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19로 새로움에 도전하다.

한 직업에서 30년을 한결같이 일한다는 것은 정말 좋아하지 않으면 어려운 일인 것 같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2대 독자인 나는 군대를 6개월 방위 근무 후에 바로 피아노 조율사로 사는 삶을 살 수 있었다. KBS ‘무엇이든 물어보세요’에서 나온 피아노조율이라는 직업을 보고 운명적으로 피아노조율을 만나게 되었고 30년간 피아노조율을 천직으로 알고 생활했다.

성남에 있는 삼익 피아노 매장에서 8년 근무하고 분당에 악기 매장에서 2년을 일했다. 자영업자로 피아노. 악기점을 10년간 운영하면서 다양한 활동을 했다. 성남에 있는 YMCA 청년회장을 맡으면서 레크리에이션반과 풍물반, 탈춤반 등의 활동을 하면서 내 속에 있는 끼를 맘껏 발산할 수 있었다. 레크리에이션과 풍물반 활동을 하면서 직업을 바꿀 기회도 있었지만 몇 개월의 긴 고민 끝에 피아노 조율사의 삶을 지속했다.

용인 수지에 있는 피아노. 악기점을 10년간 운영할 때도 피아노 조율사의 삶은 놓지 않았었다. 한 가지를 30년 동안 한다는 것은 끊임없는 노력과 자신과 싸움 그리고 지속적인 자기계발이 있어야만 가능한 한 듯하다. 미국으로, 중국으로, 일본으로 전 세계 피아노 조율사 모임인 IAPBT(국제 피아노 조율사 협회)국제 총회를 통해서 좋은 기술을 어깨너머로 볼 수 있었고, 나의 기술과도 견줘 볼 수 있었다.

그로 인해 세계 수준을 보고 더 열심히 당당하게 피아노 조율사로서 활동할 수 있었다. 그 결과 KBS 아트홀, 총신대학교, 꿈의 교회 등 이름있는 연주 홀과 학교, 교회의 피아노조율도 할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피아노조율의 본고장인 유럽의 독일로 가서 제대로 된 기술을 배우려고 마음먹었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오스트리아에서 공부하고 오신 박성환 선생님을 만나면서 국내에서는 사용하고 있지 않은 조율법 등 양질의 기술을 다시 배울 수 있었다. 이 기술을 배우고, 유럽에서 유학하고 온 많은 전문 연주인들이 인정해주는 기술자로서 자리 잡는 이유가 됐다.

올해 코로나 19 때문에 많은 연주회와 교회에 조율들이 연기와 취소가 되면서 사단법인 한국 피아노 조율사 협회에 등록된 약 600명의 회원은 각자의 삶을 살아 내기가 참으로 힘겨운 상황에 놓이기도 했었다. 나는 위기가 올 때면 다시 한번 나 자신을 되돌아보고 앞으로 3년, 5년, 10년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냉철하게 생각해 보곤 한다.

중국 우한에서 시작된 코로나 19는 전 세계를 덮쳤고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었다. 올 2월이 지나서 3월이 되면서 예약되어 있던 피아노조율과 연주회 일정이 미뤄지면서 의도치 않게 피아노조율도 방학을 맡게 됐다. 그때 년 초에 계획했던 피아노조율 관련 자격증이 생각났다. 피아노와 연결되는 관련 국가공인 자격증이 없을까? 생각하고 알아보다가 국가공인 목공기능사 자격증을 알게 됐다. 피아노 대부분이 목재로 이루어졌고 목재의 함수율과 설계, 피아노가 파손됐을 때 목재의 성형 수리 등을 응용할 수 있는 국가공인 목공기능사는 나에게 딱 맞는 자격증이었다.

목공 연습중 필자(사진=김현용 조율사)
목공 연습중 필자(사진=김현용 조율사)

◇20년 생각만 했던 목공기술을 배우다.

코로나 19 때문에 신청했던 교육이 밀리면서 먼저 국가공인 도장(칠)기능사를 먼저 수강하고 자격증을 취득했다. (차후에 국가공인 도장(칠) 도전기도 소개하겠다) 5월쯤에 상담을 받고 신청해 놓고 전문 목공기술 학원의 교육과정이 7월에는 시작을 해야 했었는데 교육 직전에 코로나로 연기됐다.

우여곡절 끝에 10월이 되어서야 국가공인 목공기능사 자격증 취득을 위한 목공 기술교육이 시작됐다. 주말반을 신청했다. 토요일, 일요일 오전 9시부터 5시 30분까지 약 8시간 정도 수업이 진행되는 과정이었다. 목공기술 교육 첫날, 설레는 마음으로 학원으로 향했다. 첫 수업인 만큼 들뜬 마음도 있었고, 어떤 동기들이 함께 목공수업을 함께 할지도 궁금하기도 하고 기대도 됐다. 20대 청년부터 내 나이가 훌쩍 넘은 선배님들까지 다양한 세대가 국가공인 목공기능사를 취득하기 위해서 한자리에 모였다.

