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준우 작가의 글쓰기 방법에 관한 시리즈 여덞 번째

◇펜과 종이의 탁월함

키보드의 편리함과 아이패드의 실용성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만들어진 기술의 표징이다. 나 역시 컴퓨터로 책을 쓰고, 카페나 도서관에서는 아이패드를 활용해서 칼럼과 글을 쓴다.펜으로 쓰면 30분이 걸릴 내용을 컴퓨터로 10분만에 처리할 수 있다는 것은, 생각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펜의 단점을 보완해주는 훌륭한 기술이다.

다만 완성된 초고를 대상으로 진행하는 30번이 넘는 퇴고는 반드시 펜으로 한다. 종이 위에 인쇄된 초안 원고를 펜으로 수정하는 동안, 모니터로 빠르게 읽어가며 퇴고하는 것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담백한 글이 만들어지는 것을 느꼈다.

전자책
전자책

그런데, 그러나, 그렇지만, 그렇긴 해도. 어떤 부사를 쓰는 게 더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읽혀지는지, 차라리 쓰지 않는 편이 더 나은지를 생각하던 시간들. 더 담백하고, 더 쉬운 글을 쓰기 위해 고민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글을 쓰는 사람에게 있어서 펜과 종이의 탁월함을 항상 기억해야 함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책, 혹은 글을 쓰고자 하는 사람은 펜과 종이가 키보드나 아이패드보다 훨씬 더 힘이 있다는 사실을 알기 전에는 펜으로 쓰는 글이 가장 담백하고 정직하게 읽혀진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에도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펜과 종이
펜과 종이

◇펜과 종이로 만들어진 세계

펜과 종이가 항상 만년필이나 원고지일 필요는 없다. 묵상하며 쓸 수 있는 도구라면 굳이 펜과 종이가 아니어도 괜찮다. 언젠가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다가 메모할 내용이 떠올랐다. 그 때 휴대폰에 장착된 펜을 꺼내서 휴대폰 메모지에 떠오르는 생각들을 줄기차게 써내려갔다. 자동저장이 되니까 잃어버릴 염려도 없고, 휴대폰을 분실해도 클라우드 계정에 저장되어 있으니 그것도 걱정 없다.

수년째 유료로 사용하고 있는 에버노트와 전세계 5억명이 넘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원노트는 단 한번도 내게 실망감을 안겨주지 않은 최고의 노트들이다. 내가 사용하는 에버노트는 15개의 스텍으로 나누어져 있고 한 개의 스텍 안에 평균 5개의 노트가 분리되어 저장되어 있는데, 이는 곧 평균 75개의 서로 다른 주제를 가진 노트가 정리되어 있다는 것과 같다.

아이패드가 없거나 외부에서 급하게 메모를 해야 하는 경우에는 원노트를 사용한다. 페이지를 자유자재로 크기를 조절할 수 있기에, 아주 넓은 종이에 마음껏 글을 쓰는 것과 같은 효과가 있다. 자연스럽게 생각의 폭이 넓어지는 걸 느낀다.

글을 쓸 때 펜과 종이의 효과를 가장 크게 볼 수 있는 분야는 다른 무엇보다 희극이 아닌가 싶다. 일상속에서 사용하는 언어와는 달리 관객의 집중도를 최대한 끌어올리기 위해 구사해야 하는 문장의 표현력 역시 최상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데 집중해야 하는 글이니만큼, 오래된 희극일수록 문장의 아름다움이 일반 자기계발서나 에세이와 비교되는 부분이 많다.

"판단은 네스터와 같고 천재는 소크라테스와 같고 예술은 버질과 같은 사람. 대지는 그를 덮고 사람들은 통곡하고 올림푸스는 그를 소유한다."

인류 역사상 가장 탁월한 연극인이자 극작가였던 윌리엄 세익스피어(1564-1616)의 흉상 아래에 적혀있는 문구다. 영국 역사상 가장 찬란한 시대로 일컬어지는 엘리자베스 시대에 활동하던 인물이던 세익스피어는 당시 수억의 인구, 풍부한 천연자원이 묻혀 있는 영국의 식민지 인도와도 바꿀 수 없는 한 사람이라는 칭호를 받을 정도로 훌륭한 극작가였다. 세익스피어의 희극을 읽다 보면, 대자연에서 만들어진 사유의 깊이가 얼마나 창의적이고 조화로울 수 있는지 진지하게 생각하게 된다.

호레이쇼 : 깜짝 놀라 사라져버렸지. 마치 끔찍한 소환장을 받아든 죄인처럼, 새벽의 나팔수인 수탉이 앙칼진 목소리로 낮의 신을 깨우면, 그 울음소리에 놀라, 땅에서건, 허공에서건, 바다에서건, 불에서건, 떠돌고, 헤매던 혼령들 제 처소로 내뺀다 하더니만, 여기 있던 그 혼령이 이 말이 사실임을 입증해 주는군.

마셀러스 : 수탉이 울자마자 사라져 버리다니. 이런 말도 있지 않나. 성탄일이 다가오면, 이 새벽의 새가 밤새도록 노래하고, 그래서 혼령들이 감히 나다니지 못해 태평한 밤이 깃든다고. 떨어지는 유성도 없고, 마법을 부리는 요정도, 마녀도 없다고 말이야. 정말이지 은혜롭고 성스런 시기지.

