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회를 보는 눈

1년 새 3권의 책이 출간되었다. 난데없이 작가가 되었다. 그러자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기회들이 조금씩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우연히 알게 된 어느 대표님이 계신다. 울산에서 제법 크게 사업을 운영하시면서 다양한 모임의 수장으로도 활동하는 분이다. 늘 밝은 얼굴로 웃으시는 중년의 사업가와 30대의 내가 3시간 넘게 웃고 떠들며 편안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은 다양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목표의식과 도전정신, 그리고 남다른 부지런함과 사업적 기질을 갖고 계신 분이었다. 문득, 욕심이 생겼다.

이 분의 인생을 책으로 써보고 싶다.

첫 책을 쓰는 데 걸린 시간은 무려 5년이었다. 지금은 맘먹고 한 달이면 한 권의 책을 쓸 수 있다. 3권의 책을 출간해보니, 책 쓰기에 대한 대략적인 감이 잡혔다. 물론 그게 전부는 아니다. 책 쓰기가 그렇게 쉽냐고 묻는 분이 계시는데, 퇴고하는 데 3개월에서 길게는 6개월이 걸린다. 만만한 건 아니다.

사회적 영향력, 인지도, 마케팅 능력에 따라 얼마만큼 많은 책이 판매될 수 있는지 출판사에서는 가늠한다. 책을 출간하면 저자 혹은 작가라는 말을 듣기도 하지만, 출판사 입장에서는 사업 파트너에 불과하다. 팔리지 않는 원고를 쓰는 사람보다 많이 팔릴 가능성이 있는 원고에 관심을 가지는 건 당연한 일이다. 나는 사회적인 재력과 인지도를 가진 대표님이 책을 쓰신다면 지금 하고 계신 사업에 대한 홍보효과는 물론, 인생을 되돌아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씀드리며 책을 쓰는 데 도움을 드리겠다고 말씀드렸다.

대표님과 나눈 대화들, 대화 중간 중간에 언급하시던 예화들을 노트에 정리해 보니 제법 훌륭한 자서전이 만들어졌다. 몇 번의 만남을 더 가지면서 내용을 추가하고 문장을 다듬으면 훌륭한 한 권의 책으로 출간될 수 있겠다 싶었다. 중간 중간 필기도 하고 맞장구도 치면서 녹음한 내용을 바탕으로 글을 썼다.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겠구나 싶었다.

◇내가 모르는 사실들에 관하여

대표님과의 식사자리에서 함께 동행한 분도 책을 출간한 저자, 작가였다. 난데없이 작가가 된 나와는 달리 오랫동안 문학협회, 시쓰기협회 등등 단체에서 활동하신 50대 여성분이었다. 주변에 몇 권의 책을 출간한 작가들도 있었고, 그 분들과 종종 모임도 갖고 계셨으며, 꾸준히 공부하는 걸 즐기는 분이었다. 좋은 취지로 책을 출간하는 데 도움을 드리겠다고 말씀드리니, 검토를 해주겠다고 하시며 메일로 보내달란다. 깔끔하게 표지까지 입혀서 대표님과 나눈 대화를 글로 써서 정리한 뒤 메일로 보내드렸다. 한참 뒤 연락이 왔다.

“나는 잘 아는데 준우씨가 아직 잘 모르는 것 같아서 이야기해주는거에요. 문장이 좀 거칠다. 부사도 너무 많고, 뭔가 강요하는 것 같은 느낌이 많이 들어. 대폭 수정을 좀 해야겠어요. 일단 원고 작성되는 대로 나한테 보내줘봐, 수정은 내가 할게.”

나는 책을 쓸 때마다 30번 이상의 퇴고를 하는 습관이 있다. 최대한 간결하게, 최대한 단순하게, 최대한 쉽게 글을 쓰려고 노력했다. 뛰어난 저자는 아니더라도 노력하는 모습은 비춰줘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럭저럭 나쁘지 않게 글을 쓴다고 생각했고 녹음과 필기한 자료를 바탕으로 초안을 썼는데 대뜸 쓴소릴 들으니 기분이 팍 상했다. 그러나 어쩌랴? 아무리 그렇기로서니 서로 잘되자고 하는 말이었고, 나보다 오랫동안 글을 써온 사람인데 말이다.

같이 문장을 다듬으면서, 추구하는 방향이 조금은 다르다는 걸 느꼈다. 이를테면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라고 할 말을, 그 분은 “나는 이런 게 아닐까 조심스레 추측해보았다.” 라는 식으로 문장을 만들었다. 말도 그러하듯이 글이란 것도 아 다르고 어 다른 거 아닌가. 누구에게든지 도움을 입을 마음으로 배우면 얻어지는 게 많다. 그러나 내 마음에 풀리지 않는 한 가지 의문이 있었다. 그 의문점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한참동안 고민했다. 그러다가 문득 좋은 생각이 하나 떠올랐다.

◇마음의 함정

얼마 뒤, 이 분에게 A4 1장 분량의 짧은 칼럼을 하나 보냈다. 그리고 “급하게 어디 보내야 할 칼럼인데 수정할 부분이 있는지 좀 알려주세요.” 하고 메시지를 보냈다. 그리고 어떤 결과가 벌어지는지 기다려보기로 했다. 한참 뒤에 이 분에게서 연락이 왔다.

“내용이 부족하네요. 마무리도 흐지부지 하구요. 중간 중간 다듬었어요. 하지만, 그러나 같은 부사 접속어는 빼는 게 좋아요. 아직 젊으니까 많이 배워야 되요.”