첫 수업은 46년 경력의 목공기능장이신 유광복 원장님의 시설에 대한 설명과 공구 사용법, 안전에 관한 개괄적인 수업이 진행됐다. 목공기술을 배우는 과정이기 때문에 전동대패 및 자동 일각 대패 사용법과 각종 전동공구 사용법 주의할 점 등을 자세하게 설명해 주셨다. 유광복 원장님의 수업이 끝나고 우리 목공 10기 반 수업을 담당할 선생님께서 대패 날과 끌을 직접 숫돌에 가는 작업에 관해서 설명을 해 주셨다.

목공학원(사진=김현용 조율사)
목공학원(사진=김현용 조율사)

어릴 적에 시골에서 아버지가 농사일을 나가시기 전에 낫을 숫돌에 갈거나 다른 도구들을 숫돌에 가는 모습들 볼 수는 있었다. 나도 공구들을 사포나 그라인더로 갈아 본 적은 있지만, 목공용 대패 날과 끌을 갈아 본 적은 처음이었다. 동기들이 물통 하나와 전체적인 목공수업에 사용할 공구를 받았다. 그중에 숫돌은 꺼내서 커다란 물통에 담가 놓았다.

목공반 선생님은 대패 날과 끌을 갈기 위해서는 숫돌을 물에 적셔서 잘 갈리게 한 다음 갈아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잠깐의 시간이 지나고 목재로 된 받침을 하나씩 받고, 대패 날을 먼저 갈기 시작했다. 적절한 각도와 힘을 주어 잘못 갈릴 일이 없도록 하라고 선생님은 여러 번 주의하라고 했다. 손으로 하는 일이라면 그래도 자신이 있었던 터라 숫돌에 대패 날을 갈기 시작했다.

그리 익숙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대패 날은 잘 갈아지고 제법 날이 섰다. 열심히 대패 날을 갈고 나서 선생님께 여러 번 검사를 맞았다. 그래도 빨리 대패 날을 갈아 놓고 대패에 장착해서 대패 날의 길이를 조절해서 나무들을 대패로 깎을 수 있었다.

목공반 선생님은 나무를 대패질할 때 대패를 적당한 길이로 조정하는 방법도 알려 주셨다. 나무 대패질하는 요령도 알려 주셨다. 오른손으로 대패를 쥐고 왼손으로 대패 날을 잡고 전체적으로 몸을 써서 앞에서 뒤로 끌어당기라고 하셨다. 능수능란한 선생님의 대표 질에 목공 10기 동기들 모두 환호와 함께 손뼉을 쳤다.

끌도 크기 별로 숫돌에 갈고 나서 선생님께도 검사를 맡았다. “다 되셨네요”하신다. 대패 날과 끌을 숫돌에 가는 수업이 끝나고 나서 선생님은 현치도라는 국가공인 목공기능사 실기시험을 볼 때 쓰는 설계도면에 관해서 설명을 해주셨다. 전체 도면을 한번 보여 주셨는데 그렇게 복잡해 보이지는 않았다.

현치도(사진=김현용 조율사)
현치도(사진=김현용 조율사)

각각의 목재를 정확하게 재서 샤프로 톱질할 부분을 표시하는 먹 넣기를 하기 위해서 설계도인 현치도를 작성해야 했다. 이 때문에 더 집중해서 선생님의 설명을 들었다. 처음에는 연필이나 볼펜을 사용하지 말고 얇은 샤프로 현치도를 그리라고 하셨다. 그 이유는 좀 더 굵은 볼펜이나 심이 더 굵은 연필은 전체적인 현치도를 그릴 때 실제 두께보다 더 두껍게 그려지기 때문이었다.

나중에 지붕 창호가 있는 작품을 완성할 때 오차범위가 커지기 때문이라고 설명을 해 주셨다. 충분히 이해가 됐다. 미리 준비해 간 샤프에 샤프심이 넣고 커다란 교수용 삼각자 2개와 600mm 철자, 300mm 철자, 150mm 철자, 플라스틱 직각 삼각자 등을 이용해서 현치도를 하나씩 그려나갔다.

