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는 어떻게 협상에 성공했을까

남자는 발걸음을 바쁘게 옮긴다. 오늘은 중요한 면접이 있는 날이다. 그런데도 고졸 출신의 이 남자는 수트는 커녕 그 어떤 준비조차 되어있지 않다. 허름한 옷차림, 부스스한 머리, 온몸은 땀으로 젖어있다. 연신 시계를 쳐다보지만 아무래도 약속시간에 늦을 것 같다. 이를 어쩐담? 오늘은 아주 중요한 자리다. 약속에 늦는다는 건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오늘 이 기회를 놓친다면...생각조차 하고 싶지 않다. 숨을 헐떡거리며 뛰어간다. 

드디어 약속장소에 도착했다. 약속시간은 이미 한참전에 지났다. 말끔한 수트에 넥타이를 맨 중년 남성들이 굳은 표정으로 허름한 작업복 차림의 이 남자가 들어오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 면접에 작업복을 입고 오다니, 이게 무슨 무례한 행동이지? 이 남자에게 오늘과 같은 훌륭한 기회는 두 번 다시 찾아오지 않으리라.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온 남자는, 굳은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면접관들을 향해 이야기를 시작한다. 허름한 모습과 달리 그의 목소리와 표정은 밝고 당당하며 상대방을 압도하는 힘도 있다. 그는 면접관들에게 무엇이라고 이야기했을까?

이 남자의 대답을 이야기하기 전에, 위 상황은 실제로 있었던 일임을 미리 밝혀둔다. 고졸 출신, 허름한 작업복에 부스스한 머리, 온몸이 땀에 젖은 상태로 약속시간에 늦은 이 남자는 훗날 수천만 달러의 매출을 일으키는 회사의 CEO가 된다. 나는 앞에서 이야기한 남자가 면접관들 앞에서 이야기한 내용이 훌륭한 협상의 예를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위 장면은 세계적인 동기부여강사이자 Gardner Rich&co의 Co-Founder 크리스 가드너Christopher Paul Gardner의 일대기를 모티브로 제작된 영화 『행복을 찾아서』의 한 장면이다.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주인공 윌 스미스는 면접장소에 늦었고, 말쑥한 양복이 아닌 허름한 작업복 차림이었으며, 헐레벌떡 뛰어들어오느라 온 몸이 땀에 젖어 있다. 있어서는 안 될 상황이지만 윌 스미스는 네 명의 면접관이 굳은 표정으로 앉아있는 자리에서 이렇게 이야기한다.

윌 스미스 : 이런 옷차림으로 오게 된 이야길 지어내기 위해 고민했습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 안에 여러분 모두가 인정할 만한 요소들을 포함시키고 싶었습니다. 진지함, 부지런함, 협동심 그런 것들 말입니다. 하지만 그런 이야기가 전혀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사실대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주차 위반료를 못내서 구속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침에 파출소에서 여기까지 뛰어왔습니다. 

면접관 : (당황한 표정으로)구속되기 전엔 뭘하고 있었나요?
윌 스미스 : 집에서 페인트칠을 하고 있었습니다. 

『행복을 찾아서』中

협상은 상대로 하여금 가장 정확한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기술이다. 살면서 누구나 협상이 필요한 순간들을 만난다. 그 때 가장 지혜롭게 말하고 행동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만으로도 위기를 기회로, 실패를 성공의 발판으로 삼을 수 있다. 결국 협상은 삶이 한단계 풍요로워지는 데 도움이 되는 훌륭한 기술이라고 말할 수 있다. 

윌스미스의 이야기를 좀 더 들어보자. 

윌 스미스 : 한 가지 말씀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저는 이런 부류의 사람입니다. 당신들이 질문을 던졌을 때 모르면 모른다고 말씀드리겠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말씀드릴 수 있는 게 있습니다. 전 답을 찾는 방법을 알고 있고, 반드시 답을 찾아낼 것입니다. 그걸로 충분하지 않습니까?

