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블라인드 스팟 '청각 검사'의 디지털 전환(DX) 가속화
모터·부품 미세음 분석, 불량 검출 정확도 99%…제조 현장 "생산성 1.4배 향상"
'딸깍', '징-' 숙련된 공장 작업자가 제품이 작동할 때 나는 미세한 소리를 듣고 정상(OK)과 비정상(NG)을 판단하는 모습은 오랜 기간 제조 현장의 마지막 품질 검사 풍경이었다. 만드는 과정은 로봇과 자동화 설비가 담당하더라도, 최종 품질을 검수하는 '청각 검사'만큼은 여전히 사람의 '감(感)'에 의존해왔다.
하지만 인공지능(AI) 기술이 이 오랜 관행을 허물고 있다. 모터, 액추에이터, 베어링 등 모든 제조 부품에서 발생하는 미세한 소리를 AI가 수집하고 분석해 '수치'로 평가하는 기술이 제조 현장에 빠르게 확산되면서, 공장 자동화의 마지막 퍼즐로 불리던 청각 검사의 디지털 전환(DX)이 본격화되고 있다.
◇ 공장의 마지막 블라인드 스팟, '청각 검사'의 한계
대부분의 생산 공정은 이미 자동화되었으나, 제품의 최종 품질을 검사하는 EoL(End-of-Line) 단계에서는 여전히 사람의 감각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특히 소리를 통한 청각 검사는 숙련자의 청각 능력과 경험에 크게 좌우된다는 고질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문제는 '감'에 기반한 판단이 작업자의 컨디션, 피로도, 그리고 교대 근무에 따라 기준이 흔들린다는 점이다. 소음 환경, 감정 상태 등의 외부 요인에도 결과가 영향을 받아 재현성과 추적성 확보가 어렵다. 결과적으로 제조 현장의 마지막 판단이 객관적인 '데이터'가 아닌, 주관적인 '감'에 머물러 생산의 일관성을 해치는 요인이 되어왔다.
◇ '소리'를 '수치'로…AI가 불량을 듣는다
최근 제조 현장에서는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청각 데이터를 정량화하는 시도가 가속화되고 있다. 다수의 특수 마이크(멀티 마이크 어레이)가 제품이 내는 소리를 정밀하게 수집하면, AI가 소리를 분석해 '합·보류·불합'을 즉시 판정하는 시스템이다.
AI는 정상 제품의 소리 데이터를 스스로 학습한 후, 주파수, 잔향(배음), 소리의 강약 흐름(엔벨로프) 같은 음향 특징을 분석한다. '딸깍', '찌직'과 같은 미세한 이상음은 분석을 통해 객관적인 '점수'로 계산된다.
국내 모터 생산라인의 공장장은 "이전에는 감으로 듣던 불량을 이제는 데이터로 확인한다"며, "교대가 바뀌어도 항상 같은 결과가 나오는 일관된 QC(품질관리)가 가능해졌다"고 변화를 설명했다. 검사 결과가 라인 속도 내에서 신속하게 나오며, 작업자 간 편차 없이 일관된 품질 관리가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더 나아가, 이 데이터는 단순 품질검사를 넘어 설비의 미세한 노후화 변화까지 감지하는 예지보전(PdM) 단계로 발전하고 있어 활용도가 더욱 커지고 있다.
◇ 작업자도 인지하지 못했던 '청각검사 속 불편함'을 AI가 해결 …실제 도입 효과는 압도적
AI 기반 청각 검사를 도입한 제조 현장의 성과는 매우 구체적이다. 한 모터 제조업체의 경우, AI 청각검사 전환 후 검사 속도가 60% 단축되었으며, 불량 검출 정확도는 99%에 달했다. 라인당 생산성은 1.4배 향상되는 압도적인 결과를 보였다.
또 다른 부품업체는 커넥터 체결 시 발생하는 '딸깍' 소리의 피크 및 공진 패턴을 AI가 분석하도록 시스템을 변경했다. 그 결과, 불완전 체결·미체결·과체결 같은 체결 불량률이 70% 이상 감소했고, 재검사 비율은 절반 이하로 줄었다.
BMW, Porsche, AVL 등 글로벌 완성차 기업들이 이미 소리와 진동 데이터를 정량화하여 품질관리를 표준화하는 흐름과 궤를 같이한다. 개발 단계부터 양산까지 일관된 청각 데이터 체계를 구축해 정숙성과 감성 품질을 동시에 관리하는 방식이 이제 국내 제조업에도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 디플리, 'Physical AI' 플랫폼으로 진화 모색
이러한 흐름을 국내에서 현실화하고 있는 대표적인 기업은 소리 인공지능 전문 기업 디플리(Deeply)다. 디플리는 산업 전용 특수 마이크와 로컬 AI 추론 서버를 활용해 제품의 소리를 실시간으로 분석하고 점수화하는 시스템을 제공한다.
디플리의 박한 CTO는 "우리는 소리를 수치로 바꾼다. 사람의 감각이 아닌, 데이터로 품질을 정의하는 시대를 만들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 시스템은 단순히 소리를 듣는 장비를 넘어, 제품 검사 과정(EoL)과 공장 설비 제어 시스템(MES/PLC)을 통합하는 품질 데이터 플랫폼처럼 작동한다.
디플리는 향후 진동, 압력, 온도 등 다른 물리 감각 데이터를 통합한 'Physical AI 플랫폼'으로 확장할 계획을 갖고 있으며, 제조 산업 전반의 DX(디지털 전환)를 더욱 가속화할 전망이다. '눈으로 보는 QC'에서 '귀로 듣는 QC'로, 그리고 이제 AI가 인간의 감각을 디지털로 확장시키는 'Physical AI'로의 진화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로 자리 잡고 있다.