학창시절 기술 시간에 책꽂이, 새집 만들기를 하기 전에 간단한 설계도를 그려서 완성한 적이 있어서 딱 그때 생각이 났다. 그러나 책꽂이와 새집을 만드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작업이었다. 실제 현치도에는 한옥에서 볼 수 있는 끼워 맞춤 작업이 가능한 기다란 막대기처럼 생긴 꼭지를 만들어서 끌과 망치를 사용해서 홈을 파서 홈 속에 집어넣는 장부를 그려야 했다. 장부가 들어갈 수 있는 홈에 15mm, 30mm 정도로 그려 넣어야 했고 각 목재를 크기별로 기둥을 세우고 실제 창과 비슷하게 생긴 창호를 그려 넣는 작업까지 완성해야만 했다.

그렇게 숫돌 작업과 현치도 그리는 작업에 대해서 배울 수가 있었다. 함께 수강한 수강생들은 열심히 각자 현치도에 몰입해서 그리고 있었다. 능수능란하게 그리진 못했지만, 열심히 하는 모습에‘나도 더 열심히 해야겠다’라는 마음을 먹었다. 한주 한주가 지나가고 현치도 작업은 완성됐다. 실제 목재를 받아서 현치도에 맞춰서 흡사 한옥의 지붕 단면을 만드는 듯한 모양의 작품을 하나씩 하나씩 만드는 과정을 진행해 나갔다.

현치도(사진=김현용 조율사)
현치도(사진=김현용 조율사)

중간마다 기능장 이광복 원장님이 우리에게 톱질과 대패질, 못질 등을 하나씩 가르쳐 주셨다. 유광복 원장님과 목공반 선생님은 국가공인 모공기능사 자격증 시험에 필요한 핵심 기술들을 한 개씩 전수해 주었다. 그중에 못질이 제일 자신이 있었다. 평상시에도 피아노조율을 하면서 못질을 할 일은 자주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일상적인 각도의 못질이 아닌 45도 각도를 꺾어서 못질해야 하는 일들이 있어서 난관은 있었다. 서로 목재의 단면을 마주 보게 톱질하여 작품을 완성해야 하므로 단면을 한 번에 자르는 것보다는 번개 모양이나 제트자 모양, 사선으로 톱질을 해야 할 때도 있었다. 이렇게 톱질이 끝나면 각 목재의 모서리 끝 각을 잘 맞춰야 했기 때문에 신중한 톱질을 해야만 했다.

어찌 됐든 국가공인 목공기능사 시험을 보기 위해서는 정교한 톱질과 대패질, 끌질한 뒤에 전체 각을 맞춰서 마무리 못질로 고정하고 작품을 완성해서 제출해야 한다. 정해진 5시간 안에 제출해야 했기 때문에 한 가지 한 가지 신중하게 기술을 배우고 조금씩 조금씩 방법들을 습득해 나갈 수밖에 없었다.

피아노조율을 30년 하고 전문기술을 갖고 있었지만, 피아노조율을 여러 대해도 몸이 쑤시거나 관절이 그렇게 아프진 않았다. 하지만, 1주~2주가 지나가면서 관절도 아프고 손 마디도 쑤시고 허리도 아프고 목도 결리고 전체적으로 안 썼던 근육과 관절들을 써서 그런지 온몸이 아팠다. 몸이 지칠 때면 집에 와서 다시 든든하게 아내가 차려준 음식들을 먹고서 재충전을 해서 다시 학원으로 향했고 하루하루 현치도에 맞춰서 작품을 만드는 데 최선을 다했다.

3주가 지나고 하나하나씩 시험에 필요한 도구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시간을 줄이기 위해서는 손대 패로 마지막 세부적인 작업은 하지만 전동대패로 전체적인 목재의 각진 부분을 깎아내서 시간을 줄여야만 했기 때문에 전동대패도 필요했다. 또한, 지급된 목재의 두께를 맞춰서 전체 작품을 완성해야 했기 때문에 자동대패도 필요했다. 구매는 금액이 너무 비싸서 엄두가 나질 않았다. 시험을 볼 때 ‘대여를 해야겠다’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첫날 친해진 내가 사는 안산과 가까운 시흥에 사는 후배가 수원에 아는 목공기술학원이 있다고 했다. 국가공인 목공기능사 시험을 보기 직전에 거기 가서 연습하기로 서로 약속을 했다. 그렇게 6주 가까운 시간이 지나갔다.

◇결전의 장 입성 : 국가공인 목공기능사 실기시험장

실기시험 접수는 목공교육 직전에 접수했는데 전국적으로 인원 초과로 경남 김해로 시험을 치러 가야만 했었다. 동기 한 명과 함께 실기시험을 쳐야만 했다. 국가공인 목공기능사 실기시험 당일 아침 일찍 든든하게 아침 식사와 따듯한 커피 한잔을 마시고 시험장으로 향했다. 동기 짐과 함께 카트에 각종 공구와 전동공구들을 싣고, 시험장 안으로 입성했다.