『행복을 찾아서』中

그리고 윌 스미스는 “당신이라면 인터뷰에 셔츠도 안 입고 온 사람한테 뭐라고 이야기하겠습니까? 그리고 내가 그를 고용한다면 뭐라고 말씀하시겠습니까?”라는 면접관의 질문에 재치있게 응수함으로써 면접관들의 마음을 얻는다. 

“속옷은 정말 멋진 걸 입고 왔었나 보군.”

『행복을 찾아서』中

 

◇예YES라고 답하라 

협상은 상대방을 굴복시키거나 논리적인 방법으로 상대를 당황스럽게 하는 대화의 기술과는 거리가 멀다. 논쟁의 여지가 있는 상황을 일순간 종식시켜버리는 체계적인 대화법이나 심리술에 더 가깝다. 상대와 원만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돕고, 향후 발생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을 제거하는 것이 협상의 가장 큰 장점이다.

본 칼럼을 통해 마인드교육과 심리학에 기초한 협상의 기술과 예시들을 다루겠지만, 이론적 협상 지식이나 일상생활과 거리가 먼 이야기들은 최대한 배제한다. 나는 협상의 전문가도 아닐 뿐더러, 학문적 이론과 전문용어를 써가면서까지 설명할 만큼 인간 심리에 대해 완벽하게 알고 있지도 않다. 대신 살면서 누구나 맞닥뜨릴 수 있는 상황과 문제들을 지혜롭게 헤쳐나가도록 돕는 다양한 대화법을 소개할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은 일상생활에서 실제로 도움이 된다. 

협상이라는 단어 자체가 가지는 품위 때문에 어렵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줄 안다. 사실 협상은 우리 일상생활에 항상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세일즈맨, 사업가, 외교관들에게만 필요한 기술이 아니다. 세상을 살면서 반드시 익혀야 하는, 가장 필요한 대화의 기술 중 하나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

언젠가 아내가 장모님과 통화하는 걸 들었다. 자세한 내용은 모르지만 사소한 일로 옥신각신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아내는 “아니, 근데...”라고 시작되는 말을 연신 써가며 맞대응하고 있었다. 가만히 대화를 듣고 있던 나는 아내에게 이야기했다. 

“그냥 “예.” 하고 대답해.”

사실 그런 상황은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이다. 아내 입장에서는 논리적 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더 중요하게 느껴졌을 수 있는 상황이었을 것이다. 가족끼리 의견이 맞지 않는 부분은 충분한 대화와 양보를 바탕으로 조율하면 된다. 그렇기에 쉽게 끝나지 않는, 서로의 의견이 맞지 않는 사소한 경우에는 우선 “예.”라고 대답하고 난 뒤에 논리적으로 상황을 정리해볼 것을 권유했다. 

하지만 아내와 대화를 할 때마다, 나는 아내의 입에서 “예.”라는 대답보다 “아니, 근데...”라는 말이 훨씬 더 자주 나오는 것을 경험으로 알 수 있었다. 물론 나는 아내를 사랑한다. 내 생명보다 아내의 생명을 더 소중하게 생각하고, 아내가 갖고 있는 수많은 장점들을 존중한다. 하지만 단점보다 장점이 훨씬 더 큰 내 아내는 “예.”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언쟁으로 변할 수 있는 상황을 빨리 정리할 수 있는 훌륭한 기술임에도 불구하고 “아니, 근데...”를 훨씬 더 습관적으로 사용하는 안 좋은 버릇이 있다. 