이 분이 보내주신 수정본을 읽어봤다. 주제에 맞춰 쓴 글이라 틀은 고정되어 있었으므로 큰 변화는 없었지만 군데군데 수정을 한 흔적이 있었다. 그리고 내게는 ‘다듬었다.’고 표현했다.

내가 이 분에게 보내준 칼럼은 내가 쓴 글이 아니었다. 강원국 작가의 『대통령의 글쓰기』 중 일부분이었다.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의 스피치라이터, 메디치 미디어 주간, 한국을 대표하는 글쓰기 베스트셀러 작가, 수천 회에 걸쳐 글쓰기 노하우 강의를 하는 글쓰기 강사이자 전북대학교 교수. 글쓰기에 있어서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베테랑인 강원국 작가의 글을 그 분이 ‘다듬었다.’

◇작가는 왕이 아니다

첫 책이 출간될 때, 아침에 일어나서 눈을 뜨는 것도 꿈만 같았다. 세상에 내 이름으로 된 책이 출간된다는 게 믿어지지 않아서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것처럼 느껴졌다. 겉으로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누가 나한테 뭐하는 사람인고 물어보면 아주 자신 있고 당당하게 “책을 출간한 작가입니다.”라고 이야기해줄 요량으로 ‘누가 나한테 뭐하는 사람인지 좀 안 물어보나’하면서 하루하루를 살았다. 그러나 세 번째 책이 출간되고 네 번째, 다섯 번째 저서를 출간 준비 중에 있는 요즘은 나 자신을 작가라고 소개하는 게 그렇게 민망스러울 수가 없다.

말하기와 글쓰기는 엄연히 다르다. 말은 조리 있게 할 수 있으나 글쓰기는 훈련이 필요하다. 평소 독서를 게을리 하거나 영상매체에 익숙해져 있는 사람이라면 글쓰기는 더할 나위 없이 어렵고 힘든 일이다. 글쓰기는 깊게 생각한 사람들만이 영위할 수 있는 세계다.

문제는 작가, 혹은 글을 쓴다는 사람들이 가진 내면의 깊이가 글쓰기에 소질이 없다고 하소연하는 사람들의 그것과 비교했을 때 뛰어나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근거를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는 게 가장 큰 함정이다. 글쓰기라는 게 꾸준한 노력과 훈련에 의해 다듬어지는 기술이라는 사실은 맞다. 일반적으로 글을 잘 쓰는 사람들이 말을 조리 있게 하는 것도 맞다.

남들이 가지지 못한 뛰어난 능력을 갖춘 사람이라는 점에서 글쓰기는 확실히 훌륭한 예술적 능력이다. 그렇다고 해서 글 쓰는 기술을 갖춘 사람이, 작가라는 타이틀을 가진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뛰어나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그런데도 누군가를 가르치는 데 익숙해져 있는 사람들이 많다. 책을 출간했다는 것만으로, 글 좀 쓴다는 능력으로 누군가를 가르칠 수 있는 자질을 갖춘 건 아닌데 말이다.

책을 출간하면 작가라고 이야기한다. 내면의 세계를 글로 풀어낼 수 있는 자질을 갖추었다는 것은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일이다. 그러나 조직폭력배나 살인범, 혹은 강간범이나 유괴범이 『범죄의 기술』 혹은 『피의 그림자』와 같은 제목의 책을 출간한다고 해서 그 사람에게 작가라는 칭호를 붙여준다면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

다시 말하지만, 글을 잘 쓰는 건 능력이다. 훌륭한 필력을 인정받은 글이 책으로도 출간된다면 그것도 칭찬받을 일이다. 그러나 내면의 깊이는 글쓰기의 능력과 비례하지 않는다. 작가라는 호칭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할 일이다.

◇자신을 가르친다는 것

“자네, 그런 마음으로 살면 안 돼.”

언젠가 존경하는 은사님이 내게 해주신 말씀이다. 세 번째 책이 출간되기 전이었다. 이런저런 어려움 때문에 심적으로 고단함을 느끼고 있던 때라, 그런 충고의 말씀이 곱게 들리진 않았다. 그러나 돌이켜 생각해보면, 이전과 다른 마음을 갖고 있었다는 사실을 이제는 안다. 뒤돌아볼 여유가 없는 상황 속에서 겪는 어려움 때문이라는 핑계로, 조급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았다. 그런 내면의 세계가 글에 묻어나왔고, 은사님은 그런 내 마음을 지적했다. 자신을 가르치지 못하는 사람에게서 보이는 거만함, 남을 가르치려는 자세는 조금만 마음의 귀를 기울이면 금방 티가 나는 법이다. 그는 내게서 그런 거만함을 보았던 것이다.

나는 글을 쓴다는 사람들 중에서 자신을 가르치는 데 익숙한 사람을 별로 만나보지 못했다. 반면에 누군가를 가르치는 데 익숙해져 있는 사람들은 수도 없이 만났다. 글을 쓰는 사람들은 스스로를 가다듬는 훈련을 꾸준히 해야 한다고 믿는다. 글은 마음을 담는 그릇이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가르칠 수 없는 사람이 쓴 글에서 느껴지는 얄팍한 마음의 세계는 별다른 힘이 되지 못한다. 작가라는 호칭을 얻으려고 노력하기 전에 마음을 연단하는 훈련이 절실한 이유다.

글/사진=전준우 작가
글/사진=전준우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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