피아노조율 기능사와 산업기사 시험 때 관리, 감독위원을 해봤기 때문에, 시험장 분위기는 그렇게 낯설지 않았다. 실기시험 감독위원들이 어떤 사람인지 살펴봤다. 때로는 감독관들이 까다롭거나 하면 긴장하게 되고 시험 보기가 어려울 때도 있기에 초집중을 했다. 감독위원들의 설명하는 진행방법에 대해서 듣고 나서 번호표 4번을 뽑았다. 시험은 시작됐고 하나하나 현치도 작업을 하고 지급된 각 목재를 크기에 맞게 대여해 간 전동대패로 두께를 맞춰 나갔다. 두께 맞춤을 끝내고 현치도에 맞춰서 샤프는 심이 잘 부러졌기 때문에 얇게 깎은 연필로 하나씩 하나씩 먹 넣기 시작했다. 나무에 설계도면을 그리듯이 먹 넣기가 끝나고 화장실을 한번 다녀온 후에 심호흡을 한 번 하고 커피를 마셨다. 다시 시험장으로 향했다.

맨 마지막에 하는 창호 작업부터 시작했다. 창문을 만드는 작업이 끝난 후에 기둥을 세우고 하나씩 하나씩 각 목재를 톱질로 잘랐다. 톱질과 자동대패로 면을 잡고, 마무리는 잘 갈아 놓은 손 대패로 정리했다. 시험시간 30분 전에 전체적으로 잘라 놓은 나무들을 조립해서 드릴로 뚫고 이중 드릴 날로 못 머리를 파내고, 구멍을 만든 다음 50mm 못과 75mm 못을 사용해서 전체적으로 조립을 완성했다. 시험종료 30분 전에 작품을 완성할 수 있었고, 감독위원에게 제출했다. 특별한 지적사항은 없었고, 시간 내에 마무리했고, 각 목재의 크기도 잘 맞았다. 현치도도 틀린 것은 없었다.

목공작품(사진=김현용 조율사)
목공작품(사진=김현용 조율사)

◇생각만 하고 실행하지 않는 것은 쓰레기에 불과하다.

실기시험이 끝나고 주변 자리를 정리하고 공구를 생겨서 나왔다. 인천에 사는 같이 시험을 본 동기를 터미널에 내려주고 나는 안산으로 다시 올라왔다. 오면서 너무 피곤한 나머지 고속도로 휴게소를 다섯 번이나 들렀다. 집에 와서 식사하고 잠깐 쉬려는데 온몸이 쑤시고 아팠다. 나는 아내에게 “뭐든 배우려면 어릴 때 배우는 게 최고인가 봐” 했더니 “왜 열심히 잘했잖아”하고 아내는 나를 다독인다. “그렇긴 한데 온몸이 다 쑤셔 죽겠어”라고 했더니 아내는 피식하고 웃는다.

30년의 피아노 조율사 생활을 끝내고 다른 직업을 선택하는 것은 아니지만 피아노조율에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 국가공인 목공기능사에 도전했다. 아마도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전날 합격자 발표 때 좋은 소식이 들리지 않을까 생각한다. 도전은 나 자신을 계속 살아 있게 한다. 물론 준비하고 배우는 과정은 어렵고 힘들다. 하지만 배움을 멈추는 것은 나 자신의 삶을 그냥 멈춰 놓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무엇이든 내가 좋아하고 할 수 있는 것을 선택해서 배우고, 성취감을 하나씩 가져가는 것도 삶의 탄력을 갖는 나만의 방법이다. 또한, 이것은 스스로 살아가는 양분으로 작용할 때가 많다. 그러나 확실한 하나는 있다. “정말로 무엇이든지 한 살이라도 어릴 때, 조금이라도 빨리 배우는 것이 정말로 중요하다”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지난 20년간 “목공기술을 배워야 하겠다”라고 생각을 해 왔다. 지나서 생각해 보면 적극적으로 교육 기관을 알아보고 시간을 내서 미리 목공기술을 배울 수 있었음을 깨달았다.

1인기업 & CEO 과정 89기로 수료할 때 김형환 교수님은 “여러분이 원하고 바라고 목표로 하는 것은 언제 실행해서 이룬다고요? 오늘 바로 지금, 여기서!”라고 외쳤다. 스스로 꿈꾸고 목표하는 것들을 생각만 하는 것은 자신을 버려두는 것과 같다. 이번 국가공인 목공기능사 시험 도전으로, 앞으로 목표하는 것들은 바로 실행해 옮기는 능동적인 삶으로 거듭나 봐야겠다. 그런 이유로 코로나 19가 발목을 잡지만 벌써 나의 2021년은 밝게 빛나고 있다.

글/사진=김현용 조율사
글/사진=김현용 조율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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