흥미로운 사실 하나를 소개하겠다. 국내에서 개최되는 합창제를 포함하여 전 세계 최고 수준의 합창제에서 대상을 휩쓸며 세계최고 수준의 실력을 갖춘 합창단으로 발돋움한 그라시아스 합창단은 러시아 상페테르부르크 국립음악원 교수 출신의 지휘자 보리스 아발랸의 지도 아래 하루 15시간 이상 피나는 연습을 거듭하는 합창단이다. 100여 명의 단원들은 마치 하나의 소우주처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장르를 넘나드는 뛰어난 실력으로 전 세계를 다니며 음악의 아름다움과 가치에 대해 전파하는 음악의 전문가들이다. 그러나 나는 그라시아스 합창단의 연습장면을 실제로 확인하기 전까지는 그들이 어떻게 세계최고의 실력을 갖춘 합창단으로 성장할 수 있었는지 잘 이해하지 못했다.

이제 나는 그 수수께끼를 알 수 있다. 100여 명 남짓한 합창단원과 악기연주자들이 연습을 위해 모여있는 공간은 넓은 홀이 무색할 정도로 완벽하게 조용했으며, 심지어 서로를 향해 속삭이듯 대화했다. 게다가 그들은 지휘자의 한마디 한마디에 하나가 된 듯이 “예.”하고 대답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상황들, 자신의 의견, 소신있는 발언은 연습이 다 끝난 뒤 충분히 공유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드넓은 홀에서 100명의 단원이 한 마음으로 “예.”하고 대답하는 장면은 가슴을 뭉클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세계최정상급 지휘자의 지휘 아래에서 그들은 배움을 게을리하지 않았는데, 인도자의 한 마디 한 마디에 “예.”라고 이야기하는 소사회를 향한 지휘자의 열정은 활활 타오르는 장작불과 같았으리라. 

협상의 사전적 의미에 마음이 머물러있다면 협상은 그저 보기 좋은 직업을 가진 사람들의 비즈니스를 위한 도구 정도로밖에 이해할 수 없다. 무엇보다 생각의 단계를 거치지 않은 화법이나 발언으로는 협상의 실력이 향상되지 않는다. 일상생활에서 우리는 자주, 어쩌면 매일 협상해야 하는 상황을 만나는지도 모른다. 

언젠가 상대방이 내가 잘 모르는 부분에 대해 장황하게 설명을 한 적이 있다. 그의 말을 100% 이해하지도 못했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몰랐다. 솔직히 별 관심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아, 그래요?” 하고 대답한 뒤 이렇게 덧붙였다. “그래서 어떻게 됐습니까?”

상대방은 나에 대해 좋은 인상을 갖고 있었으며, 나 역시 그를 존경하고 있었다. 사람을 잃고 싶지 않았기에 협상을 시도한 것이었다. 사람을 얻지 못하는 협상은 협상이 아니다. 협상은 상대방이 얻는 것을 주되, 내가 얻고자 하는 것도 취하는 것이다. 가장 적절한 이익을 서로가 취하되, 최종적으로 얻는 것은 상대방의 마음이어야 한다.

최근에도 그런 상황이 있었다. 보험 사업을 하는 나는 언젠가 결코 쉽게 만날 수 없는 부류의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그들의 10분은 나의 10분보다 훨씬 생산성이 높다. 그래서 미리 준비한 3분짜리 스크립트를 들고 갔다. 그리고 그들 앞에서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미리 양해를 구했다. 

“대표님의 10분은 저의 10분보다 훨씬 더 가치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제가 긴장한 나머지 대표님께 드리고자 하는 말씀을 놓칠까봐 미리 스크립트를 준비해왔는데, 다 읽는 데 3분밖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틈틈이 보면서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나의 무례함을 기꺼이 허락해준 그들 앞에서 이야기를 마치고 난 뒤에는 이렇게 마무리했다.

“제 이야기는 끝났습니다. 대표님이 필요 없으니 나가라고 하시면 저 문을 열고 나가겠습니다. 혹 질문을 하신다면 아는 것은 아는 만큼, 모르는 건 모른다고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렇게 내 이야기를 들은 3명 모두 내게 똑같은 질문을 던졌다.

“실례가 안된다면, 약관이 어떻게 되는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글/사진=전준우 작가
글/사진=전준우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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