『햄릿』,윌리엄 세익스피어

희극과 햄릿
희극과 햄릿

세익스피어의 글만 그런 것은 아니다. 비교적 현시대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 사무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즈』 모두 생각의 범주를 뛰어넘는 창의적인 작품들이다. 모든 예술작품이 그러하겠지만, 드라마나 영화와 달리 희극은 기본적으로 글로써 완성되는 상념의 결과다. 정리된 생각을 글로 기록하는 예술활동인 만큼, 안무가의 춤사위만으로 대략적인 윤곽과 줄거리를 연상해야 하는 발레나 한국무용만큼 추상적이지는 않다.

◇펜과 종이는 훈련을 위한 도구

글쓰기는 생각을 깊게 해야 하는 일이다. 생각하지 않으면 글을 쓸 수 없다. 그런데 그 생각하는 과정이 나에게는 상당히 재미있는 일로 다가왔다. 글만 쓰면서 밥벌이를 하는 게 그다지 쉬운 일은 아니기에 개인사업을 하면서 틈틈이 글을 쓰고 있지만, 사회생활을 하면서 만나는 스트레스를 푸는 데는 글쓰기만큼 효과적인 것도 없었다.

비가 오는 날에는 『배우론』을 썼고, 날씨가 좋을 때는 자기계발서를 썼다. 일을 하면서 짬짬이 칼럼을 썼고, 퇴근 후에는 독서와 공부에 집중했다. 아까운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아서 생산성 없는 만남이나 부정적인 사람들과의 접촉은 최대한 피했다.

어떤 면에서 글쓰기는 훈련과 같다. 생각을 단련하고, 마음을 단련하는 훈련인 셈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생각을 연단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끊임없이 머리를 혹사시켜야 가능한 일이다. 꾸준히 글을 쓰기로 작정한 사람에게서 무슨 글을 써야 할 지 모르겠다거나, 도무지 실마리를 잡을 수 없다는 말이 나온다는 것은 요행으로 글쓰기를 하겠다는 말과 같다. 글을 쓰기 위해서 독서하고, 글을 쓰기 위해서 사람을 만나며, 글을 쓰기 위해서 생각해야 하므로, 글쓰기에는 요행이라는 게 존재할 수 없다. 펜을 들고 종이에 글을 쓰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생각의 훈련이 시작된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언젠가 친한 동생에게서 중고 전자책을 하나 얻었다. 빌려준다고 말은 하면서 정작 본인은 쓸 일이 없기에 나중에 달란다. 난데없이 전자책이 생겼다.

생각보다 가성비가 좋았다. 가볍고, 눈도 피로하지 않았으며, 무엇보다 다양한 책을 읽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들고 다니기 무거운 책들도 전자책 하나만 있으면 가방에 쏙 넣고 다니면서 읽을 수 있었다. 세상이 몰라보게 좋아졌다는 것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늘 들고 다니면서 책을 읽었다. 이제 비싼 돈 주고 책 살 필요가 없겠다는 생각에 웬지 모를 성취감마저 느껴졌다.

하루는 화장실에서 손을 씻고 난 뒤 전자책을 집다가 손에서 미끄러졌다. 쩍 하는 소리와 함께 바닥으로 떨어진 전자책은 액정이 완전히 나갔고, 더 이상 글을 읽기가 불가능할 정도로 부서져버렸다. 설상가상으로 출시된 지 오래된 제품이라서 수리비용이 신제품을 구매하는 것보다 더 많이 들었다.

한참 재밌게 읽고 있던 박완서 작가의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는 액정이 부서지는 바람에 절반밖에 읽지 못했다. 결국 다시 종이책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다시 종이책을 집어들었을 때, 종이 위에서 사각거리며 춤추는 펜의 운율에 맞춰 글을 썼을 작가들의 모습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비로소 전자책의 편리함보다 종이책의 거친 촉감을 더 좋아했던 나를 발견했다.

글쓰기는 훈련이다.
글쓰기는 훈련이다.

◇마음을 쓰는 펜, 마음을 담은 종이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키보드와 아이패드는 말로 다할 수 없을 정도로 글쓰기에 최적화된 훌륭한 도구다. 사용방법에 따라 효과적인 활용이 가능하며, 평소 꾸준히 글을 써온 사람이라면 아이패드 하나만 있어도 충분히 한 권의 책을 쓸 수 있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이 하나 있다. 글에는 마음이 담긴다는 사실이다. 생각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펜과 종이를 대신할 도구로서 만들어진 게 키보드와 아이패드다. 그러나 생각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말은, 다르게 표현하자면 생각의 깊이가 깊어진다는 말과도 같다. 생각의 특성상 휘발성이 강한 반면, 펜으로 쓰다 보면 수많은 가지치기가 가능해진다. 자연스럽게 다방면으로 창의적인 생각을 구사할 수 있다. 펜과 종이가 가진 가장 큰 장점이다.

글을 쓰기로 마음을 먹었다면, 펜과 종이와 가까워져야 한다. 생각의 방향성 때문이다. 나는 지독한 악필이다. 때로는 내가 쓴 글을 알아보지 못해서 애를 먹을 때도 있다. 하지만 염려하지 않는다. 생각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서 휘갈겨쓴 것일 뿐이다. 키보드로 썼다면 결코 나오지 않았을 생각의 깊이와 창의적인 방향성이 펜과 종이로 글을 쓸 때 만들어지는 것을 자주 발견한다. 확실히 펜과 종이는 글을 쓰는 사람이 갖추어야 할 필수도구인 셈이다.

글/사진=전준우 작가
글/사진=전준우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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