은 아니었다. 한 달에 10만원 적금하기도 빠듯했다. 직장생활한 지 3개월만에 결혼했다. 부모님과 주변분들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어떻게 결혼했을까 싶을 정도로 형편없는 경제상황이었다. 3개월치 월급으로 집대출금을 마련하고, 신혼여행을 가고, 혼수를 장만했다. 할머니에게 제대로 된 용돈 한 번 드린 적이 없었다. 장손이 그 모양인데, 어느덧 고로에 접어든 노인에게도 경제력이란 게 있을 리 만무했다. 그러나 2013년 겨울,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아내와 나를 앉혀놓고 아흔을 바라보는 할머니께서 하얀 봉투를 하나 내미셨다. 200만원이었다.

“우리 집 장손인데 결혼할 때 줄라고 내가 조금씩 모았다. 장롱을 하나 하던가, 요새 젊은 사람들이 김치냉장고 하나씩은 해간다고 하던데 그거 하나 사던가 하그라. 휴대폰을 좋은거 새애기하고 하나쓱 나나 하던동.”

나는 한참동안 할머니의 눈을 바라보았고, 그 눈에 담긴 세계, 그러니까 나의 얕은 삶의 궤적으로는 도무지 가늠할 수 없는 마음의 깊이를 헤아리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그런 내 눈을 아내는 또 한참동안 바라보고 있었다. 할머니가 주신 돈으로 책상을 샀고, 책장을 샀고, 책을 샀다. 그렇게 서재를 만들었다.

결혼전부터 아내에게 신신당부한 것 중 하나가 서재였다. 아무리 어렵게 살더라도, 서재만은 절대 없앨 수 없다고 못을 박았다. 원룸에 살면 그 나름대로 집 전체를 서재로 만들 것이고, 투룸에 살면 서재와 안방으로 나눌 것이다 하는 식이었다. 그만큼 서재는 내게 중요한 의미를 가져다주는 공간이었다.

20대 중반부터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그 중에는 삶에서 깊은 존경심을 불러일으키는 은사님들도 많았다. 마음이 깊고 순수한, 그래서 무슨 이야기를 해도 들어줄 수 있을 것만 같은 분들을 만날 때면 마음에서 큰 위로와 감사가 채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분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모두 자신들의 서재가 있었다. 서재의 모양은 모두 달랐다. 어떤 분은 한 분야에 집중적으로 파고 들어서 공부하는 성향이 있어서 벽 전체가 책으로 둘러싸인 모양새를 갖추고 있는가 하면, 어떤 분은 잔잔하고 아름다운 그림만 두어 개 벽에 걸어두고 명상하는 것을 즐기셨다.

족히 3미터는 됨직한 커다란 책상에 일간/주간/월간 계획표를 아주 세밀하게 기록해서 정리해두는 분도 계셨고, 커다란 테이블을 가운데 놓고 토론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좋아하는 분도 계셨다. 서재를 대하는 그들의 모습은 모두 달랐지만, 마음의 결은 일반인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깊고 주밀했다. 격리된 공간에서 만들어지는 내면의 힘이 몰라보게 깊은 수준으로까지 인간의 격을 높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뒤, 서재는 내게 가장 큰 위로와 안식을 제공해주는 공간으로 차츰 인식되기 시작했다.

◇서재의 의미

서재는 영혼을 정결케 하는 공간이다. 어머니의 품과 같은 곳이며, 마음의 두려움을 벗어던지고 새로운 용기를 덧입을 수 있는 신성한 곳이다. 적어도 내겐, 서재가 그런 공간이었다.

서재는 책장 이상의 가치를 내포하고 있는 순수의 상징이다. 뜨거운 심장, 차가운 머리는 예술가뿐만 아니라 도약을 꿈꾸는, 모든 인간을 위한 필수불가결한 조건이다. 서재는 그것을 만드는 데 최적화된 용광로와 같은 공간이다.

서재에서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가령 당신이 몽당연필 하나로 전쟁에 참전한 20대 젊은 청년의 애증이 담긴 망발의 한을 글로 풀어내고자 한다면, 서재는 그것이 가능하도록 당신의 마음에 두터운 용기와 강인한 정신력을 불어넣어준다. 혹 당신이 감당할 수 없는 슬픔과 두려움을 만나서 도무지 앞이 보이지 않는다고 느낄 때면, 서재는 다시 훌훌 털고 일어나서 호탕한 웃음을 지을 수 있는 묵상의 기회도 제공해줄 수 있다. 그야말로 인간의 내면을 가장 아름답고 깨끗한 단계로까지 내려놓을 수 있도록 돕는, 물두멍과 같은 공간인 셈이다.

물론 서재라는 공간 그 자체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입장이다. 내면의 세계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을 느낄만한 시간, 혹은 그 느낌이 기화되어 사라지지 않도록 지속적으로 붙들어줄 수 있는 공간이라면 충분히 서재로서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다고 믿는다. 설령 버스 안이든, 지하철 안이든. 브레송(Henri Cartier-Bresson)은 카메라 없이 눈으로 사진을 찍는데(『세기의 눈』 18p, 피에르 아술린, 을유 문화사), 왜 서재를 찬양하는 사람에게는 버스 안이 서재가 될 수 없단 말인가.

서재는 작가를 위한 공간이 아니다. 글을 쓰기 위한 공간은 더더욱 아니다. 인간으로서의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는 모든 사람을 위해 필요한 공간이다.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작가나 사진가가 아니더라도, 서재는 필요하다.

나는 서재에서 무역회사를 창업했고, 실패했고, 흔해빠진 학원 전단지를 만들었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 지 막막해하면서 눈물을 흘렸고, 수없이 거절을 받으면서 출간원고를 썼다. 지금도 내가 기거하는 서재는 고고한 인문학자나 초대형 베스트셀러 작가가 원고를 집필하는, 달콤한 종이 냄새가 나는 그럴듯한 서재와는 거리가 멀다. 너저분하고 정리되지 않은 이면지가 잔뜩 쌓여있는, 수백권의 책이 그 어떤 규칙과 배열의 원칙도 없이 마구잡이로 꽂혀있는 카오스의 공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서재가 내게 너무도 소중한 공간인 것은, 이 곳에서 보낸 수많은 시간들이 매일 조금씩 나를 성장하게 한다는 놀라운 사실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서재가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번뜩이는 지혜나, 남들이 생각지도 못했던 위대한 결과물만을 제공해주는 시간의 방과 같은 존재는 아니다. 책은 어디까지나 타인의 경험을 체계적으로 정리해서 문서화한 뒤 엮은 종이꾸러미에 지나지 않은가. 결혼 초기에, 존경하는 은사님이 우리집을 방문하신 적이 있었다. 여기저기 둘러보시더니 서재로 들어가서 한참동안 책꽂이에 꽃혀있는 책들을 둘러보셨다. 그 분에게 무엇을 유심히 보고 계시느냐고 여쭤보았다.

"자네가 어떤 책을 읽고 있는지 보고 있었어. 어떤 책을 읽는지 보면, 어떤 마음을 갖고 사는지도 보이잖아."

출간된 지 30년 미만의 책은 잘 읽지 않는 나로서는 그 은사님의 말씀이 무척 크게 들려왔다. 평생동안 남을 위해 헌신하며 살아오신 은사님의 마음은 무척 겸손하고 깊었다. 내가 보지 못하는 부분을 보는 사람들에게서 느껴지는 품위는, 아쉽게도 책에서 얻을 수 없는 것들이었다. 살면서 만난 숱한 어려움과 위기의 순간들, 포기와 절망밖에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도 뚝심을 갖고 조금씩 발걸음을 내딛은 사람들에게서 만들어진 마음의 진폭은 무척 좁고 파동도 크지 않았다. 서재에서 보내는 시간만으로는 만들어질 수 없는 마음의 품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나는 서재가 좋다.

옹알이밖에 할 줄 모르는 아들을 서재 바닥에 뉘여놓고 『어린왕자』 원서를 읽어줄 때, 아들은 내 눈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내가 하는 말을 귀기울여 듣곤 했다. 어린 왕자를 다 읽고 난 뒤 『노인과 바다』를 읽어주었고, 『노인과 바다』가 지루하다고 느껴질 때쯤 말콤 글래드웰의 『타인의 해석』을 읽어주었다. 아들을 품에 안고 『성경』을 읽을 때, 눈이 사르르 감기는 아들의 얼굴에 대고 『삼국지』를 읽어줄 때, 말로 다할 수 없는 감사함과 소망을 느꼈다.

아내와 머리를 맞대고 수박을 먹으면서 사업을 구상할 때, 뜨거운 아메리카노에 구운 고구마를 먹으면서 『서양미술사』를 공부할 때, 마음이 힘들고 어려워서 눈물로 기도할 때, 그런 어려운 순간에도 서재는 내 곁에 있었다. 서재에 있는 동안, 내 마음은 감사함과 소망으로 가득했다. 행복 가운데 잠들고 소망스런 마음으로 아침을 맞이하는 나의 인생. 그런 행복과 소망, 기쁨을 내게 선사해준 것은 카오스의 공간처럼 보이는, 탈고중인 원고가 수북히 쌓여있는 서재 바닥이었고, 고로의 할머니가 주신 200만원으로 장만한 오래된 떡갈나무 책상이었다. 그것들은 모두 내가 지독히도 사랑하는 우리 집 서재에 있었다.

글/사진=전준우 작가
글/사진=전준우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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